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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성요한 /십자가의 성요한

[스크랩]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16장 - 19장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Angelo Albani, Massimo Astrua 원저

이 종욱 안셀모 신부 역

 

                    16장. 최초의 합일(合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영적(靈的) 약혼(約婚)'에 대해서 제시한 개요(槪要)를 통해서,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성인이 결혼(結婚)의 비유로써 설명하는 새롭고 한층 더 친밀한 합일(合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를 자세히 분석하기 전에 우선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 지금까지는, 영혼은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하느님께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피조물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을 추구해왔고 (능동적 밤), 하느님은 그런 영혼을 힘차게 도와주셨다 (수동적 밤). 

 

영혼에게 있어서 이 정화(淨化)는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유익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정화(淨化)야말로, 복음(福音)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의 설교에 대해서 영혼이 주의를 기울이게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하셨다."[103] 

 

바로 이 순간에 영혼은 하느님께로 빠져든다. 이렇게 해서 모든 연인(戀人)들의 걱정스럽고도 즐거운 이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혼은 밤낮으로 하느님만을 생각하고, 그분을 만나고 그분을 뵙고 그분을 행복하게 해드리려는 욕구에 불탄다. 

 

하느님을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저 세상에서처럼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혼은 그분과 결합될 수 있도록 죽기를 바라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장(章)에서 다룰 영혼과 하느님 사이의 최초의 합일(合一)이 맨먼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이 합일(合一)이 어떻게 전개(展開)되는지를 잠시 살펴보자. 

 

- 하느님은 당신께 대한 사랑에 그토록 빠져있는 영혼을 보시고 더더욱 당신 자신의 사랑에 못이기시어, 영혼으로 하여금 당신을 발견하게 하시고, 영혼과 당신과의 사랑의 약속을 승인 하신다: "그래, 너는 나의 신부(新婦)가 될 것이다!"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충실성을 약속하는 영적(靈的) 약혼(約婚)의 날이 바로 이 때이다. 

 

두 약혼자가 서로 친절함과 선물들을 주고받음을 기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하느님은 가장 귀중한 선물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바칠 수 있게 하는 가장 귀중한 선물들을 교환함으로써 대단한 기쁨을 얻게 된다. 

 

- 그 날이 멋지게 올 때까지 자신을 위해 천상 정배께서 배려하신 친절함으로써 자신이 온전히 깨끗하게 되는 그 날을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영혼은, 창조주와의 영적(靈的) 결혼(結婚)이라는 거룩한 합일(合一)에로 인도된다. 거기서 -각각 고유한 존재(存在)를 보존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두 본성(本性)의 합일(合一)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두 본성(本性)들은 하느님 안에서 서로 혼합되는 것처럼 보인다.[104] 

 

여기서 하느님은 영혼에게 더이상 선물들을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당신 안에 영혼을 빨아들이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영혼에게 내어주신다.  

 

이제부터는 영혼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 하느님께 대한 오롯한 사랑은, 성부(聖父)께서 성자(聖子)를 사랑하시고 성자(聖子)께서 성부(聖父)를 사랑하시는 그런 사랑이고, 바로 성령(聖靈)이신 사랑이다.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실제로 변모되는 것이다. 

 

- '사랑의 산 불꽃'에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 역사상 신비가(神秘家)들 중에서 그분이야말로 이런 내용을 언급하시는 유일한 분이시지만- 영혼이 이 세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다음 단계를 묘사한다. 이는 '변모(變貌)의 합일(合一)'에 대한 문제인데, 그 자신 안에서 이미 신화(神化)된 영혼은, 훨씬 더 하느님을 닮아가게 됨으로써, 자기 주위에 신적(神的) 사랑의 불꽃을 퍼뜨린다.[105]  

 

이 합일(合一) 이후에는, 그 어떤 가리움도 없는 합일, 천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합일 이외에는 더이상 남은 것이 없다. 

 

이제는, 이 최초의 합일(合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또 영혼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어떻게 빠져드는지를,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영혼의 노래'의 첫 열두 노래들 안에서 서술하는 내용에 따라서 알아보기로 하자. 

 

'영(靈)의 수동적 밤'의 끝 부분에서, 영혼은 아가 (Cantique des Cantiques)의 신부(新婦)와 함께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된다: 

 

"그리워라, 뜨거운 님의 입술!"[106]  

 

그리고 하느님은 영혼의 이 소원을 글자 그대로 들어주시고, 영혼에게 입맞춤을 해주신다. 요한 성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하느님에 관해서도 역시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107]  

 

하느님께서 몸소 영혼에게 접촉하시는 이 입맞춤 안에 내포된 사랑의 체험은 대단히 깊고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영혼은 다시 자신이 하느님께로 향한 사랑으로 상처를 입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영혼은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자신이 홀로 있음을 보게 될 때, 슬퍼하면서 다음과 같이 애원하게 된다: 

 

"어디 숨어 계시는고? 사랑하는 님이시여, 

 

울음 속에 날 버려두고."[108]  

 

하느님께로 향한 합일(合一)에 가장 확실한 안내자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항상 남아있을 신앙(信仰)에 의해서, 대답은 곧 들려온다: 

 

"나는 네 안에 있고, 네 안에서 산다!"[109]  

 

그 때문에, 요한 성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아, 영혼이여!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여! 사랑하는 님을 찾아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해서, 어디에서 그 님을 찾아 만날 수 있는지를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영혼이여! 이제부터 그대는 님께서 머무르시는 곳이라고, 님께서 몸을 숨기시는 곳이라고 불리리라. 그대는 그대의 온갖 선(善)도, 그대의 온갖 희망도 그대에게 그토록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님께서 그대 안에 사신다는 사실을 알아, 한없이 즐거워할 수 있도다."[110]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님이 어디 숨어 있는지를 알고는 집도 재물도 친구들도 온갖 것들도 다 뿌리치고 님과의 만남을 위해 달려가는 것처럼,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영혼 역시 애정(愛情)으로나 의지(意志)로나 모든 것들을 다 떠나서 자기 자신 안에, 마치 다른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철저한 잠심(潛心; 마음의 평정) 안에 숨어들어야 한다.[111]  

 

하느님 안에서의 이 영혼의 잠심(潛心)은 기도 안에서 다시 한 번 실현된다. 거기서 영혼은 하느님과 함께, 완전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는 사랑으로써가 아니면 하느님께로부터 그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112]  

 

이렇게 사랑에 빠져든 영혼이 오로지 사랑하는 임만 찾기를 충실하게 또 열심히 계속한다면, 하느님은 그 사랑에 감동하시어 당신의 현존(現存)을 잠시 동안이나마 영혼에게 드러내신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신적(神的) 인식(認識)의 접촉'[113]이라 부르는 이 선물은, 가령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지속된다 하더라도, 영혼이 항상 죽어가는 것처럼 느끼는, 또 무엇보다도 영혼으로 하여금 그 사랑에 불타 실제로 죽을 수는 없다는 사실에 더 죽어가게 하는, 하느님께로 향한 그런 사랑으로 영혼에게 불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영혼은 다음과 같은 말로 스스로 반문(反問)하게 된다: 

 

"그러나, 너 사는 데에 살지 못하면서 

 

오오 목숨아! 너 어찌 부지하려느냐?"[114] 

 

그리고는 실제로, 현존(現存)하는 동시에 숨어있다고 느껴지는 이 최고선(最高善) 안에 풍덩 빠지려는 욕망으로 인해서, 영혼은 쇠약해진다.[115] 

 

예기치 못했던 이 신적(神的) 발현(發現), 그렇게도 순간적인 이 신적(神的) 발현(發現)은, 하느님께로부터 얻은 욕망과 하느님을 완전히 찾아얻지 못한 고통의 불을 영혼 안에 다시 일으키고 점점 번져가게 한다. 

하느님은 사슴처럼 모습을 드러내시고, 영혼을 사랑으로 상처입히시고, 달아나 숨으신다. 

"상처만 나에게 남기신 채 

사슴처럼 가버리신 그대!"[116] 

그 다음에 영혼은 이렇게 말하면서 사랑으로 그 님을 질책한다: 

"이 마음에 상처를 낸 그대이시거늘 

어찌 이를 낫우어주지 않으시나요?"[117] 

님께서 내신 상처 님만이 치유해 주실 수 있음을 알고, 영혼은 이렇게 애원하게 된다: 

"아아, 누가 날 낫우어줄 수 있을런가? 

이젠 정말 그대를 전부 주소서."[118] 

 

따라서 이 시기는 영혼에게 있어서 큰 고통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오로지 짤막한 '사랑의 접촉'으로만 중단되는데, 이 사랑의 접촉으로 하느님은 영혼에게 당신의 현존(現存)을 드러내신다. 이 짧은 위로의 순간이 끝나면 영혼은 전에 체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고통 속으로 즉시 떨어지게 된다. 

 

        17장. 영적(靈的) 약혼(約婚) 

 

하느님과의 영적(靈的) 약혼(約婚)의 출발점에 도달한 영혼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기 전에, 영혼 안에서 계속 무르익어가는 현실감각을, '하느님과의 새롭고 더 친밀한 합일(合一)'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현실감각을 분명히 하기로 하자.  

 

은총지위에 있는 영혼이 세례 때부터 소유하고 있는 (2장 참조)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참여는 은총지위에 있는 영혼 안에서의 하느님의 현존(現存)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 영혼은 특히 대신덕(對神德)의 실천으로 성장하고 충만해진다. (3장 참조). 

 

'하느님과의 새롭고 더 친밀한 합일(合一)'은, 우리가 앞 장에서도 이미 언급했고 앞으로도 또 언급하게 되겠지만, 대신덕(對神德)의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한 세례에 의한 합일(合一) 그 자체이다. 영혼은 이미 천상 낙원에서의 복된 합일, 어떤 가리움도 없는 합일에 대한 어떤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영혼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가장 완전하고 하느님께 가장 깊숙히 일치된 영혼이라 할지라도, 항상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가끔 복되신 당신 현존(現存)을 영혼에게 잠시 드러내셔서 영혼을 당신께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영혼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이 순간적인 발현(發現)들을 신비가(神秘家)들은 '입맞춤'·'접촉'·'애무'·'광선' 등으로 부르는데, 이 발현(發現)들은 영혼 안에 사랑의 상처들을 남기고, '탈혼상태'와 '황홀경', 그리고 '영혼의 날아오름'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것들은 영혼 안에서 지상적(地上的)인 모든 욕망(慾望)들을 소멸시키고 하느님께 대한 엄청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고, 하느님께 대한 이 엄청난 열망은 어떠한 가리움도 없이 하느님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영혼으로 하여금 죽기를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하느님의 섭리(攝理)에 의한 모든 계획의 목표는 분명히 우리 자신을 예수님 안에서 변모(變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모든 계획의 목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의 본성(本性)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처럼 저 세상에서도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예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변모시키는 것이다. 

 

하느님만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을 비운 영혼들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미래의 일을 미리 맛보게 하시고 그 영혼 안에 이미 실재(實在)하시는 당신의 현존(現存)을 드러내는 순간적인 어떤 표징을 이 세상에서부터 영혼에게 주기 원하신다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인가? 

 

이제는, 사랑에 빠진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서의 영적(靈的) 약혼(約婚)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자. 

 

하느님은 당신 사랑으로 상처입은 영혼을 보시고, 그 탄식으로 감동되신다. 그리고 당신 역시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상처를 입으신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연인(戀人) 사이에서는 한 사람의 상처가 바로 다른 사람의 상처이고, 이에 대해서 그들이 받는 느낌은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119]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더이상 견디실 수가 없어, 마치 상처입은 사슴처럼 당신을 영혼에게 드러내시고, 하늘로부터 당신 신부(新婦)에게 모습을 드러내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영혼을 당신께로 부르신다: 

 

"돌아오라 비둘기야, 

상처난 사슴이 

언덕 위에 나타나 

네가 나는 바람에 서늘함을 얻나니."[120] 

 

아직은 결정적인 합일(合一)의 문제는 아니지만, 영혼을 향한 하느님의 선택과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선택, 결정적인 이 선택이 바로 '영적(靈的) 약혼(約婚)'이다. 

 

이 약혼(約婚) 안에서 영혼의 의지(意志)와 하느님의 의지(意志)가 영원히 결합되기 때문에, 영적(靈的) 약혼(約婚)을 '의지(意志)의 합일(合一)'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하느님의 의지와 영혼의 의지가 이제 하나가 되었으니…, 영혼은 피조물들에 대한 다른 모든 애정을 포기한 것이다."[121] 

 

"이것이 이루어질 때, 주님께서는 위대함과 엄위로 영혼을 꾸미시고 온갖 선물들과 덕(德)들로 영혼을 채워주시고 거룩한 인식(認識)과 사랑을 영혼에게 드러내시고, 마치 사람들이 약혼하는 날 자기 약혼녀에게 해주듯이 하시면서, 큰 이익을 영혼에게 나누어주신다."[122] 

 

이 선물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선물, 하느님을 소유하는 마지막 선물로 마무리된다. 

 

실제로 이 복된 날에, 격렬한 걱정들과 사랑의 탄식들은 영혼 안에서 사라지고…, 영혼은 평화롭고 기쁘고 감미로운 상태로 살기 시작한다.[123] 설사 약간의 혼란이나 혹은 감각들이나 악마로부터 오는 불쾌감들로 고생을 해야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은 오로지 영적(靈的) 결혼(結婚)에 이르러서야 끝날 것이다.[124] 

 

영적(靈的) 약혼(約婚)의 시기 동안에, 사랑하는 님의 방문이나 선물들의 교환은 자주 일어난다. 

 

"여러 차례의 방문 때에, 하느님의 빛으로 비추임을 받은 영혼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덕(德)들을 자신 안에서 보고, 그 모든 덕(德)들을 엮어서 마치 꽃다발처럼 사랑하는 님께 그것을 봉헌하게 된다."[125]  

 

이 모든 선물 교환이 관상(觀想)의 기도를 통해서 더 잘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관상(觀想)의 기도는 충실히 실천될 것이고, 영혼이 모든 일에 있어서, 약혼(約婚)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참되고 충만한 사랑의 동의(同意)로써 자신의 거룩한 정배이신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르려고 애쓰는 매일매일의 모든 행위들에 미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126] 

 

사실 이 순간에 기도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27] 하신 예수님의 계명을 완전히 실현시키면서, 또 정화(淨化)를 동반한 기도가 되면서, 끊임없는 기도에로 향하게 된다. 실제로, 이 마지막 기도는 여기서 피조물들로부터 달아나는 부정적인 모습을 버리고, 기도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애착'이라는 긍정적인 모습을 열어주게 된다. 

 

게다가, 약혼(約婚)의 시기에 영혼은 오로지 사랑하는 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원하게 되기 때문에, 영혼은 자신 안에서 영혼들의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열정 그 자체로 불타게 된다. 예수님의 성심(聖心) 안에 불타는 이 열정은 사사로운 편애(偏愛)가 없는 보편적인 열정이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열정이며, 특히 십자가 상의 예수님과 함께 속죄(贖罪)하는 열정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혼자만 천국에 가는 것은 그에게는 사소한 일로 보이는 것이다.[128]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도우심 안에서 영혼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포기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열정과 짝을 이룬다. 영혼은 이제 자기 자신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죄들도, 또 자신의 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전에는 비록 어떤 지난 일들이나 자신의 죄들이나 혹은 타인(他人)들의 죄들 -영성가(靈性家)들이 습관적으로 많이 느껴왔던 것들인- 로부터 나온 고통의 샘물이 영혼에게까지 이르렀더라도, 이제는 영혼이 그것들을 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직시(直視)하지만 그것들이 영혼에게 더이상 고통도 불행도 일으키지 않게 된다."[129] 

 

그리고 이것은, 이제부터는 영혼이 하느님께 의탁하기 때문이고, 영혼이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했기에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치유해주려 하신다는 것을 영혼이 알기 때문이고, 영혼이 이 착한 목자의 어깨에 메여 자신을 내맡긴 채로 당신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간청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이제는 영혼을 마치 잃었다가 되찾은 순한 양처럼, 당신 어깨에 메인 나무랄 데 없는 순한 양처럼, 그토록 갈망했던 이 합일(合一) 안에서 당신 팔에 안긴 순한 양처럼 생각하실 때, 사랑의 목자(牧者)와 영혼의 정배에 의한 시련을 거친 즐거움과 기쁨을 본다는 것, 이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130] 

 

이런 식으로 하느님은 영혼을 당신 팔에 안아 인도하시면서 '당신의 화관(花冠)이자 당신 성심(聖心)의 기쁨'[131]인 영혼을 영적(靈的) 결혼(結婚)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합일(合一)에로 들어가게 하신다.  

 

         18장. 영적(靈的) 결혼(結婚) 

 

'무(無)와 전(全)' 'Nada와 Todo'라는 사랑의 법에 끝까지 충실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이 대단히 높은 합일(合一)을 포함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영혼은 소수에 불과하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묘사한 사랑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 영혼들은 많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영적(靈的) 결혼(結婚)이라고 불리워지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合一)에 도달하는 영혼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132]  

 

그렇지만 성인은, 이 은혜를 갈망하고 이 은혜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거룩한 정배이신 하느님은 과연 이 합일(合一)을 우리에게 주려는 열망에 불타시는데, 오로지 우리 사랑의 부족함만이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는 것에 방해물이 될 수 있다.[133] 

 

이제는 영적(靈的) 결혼(結婚)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우리 사부(師父) 요한 성인께 질문해보기로 하자. 

 

요한 성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님 안에서의 영혼 자신의 전적(全的)인 변모(變貌)이다. 즉, 이 세상에서 가능한 한 영혼을 더 높이 들어올리고 참여로써 거룩하게 하는 -말하자면 하느님이 되게 하는- 사랑의 합일(合一)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영혼과 하느님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몰두하는, 그런 변모(變貌)이다."[134] 

 

"그것은 마치 촛불이 태양빛에 흡수되어 태양 앞에서 사라지고 태양의 그 눈부신 광채가 다른 모든 빛들을 소멸시키고 흡수해 버리는 것과 같다."[135] 

 

따라서, 이 영적(靈的) 결혼(結婚)은 영혼이 영적(靈的) 약혼(約婚)의 상태에서 이미 도달했던 단순한 '의지(意志)'의 합일(合一)이 아니라, 이제는 감각(感覺)을 포함한 모든 능력들을 하느님 안에 흡수시키고 일치시키는 전적(全的)인 합일(合一)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을 끝맺는다: "그래서 영적(靈的) 결혼(結婚)이라는 이런 상태는 영혼이 은총 안에 굳건해짐이 없이는 -즉 죄를 범할 수 없게 됨이 없이는- 검증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36] 

 

이 합일(合一)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분명 성령(聖靈)이시다. 성령(聖靈)께서는 이제 영혼 안에 당신의 특별한 선물들을 가득 부어주시고, 이 성령(聖靈)의 선물들은 마치 시원한 강풍(强風)이 항해(航海)를 쉽게 하고 빠르게 하듯이 모든 덕(德)들의 실천을 쉽게 하고 즐겁게 한다.  

 

우리가 17장의 첫머리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영혼이 이미 세례 때에 받아들였고 대신덕(對神德)의 실천을 통해서 완성시킨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은, 이제 영혼 안에 실재(實在)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번째 차이점은, 대신덕(對神德)의 합일(合一)은 영혼의 걸음걸이에 따라서, 말하자면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합일(合一)은 하느님의 걸음걸이에 순응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이 합일(合一)이 한번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137] 

 

두번째 차이점은,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근거들로, 또 뚜렷한 순간들로써,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합일(合一)은 거의 확인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재(實在)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무(無)'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138] 영혼이 이 영적(靈的) 결혼(結婚)이라는 합일(合一) 안에서 체험하고 맛보는 것에 대한 우리 사부(師父) 성 요한의 설명을 들어보자. 

 

- 무엇보다 먼저, 영혼은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現存)을 의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영혼은 하느님을 느끼고 그분의 현존(現存)을 깊이 누리게 된다."[139] 

 

- 영혼은 그분이 자신의 정배로서 존재하심을 느낀다. 즉, 마치 자신에게만 배타적(排他的)으로 속하시는 분으로 느끼는 것이다: "영혼은 자기 정배이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쉬게 되고 그분께서 진정한 영적(靈的)인 포옹으로 자신을 안아주심을 느끼며, 이로써 영혼은 하느님의 생명을 함께 누리게 된다."[140] 

 

- 영혼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정배이신 하느님의 신비(神秘)들에 대한 깊은 인식(認識)을 갖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충실한 남편이 아내에게 하듯이 당신의 놀라운 비밀들을 영혼에게 자주 드러내시고, 진실하고 완전한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비밀도 감추어둘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영혼에게 당신의 활동들을 잘 알려주신다. 이 친밀한 사귐으로 영혼은 특히 강생의 감미로운 신비(神秘)들에 대한 심오한 인식(認識)에로 인도되고, 인류의 구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당신께서 사용하신 기묘한 방법들과 하느님의 가장 숭고한 업적들 중에서도 중요한 업적들을 알게 된다.[141] 

 

- 영혼은 자신이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을 누림을 느끼게 된다: "영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참여로써 자신의 지성(知性)과 인식(認識)과 사랑의 활동을 하게 되는데, 하느님과 함께 또 하느님처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 안에서 이 활동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142] "여기서 이미 영혼은, 자신을 형언할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는 이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어떤 표지들을 얻어누리게 된다."[143] 

 

- 영혼은 자신의 감각(感覺)들을 자신의 이성(理性)으로써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단계에서 감각적인 부분은 정화(淨化)되고 더 영적(靈的)인 것이 된다. 그래서 감각(感覺)도 하느님께서 영(靈)의 가장 깊은 곳에 전해주시는 영적(靈的)인 큰 은혜들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고 그 은혜들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144] 

 

- 끝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혼이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단계에서 누리는 모든 영적(靈的) 체험(體驗)들은 영혼 안에서, 그런 체험(體驗)들이 완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천상(天上) 낙원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영혼과 그리스도와의 합일(合一)이 완전해지고 드러나게 되는 곳은 오로지 그곳 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투쟁하는 교회' (地上교회) 안에서 영혼을 들어높여 주신 영적(靈的) 결혼(結婚)으로부터 '승리한 교회' (天上교회)의 영광스러운 결혼(結婚)에로 넘어가고자 하는 열망 안에서, 신부(新婦)는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단계에서 갖게 된 이 모든 성향(性向)들과 모든 완전함들을 자신의 정배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앞에 드러낸다.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지극히 거룩한 예수의 이름에 도우심을 간청하는 모든 이들이 그 영광스러운 결혼(結婚)에 도달하게 되기를 바란다."[145] 

 

      19장. 변모(變貌)의 합일(合一) 

 

'변모(變貌)의 합일(合一)'[146]이라는 이름은 '영적(靈的) 결혼(結婚)'을 지칭하기 위해서 여러 저술가(著述家)들에 의해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고, 이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이름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친히 설명하는 영적(靈的) 결혼(結婚), '사랑의 산 불꽃'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의 저서(著書) 안에서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는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최고봉(最高峰)인 영혼의 최고 성장을 가리키기 위해서 보류된 용어로서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성인의 말씀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완덕(完德)의 최고 단계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은 영적(靈的) 결혼(結婚)을 통해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변모(變貌)되는 단계였다. 이제는 바로 이 변모의 단계에서 가능한, 한층 더 높고 더 완전한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겠다."[147] 

 

한층 더 높고 더 완전한 이 사랑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인은 한 가지 비유를 이용한다: 

 

"나무가 불에 탈 때에 비록 그 나무가 불과 뒤섞이고 변모되고 불과 하나가 된다고 하더라도 더 불타오르고 불꽃과 불티를 튀기기까지 작열하게 되는 것처럼, 나무에서 일어나는 그런 같은 일이 영혼에게 일어난다."[148] 

 

따라서, 변모의 합일은 영적(靈的) 결혼(結婚)의 경우와 꼭같은 하느님과의 합일이지만, 가능한 모든 활동들이 극도(極度)에 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영혼이 사랑의 훈련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극도의 한계이고, 이 한계를 넘어서면 영원한 생명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이 가장 높은 활동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표현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시적(詩的)인 상징들을 이용한다. 성인은 화폭(畵幅) 위에다 몇 줄기의 대단히 빛나는 필치를 쏟아내지만, 어떤 논리(論理)도 그 내용을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이것이 '오, 사랑의 산 불꽃이여!' 라는 시(詩)의 네 절(節)이다. 

 

여기서 한 절씩 그 메시지를 끌어내보자: 

 

      1절; 

 

      "오, 사랑의 산 불꽃이여…. 이 사랑의 불꽃은 영혼의 정배이신 하느님의 영(靈)이시다. 이는 바로 영혼이 이제부터 그 자체로서 느끼게 되는 성령(聖靈)이시고, 영혼을 영적(靈的) 결혼(結婚)을 통해서 감미로운 사랑 안에서 불태우고 변모(變貌)시키는 불로서만 아니라, 변모의 합일(合一)을 통해서 영혼 안에서 영혼을 태우고 불꽃을 튀기고 천상적(天上的) 행복(幸福)으로 영혼을 씻겨주는 불로서도 느끼게 되는 성령(聖靈)이시다."[149] 

 

변모의 합일(合一)의 특징은, 성령(聖靈)께서 항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三位一體)께로, 당신께서 하느님의 생명 자체인 무한한 사랑의 불꽃을 그 안에서 끊임없이 태워주시는 그 삼위일체(三位一體)께로 영혼을 더욱 동화(同化)시키시면서 영혼 안에 펼쳐주시는 이 '사랑의 활동'이다. 

 

따라서, 영혼에 의해 행해진 그런 사랑의 행위들이 대단히 귀중하다는 사실에 놀랄 이유도 없고, 그 사랑의 행위들 중의 단 한 가지가 평생동안 그가 행한 모든 일들보다도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도 없다.[150] 

또 영혼이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볼 수 있고,[151] 이제는 영혼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아무런 가리움 없이 만나뵙기 위해서 죽고 싶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놀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영혼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자기 생명의 마지막 한 올마저 잘라버리시는 마지막 선물을 성령(聖靈)께 간청하고 애원하게 된다: 

 

                             밤

 능동적 밤

            수 동 적 밤

 1

 淨

 化

2

 

   감

   각

   의

   淨

   化

5

 

  靈

  의

  淨

  化

    6

 

   감

   각

   의

   淨

   化

 8

 

 轉

 移

9

 

 10

 

 合

 一

 의

11

 

12

 

13

1

 

3

 

4

 

7

 

 시

 작

 

     "오,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속에 

      부드러이 살라주는 

      사랑의 산 불꽃이여! 

      다시는 너 매정할 리 없으니 

      자, 이만 끝내어다오, 소원이로다. 

      녹아나는 이 만남의 휘장을 찢어다오."[152] 

 

       2절; 

 

        이렇게 불꽃에 사로잡혀서 불타는 영혼에게 일어나는 일은, 하느님의 순결하심과 생명 안에서의 영혼 자신의 전적(全的)인 변모(變貌)이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혼은 자신 안에서 자신을 정화(淨化)시키시고 사랑의 상처를 입히시기 위해서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보시는 하느님의 업적은 마치 불타고 있는 쇠, 다시 말하자면 불에 달구어진 인두의 역할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 상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에 달구어진 인두는 그것이 닿는 곳에 항상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과, 더 나아가서 불에 데인 상처가 아닌 어떤 상처에 인두가 닿게 되면 그 상처를 불로 태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듣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이 사랑의 인두 곧 성령(聖靈)께서는, 당신이 접촉하신 영혼이 다른 불행이나 죄들로부터 이미 다른 상처를 입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 영혼으로 하여금 사랑의 상처를 입도록 내버려두신다. 이렇게 해서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생긴 상처들은 사랑의 상처들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153] 

 

그래서 영혼은, 정화(淨化)되고 성령(聖靈)에 의해서 불태워져서 이렇게 기도한다: 

 

 

 

    "오, 서늘한지고 탄 자국. 

     오, 고마울사 이 상처. 

     아, 섬섬한 손길, 오 보드라운 접촉! 

     영원한 생명 맛들이고 

     모든 빚 다 갚아지나니 

     너 죽이며 죽음을 목숨으로 바꿨노라."[154] 

 

     3절; 

 

       영혼이 이 '변모(變貌)의 합일(合一)'의 상태에서 자기 주변에 퍼뜨리는 불길들은 영혼으로 하여금 사랑의 활동을 하게 하고, 영혼을 완전히 정화(淨化)시킨다. 게다가 하느님의 무한하신 아름다움에 대해서 영혼을 밝혀주면서 영혼을 거룩한 지혜로 가득 채운다. "유일하고도 단순한 그 존재(存在) 안에서,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고,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정의로우시고, 강하시고, 사랑스러우시고, 영원하시고…, 그 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속성들과 덕(德)들을 갖추고 계신다."[155] 

 

그래서 영혼은 이 불꽃을 '등불들' (Flambeaux de feu) 이라고 부른다. 이 등불들 안에서 영혼은 타버리고, 이 등불들로 인해서 영혼은 하느님을,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보시고 즐기시는 것처럼, 그 내면(內面)으로부터 뵙고 즐기게 된다. 

 

     4절; 

 

      그렇지만, 사랑의 활동 한가운데에 있는 이 사랑의 불꽃 안으로 영혼이 이끌려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휴식 안에, 또 영혼 자신이 정배이신 하느님을 누리는, 마치 '자기 품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님과도 같이'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 계심을 느끼는, 그런 평화 안에 영혼은 잠겨있게 된다.[156] 

 

"이 영혼은 얼마나 행복한가! 또 영혼이 온갖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걱정들을 떨쳐버리고 사랑하는 님의 품 안에서, 가장 미세한 소리조차도 더이상 자신을 방해할 수도 괴롭힐 수도 없는 무한한 고요 안에서 산다는 것이 이런 영혼에게 얼마나 어울리는 일인가!"[157] 

 

당신 신부(新婦)를 기쁘게 하시기 위해서 하느님은 영혼 안에서 친히 일어나시어, '당신의 거룩한 생명에 대한 아주 새로운 계시(啓示),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 안에서 누리는 조화(調和)에 대한 아주 새로운 계시(啓示)'[158]를 영혼에게 주신다. 

 

하느님의 이 일어나심 안에서 그분의 탁월하심을 영혼이 어떻게 알아듣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설명하기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159]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발(發)하시는 성령(聖靈) 안에서 -그 안에서 영혼이 지극히 영광스러워지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사랑에 도취되고 하느님의 오묘하심에 잠기게 되는 그 성령(聖靈)의 발하심 안에서- 영혼이 체험하게 되는 특별한 기쁨을 설명하는 일 역시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160]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능한 가장 강렬한 사랑의 통교에 대해 영혼의 눈을 열어주시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께 호소하면서, 영혼은 겨우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은밀히 내 품안에 

       홀로 계시면서 어이 이리 

       고이 사랑스레 잠깨시는고. 

       지선(至善)과 영광이 칠렁이는 

       그대 향기로운 숨결로 어이 이리 

       살며시 나를 사랑에 매시는고."[161] 

 

이것이 바로, 예수께 대한 사랑으로 걸어온 무(無)와 전(全), Nada와 Todo의 길이 충실한 영혼들을 인도해주는 목적지(目的地)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영혼들이 많기를 원하신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모든 이들을 위해서 강생하셨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든 영혼들이 다 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Llama de amor viva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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