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Angelo Albani, Massimo Astrua 원저 이 종욱 안셀모 신부 역
결 론
피조물들 중 가장 뛰어난 존재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 우리의 영광이신 마리아
모든 피조물(被造物)들보다 더 완전하게,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을 실현하시고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변모(變貌)를 실현하신 분은, 바로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시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단언한 것처럼, 대단히 확실한 진리(眞理)가 여기에 있다: "지극히 영화로우신 동정녀, 우리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에 의해 처음부터 이 높은 상태에로 올림을 받으셨다."[162]
마리아께서 영성적(靈性的)으로 그토록 위대하신 이유는, 그분이 바로 '예수의 어머니'이시라는 특전에서 유래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아드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시기를 원하셨을 때,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치시고'[163], 당신 전능(全能)으로서 아드님을 위해 가장 아름다우시고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합당한 어머니를 마련하셨다.
하느님은 마리아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당신의 권능, 당신의 무한한 권능을 -그 자체로서 무한하지만 마리아가 피조물(被造物)이라는 사실에서만 한계를 가진 그런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셨다.
설사 마리아에게 주어진 선물이 유일하고 가장 위대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리아를 지켜주시고 그 잉태에 있어서 '원죄없으신 분'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이 의지(意志)에 대한 한 가지 표징이다.
사실, '피조물(被造物)들 중 가장 겸손하신 분'께서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합일(合一)과 하느님 안에서의 변모(變貌)'라는 이 엄청난 은총이 그 영혼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예감하게 한다:
"전능하신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음이라!"[164]
● 우리의 모범이신 마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아무 것도 드리지 않고 오로지 받기만 하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마리아께서는 그토록 위대한 선물들을 넘치도록 받으셨지만, 당신께서 모든 덕(德)들, 특히 신덕(信德)과 애덕(愛德)을 끊임없이 실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이 업적을 가능하게 했고 하느님의 활동에 협조하셨다.
우선 신덕(信德)에 있어서, 마리아는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특히 다음과 같은 때에 영웅적인 신덕(信德)을 실천하셨다. 즉:
- 처녀이신 당신이 구세주를 낳으실 것이라고 알리는 천사의 말씀을 당신이 믿으셨을 때, - 당신 아드님이 태어나시고 성장하시는 것을 지켜보시고 그분이 바로 당신의 창조주이심을 믿으셨을 때, - 또 당신 아드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것을 보고 그분이 부활하실 것을 믿으셨을 때, 마리아는 위대한 신덕(信德)을 실천하셨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그분을 만났을 때에 '당신은 믿으셨으니 참으로 복되십니다'[165] 라고 했던 것이다.
애덕(愛德)에 있어서도, 마리아는 역시 영웅적인 애덕(愛德)을 실천하셨다. 즉:
- 당신의 동정성(童貞性)을 봉헌하신[166] 바로 그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천사의 전갈을 받으시고 대답하신 '예!'라는 대답으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완성된 사랑의 순교(殉敎)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의지(意志)를 온전히 복종시킨 바로 그 하느님의 의지(意志)에 대한 사랑 안에서, - 또 당신께서 일생동안 겸손하고 말없는 봉사행위를 예수님과 성 요셉과 엘리사벳과 사도들에게 실천하심으로써 드러내신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마리아는 역시 위대한 애덕(愛德)을 실천하셨다.
● 우리의 중재자이신 마리아
우리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마리아의 온갖 위대함의 원천은 그분의 신적(神的) 모성(母性)이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거룩하게 하신 것, 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최고로 또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단계에까지 당신과 일치시키시고 변모시키신 것은 바로 이 신적(神的) 모성(母性)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그 정도에서 중단되지 않았고, 말씀의 육화(肉化)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당신께 동의(同意)할 것을 마리아에게 부탁하기까지 하시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167] 하신 마리아의 응답을 들으신 후에야 인류구원이라는 당신 과업을 실행에 옮기셨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말씀의 육화(肉化)가 온전히 마리아의 자유로운 선택 -그것으로 그 신비(神秘)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동의(同意)- 에 달려있게 되기를 바라셨으나, '피조물(被造物)들 중 가장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온 마음을 다해서 '예!' 하는 응답을 하시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다.
그런데,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시는 삼위일체(三位一體)께서 -인간을 하느님께 일치시키는 신비(神秘)의 실현(實現)에 대한 그의 동의(同意)에 복종하시면서-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이 피조물(被造物) 앞에 무릎을 꿇으신 까닭에, 인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다른 모든 일치와 변모의 은총들이 사실상 오로지 마리아의 동의(同意)와 중재(仲裁)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모든 은총들의 중재자이시고, 말하자면 '은총의 통로'이시며, 하느님께서 그 길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기로 작정하신 '길'이시며, 또한 그 길을 통해서 우리가 당신께로 나아가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그런 '길'이시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신 예수님도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다.
이 '길'을 얻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의 변모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며, 끝없는 천상 행복 안에서 하느님을 누리게 되고, 거기서 우리는 영원히 다음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삶의 길을 몸소 가리켜 주시니 당신 모시고 흡족할 기꺼움이, 당신 오른편에서 누릴 즐거움이 영원하리이다."[168]
부록 1.
철학적 논거에 의한 심리학 개요 인간은 그 자연적(自然的) 존재(存在) 안에 실체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두 본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물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육신'과 영적인 부분을 말하는 '영혼'이다.
1. 육신
우리의 육신 안에는, 다른 많은 동물들의 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부 세계를 지각(知覺,connaitre)할 수 있는 능력 -예를 들면, 시각(視覺)·촉각(觸覺) 등- 과 지각(知覺)된 사물을 사랑(tendre)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각(知覺,connaissance)은 감각(感覺,sens)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사랑(tendence)은 욕(慾,passion)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a) 감각은 사물들의 구체적인 성질, 즉 색깔이나 모양 따위를 지각할 수 있는 수단인데, 감각적인 대상이 우리 밖에 있는지 우리 안에 있는지에 따라서 외적(外的) 감각과 내적(內的) 감각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외적(外的) 감각은 다섯 가지이다:
- 시각(視覺)은 눈을 통해서 우리 밖에 있는 사물들의 색깔이나 모양, 움직임 등을 본다. - 청각(聽覺)은 귀를 통해서 여러 가지 소리들을 듣는다. - 후각(嗅覺)은 코를 통해서 여러 가지 냄새들을 맡는다. - 미각(味覺)은 혀를 통해서 여러 가지 맛들을 느낀다. - 촉각(觸覺)은 피부를 통해서 외부의 사물들에서 열(熱)이나 모양을 감지한다.
내적(內的) 감각은 뇌(惱)를 통해서 외적(外的) 감각들이 우리 안에 일으킨 인상(印象)들을 감지(感知)한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당신 작품들 안에서 두 가지 내적(內的) 감각(感覺)만을 다룬다. 이는 '창조적(創造的) 기억(記憶)' (memoire imaginative)과 '상상(想像)' (imagination) 이다. 성인이 이 두 가지만을 염두에 둔 것은, 이 두 가지가 당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고 다른 모든 내적(內的) 감각(感覺)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 창조적(創造的) 기억(記憶)은, 시각(視覺)이라는 감각의 기관인 눈이 더이상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때에도, 또 귀가 더 이상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을 때에도, 우리가 색깔들을 내심(內心)으로 '다시 보게' 해주고, 음악을 '다시 듣게' 해준다.
- 상상(想像)은, 우리가 내심(內心)으로 어떤 형상(形象)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전에 사람(人)과 말(馬)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으로 두 가지 형상을 합성(合成)해서 '인두마(人頭馬)'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b) 욕(慾, passion, appetit)은 감각(感覺)의 정(情) (tendances sensitives)을 뜻하는데, 우리는 이 情들을 통해서, 감각(感覺)에 상쾌한 것들 -예를 들면, 좋은 향기나 아름다운 음악 등- 에는 끌리고, 감각(感覺)을 불쾌하게 하는 것들 -예를 들면, 나쁜 냄새나 귀를 따갑게 하는 소음 등- 에는 반발하게 된다. 욕(慾)이란 다만, 우리 안에 상쾌한 혹은 불쾌한 인상(印象)들이 있을 경우에, 외적(外的)인 어떤 감각(感覺)들을 통해서, 혹은 내적(內的) 감각(感覺)들을 통해서 되살아난 인상(印象)들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결론이 나오는데, 이 결론은 우리 사부(師父) 성 요한에 의해서, 우리가 감각적(感覺的) 지각(知覺)들을 통제하는 은총으로 하여금 우리의 욕(慾) -즉, 격정(激情)- 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근거(根據)로 이용될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자기 작품들 안에서 네 가지 욕(慾)들을 말한다:
- 기쁨 - 희망 - 두려움 - 고통
다른 여러 가지 욕(慾)들에 관해서 (산길 I, 13, 5)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여러 예(例)들을 통해 이 네 가지 욕(慾)들을 설명함으로써 충분하다. 사실상, 성인의 의도는 독자들에게 욕(慾)에 관한 심리학(心理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合一)'에 영혼이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욕(慾)들이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2. 영혼
인간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도,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지각(知覺)하고 사랑하는' 작용들을 수행한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당신의 작품들 안에서 이 작용들을 폭넓게 묘사한다: 지각(知覺)하는 두 가지 작용으로서는 지성(知性)과 기억(記憶)을, 이미 지각(知覺)된 사물들을 사랑하는 세번째 작용으로서는 의지(意志)를 설명한다.
a) 지성(知性)은 구체적(具體的)인 성질들을 지각(知覺)하는 육신의 능력 -이것이 감각(感覺)의 근거(根據)이다- 과는 달리, 추상적(抽象的)인 성질들 즉 사물 자체의 개념(槪念)을 인식(認識)할 수 있는 영혼의 능력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붉은 장미를 볼 때, 지성(知性)은 '붉다'는 개념을 추상해낸다. 붉은 장미를 통해서 우리는 붉다는 개념을 장미에 매어두지 않고, 장미가 아닌 루비나 버찌 등 다른 붉은 모든 사물들에 적용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을 이끌어내게 된다.
지성(知性)이 특정한 구체적인 사물에 추상적인 개념을 적용시킬 때, 거기서 '버찌는 붉다', '베드로는 착하다' 하는 식의 판단(判斷)이 나온다. 일련의 판단들이 계속되고 발전해나가면, 거기서 어떤 추론(推論)이 나오는데, 이 추론으로 사람들은 더 위대한 진리(眞理)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지성(知性)은 선(善)함·위대(偉大)함·무한(無限)함 등의 보편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낸다.
b) 기억(記憶)은 지성(知性)이 만들어낸 개념들을 보존하는 능력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강렬한 영성적(靈性的) 노력의 대상(對象)으로서의 이 기억에 대해서 길게 명백하게 설명을 해준다.
c) 의지(意志)는 지성(知性)에 의해 인식된 '좋은 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장난감을 본 어린 아이는 그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에게 좋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가령 그것을 조작하는 일이 번거롭다고 하더라도, 그런 번거로운 조작을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그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받는 위로가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意志)의 근본적인 특성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또 다른 일보다 오히려 이 일을 하도록 결심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떤 사물을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그가 그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의지적(意志的) 행위를 동시에 사랑의 행위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지성(知性)의 행위와 의지(意志)의 행위의 상반되는 특성들:
1) 지성(知性)은 추상적 개념을 통해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그 사물에 의식적으로 일치됨이 없이, 실제로는 그 사물과 구별된 상태로 남아있다. 반면에, 의지(意志)는 어떤 사물을 사랑할 때, 그 사물과 살제로 일치되거나 혹은 실제로 일치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對象)과 일치하고자 한다.
2) 지성(知性)은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지각된 그 사물을 개념화(槪念化)함으로써 자신에게 동화(同化)시킨다. 즉 그 사물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든다. 반면에, 의지(意志)는 어떤 사물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그 사물에 동화(同化)된다. 즉 자신을 그 사물과 비슷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사랑하는 자 -주체(主體)-를 그가 사랑하는 대상(對象) -객체(客體)-에로 동화(同化)시키고 그 안에서 사랑하는 자 -주체(主體)-를 변모시킨다고 말한다.
3) 사랑의 대상(對象) -객체(客體)- 안에서 사랑하는 자 -주체(主體)-를 그 객체(客體)에 일치시키고 변모시키는 이 사랑의 특성들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모든 영성적(靈性的) 교의(敎義)의 바탕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이 특성들을, 영혼에게 요구되는 피조물(被造物)들에 대한 이탈(離脫)의 실현에든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의 실현에든, 면밀히 적용시킨다.
3. 세 가지 법칙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에 이어서, 여러 가지 능력들 -예를 들면 감각(感覺)·욕(慾)·지성(知性)·기억(記憶)·의지(意志)- 이 지각(知覺)과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들을 해나가는 데에 적용되는 세 가지 법칙들을 설명하는 것이, 사부(師父) 성 요한의 영성적(靈性的) 교의(敎義)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제 1법칙; 우선 감각(感覺)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지성(知性)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 지성(知性)은 처음에는 완전히 비어있다. 그것은 전혀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 (白紙, tabla rasa)와도 같다. 실제로, 태생소경은 자신의 감각(感覺)을 통해서 전혀 아무 색깔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색깔의 개념(槪念)을 전혀 가질 수 없다. 감각(感覺)들은 '영혼의 문들 (les portes de l' âme)'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제 2법칙; 먼저 인식(認識)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욕구(慾求)의 대상(對象)이 될 수 없다.
실제로:
a) 의지(意志)가 무엇을 욕구 -즉 사랑-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성(知性)을 통해서 그것 -객체(客體)-이 그 -주체(主體)-에게 보여져야 한다. 밭에 보물이 묻혀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결코 그것을 원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지(意志)가 지성(知性)에 종속되어 있다고 한다.
b) 반면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인식(認識)은 의지(意志)에 의해서 방해를 받을 수도 있고,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만일 의지(意志)가 어떤 사물을 지각(知覺)하는 데에 지성(知性)을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예를 들자면, 책을 읽는 경우-, 지성(知性)은 그 사물을 인식(認識)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성(知性)이 의지(意志)에 종속되어 있다고도 해야 한다.
제 3법칙; 욕(慾)은 지성(知性)에도 의지(意志)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욕(慾)들은 감각(感覺)에 의해 자극된 눈먼 정(情,tendance)들이고, 이 욕(慾)들은 지성(知性)과 의지(意志)의 행위들에 거의 항상 동행(同行)한다.
거기서 두 가지 현상이 파생된다:
a) 욕(慾)들은 지성(知性)의 행위에도, 의지(意志)의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식도락(食道樂) -미각(味覺)에 해당되는 욕(慾)- 은 우리에게 해로운 음식도 해롭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성(知性)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의지(意志)마저도 지성(知性)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b)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慾)들의 영향은 의지(意志)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 그 방법은 욕(慾)들이 정(情)을 붙인 감각적(感覺的) 대상(對象)을 욕(慾)들로부터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의지(意志)가 감각(感覺)에게 바라보지도 말고, 냄새맡지도 말고, 맛있는 음식의 맛을 회상하지도 말도록 명한다면, 욕(慾)은 감각적(感覺的) 대상(對象)이 자기에게는 없기 때문에, 없어지게 된다.
욕(慾)들에 대한 의지(意志)의 통제는 간접적인 통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각(感覺)의 느낌을 중재로 해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4. 결론(結論); 의지(意志)의 우위성(優位性)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는 의지(意志)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상한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다:
- 첫째로, 여러 지각능력들 -감각(感覺)·지성(知性)·기억(記憶)- 이 그 지각(知覺)한 내용을 의지(意志)에게 제공함으로써 의지(意志)에 봉사하기 때문이고,
- 둘째로, 다른 모든 능력들 -욕(慾)을 포함한 모든 능력들- 이 의지(意志)가 명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의지(意志)에 복종하기 때문이고,
- 셋째로, 의지(意志)야말로, 거룩한 사랑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 영혼을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에로 들어올릴 수 있는 일치의 능력이고 변모의 능력이기 때문이며,
- 넷째로, 의지(意志)는 자유로움으로써 우리가 책임성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할 만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게 있어서 한결같은 과제는, 영혼에게 방해물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희생함으로써, 또 그런 희생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행하도록 우리에게 명함으로써,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을 키워나가려는 데에 있다.
다른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성인(聖人)에 의하면 한 가지 뿐이다: "저녁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169]
부록 2.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들에 대한 독서 안내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작품들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독자들에게 이 도표를 제시한다. 이 도표에는 성인의 가르침에 따른 여러 단계들에 해당되는 작품의 장절(章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다음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 성인이 제시한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가르멜의 산길'·'영혼의 노래'·'사랑의 산 불꽃' 세 작품의 서문(序文)을 읽기 바란다.
- 그 다음에는, 위의 도표에서 각 단계들을 표시한 번호 (1∼13)에 해당되는 성인의 작품의 부분들을 차례로 읽기 바란다.
- 위 도표의 2번에서는, 산길 I, 13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거기서 우리는 감각(感覺)의 능동적(能動的) 정화(淨化)를 위한 구체적인 규범들을 발견할 수 있다.
- 도표의 5번에서는, 산길 II, 16∼21장은 다른 기회에 참조하기를 권한다. 이 부분은 환시(幻視) 등과 같은 비범한 현상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충실한 논문을 이루는 것인데, 이 단계에서는 그런 비범한 현상들이 독서를 부담스럽게 하고 독자들의 의욕을 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도표의 9번 부분을 시작하기 전에, '사랑의 비밀 사다리' (밤 II, 19-20) 부분을 읽기를 권한다. 이 부분은 다음의 여정(旅程) 전부를 일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사랑의 산 불꽃' (도표의 13번 부분)에서 성인은, 앞서 이미 다루었던 논지(論旨)들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내용들을 첨부시키고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이것을 독자들이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논리(論理) 전개에 혼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첨부된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불꽃 1절 (pp. 728-733; Ed. Père Lucien-Marie), 2절 (pp.751-755), 3절 (pp.769-794; 795-798).
부록 3 서평(書評)
이 서평(書評)은 스페인 부르고스(Burgos)에서 발간되는 가르멜회 영성잡지 <MONTE CARMELO> 100호 (1992년) 180-181페이지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스페인어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소개한다.
ALBANI - ASTRUA,
La dottrina spirituale di S. Giovanni della Croce, edizioni Mimep - Docete, Pessano (Mi) 1991, 172 págs.
Es un librito de divulgación de la doctrina espiritual de San Juan de la Cruz, que el autor considera para la mayoría de los cristianos un <tesoro escondido>, pues es la explicación <más limpia y profunda> del ideal evangélico de perfección. De ahísu finalidad eminentemente práctica: señalar -fiel a la doctrina del Santo- <el itinerario del alma hacia la unión con Dios>. Sirve para orientar tanto a los que inician este camino como a los que se encuentran en él, para que puedan comprender mejor lo que experimentan en su vida. Es una vibrante llamada a la santidad.
Su esquema de desarrollo es muy sencillo. Después de unos capítulos iniciales sobre los componentes de la vida espiritual (destino del hombre a la unión con Dios, crecimiento por la vida teologal, colaboración humana, la nada y el todo, la noche activa y pasiva), comienza la descripción del itinerario sanjuanista según las etapas siguientes: 1 ) Oración-Purificación; 2 ) Purificación activa de los sentidos; 3 ) Meditación; 4 ) Contemplación activa; 5 ) Purificación activa del espíritu; 6 ) Purificación pasiva de los sentidos; 7 ) Contemplación pasiva; 8 ) Transición; 9 ) Purificación pasiva del espíritu; 10 ) Comienzo de la unión; 11 ) Desposorio espiritual; 12 ) Matrimonio espiritual; 13 ) Unión transformante.
La descripción de cada una de estas etapas es muy sucinta, recogiendo siempre los textos fundamentales sanjuanistas alusivos al fenómeno comprendido en cada etapa. De esta forma ofrece un punto de referencia seguro en la difícil singladura espiritual.
Esta descripción, sin embargo, tiene dos pequeños inconvenientes. El primero es que se trata de una descripción puramente conceptual, desprovista de esa carga experiencial y mistagógica que reciben de San Juan de la Cruz, convirtiendo estos temas en experiencias o realidades vivas de la vida cristiana. El autor, por el contrario, convierte estas realidades en temas, desarrollados más bien en categorías clásicas y según un método tradicional, que hoy nos parecen lejanas y no fácilmente inteligibles. Y es que la doctrina sanjuanista, para hacerla cercana e inteligible al hombre de hoy, ha de ser interpretada en otras categorías o vaciada en otros moldes distintos de los de la espiritualidad cl sica, en los que él se expresó. En otras palabras, requiere una relectura en nuevas claves teológico-espirituales, que el autor no hace, ni lo intenta siquiera. Aquíradica una de sus limitaciones más importantes.
Otra limitación o segundo inconveniente es la forma rigurosa o excesivamente rígida en concebir las etapas del itinerario espiritual, como si el desarrollo de la vida espiritual estuviese rigurosamente sujeto a la sucesión de esa serie de grados descritos. No responde a la concepción sanjuanista -ni siquiera teológica- de la evolución de la vida cristiana. Por eso el autor, más que etapas, lo que describe son una serie de temas o aspectos de la vida espiritual, que en San Juan de la Cruz tienen especial relevancia, pero no destaca la peculiaridad del proceso sanjuanista, ni la importancia u originalidad que el Santo da a determinados temas (v. gr., vida teologal, purificación de las noches...) en el itinerario hacia la unión con Dios.
Estas limitaciones se justifican desde el punto de vista del autor, puesto que lo que él se propone es una simple divulgación de la doctrina espiritual de San Juan de la Cruz. Pero entiendo que la divulgación ha de hacerse no sólo con criterios de fidelidad material a la doctrina del Santo, sino también de interpretación creativa de su doctrina a la luz de los planteamientos actuales de la teología espiritual. Esta tarea no es propia sólo de la investigación, sino también -y más propiamente- de la divulgación. De lo contrario, no se da divulgación, sino mera repetición.
Pese a estas limitaciones, el librito cumple su propósito de dar a conocer el mensaje de San Juan de la Cruz a tantos cristianos que ignoran este <tesoro escondido>: si las señalamos; es con la mejor de las intenciones para animar y orientar al autor en la reelaboración de su libro en sucesivas ediciones; para que pueda cumplir mejor su propósito.
Ciro García
* 번역문
Albani, Astrua 공저, La Dottrina spirituale di San Giovanni della Croce, Dottore della Chiesa. Mimep-Docete, Pessano(Milano), 1991, 172페이지.
이 책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영성적 가르침의 대중화를 시도한 소책자이다.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영성적 가르침은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춰져 있는 보물'인데, 사실 성인의 이 가르침은 '완덕(完德)'이라는 복음적 진리(理想)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심오한 설명이다. 따라서, 대단히 현실적인 저자들의 의도는, 성인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 '하느님과의 합일에로 향한 영혼의 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성인의 가르침은, 이 길에 이제 막 들어선 사람들과 이미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삶 안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길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이 가르침은 '성덕(聖德)'에로의 감동적인 부르심이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처음에 몇몇 장(章)들에서는 영성생활의 구성요소들 -하느님과의 합일에로 정향된 인간의 운명, 대신덕적(對神德的) 삶을 통한 성장, 인간의 협력, 무(無)와 전(全), 능동적 밤과 수동적 밤- 을 다룬 후에,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따라 성인께서 제시하신 그 여정(旅程)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1) 기도 - 정화(淨化), 2) 감각의 능동적 정화, 3) 묵상, 4) 능동적 관상, 5) 영(靈)의 능동적 정화, 6) 감각의 수동적 정화, 7) 수동적 관상, 8) 전이(轉移)의 단계, 9) 영(靈)의 수동적 정화, 10) 합일의 시작, 11) 영적 약혼, 12) 영적 결혼, 13) 변모의 합일.
각 단계에 대한 묘사는 매우 간결하다. 이 묘사들 안에서, 우리는 각 단계들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암시하는 성인의 기본적인 텍스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쉽지 않은 이 영적 여행에 있어서 확실한 어떤 기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묘사들은 두 가지 작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결함은, 순전히 개념적인 묘사라는 점인데, 이는 이런 주제(主題)들을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체험과 실재(實在)들로 변모시키시는 성인의 그 체험적이고 신비신학적인 가르침에는 합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거꾸로 이런 실재(實在)들을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고전적인 범주들에 잘 맞추어진 주제(主題)들로 바꿔놓았는데, 이는 오늘 우리에게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 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가르침을 현대인에게 더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가르침이 다른 범주들 안에서, 고전적인 영성과는 다른, 성인께서 그 안에서 당신 사상을 표현하신 그 새로운 '틀' 안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새로운 기준으로부터 성인의 작품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 책이 가지는 한계성들 중 하나가 나오게 된다.
다른 한계성 혹은 두번째 결함은, 마치 영성생활의 진보라는 것이 이 책에서 설명된 그 단계들에 엄격하게 얽매여있는 것처럼, 영적 여정의 각 단계들을 표현함에 있어서 엄격한 혹은 지나치게 딱딱한 형태를 취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변화 발전에 대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개념에도 신학적인 개념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들이 서술하는 것은 단계들이라기보다는 영성생활에 대한 일련의 주제들 혹은 일련의 측면들이고, 그 안에서 십자가의 요한 성인께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시는 것은 사실이나,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가르침에 따른 영혼의 여정이 가진 특수성도 성인께서 하느님과의 합일을 향한 여정 안에서 어떤 특정 주제들 -예를 들자면, 대신덕(對神德)이나 밤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화(淨化) 등- 에 부여하시는 중요성 혹은 독창성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계성들은, 저자들이 의도했던 것이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가르침을 단순히 대중화시키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런 저자들의 시각(視覺)에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중화라는 것이 성인의 가르침에 대한 어떤 자료의 충실성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영성신학의 현대적 문제제기에 비추어 성인의 가르침에 대한 창조적 해석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제는 단순히 성인의 사상에 대한 연구의 경우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대중화의 경우에도 역시, 아니, 대중화의 경우에는 더욱 더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중화라기보다는 단순한 반복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한계성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책은 '감춰져 있는 보물'을 알지 못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메시지를 알리고자 하는 그 목적을 이루고 있다. 그 한계성들에 대해 지적한 것은, 이 책이 재판(再版)될 때에는 그 내용을 다시 가다듬도록 저자들을 격려하고 유도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저자들이 의도했던 그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해서이다.
씨로 가르씨아 (Ciro García)[170]
부록 4.
십자가의 성 요한의 '완덕의 산' 그림 내용
▒ 그림 설명
* 합일(合一)의 길; 무(無)와 전(全)
-- 제 5 장에서 -- 십자가의 성 요한은 깔바리오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었던 때에 '완덕(完德)의 산(山)'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시 그려졌고,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에로 영혼들을 이끄는 여정(旅程)의 전체 모습을 영혼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인의 지도를 받던 영혼들에게 이 그림을 나누어주었다.
이 산의 정상(頂上)은 하느님의 거처를 상징한다. 이는 영혼이 갈망하는 목표이고, 영혼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목표인데, 특히 등반이 더 엄한 희생을 요구하는 때에 그러하다.
산의 기슭에서 세 갈래의 길이 시작된다.
- 왼쪽의 길은 천상(天上)의 보화를 사랑하는 자들의 길인데, 그들은 산 정상(頂上)에 도달하지 못하고, 넘을 수 없는 어떤 바위로 인해 멈춰버린다. 여기도 역시 두 개의 표지판이 있는데, 이 표지판들은 영혼의 즐거움들을 찾거나 그런 것들로 만족해하는 자는 누구나 순수한 하느님의 사랑, 즉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의 정상(頂上)에 도달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 가운데의 길은 하느님 외에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길인데, 이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완덕(完德)의 좁은 길이다.(마태 7,13.) 이 길은 순수한 하느님 사랑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 '무(無)'로 표시되어 있다: 영예도, 휴식도, 맛도, 자유(自由)도, 재능도, 영광도, 안전(安全)도, 기쁨도, 위로도, 지식도… 아니고, 이 길은 산의 정상(頂上)에로 영혼을 직접 인도하는데, 거기서 영혼은 자신이 걸어온 전체 여정(旅程) 안에서 체험한 무(無)보다도 더한 무(無)의 심연에 삼켜져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하느님으로 부유해지는 것은 분명히 이 무(無) 안에서이다: "내가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기에, 원함 없이 이 모든 것이 내게 주어졌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여기서는, 무(無)의 길은 자신의 한계를 잃고 그 산(山)과 혼합된다: "여기에는 더이상 길이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법이 없고, 그 자신이 자신의 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영혼은 하느님의 힘에 내맡겨지고,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만 이끌리게 된다. * <끝>
주 (註)
1) 요한 17,21. 2) 마태 20,1-6. 3) 불꽃 3,28. 4) 루가 1,49. 5) Crisógono, Vida, p.45. 6) Vida, p.69. 7) Vida, p.67. 8) Vida, p.98. 9) Vida, p.350. 10) <譯註> 성인의 생애에 대한 번 역서로는 대구 가르멜수녀원에서 번역해낸 Richard P. Hardy의 저서 '무(無)에의 추구(追求)' (분 도출판사, 1986)를 추천한다. 11) <譯註> 일러두기는 그 성격상 한글판 번역본에 맞춰 일부 수정했다. 주요 작품 제목의 약어도 한글로 조정했고, 괄호 안에 스페인어 원제목을 밝혔다. 12) 로마 8,29.13) 로마 8,9. 14) 사목헌장 22. 15) 갈라 4,5. 16) 로마 8,17. 17) 요한 14,23. 18) 노래 39,3. 19) 노래 39,3. 20) 노래 39,3-4. 21) 노래 39,6. 22) 노래 39,7. 23) 마태 13,46. 24)산길 2,29,6. 25) 마르 12,30. 26) 산길 1,11,4. 27) 산길 1,11,3. 28) 루가 5,16. 29)루가6,12. 30) 마태 6,6. 31) 루가 18,1. 32) 마태 7,13. 33) 산길 1,13,11. 34) 불꽃 3,46-47. 35)산길 2,7,11. 36) 불꽃 3,59. 37) 산길 1,2,1. 38) 산길 1,1,4. 39) 산길 3,39,1. 40) 불꽃 3,22. 41) 산길 1,13,7-8. 42) 산길 1,13,3. 43) 마태 11,30 참조. 44) 산길 1,13,4. 45) 산길 1,13,4.> 46) 산길 1,13,4. 47) 산길 1,13,4. 48) 산길 1,13,6. 49) 산길 1,13,9. 50) 산길 1,15 참조. 51) 산길 2,14,2. 52) 산길 2,14,2. 53) 산길 2,14,2. 54) 산길 2,14,3. 55) 산길 2,8,3.56) 산길 2,8,5. 57) 산길 2,8,3. 58) 산길 2,6,6. 59) 산길 2,9,1. 60) 산길 2,22,3. 61) 산길2,29,12. 62) 노래 4. 63) 노래 14. 64) 노래 12. 65) 사랑에 불타는 영혼의 기도. 66) 노래 3 참조. 67) 산길 3,2,14. 68) I열왕 3,10. 69) 산길 3,3,5-6. 70) 밤 5. 71) 밤 1,1,2.72) 밤 1,14,1-3. 73) 순교자들의 엘리세오 (Eliseo de los Mártires) 신부, 영(靈)에 대한 의견들 (dictámenes de espíritu), 5. 74) 밤 1,9. 75) 산길 2,13 참조. 76) 산길 2,13. 77) 산길 2,15. 78) 밤 1,10. 79) 산길 2,15. 80) 산길 2,15. 81) 밤 2,1. 82) 밤2,2. 83) 밤 2,2. 84) 산길 2,22. 85) 산길 3,13. 86) 밤 1,8. 87) 밤 2,5. 88) 밤 2,5. 89) 밤 2,6. 90) 밤 2,8. 91) 밤 2,8. 92) 밤 2,6. 93) 밤 2,6. 94) 밤 2,6. 95) 밤 2,7. 96) 밤 2,7.97) 밤 2,18. 98) 밤 2,24. 99) 밤 2,17. 100) 밤 2,17. 101) 밤 2,23. 102) 밤 2,24. 103) 마르 10,21. 104) 노래 22,5. 105) 불꽃 서문 3-4. 106) 아가 1,2. 107) 밤 2,23. 108) 노래 1. 109) 요한 14,23 참조. 110)노래 1,7. 111) 노래 1,6 참조. 112) 노래 1,13 참조. 113) 노래 ,4. 114) 노래 8. 115) 노래 11,4. 116) 노래 1. 117) 노래 9. 118) 노래 6. 119) 노래 13,9. 120) 노래 13. 121) 불꽃 3,25. 122) 노래14,15. 123) 노래 14,15. 124) 노래 14; 15,30 참조. 125) 노래 16,2. 126) 노래19,2. 127) 루가 18,1. 128) 순교자들의 엘리세오 (Eliseo de los Mártires) 신부, 영(靈)에 대한 의견들 (Dictámenes de espíritu), 10.129) 노래 20; 21,10.130) 노래 22,1. 131) 노래 22,1. 132) 노래 26,4. 133) 불꽃 2,27. 134) 노래 22,3. 135) 노래 22,3. 136) 노래 22,3. 137) 노래 23,6. 138) 노래 26,4. 139) 불꽃 4,15. 140) 노래 22,6. 141) 노래 23,1. 142) 노래 38,4. 143) 노래 39,6. 144) 노래 40,5. 145) 노래 40,7. 146) 불꽃 1,25. 147) 불꽃 서문3. 148) 불꽃 서문 3. 149) 불꽃 1,3. 150) 불꽃 1,3. 151) 불꽃 1,6. 152) 불꽃 1. 153) 불꽃 2,7. 154) 불꽃 2. 155) 불꽃 3,2. 156) 불꽃 4,4. 157) 불꽃 4,15. 158) 불꽃 4,6. 159) 불꽃 4,10. 160) 불꽃 4,16. 161) 불꽃 4. 162) 산길 3,2,10. 163) 루가 1,51. 164) 루가 1,49.165) 루가 1,45. 166) 루가 1,34. 167) 루가 1,38. 168) 시편 15,11.> 169) 빛과 사랑의 말씀 59.> 170) <譯註> 맨발가르멜수도회 소속 스페인 신부로서, 1999년이래 스페인 부르고스(Burgos) 관구의 관구장직을 맡아있는 신부. 능력이다.
|
| |||||||||||||||||||||||||||||||||||
| |||||||||||||||||||||||||||||||||||||
|
Llama de amor viva
'십자가의 성요한 > 십자가의 성요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완덕 <십자가 성요한의 시> (0) | 2012.02.25 |
---|---|
[스크랩] 십자가의 성 요한의 ‘통나무가 불속에서 타는’ 비유 (0) | 2012.02.23 |
[스크랩]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16장 - 19장 (0) | 2012.02.09 |
[스크랩]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12장-15장 (0) | 2012.02.09 |
[스크랩]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8장-11장 (0) | 2012.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