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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대림성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29주일)

제목 <예수, 마리아, 요셉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29주일)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카2,51)

'다시 시작하자!'

오늘 복음(루카2,42-52)은 '예수님의 소년 시절에 대한 말씀', 곧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탄 팔일 축제 제5일째'인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입니다.

'성가정'은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을 가정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가정'을 말합니다. 때문에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입니다.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여 지금 나의 가정이 성가정의 모습인지를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삶의 모습도 이루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가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랑을 충만히 받지 못한 것이 문제이고, 예수님을 중심에 놓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지 못한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고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이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너를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이 다시 부활하여 사랑이 충만한 성가정의 모습을 이루는 것이 '참부자가 되는 길'이고, '성공하는 길'이고, '건강하게 사는 길'입니다. '이제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오늘 제1독서(집회3,2-6.12-14)와 제2독서(콜로3,12-21)가 전하는 말씀은 '성가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 할 마땅한 도리'와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이 살아야 할 신자다운 모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가정을 이루는 데에 초석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번 한 주간은 '가정 성화 주간'입니다.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깊이 깨닫고, 나의 가정이 성가정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 안에서 함께 노력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성탄 팔일 축제 제6일>(12.30월)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루카2,38)

'하느님의 봉사자!'

오늘 복음(루카2,36-40)은 '한나의 예언'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같은 이름인데, 히브리어 '한나'는 그리스어로 '은혜'라는 뜻을 지닌 '안나'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나는 프누엘의 딸로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모세의 축복을 받은 아세르 지파 출신입니다.

한나는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뵙고 기뻐 찬가를 부르던 때에 함께 있었습니다. 한나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한나는 아기 예수님을 세상에 알린 '예언자'입니다.
한나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가련하고 보잘것 없는 여인'입니다. 당시에는 여자들이 인간 취급을 당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인데, 거기에다 남편을 여위고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낸 불쌍한 여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여인을 부르셔서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기쁜소식을 전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소명을 받은 많은 예언자들은 대부분 한나 예언자처럼 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당신 구원 사업에 도구로 쓰셨습니다.

요즘 시기적으로 많은 본당에서는 새로운 봉사자들을 뽑느라 애를 먹고 있을 것입니다. 사목위원들은 본당 사목자를 도와 하느님의 일을 하는 '하느님의 봉사자'입니다.

혹시라도 하느님의 봉사자로 부름을 받게 되면, 성모님의 순종을 드러내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합시다!

어제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말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과 마음을 함께 합니다.

"주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안타깝게 희생된 179명의 영혼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성탄 팔일 축제 제7일>(12.31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4)

'동병상련!'

오늘 복음(요한1,-18)은 '요한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머리글'입니다. 이 머리글을 '로고스(말씀) 찬가'라고 부릅니다. 이 로고스 찬가의 배경이 되는 말씀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1,1-3.9.14) 

오늘은 '주님성탄대축일 팔일 축제 제7일째 날'입니다. 주님부활대축일과 함께 주님성탄대축일이 아주 큰 축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팔일 동안 성탄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전례적으로 이 큰 기쁨의 축제일에 여객기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79명이 사망했고, 2명이 구조되어 치료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어야만 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지금 우리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임신한 엄마와 함께 태아도 죽었고, 어린 아이도 죽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와 형제 자매들이 안타깝게 그것도 순식간에 하늘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꼭 해야 할 일은 그 대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여기면서 조용히 유가족들의 마음에, 아픔에 함께 동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기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는 1월4일 자정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미 주어진 일들, 그리고 약속되어진 일들도 있겠지만, 희생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큰 아픔에 함께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1.2목)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0.27)

'겸손의 덕!'

오늘 복음(요한1,19-28)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1,19)
유다인들이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의 신원에 대해 긍금해 합니다.

요한은 그런 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1,19) 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자신을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1,23) 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곧 오실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못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통해 그가 간직한 '겸손의 덕'을 묵상해 봅니다. '겸손은 모든 덕을 완성시키는 덕'입니다.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행하는 모든 덕 위에 겸손의 덕이 더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발 끈을 푸는 일은 종들 가운데에서도 신분이 가장 낮은 종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그런 종보다 더 낮은 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원은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으로서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할 뿐입니다. 종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또 주인이 하는 일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종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종이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겸손한 종이셨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도, 신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신자는 또한 본당 사목자의 종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의 종입니다.

하느님의 종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이러한 종들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그리고 기쁘게, 성실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일을 하는 하느님의 종들의 나라입니다.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의 옷을 입읍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1.3)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29ㄴ)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요한1,29-34)은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도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요한1,29ㄴ-30)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증언합니다. 성경에서 '어린양'은 주로 '희생제물인 속죄제물로 바쳐졌던 하느님의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희생제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분이시기 때문은 그래서 성탄은 곧 죽음을 의미하고, 성탄의 기쁨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기쁨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영성체하기 바로 직전에 성체를 높이 들고 다음과 같이 외치는 사제의 음성을 듣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러면 신자들은 이렇게 응답하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해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시기 위해서이고,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잘 받아 먹고 다시 부활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증언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1.4)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요한1,41) 

'증언의 삶!'

오늘 복음(요한1,35-42)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듣고 그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습니다. 그는 자기 형 시몬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증언하면서, 그를 예수님께 데려갑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십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게파라고 불릴 것이다. '게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1,42)

오늘 복음은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예언직의 사명인 '복음화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화'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는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만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구세주'(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두고, '신성을 지니신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라고 증언(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복음화의 첫 단계'는 '내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내가 먼저 메시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부활하는 것'이 복음화의 첫 단계입니다.

복음화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너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참으로 힘듭니다. 그 첫째 이유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메시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예수님께로 향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부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 부활합시다!
그러면 성령께서 나를 증언의 삶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힘들지만 믿음 안에서 함께 노력해 봅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