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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대림성탄

<주님공현대축일>(1.7) 황금은 예수님이 '참임금'이심을, 유향은 '참하느님'이심, 몰약은 '참사람'이심을 상징합니다.


<주님공현대축일>(1.7)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2,2)

'또 하나의 성탄!'

오늘 복음(마태2,1-12)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공현대축일은 유다 베들레헴 그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그분의 신성(神性)이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고, 구세주의 탄생이 세상에 알려진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님공현대축일을 '또 하나의 주님성탄대축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토록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려온 유다인들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을 통해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러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결정적 표지입니다.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님을 만난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보물 상자를 열고 그들이 가져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는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에 대한 감사예물'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감사예물로 바친 황금은 예수님이 '참임금'이심을, 유향은 예수님이 '참하느님'이심을, 몰약은 예수님이 '참사람'이심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에페3,5-6)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모든 이를 약속의 공동 수혜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인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탄생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을 경배하러 나갑시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예물을 드립시다!
말과 행동으로 감사예물을 드립시다!
세상의 빛이 되고, 별이 됩시다!

(~ 루카9,62)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주님 세례 축일>(1.8)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세례의 의미!'

오늘 복음(마르1,7-11)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성령께서 예수님 위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 

'주님 세례의 의미!'

'주님의 세례'는 인성(사람)과 신성(하느님)을 두루 갖추신 예수님의 신원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의 모범이며,
이 모범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성(人性)'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로 선포되심으로써,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드러났습니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동방 박사들을 통해 주님의 탄생이 세상에 공현(公現)되었다면, '주님의 세례'는 세상 구원을 위한 그분의 활동인 공생활의 본격적인 시작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우리 세례의 의미!'

'세례(洗禮)'는 씻김의 행위입니다. 더러움(죄)을 씻어내고 깨끗해지는 행위, 새로남의 행위, 새로운 창조의 행위입니다.

이러한 세례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또한 나의 자비 기도를 통해서 계속 행해지고 있고, 또한 행해져야 합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기 위함이다."(이사42,6-7) 

'주님세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세례, 나의 세례를 다시금 기억하고, 날마다 깨끗해지기 위해, 새로나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 루카10,12)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1주간 화요일>(1.9)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1,25) 

'권위!'

오늘 복음(마르1,21ㄴ-28)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세례축일인 어제로 성탄시기를 끝내고, 오늘부터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연중시기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구체적인 활동과 땀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 공생활의 주된 활동'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이유는 율법 학자들과 달리 예수님께서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권위'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또 놀랍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1,2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습니다.

'권위'는 '힘'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끄는 힘'입니다.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이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이끄시는 공정과 정의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인가?

모두 함께 잘 살고 일치되는 나라,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가?

정말로 믿는 이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있는가?

우리는 매순간  '두 영(靈)', 곧 '깨끗한 영(성령)과 더러운 영(악령)에 의해 움직여집니다. 어떤 영을 따라가느냐는 문제는 '나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힘(권위)'으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 
우리를 생명과 부활로 인도하는 성령을 따라갑시다!

(~ 루카11,13)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성령 하느님의 손길"로 힘을얻고 걱정말고 이끄심에 의탁합니다. 울 고모님 !!!! 성령으로 가득찬 연중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손잡고 갑시다 하트 쁑쁑 

<연중 제1주간 수요일>(1.10)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마르1,34)

'하느님의 뜻!'

오늘 복음(마르1,29-39)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병든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셔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십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온 많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나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1,38)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이 움직임들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뜻을 이루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화답송 후렴)

오늘 독서(1사무3,1-10.19-20)은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와 그 약속대로 주님께 바쳐진 사무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3,10)

주님께서 소년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응답합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3,10)

사무엘을 부르신 주님께서 지금은 우리를 부르십니다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라고,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이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죽음의 문화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나와 일치가 아닌 분열과 싸움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요?

(~ 루카13,35)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2)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2,5)

'믿음과 희생!'

오늘 복음(마르2,1-12)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듭니다. 그들은 영육의 병으로부터 낫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네 사람이 중풍 병자를 들것에 뉘어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하지만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그리로 중풍 병자를 내려보냅니다.

"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큰 믿음과 희생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2,7)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율법 학자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예수님 자신에게 있음을 선언하시면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2,11) 

오늘 복음은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로 몰려온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중풍 병자를 들것에 뉘어 예수님 발 앞에 데려다 놓은 네 사람의 큰 믿음과 희생을 묵상합니다.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가 눈앞에 계시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하느님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들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
그래서 나의 영과 육의 병을 고쳐주시는 하느님!

매순간 그런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리고 나도 '또 다른 큰 믿음과 희생'이 되어,
냉담 교우들과 믿지 않는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구원의 도구가 되어 봅시다!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을 만나,
믿는 사람답게 행동합시다!

(~ 루카21,3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중풍 병자를 들것에 뉘어 예수님 발 앞에 데려다 놓은 네 사람의 큰 믿음과 희생을 묵상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의 영과 육의 병을 고쳐주시는 하느님!

매순간 그런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나도 '또 다른 큰 믿음과 희생'이 되어,
냉담 교우들과 믿지 않는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구원의 도구가 되어 봅시다!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을 만나,
믿는 사람답게 행동합시다! 아멘!!! 

<연중 제1주간 토요일>(1.13)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2,17)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오늘 복음(마르2,13-17)은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라."(마르2,14)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십니다.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이 식사 자리에 함께합니다. 그러자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립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2,16)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2,17)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것처럼,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고, 예수님 주변에는 늘 이런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죄인들이 모여있는 공동체이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부활하는 공동체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친목 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영업적 이익을 위한 영업 수단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신앙 공동체는 믿음의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잘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죄인 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공동체 안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요한1,2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우리는 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따라가고있는가?내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죄인들이 모여있는 공동체이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부활하는 공동체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내가 죄인 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지금 여기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