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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기도회 봉사

♡2318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오 복음 16장 23절) ♡

♡2318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오 복음 16장 23절)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2일(사무엘하 1장~ )

  알베리오네는 ''사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기도의 참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말 잘하는 법》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말을하는데 어떤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평생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는 것. 원석도 갈고 다듬으면 보석이 되듯 말도 갈고 닦고 다듬으면 보석처럼 빛나는 예술이 된다.
 1.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라. 그 곳에서는 히트곡이 여기서는 소음이 된다. 
2.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말에도 온도가 있으니 썰렁한 말 대신 화끈한 말을 써라.
 3.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열올리지 말고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라. 나 이외에는 모두가 우수고객이다.
 4.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지말라. 체로 거르듯 곱게 말해도 불량율은 생기게 마련이다. 
5. 상대방을 보며 말하라. 눈이 맞아야 마음도 맞게 된다.
 6. 풍부한 예화를 들어가며 말하라. 예화는 말의 맛을 내는 훌륭한 천연 조미료이다. 
7. 한 번 한 말을 두번 다시 하지를 말라. 듣는 사람을 지겹게 하려면 그렇게하라.
8. 일관성있게 말하라. 믿음을 잃으면 진실도 거짓이 되어 버린다.
9. 말을 독점 말고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어라.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교류다.
10.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라. 말을 자꾸 가로채면 돈 빼앗긴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
11.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상대방의 의견도 옳다고 받아들여라.
12. 죽는 소리를 하지 말라. 죽는 소리를 하면 천하장사도 살아 남지 못한다.
13. 상대방이 말할 때는 열심히 경청하라. 지방방송은 자신의 무식함을 나타내는 신호다.
14. 불평불만을 입에서 꺼내지 말라. 불평불만은 불운의 동업자다.
15. 재판관이 아니라면 시시비비를 가리려 말라. 옳고 그름은 시간이 판결한다.
16.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표정으로도 말을 하라.
17. 조리있게 말하라. 전개가 잘못되면 동쪽이 서쪽된다.
18. 결코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감싸주는 것이 덕망있는 사람의 태도다.
19. 편집하며 말하라. 분위기에 맞게 넣고 빼면 차원높은 예술이 된다.
20. 미운 사람에게는 각별히 대하여라. 각별하게 대해주면 적군도 아군이 된다.
21.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이 자신의 가슴에 명중된다.
22. 재미있게 말하라. 사람들이 돈내고 극장가는 것도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23. 누구에게나 선한 말로 기분좋게 해주어라. 그래야 좋은 기의 파장이 주위를 둘러싼다.
24.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을 하지 말라. 듣고 싶어하는 얘기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25. 말에도 맛이 있다. 입맛 떨어지는 말을 하지 말고 감칠 맛나는 말을 하라.
26. 또박또박 알아듣도록 말하라. 속으로 웅얼거리면 염불하는지 욕하는지 남들은 모른다.
27.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말라.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
28. 올바른 생각을 많이 하라. 올바를 생각을 많이 하면 올바른 말이 나오게 된다.
29.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듣지도 전하지도 말라. 부정적인 말은 부정타는 말이다.
30. 모르면 이해될 때까지 열번이라도 물어라. 묻는 것은 결례가 아니다.
31. 밝은 음색을 만들어 말하라. 듣기좋은 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32. 상대방을 높여서 말하라. 말의 예절은 몸으로 하는 예절보다 윗자리에 있다.
33. 칭찬 감사 사랑의 말을 많이 사용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이 따른다.
34. 공통화제를 선택하라. 화제가 잘못되면 남의 다리를 긁는 셈이 된다.
35.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는 사람은 경솔한 사람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라.
36. 대상에 맞는 말을 하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좋아하는 말도 다르게 마련이다.
37.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으니 조심해서 말하라.
38. 말은 똑똑하게 하는것 보다 정당하게 하는것이 후에 빛난다,
39. 품위있는 말을 사용하라. 자신이 하는 말은 자신의 인격을 나타낸다.
40. 자만 교만 거만은 적을 만드는 언어다.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말하라.
41.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지 말라. 그것은 임종할 때 쓰는 말이다
. 42. 표정을 지으며 온 몸으로 말하라. 드라마 이상의 효과가 나타난다.
43. 활기있게 말하라. 생동감은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원동력이다.
44. 솔직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행하라. 그것이 승리자의 길이다.
45. 말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라.
46. 실언이 나쁜 것이 아니라 변명이 나쁘다. 실언을 했을 때는 곧바로 사과하라.
47. 말에는 메아리의 효과가 있다. 자신이 한말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48. 말이 씨가 된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
49. 말하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배워라. 스스로는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50.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그래야 넉넉한 사람이 된다. - 이상헌 (산업교수.칼럼니스트,기쁨세상PD)-


예수님으로부터 수제자 직분을 부여받은 것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은총의 선물로 받은 베드로 사도였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것. 아마도 가족들이나 친지들, 고향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서 마음껏 대놓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을텐데, 입을 다물고 있느라고 고생 많이 했을 것. 이렇게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베드로 사도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놀랄 정도로 날이 잔뜩 서 있다. 거의 독설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간 공들여 쌓아올린 높은 탑이 일거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을 것.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오 복음 16장 23절)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인재 양성의 대가였다. 제대로 된 제자 하나, 그것도 수제자를 키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을 것. 

예수님께서는 수제자 특별 교육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조화롭게 섞어가며 사용하셨던 것. 때로 큰 격려와 칭찬도 아끼지 않으시지만, 절대 우쭐해지거나 기고만장하지 마라고 강력한 철퇴와 자극도 동시에 사용하셨던 것. 수제자가 스승님으로부터 사탄이요 걸림돌이라는 강력한 질책을 듣게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짚어주셨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느님 나라는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달콤함만 추구했던 것. 고통과 십자가, 희생과 헌신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세속적인 성공만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들의 후계자로 살아가면서, 그분의 분신이요, 그분의 기쁨이고 영광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기보다는, 그분의 걸림돌로서 사탄처럼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는 사람들, 생명수와도 같은 복음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존재 자체로 이웃들에게 민폐요 진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주님께서 그토록 혐오하시는 이 시대 사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갈길이 먼 베드로 사도였다. 대대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베드로 사도였다. 예수님께서는 엄중하게 베드로 사도를 질책하셨고, 삶의 근본적인 태도나 노선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셨다

예수님의 참 제자요 오른팔이 되는가? 아니면 그분의 걸림돌이요 사탄이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고통과 십자가를 기꺼이 수용하는가? 아닌가? 에 달려있다. 우리 각자 어깨 위에 얹혀진 십자가, 때로 포기하고 싶고, 즉시 내려놓고 싶은 생각 간절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짐을 통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며, 영원한 생명의 길에 참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억지로,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매일의 십자가를 짊어져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들의 내적 기도(마음의 소원)를 끊임없이 외치며 살아가는 은혜로운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는 존재이다.”
 - 본훼퍼 목사 -

*♣* 성공을 위한 발걸음  *♣*


1. 성장하는 머리 - 무엇이든 하루하루 지식을 얻으라.

보다 나은 일을 얻고자 하면 자신의 능력을 진보시켜야만 한다.
당신이 원하는 어떤 자리가 비었을 때 거기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지휘 감독하는 상사의 힘을 덜어준다면,
언젠가 그 상사가 자리를 옮겼을 때 당신은 그 후임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독자가 없어진다면 그만큼 책임감은 커지고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다.


2. 세련된 입 - 필요없는 시기나 독설을 삼가라.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시기나 독설을 퍼부을 때가 있다.
이런 행동은 반드시 대가를 받는다.
조심성 없는 한마디로 누군가가 가슴 아파한다면 그 자신의 마음 또한 어찌 편할 것인가.
독설과 화가 함께 있는 사람, 고집스럽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좋은 협력자를 얻을 수 없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3. 세계와 함께 뛰는 심장 - 주변과 조화를 이루라.

자기 의식이 강한 사람은 그와 똑같은 성격을 만났을 때 어울리지도 못하고 충돌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상대편을 존경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
상대를 비난하는 것보다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만큼 당신도 칭찬을 받을 것이다.


4. 힘있는 손 - 남을 도와라.

빼앗으려고 내미는 손과 도움의 손길 중 무엇이 행복을 주겠는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면 당신에게도 그 손이 다가온다.
주는 손이 아름답다.당신은 지갑을 열면서도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 차오르게 된다.

데일 카네기의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 중에서

♡2319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3일(열왕기상 1장~ )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분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배척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속임수와 타협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 안에 많은 사랑을 품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세상과의 타협은 위험합니다. 타협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하늘나라의 삶이고, 가장 큰 기쁨이며 진정한 기쁨입니다.... 복음과 일치하는 삶이 사람들의 박해를 유발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길을 걸어가는데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인생덕목》
 () 말을 많이 하면 필요없는 말이 나온다. 두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책) 수입의 1%를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헤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있다.
 (노점상)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깍지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웃음)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고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하고 젊은이를 동자로 만든다.  
TV(바보상자)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김수환추기경-
 (성냄)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기도)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 년 암혹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이웃)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사랑)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멈춤) 가끔은 칠흑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 , 마음의 가슴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조급함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기나니.......  -김수환추기경-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던 이들이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축복과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던 이들이 죄로인해 이 옷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죄는 하느님의 축복으로부터 우리를 떨어지게 합니다. 죄를 짓고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던 아담을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다시 당신께로 돌아올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숨기기를 원하는 아담은 결국 자신의 죄의 원인을 하느님과 여자에게 돌립니다. 그 죄의 결과는 이제 즐거움의 노동이 피곤과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바뀝니다.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뱀의 꾐에 넘어갔었다고 답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하와가 놓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뱀의 탓으로 돌립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와에게도 자신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 댓가는 바로 아기를 갖는 고통과 해산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갈망하고 그 남편은 여인을 지배하는 고통입니다. 고통 속에서 땅을 붙여 먹어야 하는 남편을 갈망하고 그 고통 속의 남편이 그녀의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셨던 그 신뢰와 믿음의 가정은 불신과 책임 전가라는 죄의 결과로 파괴되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기 전에 이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십니다. 가죽옷은  죄없는 짐승들의 피를 흘린 결과입니다. 이것이 구약 당시의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은 그 인간을 대신해서 짐승이 대신 피를 흘려 죽는 것의 기원이 됩니다. 이 피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들에게는 이러한 파괴된 가정을 고통과 시련 속에서 다시금 신뢰와 사랑이 가득찬 가정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묵시 3, 18-19) 하고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 말은 순수한 믿음으로  영적인 부자가 되고 동시에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라는 것. 하느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을 꾸짖듯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들을 꾸짖으신다( 잠언 3장 12)는 말처럼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책망도 받고 징계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의 땅으로 추방된 이들에게는 회개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는 질문과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는  두 질문이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나의 잘못을 탓하시는 질문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격려의 질문이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깊은 사랑이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면 너희도 혼자의 힘으로가 아닌 공동의 힘으로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오천 명이 먹을 음식을 독차지 하려고 두 눈 부릎뜨고 돌아다니는 사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우리도 깨어 있지 않으면 이런 사자가 될 것.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것을 자신이 독차지하는 삶이 아닌 오천명을 먹이기 위해서 나의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작은 나눔이 큰 기적을 만든다.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8 - 39)는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며 이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믿게 하십시오.” “알게 하여 주십시오.”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3가지 말씀에 “아멘”하는 우리들과 가정에 치유의 말씀, 회복의 말씀으로 은총과 생명을 얻게 되는 행복한 시간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열쇠는 이것이다. 첫째는 끈기, 둘째는 끈기, 셋째도 끈기''  - 이소룡 -  


「끌리는 이들에겐 이유가 있다」는 기자와 공직자, 교수 등으로 30년간 일하며 각계각층 사람을 만난 저자가 성공한 사람의 매력을 관찰해서 쓴 책이다. 저자는 성공하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간적 매력이 뿜어 나와 다른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설명이다.

매력적인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사과를 적절하게 잘한다는 점이다. 사과는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다. ‘내 자존심보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사랑하는 가족과 오랜 친구, 동료 등이 모두 소중한 사람인 만큼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용감하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청과 여유의 자세도 알려준다. ‘경청에서 중요한 건 비판적 사고의 배제’라고 주장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찾아왔다면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위안과 해법을 주는 것이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바쁘다고 생각하는 최면에서 벗어나 스스로 여유를 가지면 남들도 그 여유에 반하고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낯설지 않은 내용의 자기계발서지만 ‘매력’을 키워드로 묶으니 새롭게 느껴진다. ‘인생 선배’의 생생한 조언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좋겠다.
♡2320회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도 ‘위선’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4일(열왕기하 1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충고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충고해서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부터 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바람,구름. 그리고 꽃》구름도 쉬어가는  강원도 산골에 볍씨뿌리는 마음으로 꽃씨를 뿌렸다네, 깊은 산골 그곳에...낮에는 구름이 곁을 지키고 밤에는 수많은 별이 비추니 바람맞는 일번지 그 곳에서도 흔들림을 인내하며 순전한 웃음으로 활짝 피었네 세상을 내려다보며 살게한 고마움으로 서로가 꽃잎 엮어가며 서로가 가지 부둥켜안고 하얀 꽃이불 만들어 산을 덮었네 오늘도 행복하다 오늘도 감사하다 꽃술에 볼 부비는 꿀벌에게 나눠주고 바람에 몸맡기고 마음껏 노래하는 맑은 얼굴의 꽃들이 있는 그곳은 천상의 화원이었네. 

“그 뒤에 그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 12,13-14) 여기서 ‘올무를 씌우려고’는 ‘함정에 빠뜨리려고’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답변을 하시든지 간에 그 답변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계획했습니다. 세금을 바치라고 대답하시면 “예수는 민족의 배반자다.”라고 선전했을 것이고,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시면 반역자라고 로마 당국에 고발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스승님은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고, 사람을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라고 말한 것은, 진심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방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아첨한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의 입으로 “스승님은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세금에 관해서 어떻게 가르치시든지 간에 그 가르침을 ‘하느님의 길’로 받아들이겠다고 미리 다짐한 일과 같습니다. 물론 그들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따라서 예수님의 대답을 근거로 예수님을 고발한다면, ‘하느님의 길’을 고발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하느님의 길’은 하느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세금에 관한 질문을 겉으로만 보면, 마치 황제가 이제 막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고, 세금 징수는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될 때부터 시행되었던 일이고, 유대인들은 이미 세금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고, 위선적인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저희가 지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고 있는 일은 합당한 일입니까,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까? 세금을 계속 바쳐도 됩니까, 아니면 바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까?”로 바꿨어야 합니다.

 그 당시에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제국의 하수인들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세금을 내고 있었고, 바리사이들은 양심이 편안하지 않은 상태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어떤 일이 양심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도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마르 12,15-17) 사람들이 예수님께 드린 데나리온 한 닢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고, 로마 제국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로마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라는 말씀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인정한다면 세금을 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로마 제국의 지배를 인정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있고, 제국의 체제와 질서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세금을 낼 것인가, 안 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라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라는 말씀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항상 그 일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하여라.”라는 뜻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황제의 권력, 황제의 목숨, 황제가 지배하고 있는 것들, 그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만일에 황제가 세금을 징수해서 악한 일에 사용한다면 그에게 세금을 내면 안 되지만, 그게 아니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세금을 안 낼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을 생각하여, 모든 인간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임금에게는 주권자이므로 복종하고, 총독들에게는, 악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이들에게 상을 주도록 임금이 파견한 사람이므로 복종하십시오. 여러분이 선을 행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1베드 2,13-15) 우리는 항상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선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선이 실현도록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라는 말씀을 “종교인들은 정치인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마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만일에 정치가 독재로 변질되고, 정치인들이 악행을 저지른다면, 그것을 막고 바로잡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실현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신앙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악을 방관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정치권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신앙인의 세속 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신앙인은 세속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면서도 세속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속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들은 신앙생활과 세속 생활을 함께 해야 하는 신앙인들의 ‘삶의 원칙’입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신앙인은 선행과 사랑 실천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만일에 세상을 향해서 담을 쌓고 선행도 사랑도 없이 배타적으로 살면서 미움 받을 짓만 한다면, 그래서 신앙인들 때문에 주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한다면, 그것은 주님께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님께서 탄생한 이 거룩한 밤에 우리들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는 것보다 차라리 짊어지는 것이 가볍습니다.”  - 성 아우구스띠노 -

♡요한2321회 미소를 잃은 얼굴은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와 같다. - 성탄을 축복합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5일(역대기상 1장~)

  영국 속담에 “바보를 칭찬해 보라. 그러면 훌륭하게 쓸 수 있다”
《하버드 심리학 강의에 나오는 이야기》어느 날 오후, 앨리스는 혼자 집에 있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연 순간, 그녀는 식칼 한 자루를 든 채 험악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 한 명을 보았다. 너무 놀랐지만, 영민한 앨리스는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깜짝 놀랐네요. 주방용품을 파시는 분인가요? 안 그래도 칼이 하나 필요했는데 괜찮아 보이네요!” 앨리스는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게 하고 전혀 긴장한 내색을 보이지 않으며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제 예전 이웃과 정말 닮으셨네요! 덕분에 즐거운 추억이 떠올랐어요. 감사해요. 참! 음료는 뭘로 하실래요? 커피? 아니면 차?” 흉악한 짓을 하려고 앨리스의 집을 두드린 그 남자는 그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앨리스에게 한마디 했다. “가, 감……감사합니다.” 잠시 후, 앨리스는 어쩌면 흉기로 쓰일 뻔한 '식칼을 사는 데' 성공했다. 낯선 남자는 앨리스가 건넨 '칼값' 을 받아 들고 살짝 주저하더니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몸을 돌려 앨리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인생을 바꾸어 주셨어요.” 미소는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다. 미소는 차가운 마음을 녹이고, 미소는 악한 마음을 선하게 만들며, 불쾌한 마음을 유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국 詩人 퍼시 비시 셸리는 미소는 사랑의 상징, 즐거움의 원천이자, 우정의 매개체다. 우리는 미소가 있어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화려한 옷보다 미소가 더욱 좋다. 미소 지은 가계에 사람은 모이고, 미소의 양만큼 매출은 늘어날 것. 값비싼 옷만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미소는 호감을 가지게 하고, 매력을 주며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미소를 잃은 얼굴은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와 같다는 말이 있다. 웃지 않은 세상을 보며 원망하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웃으면 거울도 웃습니다. 자신이 웃으면 세상이 웃습니다. 건강치 못해도 웃다 보면 병든 몸도 웃는 날이 옵니다. 세상이 웃기를 원하고 상대가 웃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이 웃어야 합니다. 웃지 않는 거울 앞에 거울이 웃지 않는다고 신경질 낼 필요는 없다. 내가 웃으면 거울도 웃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7-8) 여기서 ‘다른 민족 사람들’ 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바치는 기도는 ‘빈말’ 입니다. ‘빈말’ 은 아무 의미 없는 헛된 말입니다.
 1) 우상은 생명력 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따라서 듣지 못하는 우상에게 바치는 기도는 빈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기도는 혼잣말과 같다.
 2)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흔히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많은 말로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겉으로만 그럴듯한 기도이고, 그래서 빈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미신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 기도도 빈말인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 그 사람의 간절한 기도 자체는 빈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듣지 못하는 우상에게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도는 빈말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그들을 닮지 마라.” “그들처럼 기도하지 마라.”, 즉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는 “기도는 ‘삶’ 으로 바쳐야 한다.” 라는 뜻이 들어 있다. ‘말’ 로 바치는 기도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우선 먼저 ‘삶’ 으로 바쳐야 합니다. ‘기도’ 와 ‘삶’ 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이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답게 잘 사는 것이 기도를 잘하는 것. 만일에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서 기도만 잘한다면, 그 기도는 빈말입니다.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 바치는 기도, 실천 없이 입술로만 바치는 기도, 이웃 사랑 없이 자기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면서 바치는 이기적인 기도, 그런 기도는 모두 다 빈말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말로 바치는 기도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계시는 하느님께 알려드리는 일도 아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안 주려고 하시는 하느님께 그것을 달라고 조르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그것을 제때에 주실 때, 우리 쪽에서 그것을 잘 받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 바로 그것이 기도입니다. 무엇인가를 청하는 청원기도라고 해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또 빈말을 되풀이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9-15) ‘빈말’ 의 반대는 ‘참말’ 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모범 예문으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는 ‘참말’ 의 모범 예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 에는 ‘빈말’ 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 를 바치는 사람 자신이 ‘빈말’ 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묵상과 실천 없이 형식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반복하기만 할 때, 그때 주님의 기도는 빈말이 되어버립니다. ‘주님의 기도’ 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이 요약되어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 를 바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것들을 잘 받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기도’ 는 말로 바치는 것으로 끝내도 되는 기도가 아니라,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삶으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다가오는 아버지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회개’ 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마태 18,14)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은 구원받기를 바라는 희망이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혼자만’ 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노력은 곧 사랑 실천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구원 사업이 완성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사랑이 완성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는 ‘나눔’ 을 실천하면서 바쳐야 할 기도이고, 용서를 청하는 기도는 ‘용서’ 를 실천하면서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유혹을 물리치려고 노력하면서,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는 악을 물리치려고 노력하면서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노력함으로써 주님의 기도는 ‘참말’ 이 됩니다. 만일에 실천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바친다면, 그것은 주님의 기도를 빈말로 만들어버리는 죄가 됩니다.

  거룩한 성탄을 맞이한 이아침에 충만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가정에 은총위에 더 큰 은총을 받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탐욕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고 사랑은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한다.'' - 아오스딩 성인 -

♡2322회 천국에서는 잘못된 행복의 기준을 가진 이들이 살 수 없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6일(역대기하 1장~)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모든 고뇌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 가까이 계신지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생깁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들의 사랑 사랑이 없는 곳에는 웃음과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입니다. 이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은 없을 테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은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준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진실입니다.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 수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어 진실한 목소리로 행복을 주고 싶다. 

어느 깊은 산속의 산사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그럼, 가시나무는 어떤 나무들이 있던가?" "탱자나무, 찔레나무, 장미꽃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있습니다." "그럼, 가시 달린 나무로 몸통 둘레가 한아름되는 나무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가시가 달린 나무는 한아름 되게 크지는 않는다. 가시가 없어야 한아름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 가시가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가 되어 집도 짓고 대들보로 사용할수 있는 것. 가시 없는 큰 나무는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용도가 많은 훌륭한 지도자이며, 꼭 필요한 사람이며, 정말로 성현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가시는 남을 찔러서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서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가 있다. 나무가 가시가 없어야 다용도로 널리 쓰이듯 사람도 가시가 없어야 우주를 살려내고, 인류를 살려내는 성현이 되느니라. 그래서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가끔은, 내가 인간 관계에서 가시를 만든 적 없는지? 생각해 보면서 지금도 말이나 글의 가시로 남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는지 더듬어 봅니다. 항상 가시를 조심하면서 가시 없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으로 살아요.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 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밖에 모르던 한 여인이 갑자기 죽어서 눈을 떴는데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천국에서는 각자에게 맞는 사람들과 이웃으로 살 수 있게 해 주고 취향에 맞는 집과 환경을 제공해줍니다. 그런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주인공 엘리너는 우크라이나에서 봉사하던 변호사가 아니라 가짜 약을 노인들에게 사기 쳐서 팔던 사람이었다. 물론 주인공은 자신이 천국에 오게 된 것에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러나 사기꾼이 선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평생 사기만 치던 이 여인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엘리너는 평소처럼 예쁜 여인을 기린 같다고 무시하고 파티장에 있던 새우를 훔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기린들이 길거리에 뛰어다니고 새우들이 날아다니는 등의 소동이 벌어집니다. 이 모든 것은 엘리너가 남을 흉보고 음식을 훔쳤기 때문에 벌어진 것. 엘리너는 착해져 보기 위해 쓰레기 청소 봉사를 맡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놀고 싶어서 쓰레기들을 구석에 감춰놓고 놀기를 즐깁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쓰레기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이 모든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는 설정입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독재자가 탄생하면 그 사람이 자기 가족만을 위해 재산을 모을 때 다른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게 되는 것과 같다. 드라마는 엘리너가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착해지는 과정을 엮은 것. 그렇지만 우리는 지상에서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오면 그 사람 때문에 천국이 지옥처럼 변할 수도 있다. 천국에서는 잘못된 행복의 기준을 가진 이들이 살 수 없다. 그 기준이 다른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는 이 세상에서 내가 선택한 행복의 기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천국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며 윤리적인 문제보다는 현재를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다. 그리스에 지배받으면 그리스에, 로마에 지배받으면 로마인들에게 복종하며 현세에서 잘 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인들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이들에겐 큰일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나뉘어 있다고 말하는 예수님께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들이 예수님께 걸고넘어지려 하는 것은 결혼 문제입니다. 모세의 법이 형이 자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일곱 형제와 다 함께 살았던 한 여인이 죽으면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 것. 그들은 천국은 분명 행복한 곳이니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 물론 이 세상에서의 모든 관계가 의미 없어진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천국에서 성모님은 여전히 예수님의 어머니이실 것. 다만 새롭게 결혼의 문제가 거론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의 유일한 행복은 하느님의 존재가 될 것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그 행복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결혼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고 천국의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예수님에게는 그들이 그런 행복관으로는 천국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 그런 잘못된 행복관으로 천국에 들어오면 남의 여자를 빼앗으면서까지 자신이 행복해지려 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행복의 기준이 성령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시간이 ‘기도’ 이니,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기도가 되지 않으면 아직 천국에 들어올 행복의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사두가이와 같은 현세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행복의 기준을 성령으로 둘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 마음의 창문을 열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마음에 담고...“그래,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도(너도)잘 살아라.” 라고 외치면서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입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시는 사람” -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



♡2323회 ‘믿는 사람들’ 이 할 일은 바로 ‘사랑 실천’ 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7일(에즈라기 1장~)

  '위기는 선물이다’, 안셀름 그륀은 “나는 하느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문제와 불안과 걱정에 대해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 딱한 처지와 무기력을 그분께 내맡깁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하느님 앞에서 인정함으로써 나 자신이 변화됩니다. 우선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낍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건》행복입니다. 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것은 즐거움입니다. 라일락의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을 찾는 것은 그리움입니다. 마음속 깊이 당신을 그리는 것은 간절함입니다. 바라 볼수록 당신이더 생각나는 것은 설레임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보다말하지않아 더 빛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런말 하지 않아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은 것이 편안함입니다. 자신보다 당신을 더 이해하고 싶은것이 배려입니다. 차가운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은 것은 당신의 따뜻함입니다. 카나리아 같은 목소리로 당신 이름 부르고 싶은 것이 보고싶은 마음입니다. 타인이 아닌 내가 당신곁에 자리하고 싶은것은 바램입니다. 파아란 하늘과 구름처럼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음은 존중입니다. 하얀 종이위에 쓰고싶은 말은 사랑입니다. 성부이신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이신 아들 예수님과 성령이 위격으로는 서로 다른 분으로 구분되지만 본체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그런데 위격(位格), 또는 신격(神格)이라는 말은 너무 막연한 느낌을 주고, 세 분이지만 한 분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정답은 “모른다.” 입니다. 강론을 하는 이들이나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은 흔히 ‘어떻게?’ 에 집착하면서, 이런저런 예를 들어서 삼위일체를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신비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종파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안 나온다는 이유로 삼위일체를 안 믿고, 또 인간들이 억지로 만든 교리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들이 만든 교리가 아니라,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 이라는 믿음을 통해서 ‘깨달은’ 교리입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신학자들이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신 분” 이라는 교리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교리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가 아니라,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 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신 분” 이라고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 이라고 믿는 것.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요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다. 그 사랑은 이렇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1요한 4,14)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주십니다.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일은, 즉 내주신 일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냅니다. 그 일은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 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신 분’ 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아버지께서 가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인간 세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인간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오셨다.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일치되어 있고, 인간들에 대한 사랑에서도 일치되어 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성령께서 내려오신 일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16-17)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청을 받아들여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일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일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언제나 항상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1요한 4,13)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 이고, 성령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있어 주는 사랑’ 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랑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시는가?” 라고 물을 수 있다. “왜 이런 방식인가?” 라는 질문도 “어떻게 삼위가 일체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처럼 “모른다.” 가 정답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간들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니라 인간들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식을 선택하신다는 것. 어떻든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믿음과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 이라는 믿음과 ‘성령도 하느님’ 이라는 믿음이,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신 분’ 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삼위일체의 신비는 바로 우리를 위한 ‘사랑의 신비’ 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모든 것을 온전히 알게 될 것.(1코린 13,12)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우리를 구원하는 것만이 하느님의 뜻이고 바람이라는 것을 믿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다."(티토 3,5-7) 삼위일체를 믿고,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인가?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1-12) ‘믿는 사람들’ 이 할 일은 바로 ‘사랑 실천’ 입니다.

  자꾸 자꾸 소리쳐 불러봅니다.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르십니까?” “당신의 발톱은 여전히 잘 있습니까?” 매 순간 자신의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사랑받는 거룩하고 은총 가득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절대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인생은 오늘의 내 안에 있고 내일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 L론허바드 -


♡2324회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사람은 5초 안에 결정하고 행동한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8일(에즈라기 1장~)

  “팡세” 를 쓴 파스칼은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며,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죄인이다.”
 《한번더 생각하게 하는글》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강한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고, 가장 존경받는 부자는, 적시적소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인격은, 자기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사람이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늘 일하는 사람이며,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이다. - 따뜻한 이야기 방에서 - 요즘 읽는 소설에서 본 내용입니다. 저자가 체육관에서 본 글이라고 합니다. 공감이 가는 글이라 함께 나누고 싶다. 근육을 얻기는 무척 힘들다. 그러나 근육을 잃어버리기는 무척 쉽다. 살찌기는 무척 쉽다. 그러나 살을 빼는 것은 무척 어렵다.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현실은 늘 같다.”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고통스럽지만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실패한 대부분의 사람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차이는 5초에 있었다고 합니다.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사람은 5초 안에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사람은 5초 안에 결정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앙을 얻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받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같은 현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을 얻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을 얻기 위해서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 했다. 카인은 질투 때문에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다윗은 욕망 때문에 충실한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다. 아합은 욕심 때문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나봇을 죽였다. 헤로데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어린아기들을 죽였다. 율법학자와 대사제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쳤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한국교회는 100년의 박해를 받았다.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다. 신앙 때문에 재산을 버렸고, 벼슬을 포기했고, 고향을 떠났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용감하게 순교로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7000킬로를 걸었다.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였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서 얼어붙은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복녀 강완숙 골롬바는 목숨을 걸고 사제를 보호하였다. 우리는 지금 박해를 받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이 정말 작은 이유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이것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같은 현실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누군가가 지구별로 온다면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도 무척 많을 겁니다. 코로나19도 있고, 인종차별도 있고, 전쟁과 기아도 있다. 지진, 태풍, 스나미로 인한 피해를 이야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도 무척 많을 겁니다. 바람에 춤을 추는 꽃도 있고, 처음으로 웃는 아기의 미소도 있고, 처음으로 비행에 성공한 아기 새도 있다. 인류의 지성과 지혜가 담긴 고전, 아름다운 건축물,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도 있다.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쉽지만 의미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형제님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특허도 여럿 있었고 앞으로도 세상에 알릴 좋은 아이디어도 가득했다. 그러면서 지금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자신은 월급쟁이로 별 볼 일 없이 살고 있고 회사만 자신의 아이디어로 큰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민한 형제님은 드디어 회사를 그만 두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알릴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을 말하면 “망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또 좋은 아이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며, 여기에 실천에 옮기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혼자서 다 하겠다고 생각하니 잘 될 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긴 회사 사람들의 도움을 그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자기 생각의 틀에만 갇혀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 혼자만으로 모든 것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너’ 가 있어야 했고, ‘우리’ 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벗어나 남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주님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행적은 가엾이 여기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바리사이는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우면서 예수님을 무조건 부정하고 있는 것. 그러다 보니 주님이 옆에 있어도 함께 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선물을 거두도록 도와줄 목자가 없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십니다. 그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 하십니다. 수확을 할 일꾼을 알아서 보내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당신이 가엾이 여기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면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주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보시고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스스로 청할 수 있는 지혜와 올바른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 이를 위해 우리의 이기적이고 욕심 가득한 마음은 내려놓고, 겸손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먼저 내 이웃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과도 함께 하게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십시오. 그래서 매 순간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사랑받는 거룩하고 은총을 충만히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최후의 성공을 거둘 때까지 밀고 나가자.''  - 헨리 포드 -


♡2325회  “선한 것이거든 그 의리를 다하고, 악한 것이거든 그 싹을 자르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9일(느헤미야기 1장~)

  프루텐티우스 교부는 “그대는 길을 떠날 때 전대도 지니지 말고, 여벌 옷을 생각하며 걷지도 마십시오. 배를 채울 양식이 부족할까 염려하며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떠오르는 해와 함께 일용할 양식도 들어올 것입니다. 어떤 새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느님 섭리로 먹이를 얻으리라 근심 없이 희망하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합니까?”
《돈없이 값없이》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1) "부르짖는 기도"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여기 가련한이가 부르짖자 주님께서 들으시어 모든 곤경에서 그를 구원 하셨네.(시편34,6-7) "영광을 받음"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마8,18)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인내하시는 모습입니다. 가라지를 뽑아버리지 않으시고 추수 때까지 밀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은 곧 심판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 머물 수 있기를 바라시는 애절한 사랑입니다. 이 시간 인내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인에 대한 기대가 있다. 믿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더 모범적인 삶을 살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다 양심적이고 올바르고 모범적인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마음에도 들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래서 상처받고 신앙생활을 멈추고 쉬는 사람들도 있다. 미운 사람이 보기 싫어 다른 교회를 찾는 사람도 있다. 거기 가 보면 또 거기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은 있다. 뭐 피하려다 더 큰 골치덩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산 너머 산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키우게 됩니다. 맘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무슨 일을 하면 재미있다고 합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보면 서로의 속을 보게 되고 마음 상하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의 열심히 달라서 비교하게 되고 열심히 하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못마땅해 하며 속상해 합니다. 내가 커지지 않는 한 불평불만의 요소는 어디에나 있다. 혹시라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마음으로 불편함이 있다면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 마음단속을 먼저 해야 합니다. MBTI라는 성격검사 유형이 있는데 검사의 결과물을 가지고 같은 성향끼리 모여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내가 싫어하고 못마땅해 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의 그룹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볼 때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험담하고…뒷담화를 한 것입니다. 상대를 통해서 나의 속을 보고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챙겨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만 모아 놓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데 오히려 다시 그 맘 맞는 사람들 중에 맞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인생 여정의 한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가 완벽하지도 않고 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가라지’ 이고, ‘나는 밀’ 인양 ‘이렇다’ ‘저렇다’ 상대를 판단하게 됩니다. 만물을 돌보시는 하느님 말고는 심판할 수 없음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부디 하느님행세를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살다 보면 착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잘 안되고 악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잘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못된 사람을 왜 그냥 두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밀과 악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가라지에 대해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십니다. 왜 그냥 두실까요? 
1).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 생각해 보십시오. 남이 잘못했으면 즉각 벌을 내리기를 바라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참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 그래도 거두어 낼까요? 뽑아버릴까요? 여러분이나 저나 잘못을 했을 때 즉시 벌을 내리셨다면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회개의 기회, 은총의기 회를 주실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시지만 만물을 소중히 여기시고,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만 힘을 드러내시고, 너그럽게 심판 하시며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안겨 주셨다. 그러니 악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2,9) 세상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다. 우리의 삶은 늘 하느님을 향해야 합니다. 

2). 의인들에게는 단련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 금도 불에 달궈야 순금이 됩니다. 시련과 역경을 통해 단련되고 강해지게 됩니다. 악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길로 인도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하늘에 보화를 쌓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로를 쌓을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얌체 같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감사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를 다듬어 주고 견고하게 하는 복덩이 입니다. 자, 옆에 계신 분에게 ‘당신은 복덩이입니다.’ 하고 말씀해 주세요.

 3). 악인에게도 어느 정도의 선은 다 있다. 아니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기에 선한 모습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 고 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아무도 완전히 나쁘거나 좋은 사람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완전히 선하시고, 악마만이 완전히 나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감화의 비결은 ‘사랑’ 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공로가 많은 것처럼 실수와 잘못, 과오도 많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곳간에 쌓이기를 원하시기에 기다려 주십니다. 오늘, 심판보다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 우리가 설령 우리 자신을 포기할지 몰라도 주님만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부러진 갈대 같은 삶을 살지라도 우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매순간 주님께 희망을 둘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율곡선생도 “선한 것이거든 그 의리를 다하고, 악한 것이거든 그 싹을 자르라.” 하셨다. 뿌리를 뽑으라고 하지 않고 ‘싹을 자르라.’ 하신 것은 선과 악의 뿌리가 얽혀있어서 이것을 뽑으면 저것이 함께 뽑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좋은 것 속에 나쁜 것들이 들어있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어김없는 구별’ 이루어져 좋은 것이 곳간에, 즉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 하늘나라는 보이지 않게 시작하여 거창해집니다. 세상 것은 거창하게 시작하여 흐지부지됩니다. 비록 우리가 행하는 선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가라지와 추수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음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공로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 누가 여러분을 모함하고, 빈정거리고, 험담하며 사사건건 반대합니까? 그래서 미워죽겠습니까? 속상하고, 분하고, 야속합니까? 그 사람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거두어 낼까요? 뽑아버릴까요?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속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나를 뒤흔드는 사람이 있다면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악의세력에 휘둘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악을 미워하고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악의세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은총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아 주셨듯이 악인들에게도 인내롭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닮아 하느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자비롭게 대해야 하겠다. 우리가 영원히 밀로 머물러 곳간에 쌓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가라지로 표현되는 악한 이들도 어느 날 하늘나라 곳간에 저장되는 값진 밀이 되도록 돕는 것.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가운데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희를 위하여 보여주셨던 사랑과 자비로, 우리들도 기억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그리고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물러나서 조용하게 구하면 배울 수 있는 스승은 많다. 사람은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모두 스승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법이다.'' - 맹자 -


♡2326회 "이 순간 할 일이 무엇일까?"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30일(토빗기 1장~)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안에 갇힌 채 병든 교회가 되는 것보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 사고를 당하는 교회가 더 낫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바깥으로 나가십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멋있는 사람이란?"》"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능동적인 사람 "무엇이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적극적인 사람 "기꺼이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헌신적인 사람 "잘못된 것은 바로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겸허한 사람 "참 좋은 말씀입니다." 라고 하는 수용적인 사람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는 협조적인 사람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도울 일 없습니까?" 라고 하는 물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 "이 순간 할 일이 무엇일까?" 라며 일을 찿아 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 참 멋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 두 비유는 ‘하늘나라의 복음’ 을 들은 사람의 ‘기쁨’ 과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비유입니다. ‘하늘나라의 복음’ 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고, 우리에게 ‘큰 기쁨’ 을 주는 것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부 포기해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것. 이 두 비유는, 비유 안에 들어 있는 가르침을 생각하면,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지침’ 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보물을 차지하여라.”이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 진주를 사라.” 입니다. 두 비유에 들어 있는 실천 지침은 두 가지입니다.
1.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라(처분하여라).
2. 보물을(진주를) 차지하여라.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파는(처분하는) 것은 단순히 밭의(진주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물이 묻혀 있는 밭’ 을(진주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진 것을 다 파는 것이 아니라, 보물(진주)만이 영원히 가지고 있을 가치가 있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전부 다, 계속 가지고 있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버리는 것.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하늘나라가, 또는 하늘나라의 복음이 숨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전해 받았을 때의 기쁨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농사를 짓다가, 즉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밭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발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떻게 발견했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보물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복음을 듣게 되는 사람도 있고, 구원의 진리를 갈망하면서 찾아다니다가 복음을 듣게 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듣게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복음을 들었을 때의 기쁨과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보물을 발견한 것에 대한 기쁨과 그 보물을 차지하려는 노력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고, 이 말씀 자체에 특별한 뜻은 없다. ‘하늘나라’ 는, 또는 ‘하늘나라의 복음’ 은 아무도 독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함께 차지해야 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보물을 차지한 사람은, 자기의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말해야 하고, 자기가 차지한 보물을 모든 사람에게 자랑해야 합니다.

 ‘복음’, 즉 기쁜 소식을 감추는 사람은 없다. 감추면 복음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7-9ㄱ) 여기서 ‘해로운 것, 쓰레기’ 라는 말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일을 방해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이고,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이고, 바리사이이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에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인데(필리 3,5-6), 그것들은 세속 생활에서는 이로운 것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생활에서는 해로운 것일 뿐이고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들은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신앙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가문, 신분, 직업, 학위, 학력 같은 것들이 세속 생활에서는 도움이 되더라도, 신앙생활에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한다면, 그것들은 해로운 것들이고 쓰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0-11)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루카 5,27-28)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1-22)

 여기에 나오는 부자 젊은이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을 버릴 수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재물을 선택했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을 슬퍼하면서 떠났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전부’ 를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 가지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전부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우리가 전부 버리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속한 것들을 전부 다 차지할 수 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세속에 속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미사 중에는 휴대 전화기를 끄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세속에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전부 차단해야 온전히 주님께 집중할 수 있 다. 만일에 미사 참례 중에 마음과 생각이 세속을 향해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은 것이고,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면서 지난날에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내년에도 기도로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며 이겨낼 수 있는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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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해주신 모든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