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5회 지금 이 순간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면, 애착심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 탐욕이 되고, 탐욕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1월 29일(코린토1서 1장~ ) 아빌라 데레사는 “기름진 땅이라도 아니 가꾸면 가시와 엉겅퀴가 날 따름이니 사람의 정신도 이와 같으니라. 영성적인 일들을 항상 좋게 말할지니 이를 테면, 사제, 봉사자니라. 여럿이 있는 가운데 매양 말을 적게 하라. 하는 일, 대하는 일마다 조심성을 가져라. 언제나, 특히 하찮은 일에 마구 우기지 마라. 누구에게나 알맞은 기쁨으로써 말하라. 어떤 일에든지 조롱을 하지 말라. 신중과 겸손과 스스로 부끄럼 없이 남을 나무라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하느니라.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서 기꺼워하는 이와 기꺼워하고 슬퍼하는 이와 슬퍼할지니 결국 모든 이를 얻기 위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라. 중대한 일이 아니거든 변명을 하지 마라.” 《그리스도여, 함께 해 주소서》그리스도여, 제 오른편에 오소서. 그리스도여, 제 왼편에 오소서. 당신은 저의 힘, 당신은 저의 평화 자리에 누울 때도, 앉거나 서 있을 때도 그리스도여, 함께 해주소서. 깊은 곳에서도, 높은 곳에서도 넓은 곳에서도 그리스도여, 함께 해주소서. 저를 기억하는 이의 마음속에 제 말을 하는 이의 입술에, 저를 바라보는 이의 눈에 제 말을 듣는 이의 귀에 그리스도여, 함께 해주소서. 당신은 주님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아멘! - 성 파트리치오, 5세기 중에서-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태 19,20)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2) 이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이가 ‘영원한 생명’ 을 얻고 싶다는 희망과 재물에 대한 애착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모습은, 이 젊은이만의 모습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를 판단하는 문제이고, “얼마나 간절하게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하는가?” 에 관한 문제입니다. 나중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보다 지금 많은 재물로 부유하게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또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간절하지 않다면 재물을 선택할 것. 그러나 재물보다 영원한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또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쉽게 버릴 것.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는 계속 갈등을 겪거나,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재물의 허무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어리석은 사람은 끝끝내 깨닫지 못하고 생을 마칩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닫고 영원한 생명만을 추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고 대답하신 것은, 어떤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신앙인답게 살면 된다는 뜻으로 대답하신 것. 무슨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엄청난 희생을 실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성인 성녀들 가운데에는 기본적인 것을 충실하게 실천해서 성인품에 오른 분들도 많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는 말이 나옵니다.(마르 10,21) 아마도 그는 십계명을 비롯해서 신앙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일들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경건한 신앙인이었을 것. 그러나 그의 실천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느끼는 ‘부족함’ 이 자기 안에 있는 ‘재물에 대한 애착심’ 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십계명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십계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라는 뜻입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는 사람이 되려거든” 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성덕에 도달한 사람이 되려거든” 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말씀이기도 하고, 그 애착심을 버린 다음에 할 일을 가르쳐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방법이기도 하고,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렸음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렸다면, 재물은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되지 않는가?” 또는, “재물은 그냥 가지고 있으면서 애착심만 버리면 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렸다고 말하면서도 재물을 그냥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위선’ 입니다.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재물과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일은 결코 손해 보는 일도 아니고, 헛일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버려서 모든 것을 얻는 일입니다. 허무한 것을 버려서 영원한 것을 얻는 일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린 다음에 두 번째로 할 일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첫 번째로 할 일은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또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요한 14,6) 그래서 “나를 따라라.” “나를 믿어라.”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십계명을 잘 지킨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십계명 실천이 완성됩니다. 그 젊은이가 ‘슬퍼하며’ 떠나간 것은, 영원한 생명과 많은 재물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두 가지 다 포기할 수 없었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음을 슬퍼했다. 만일에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 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예수님 말씀을 들었을 때 ‘기뻐하면서’ 돌아갔을 것. 예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나서, 기뻐하면서 돌아왔을 것.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런데 “수도자가 아닌 사람이 지금 당장 재산을 모두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라고 반박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신앙인도 세속에서 살면서 세속 생활을 해야 하고, 그래서 재산을 모두 포기하는 것은 세속을 완전히 떠날 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의 준비’ 는 하고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결정적인 때’ 가 되면 성령께서 알려 주실 것.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곧바로 응답할 수 있다. 어떻든 신앙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 하나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목표만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고, 그 생명만을 얻기 위해서 평생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일은, 그리고 재물을 버리는(포기하는) 일은 평소에도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실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면, 애착심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탐욕이 되고, 탐욕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오늘 하루는 주변에 계신 은인들, 멀리에 계신 은인들,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잊고 살았던 은인들을 다시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봉헌하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사랑을 받게 되면 버림받을 때를 생각하고 편안하게 있을 때는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 명심보감 - |
♡2296회 ‘하느님의 뜻’ 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 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1월 30일(에페 1장~ ) 안토니오 성인은 “매일 죽을 것처럼 산다면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일어나면서 저녁때까지 살지 못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녁에 잘 때면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생명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루하루 주님의 손길에 맡겨져 있습니다.” 《내게 이런 삶을 살게 하여 주소서》연약할 때 자기를 알고 힘을 기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과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갖게하여 주소서. 사리를 판단할 때 고집으로 인하여 판단을 흐리지 않게 하고 생각하고 이해하여 사심이 없는 판단을 하며 또한 평탄하고 안이한 길만이 삶의 전부라 생각치 말게 하고 고난에 직면할 때 분투 노력할 줄 알며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소서.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이 설정하되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며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 날을 잊지 않게 하여 주소서. 이에 더하여 삶을 엄숙하게 살아감은 물론 유머를 알고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먼 훗날 내인생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종말과 재림에 관한 가르침들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2)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틀림없이 온다. 3)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한다. 4)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심판관으로서 오신다. 5) 심판 때에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종말과 재림의 날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실감 나는 일도 아니고, 그래서 막연하게 언젠가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라고, 지금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바로 그런 생각이 방심과 자만심이 되고, 그런 생각 때문에 회개를 미루게 되고, ‘깨어 있지 않은’(전혀 준비되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오지 않은 종말이 정말로 올까?” 라고 의심하는 이들이 있는데, 지나간 시간이 많을수록 남아 있는 시간은 더욱 짧아집니다. 인류 전체의 종말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각 개인의 인생의 종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은 채로, 그냥 하루하루 살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 5,5-6)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1테살 5,9) ‘하느님의 뜻’ 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 입니다. 그 구원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잘 준비한 사람에게는 종말과 재림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판과 처벌의 날이 될 것.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2-44)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반드시 온다. 2) 그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갑자기 올 것이다. 3) 그러니 ‘항상(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어라.” 는 “심판의 날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고 있어라.” 입니다. 어떤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하면 됩니다. 심판의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은 벌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준비를 하는 것. “어느 날에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점이 아니라,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점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온다는 점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은,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날이 오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이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도둑이 몇 시에 오는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온다는 것을 집주인이 알면” 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재림을 도둑이 오는 것으로 표현하신 것 자체는 특별한 뜻이 없고, 그날이 갑자기 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으려고 오는 도둑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시는 분입니다. 심판도 처벌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심판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마태 24,45-47) 이 말씀은, 표현만 보면 교회 지도자들과 성직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각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의 관리자입니다.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인생을 잘 살면 주님께서 큰 상을 주실 것. 구원받는 것 자체가 큰 상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4,48-51) 임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직자들은, 교회를 망친 죄에 대해서 벌을 받게 될 것.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 이라는 말은, 앞의 23장에 나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신 말씀’ 에서 거듭 반복되었던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라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불성실한 교회 지도자들과 성직자들은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예고되었던 불행을 겪게 될 것. 이 ‘불행’ 은 심판, 처벌, 멸망을 뜻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말씀을 각 개인의 인생에도 적용하면, 이 말씀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인생을 막 산 사람은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라는 말씀은, ‘갑자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라는 뜻인데, 종말의 날과 시간은 인간이 예상할 수도 없고 미리 계산할 수도 없다는 뜻도 들어 있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첫날인 것처럼 여기고, 동시에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면서, 죽으나 사나 주님의 은총을 받는 축복된 삶이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교만은 천사를 악마로 만들었으나 겸손은 인간을 천사로 만들었습니다.” - 성 아우구스띠노 - |
♡2297회 아무리 바느질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바늘허리를 묶어서 옷을 꿰맬 수는 없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1일(에페 1장~ ) 토마스 풀러는 ''작은 실수가 오랜 공을 무너뜨린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신앙은 헛된 신앙입니다.》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합시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신앙은 헛된 신앙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눈을 돌릴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언제나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신앙은 듣는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하라는 ‘초대’ 입니다. 1) 잔치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입니다. (우리는 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나’ 를 위해서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그 잔치에 참석하라고 ‘나’ 를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 을 위한 일입니다. 2)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이 잔칫상에 차려 놓으신 음식을 우리가 먹는 것. 그것은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입니다. 음식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3) 초대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이 받게 될 심판과 처벌은, 하느님께서 그것을 내리시기 전에 이미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 ‘잔칫방’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은 ‘밖에’ 남아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 ‘안’ 에는 구원과 생명이 있지만, ‘밖’ 에는 죽음과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4) ‘혼인 잔치의 비유’ 에 들어 있는 ‘혼인 예복의 비유’ 는,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어떤 대가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은 응답에 속한 일, 즉 응답의 일부입니다. 예복을 안 입은 채로 참석한 것은 사실상 초대에 응답하지 않은 것. 그것은 잔치에 참석하려는 마음 없이 그냥 잔치를 구경만 하려고 한 것. 예복을 안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서, 또는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밖에’ 남아 있게 된 것.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마태 22,2-5) 여기서 ‘초대받은 이들’ 은 유대인들로 해석할 수도 있고, 복음을 들어도 응답하지 않는 오늘날의 사람들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이 응답하지 않은 이유는 임금의 잔치보다 자신들의 밭일과 장사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루카 14,18-19) 이것은 하느님 나라, 영혼의 구원,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현세의 삶’ 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 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신부는? ‘부르심’ 에 응답하는 신앙인들입니다.(요한 3,29) 하느님의 부르심은 손님들을 부르는 일이 아니라, 잔치의 주인공들을 부르는 일입니다. 따라서 초대에 응답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잔치에, 또 자기 자신을 위한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마태 22,6-10) 사람들이 종들을 때리고 죽인 일은,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역사를 가리킵니다.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은 하느님께 정면으로 반역하는 죄입니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새로 초대하는 것은,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잔치는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만이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내가 응답하지 않으면 나의 자리는 없어집니다. 여기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라는 말은, 원래 ‘모든 사람’ 을 구원하기 위한 기쁜 소식이고, ‘모든 사람’ 에게 선포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결코 ‘아무나’ 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전부 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대인들이 응답하지 않아서 이방인들을 초대한 것처럼, 또는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응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그렇게 된 일이 아니고, 순서가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유대인들의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입니다(루카 24,47).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1-14) “길거리에서 갑자기 불려 들어갔는데 혼인 예복을 안 입었다고 꾸짖는 것은 너무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은 하나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예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종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데려온 일은(10절), 강제로 붙잡아서 끌고 온 일이 아니라, 잔치에 참석하라고 초대한 일이고, 길거리에서 초대를 받았더라도 초대는 초대입니다. 그 초대에 응답한 사람들은 집에 가서 예복으로 갈아입고 잔치에 참석했을 것. 혼인 예복을 입는 것도 응답에 포함되는 일입니다. “그래도 예복을 안 입었다고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는 것’ 은 너무 하지 않나?” 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반대쪽에 있는 ‘멸망’ 의 비참함과 무서움을 묘사하는 표현일 뿐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부르심이 곧 구원은 아니다. 응답하는 사람들만이 구원받는다.”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직접 실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험담하는 것이 훨씬 쉽고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은 주님의 초대에 응답했지만 합당한 예복을 갖추지 않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바깥의 어두움으로 떨어질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하느님의 초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 자신에게 주어지는지 주위를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오늘도 우리 앞에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초대장이 도착할 것.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십시오.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가장 좋은 예복을 갖춰 입으십시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 사랑의 손길로 우리에게 손짓하고 계십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그러자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아멘. 임금이 요구하는 혼인 예복은 마음의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 곧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새 인간의 옷으로,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에페 4,23-24 참조) 권고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일의 우선순위를 잘 알고 따라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거나 내일 해도 좋은 일을 지금 서둘러서 한다면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다. 아무리 바느질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바늘허리를 묶어서 옷을 꿰맬 수는 없다. 싹이 돋고 잎이 패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법이지,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딸 수는 없다. 그러나 사리사욕에 눈에 먼 사람들은 차례와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열매를 따겠다고 덤빕니다. 순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음일 뿐 아니라 인생을 헛살게 됩니다. 하늘나라는 대자대비하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잔치이자 축제입니다. 누구나 그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그 축제를 즐기게 됩니다. 하늘의 소리보다 사욕(私慾)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사람, 하늘의 뜻을 따르기보다 욕망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잔치를 누릴 자격이 없다. 하늘나라의 잔치는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적으로 응답해야 누릴 수 있다. 사욕에 사로잡혀 ‘지금, 여기’ 의 하늘나라를 놓치는 사람은 미래의 하늘나라를 누릴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당신은 하늘나라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주님의 힘으로 좀 더 베풀고 좀 더 참으며 주님 안에서 참 행복으로 살고, 주님의 종으로 우리들이 할 일을 주저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한계까지 가보면 분명해진다.'' - 니콜라스 펀 - |
♡2298회 "승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12월 2일(테살1서 1장~ ) 레이첼 카슨는 ''자연의 반복되는 후렴구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밤이 지나면 동이 트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안정감 같은 것.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돌리지 말라.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물론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진심만을 말하라. 상대의 환심을 사면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는 늘 기분 좋게 느끼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은 아부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또한 상대를 마음대로 하려는 얄팍한 술책이거나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아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칭찬과 아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칭찬은 진심이 뒷받침 된 것이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 칭찬 그 자체 외에 다른 뜻이 없는 진실한 마음은 눈빛으로도 알 수 있다. 똑똑한 척하지 말라. 똑똑한 척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도 운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우선 똑똑한 척 행동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리고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똑똑하면 이로울 게 없는 것이다.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감사하라. 당신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당신이 이룬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단정하게 차려 입어라. 단정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다. 색상이나 잘 어울리는 옷차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당신이 단정하게 매력적으로 차려 입으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적극적으로 자극을 받아 당신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인내심을 가져라. 운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어느 순간에 페달을 밟지 앓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할 지도 잘 알고 있다. 질투심을 반드시 버려라. 가장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질투심이다. 질투를 하면 스스로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운과 기회를 망치게 된다. 질투심이 많아 보이면 당신은 결코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운 나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배 아파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가져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 뜻한 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어쩌다 힘든 날일뿐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너무 너무 힘들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다이아몬드 채집꾼 라파엘 솔라노는 육체적으로 녹초가 되어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는 마른 강바닥 위에 있는 둥근 돌에 걸터앉아 동료 두 명에게 말했다. "나는 할 만큼 했어. 더 이상 계속해도 소용이 없어. 이 조약돌을 봐! 내가 집은999,999개째야. 그런데도 지금까지 다이아몬드는 하나도 없었어. 만약 내가 다시 하나를 집으면 100만 개가 될 거야.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그만 단념하겠어." 세 사람은 베네수엘라의 강줄기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데 여러 달을 보냈다. 그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조약돌을 하나하나 집어보면서 다이아몬드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옷은 남루했고 모자는 갈기갈기 찢어졌으며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솔라노가 외쳤다. "나는 이제 그만 포기하겠어!" 이때 그들 중 한 친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다른 하나 더 집어. 그러면 100만 개가 되는 거야." "좋아!" 솔라노는 허리를 굽혀 한 조약돌에 손을 내밀어 집어 들었다. 그것은 달걀 크기만 했다. "됐어! 마지막인 거야." 그런데 그 조약돌은 무거웠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야!" 1942년 남아메리카 북부 베네수엘라에서 있었던 '해방자' 라고 불린 다이아몬드에 관한 실화입니다. 그 다이아몬드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크고 순수한 다이아몬드 였으며 뉴욕의 보석상에게 20억달러(약 2조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잘못 시작한 데 있지 않고 잘못 그만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장애물이 있는 것은 포기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승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 고 전설적인 미식축구 감독 "빈스롬바르디"는 말했습니다. 한번 뜻을 세웠으면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고 끈기 있게 도전해야 합니다. 달콤한 성공이라는 열매는 끈기의 댓가입니다. '내 서재에는 책이 있다‘ 중에서.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날, 아니 조만간 우리가 직면하게 될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한평생 그려왔던 곳, 그리워했던 곳, 갈망했던 하느님 나라이기에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제 알량한 교리와 성경지식, 제 보잘 것 없는 신앙 체험이지만 총동원해서 결론을 내려 본다면 아마도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유한했던 이 지상에서와는 달리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 더 이상 고통이나 눈물, 결핍이나 상처가 생기지 않는 곳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끝도 없이 흘러넘치는 곳, 그래서 우리의 모든 부족함이 원 없이 채워지는 곳 그래서 우리 죄인들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 뜨거운 사랑 안에 온전히 치유되고 바로 서게 되는 은혜로운 장소. 언젠가 한 특별한 수도공동체를 방문하고 제 나름대로 큰 충격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잠시나마 그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흔적, 예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서로 섬기고 헌신하니 거기서 무슨 명령이나 순명, 회헌회칙이나 특별한 요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정 공동체, 성령 공동체, 본당 공동체, 보편 교회 공동체에 간절히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 건설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은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 각 구성원의 끝도 없는 자기 비움, 자기 낮춤, 헌신과 내어놓음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 건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을 많게 하는 기적, 그 배경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요? 물론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하심이 우선일 것. 그러나 아주 작은 모퉁이에 군중들이 지니고 있었던 작은 내어놓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측의 아주 작은 선행과 봉사, 내어놓음을 기뻐하십니다. 그 작은 우리들의 내어놓음을 기반으로 엄청난 당신 사랑의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은 그렇게 기다리던 주 예수님을 만나는 기쁜 날로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늘 주님 앞에서 기도하며 살아가는 복된 충실한 친구가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모든 재물은 똥 오줌과 같이 그것이 쌓여 있을 때에는 냄새를 피우고 뿌려졌을 때에는 땅을 기름지게 한다” - 톨스토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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