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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과 비움 /독서

최재천의 《숙론》'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


어린 시절
나는 '학교놀이'를 즐겨 했다.

종종 동네 아이들을 나란히 앉혀놓고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가르치는 걸 정말 좋아하는
듯하다.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나는 가르치는 걸
정말 좋아하기도 하지만 재주도
조금은 타고난 듯싶다.


- 최재천의 《숙론》 중에서 -


* 누구나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닙니다. 스스로가 좋아서 하고,
그것도 열심히 몰입해서 합니다.

아무 대가가 없어도
즐겁게 기뻐서 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고난 재주에 사명감이
더해질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평생 품은 화두 불통 사회를 소통 사회로 바꾸는 대화 혁명
우리 시대의 지성인 최재천 교수가 9년간 집필해 마침내 완성한 역작 《숙론》을 출간한다.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손잡을 수 있을까? 최재천 교수가 찾은 해법은 ‘숙론(熟論, Discourse)’이다. 숙론이란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말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 왜 다른지 궁리하는 것,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숙고하고 충분히 의논해 좋은 결론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난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저자 자신이 직접 숙론을 이끌었던 사례를 담았다. 대학교수로서 줄기차게 시도했던 토론 수업, 생태학자로서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제돌이’를 바다로 풀어주기까지의 과정, 위원장으로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회의를 주재한 경험까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이윽고 두들겨 패기보다 두루 살피는 대화가 불통을 소통으로 바꾼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주 앉아 제대로 하는 대화다. 이기기보다 이해하는 대화다. 일방 지시가 아니라 쌍방 대화다. 자기 목소리만 높이기보다 낮은 목소리를 경청하는 대화다. 모욕하기보다 모색하는 대화다. 굴복시키기보다 회복하려는 대화다. 무너뜨리기보다 무릅쓰고 합의하려 애쓰는 대화다. 천둥 치듯 윽박지르기보다 찻잎처럼 우러나는 대화다. 그런 대화들의 합이 숙론이다.

최재천 교수는 말한다. 소통은 노력의 산물이라고.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는 숙론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존경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념·젠더·세대·계층·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격화하는 갈등이 줄어든 합리적 사회가 도래할 날을 고대하며, 대한민국 국민과 국회의원 300명에게 《숙론》을 권한다.

 

목차

  • 프롤로그_혁명 전야, 숙론의 동이 튼다

    1부 숙제(宿題)
    재미있는 지옥, 대한민국의 난제들
    갈등과 소통-슬기로운 사회를 위하여
    이념 갈등-흑백과 좌우 말고 없는가
    지역 갈등-작은 땅덩어리에서 왜 늘 다투는가
    계층 갈등과 빈부 갈등-빈곤의 사실과 진실은 무엇인가
    남녀 갈등-남성과 여성은 정말 다른가
    세대 갈등-저출생과 고령화에 해법은 없는가
    환경 갈등-경제성과 생태성의 평형은 가능한가
    다문화 갈등-정복할 것인가, 다정할 것인가

    2부 교육(敎育)
    같은 견해와 다른 견해를 알고 사랑하는 시간들
    토붕와해(土崩瓦解)-우리 교육의 안타까운 현실
    누구나 꽃피울 잠재력이 있다
    끌려가지 않고 끌고 간다
    읽기 쓰기 말하기
    배운지 모르게 배운다
    섞이면 건강하고 새로워진다
    손잡아야 살아남는다

    3부 표본(標本)
    앵무새 대화와 헛소리를 하지 않는 본보기들
    하버드생-암기보다 질문한다
    테드 카펄-바로 들이대지 않는다
    브라운 백 런치 미팅-격의 없는 대화에서 배운다
    롤런드 크리스튼슨 교수 워크숍-사례를 연구한다
    주니어 펠로우-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생각한다
    통섭원-발제, 지정토론, 종합토론까지 머리를 맞댄다
    위원회-문제를 인식하고 파악하고 해결한다
    경협-함께 손잡고 경쟁에서 이긴다

    4부 통섭(統攝)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는 시나리오들
    위원장 동지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몽플뢰르 콘퍼런스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5부 연마(練磨)
    바람직한 숙론을 이끄는 기술들
    숙론의 목적과 진행중재자의 역할
    적정 환경을 조성하라
    너 자신을 알라
    치밀하게 준비하고 유연하게 진행하라
    규칙부터 합의하라
    발언 정리할 시간을 허하라
    기꺼이 ‘선의의 악마’가 돼라
    막히면 쪼개라
    필요하면 열정도 가장하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에필로그_토론을 넘어 숙론으로
    참고문헌

책 속으로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유독 토론만큼은 못해도 너무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모든 학습을 토론으로 하는 서양과 달리 우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받아본 사람이 거의 없다. 배워본 적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학교에서 가르치면 능히 잘할 수 있다. 정규교육에 토론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사회 곳곳에서 토론의 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토론의 꽃이 만개할 날을 대비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토론을 이끌 진행자를 양성해야 한다. 토론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차고 넘친다. 나는 좀 다른 각도의 책을 쓰기로 했다. _22쪽

나는 미국 어느 인디언 보호 구역의 학교에 새로 부임한 백인 교사의 일화를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시험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아이들이 홀연 둥그렇게 둘러앉더란다. 시험을 봐야 하니 서로 떨어져 앉으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저희들은 어른들에게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상의하라고 배웠는데요.”우리 중에는 철저하게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늘 여럿이 함께 일한다. 대학의 문을 나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거의 모두 협업 현장에 던져지건만 학교 체제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철저하게 홀로서기만 배운다. _85쪽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대담을 담당하는 우리나라 진행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후보자를 궁지에 빠뜨려야 훌륭한 진행자로 평가받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우리가 뽑으려는 대통령이 과연 어떤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를 평가하는 게 목적인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얼마나 공정하게 국정을 운영할지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임기응변에 능한 미꾸라지 혹은 기름장어를 뽑으려는 것인가? 대담이나 인터뷰가 너무나 긴장감 없이 흘러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이나 보는 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하는 짓이다. _99~100쪽

몽플뢰르 콘퍼런스는 우리에게 아무리 이질적이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상대들이라도 고민과 상상력을 공유하고 동행하면 민주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던져주었다.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하려 서두르거나 동의를 강요하지 않고 자기 입장과 시각을 뛰어넘어 함께 대화하며 공동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중립적인 제3의 조정자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고루 경청하고 특정 집단의 편향된 시각에 휘둘리지 않을 애덤 카헤인 같은 탁월한 진행중재자를 초빙해 진행 과정의 전권을 맡긴 것이 성공의 결정적 관건이었다. 그의 중립적이면서도 노련한 리더십은 다분히 편향적이었던 참가자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며,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속한 조직의 집단적 사고에도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집권 정치 세력의 긍정적 사고도 이끌어냈다. _158~159쪽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잘되면 신기한 일이다. 소통이 당연히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 _160쪽

숙론 반응의 기저를 떠받치는 것은 무엇보다 진행중재자의 열정이다. 하품만 전염성이 있는 게 아니다. 열정도 전염된다. 진행자가 하품하면 모둠 전체가 졸음에 빠진다. 그러나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숙론이 진행되는 내내 열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탁월한 숙론 진행을 원한다면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훈련해야 한다. 열정도 가장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기꺼이 연기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첫사랑을 대하듯” 숙론 모둠을 대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교수로 살아온 평생 수없이 자주 첫사랑을 경험한 셈이다. 일방적 강의보다 숙론 수업은 훨씬 더 어렵지만 그만큼 짜릿하다. _196~197쪽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의 발언이 아무리 난해해도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일상적 인간관계에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숙론을 이끄는 진행중재자가 갖춰야 할 덕목 중 단연 으뜸이다. 대담이나 숙론이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가 중요하다. _199쪽

이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300명 국회의원 한 분 한 분에게 일일이 사인해서 선물하고 싶다. 부끄럽지만 서로 마주 앉아 얘기하는 법을 제일 먼저 배워야 할 사람들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아니라 이 땅의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국민은 반드시 정치도 다른 모든 분야처럼 세계가 칭송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말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우리 모두 새로이 습득할 숙론의 힘이 있을 것이다. 조만간 대한민국은 어린이집에서 국회까지 언쟁이나 논쟁을 멈추고 기껏해야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 수준을 넘어 깊이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숙론의 꽃이 만개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가 존경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_208~210쪽
 

출판사 서평

최재천 교수가 9년간 집필해 마침내 완성한 역작, 《숙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과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다툼이 만연한 시대에 서로 알고 사랑하는 소통의 방식

바야흐로 성난 사회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의견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 오르고,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상황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정치 성향과 취향에 맞는 정보만 선별해 보여주고, 같은 견해를 지닌 사용자들끼리 뭉치며 이외의 견해를 배제하는 불통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는 이념·젠더·세대·계층·환경 등과 관련해 전례 없이 다양한 종류의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갈등이 수면 아래 가라앉기보다 세상에 드러나는 현상”은 그만큼 의견 표현이 자유로운 사회가 되었다는 방증이지만, 이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서로 협력해나갈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다.

21세기에는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연결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통합적 지식’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통섭(統攝, Consilience)’이란 화두를 던졌던 최재천 교수. 그가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대화라고 말하며, 이를 가능하게 만들 초석을 다지고자 9년간 공글린 책 《숙론》을 출간한다. 이 책에서 최재천 교수는 우리 사회의 현안을 짚으며, 상충하는 견해가 어떻게 대립을 넘어 진정한 소통에 이를 수 있을지를 논한다. 교육자로서, 생태학자로서, 정부나 사회단체가 만든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경험한 문제 해결법과 합의 도출법, 소통법을 총망라해 풀어놓는다.

1980년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수업 조교를 맡았을 때부터 ‘학생 중심 토론’ 수업을 체득하고 이끌었던 최재천 교수는 1994년 서울대에 부임한 이래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에 그것을 적용하려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2012~2013년, 수족관 쇼를 하던 돌고래 ‘제돌이’를 포함해 다섯 마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수행하며,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숙론을 통해 성공적 야생 방류를 이끌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반세기 가까이 교단과 사회에서 줄기차게 숙론 모임을 이끌어오며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세계 경제 10위권에 올라선 우리 사회가 다시 도약하고 내적으로 성숙하려면, 과학 기술뿐 아니라 무엇보다 숙론 문화가 필요하다고. 그러면서〈100분 토론〉 〈백지연의 끝장토론〉 등에서 대중이 익히 봐왔던 토론의 방식과 목적에 의문을 던진다. 토론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자기 생각을 가다듬는 행위가 아니라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위로 굳어졌다는 것. 이에 토론을 넘어선 숙론을 주창한다.

숙론(熟論, Discourse)이란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함께 숙고하고 충분히 의논해 좋은 결론에 다가가는 행위다. 《최재천의 공부》에서‘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그는, 《숙론》에서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을 넘어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숙론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존경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가 제시하는 숙론은 갈등에 빠진 우리 사회뿐 아니라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와 대화해야 하는 우리네 일상에 소중한 성찰을 전한다.


남아공 몽플뢰르 콘퍼런스에서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까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풀어내기 위한 숙론의 지혜
대한민국을 바꿀 새 공론장이 펼쳐진다!

《숙론》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숙론이 필요한 이유, 바람직한 숙론 예시와 자신이 직접 이끌었던 숙론 현장, 원활한 숙론 진행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대학 강단에 선 지 어언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은 통찰과 경험, 지식과 지혜를 아낌없이 펼쳐놓으며 독자를 흥미진진한 숙론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1부 〈숙제(宿題): 재미있는 지옥, 대한민국의 난제들〉은 이념·젠더·세대·계층·환경 등과 관련해 깊은 갈등과 불통에 빠진 우리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다양한 사료와 근거로 사회 갈등의 원인과 추세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동물행동학자로서 동물의 의사소통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비교하며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어려움을 숙고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미처 민주적 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해” 갈등이 곪아 터진 상황이라 판단하고, 숙론 문화의 전면적 도입을 제안한다.

2부 〈교육(敎育): 같은 견해와 다른 견해를 알고 사랑하는 시간들〉은 사회의 민주적 소통 능력 부재의 근원을 교육으로 지목하고 그 해결책을 논한다. 저자는 학교가 “공존을 위한 협력과 배려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오로지 신분 상승을 꾀하는 경쟁의 각축장”이 돼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교육을 ‘흙이 무너져 내리고 여기저기 기왓장이 쪼개진다’라는 뜻의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상황에 빗댄다. 이에 학습 다양성 확보, 숙론 수업 등 교육 개선 방안을 꺼내며 ‘홀로서기’가 아닌 함께 논의하고 머리를 맞대게 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3부 〈표본(標本): 앵무새 대화와 헛소리를 하지 않는 본보기들〉은 저자가 학생으로서, 그리고 교수로서 익히고 적용해온 숙론에 대해 담았다. 1979년 미국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하버드대 등에서 숙론 수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직접 겪은 내용을 상세히 되짚는다. 하버드생들이 왜 숙론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미국의 명예교우회(Society of Fellows) 시스템이 어떻게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통섭의 환경을 조성하는지 등은 오늘날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4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의 내용에서는 우리 교육 환경에 숙론을 적용하려는 저자의 분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미국의 명예교우회를 본떠 이화여대에 통섭원(統攝苑)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심포지엄을 열어 숙론의 방법을 갈고닦는다. 학생들이 직접 위원회를 열어 사회문제를 적극 논의하게 하고, 따로 또 같이 협력하는 법을 길러주기 위해 단체 평가와 개인 평가를 적절히 활용한 대학 수업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4부 〈통섭(統攝):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는 시나리오들〉은 남아공의 몽플뢰르 콘퍼런스를 숙론의 이상적 예시로 들고, 저자 자신이 직접 이끌었던 위원회의 활동을 복기한다. 몽플뢰르 콘퍼런스는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며 혼란에 빠진 남아공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진행했던 국가 회의다. 대립하는 단체의 교섭을 이끌어온 전문가를 초빙해 약 1년간 워크숍과 대국민 소통을 진행하며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민주적 합의를 도출했다. 그 결과 극한의 사회 갈등을 극복하고 초이념적·초당파적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극적 사례에서 진행자의 역할, 합의를 통한 숙론 과정을 제대로 밟아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이끈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의 통섭적 회의도 자세히 돌아보며 올바른 숙론을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과 제반 조건에 대해 조언한다.

마지막 5부 〈연마(練磨): 바람직한 숙론을 이끄는 기술들〉은 성공적 숙론을 위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진행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환경과 규칙을 마련해야 하는지, 숙론 과정에서 무엇이 금물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토크쇼의 제왕’으로 불리는 앵커 래리 킹의 사례를 들어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참가자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만큼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소통의 본질과 그것을 끝내 이루기 위한 체계적 접근법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에서 상대와 협력하는 숙론으로

동물행동학자인 저자는 평생 동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며 인간 사이의 불통을 오랫동안 고민했고, 예상보다 싱거운 결론에 다다랐다고 밝힌다. 바로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것. 동물행동학에서는 오랫동안 동물 간 소통을 상호 협력적 행동으로 이해하다가, 그것을 송신자(sender)가 수신자(receiver)를 조종하려는 의도적 행위로 규정하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됐다. 즉, 그 관점에서 소통은 ‘협력’이 아니라 ‘밀당’의 과정이라는 것. 그렇다면 소통은 당연히 일방적 전달이나 지시가 아닌, 당사자 간 지난한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불통에 섣불리 실망하지 말고, 어려운 소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기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알면 사랑한다”라는, 저자가 오랫동안 대중에게 전해왔던 구절은 소통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성공학의 대가 카네기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알면 용서한다”라고 말했듯, 우리는 서로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 나아가 “인간은 상대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을 타고났”으며, 그렇기에 이해관계로 얽힐수록 서로 마주 앉아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저자는 숙론 문화의 중요성을 짚으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개한 ‘살롱 문화’처럼, 우리 사회와 일상에서도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싹트기를 염원한다.

말이 통한다는 것, 그것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소통은 노력의 산물이다. 세상에는 성공한 소통보다 실패한 소통이 더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통을 이뤄내야만 한다. 덫을 놓고 상대를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 앉아 둘러앉아 궁리하며 대화하며 좋은 혜안을 찾아내는 것. 다툼과 갈등의 시대, 《숙론》이 제시하는 통찰은 우리를 진정한 소통으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