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고린토 후서에 대한 강론’에서 | (Hom. 13,1-2: PG 61,491-492) |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
후렴2너 나를 부르는 곤궁한 날에, 나는 너를 구하리라. |
후렴3찬미의 제사는 내게 영광을 돌리리라. |
시편 49(50) 주님께 대한 참된 정성 나는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I III |
16 하느님이 악인에게 하시는 말씀 + “너 어찌 감히 내 계명을 얘기하며 * 네 입에 내 언약을 감히 담느냐. 17 규율을 몹시도 싫어하고 * 나의 말을 네 등뒤로 팽개치는 너이거늘. 18 도둑을 보면 너 휩쓸려 다니고 * 간음하는 자와 한패가 되었으며, 19 악한 일에 함부로 입을 벌리고 * 혀로써는 음모를 꾸미었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헐어 말하고 * 네 어미의 아들을 모욕했으니, 21 이런 짓을 하였거늘 내 말이 없겠느냐 * 너와 같은 나인 줄로 생각했더냐. 22 하느님을 잊은 자들 이를 알아 두어라 * 내 너희를 찢어도 건져낼 자 없을까 하노라. 23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이 나를 공경하나니 * 옳은 길을 걷는 이에게는 하느님 구원을 보여 주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찬미의 제사는 내게 영광을 돌리리라. |
○ 너희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알도록, ◎ 너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구하노라. |
제1독서 |
형제 여러분,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2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우리가 하는 전도 사업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아냈고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잘 겪어냈으며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 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냈습니다. 6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과 꾸밈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두 손에는 정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또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10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11 고린토의 교우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다 말하였고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12 여러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옹색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스스로 옹색하게 만들었습니다. 13 나는 여러분을 내 자녀처럼 생각하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같이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14 믿지 않는 사람들과 짝짓지 마십시오.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이 될 수 있으며 빛이 어떻게 어둠과 사귈 수 있습니까? 15 그리스도가 어떻게 벨리아르와 마음을 합할 수 있으며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무엇을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16 하느님의 성전에 우상이 어떻게 어울리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사이를 거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에게서 빠져 나와 그들을 멀리하여라. -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부정한 것에 손대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맞아 18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7,1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런 약속을 받았으니 우리의 몸과 심령을 조금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켜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하며 완전히 거룩한 사람이 됩시다. |
제2독서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고린토 후서에 대한 강론’에서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열이 모든 것을 넓히듯이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은 마음을 넓힐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은 바오로 사도의 입을 열게 하고 그의 마음을 넓혔습니다. 바오로는 말합니다. “나는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내 마음 자체는 사랑과 일치하여 목소리와 마음을 다해 자신있게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지닌 마음보다 더 넓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처럼 사랑의 긴밀한 유대 안에서 모든 성도들을 포옹해 들였습니다. 그리도 그의 사랑은 깨어질 정도까지 뻗치지 않았고 그것으로 자기 인격이 떨어지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매사에서 온전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불신자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을 포옹했는데 성도들에게 그 정도의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뭐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바오로는 단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만 말하지 않고 더 강조하면서 “나는 여러분께 숨김없이 다 말하였고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흡사 “나는 내 마음에 모든 이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직만 하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일 넓은 여지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거닙니다. 따라서 바오로는 말합니다. “나에겐 옹색함이란 없습니다. 옹색함이 있다면 여러분 자신 안에 있습니다.” 바오로가 이 꾸짖는 말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하듯 사랑으로 그 말을 부드럽게 다듬는 것을 보십시오. 바오로는 “여러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들을 지나치게 꾸짖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신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얼마나 불타고 있는지 그의 서간들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각 서간에서 몇 구절을 인용해 봅시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자주 여러분을 찾아갈 생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에게 보람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희망과 우리 기쁨은 무엇이며 우리 승리의 월계관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며 자신이 사슬로 묶여 있을 때에도 그들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골로사이인들에게 이렇게 씁니다. “여러분과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위로를 얻도록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나에게는 옹색함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자기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만 말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더 가까이 이끌도록 자기가 그들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고린토 후서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디도가 와서 여러분이 나를 몹시 보고 싶어하고 나에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나를 열렬히 옹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주여, 당신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신망애 삼덕에 더욱 충실하며 항상 깨어 당신의 계명을 꾸준히 지키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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