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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기도회 봉사

♡2142회 우리는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한다. - ♡

♡2142회 우리는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한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29일(다니엘 1장~)

  엘마 윌러는 ''남의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좋은 것은 비밀입니다》♡좋은 것은 비밀입니다. 안 좋은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좋은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비밀의 문안에 두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열쇠로, 내 생각의 힘으로, 내 말과 행동의 손으로 비밀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사랑은 비밀입니다. 사랑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문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희망은 비밀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문은 오늘을 성실히 사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평화는 비밀입니다.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문은 큰사랑으로 자유함을 얻은 사람에게 열립니다. ♡기쁨은 비밀입니다. 날마다 기쁨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문은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용기는 비밀입니다. 참다운 용기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의 문은 뜻이 곧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열립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고 말씀하신 대로 두 번째 율법을 완성하는 내용의 말씀이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는 말씀은 율법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남의 아내를 바라보는 눈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하였다." 라는 말씀은 율법을 완성하시는 말씀이다. 율법과 복음과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율법은 '간음해서는 안 된다.' 라고 행동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면 '음욕을 품고 남의 아내를 바라보는 눈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하였다.' 는 복음은 행동만이 아니라 행동을 취하기 이전이라도 마음으로 음욕을 품고 있으면 안 된다는 내면의 상태에까지 지적해서 말씀하신 것. 그러니까 이 말씀은 여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언급하는 것

.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안 취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상태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여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어떤 상품처럼 생각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간음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면 그것은 간음한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 여인에 대한 시각이 단지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 당시 여인의 위치는 사회적으로 매우 낮은 취급을 받았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남자들이 자기들의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여인을 상품처럼 취급하였다. 이러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의 위치를 남자와 동등한 위치로 높여주시는 것.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혁신적인 일이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논리이다. 그러니까 여인을 남자들이 자기들의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행동하지도 말고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잘못이라는 것

여인의 위치를 남자와 동등한 위치로 높여주심으로써 여인을 멸시하던 율법을 한 차원 높게 완성시켜 주신 말씀이다. 여인은 남자의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는 동동한 인간으로서 서로 한 몸을 이룰 때 비로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을 완성시켜주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것.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창세 1, 26-28 참조) 하느님이 이렇게 인간을 만드신 후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 1,28)는 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이러한 사명은 남자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해야한다. 여자는 남자의 예속물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그러한 목적으로 모든 것은 사용되어져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잘 다스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정당한 행위가 아닌 간음하는 행위는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간음하는 행위는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로서 창조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 "네 오른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하는 말씀도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잘 다스려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창조의 목적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목적에 맞지 않게 잘못 사용된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코린 10,31) 우리는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창조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여자를 간음하고 자기 신체의 일부분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 아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인가? 예수님은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진복팔단을 가르쳐 주셨다. 인간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합당하게 사는 것.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롭게 살아야 한다. 의롭게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지 말고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진복팔단의 정신으로 살아가지 않을 때 그것은 소금이 짠 맛을 잃어버린 것이며, 등불을 켜서 등경 위가 아니라 함지 속에 놓는 것과 같은 것. 이런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라는 것. 아무 쓸모가 없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삶이란 곧 살인을 하고 간음하는 행위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여인을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내 인생의 동반자라는 생각보다는 성적인 대상으로 마치 성을 돈으로 주고 사는 상품처럼 흐르고 있는 풍조가 생각보다 훨씬 넓게 번지고 있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보기 때문에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이혼이 이루워 지고 있다. 삶의 모든 가치를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느냐 아니냐에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서로 합심해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려고 하기보다는 쉽게 갈라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지금 이 순간 주님이 허락하신 일을 통해 축복을 누리는 가운데 우리들은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어 누리며 살아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샘솟는다.'' - 에머슨 -


♡2143회 부부는 정말 일심동체인가요, 아니면 가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요?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30일(호세아서 1장~)

  명심보감은 ''바다의 물이 마르면 나중에는 밑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죽어도 마음은 알지 못한다.''
《세상의 참된 주인공은 당신 입니다》세상이 아무리 험악 할지라도 진정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자신을 둘러싼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이겨낼 힘을 얻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는 더욱 더 사랑이 필요하지요.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유형이 있다. 키가 큰 사람,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 잘생긴 사람, 귀여운 사람, 터프한 사람, 돈 잘 쓰는 사람, 날씬한 사람, 통통한 사람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유형이 있다. 마음이 넓은 사람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좁고 작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자신은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때문에 그런 자신을 이해할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넓히기 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넓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적다. 처음 만났을 땐 마음이 넓은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그도 역시 우리 만큼 밖에 안 되는 속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마음 넓은 사람을 찾아갑니다. 세상에서 자신보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맞는 것보다 넓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어렵다. 사랑할줄 아는 사람 그는 바보를 천재로 만들수 있는 사람이고 고장난 세상을 고치는 기술자입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조금 더 사랑할 줄 안다면 우리는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주인공이 될수 있다. 주님께서 용서와 사랑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듯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당신이 "세상의 참된 주인공" 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드라마가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소설작가 지망생이자 사회 초년생 주인공이 월세가 싼 어느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그런데 그 고시원에서는 계속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직장에서도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애인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지만, 너무 예민하다며 그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고시원의 한 친구에게 털어놓다. 그 친구만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가 이 모든 살인사건의 주범이었다. 모든 이들이 타인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래야 혼자만 타인으로 머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는 데 쾌감을 느끼는 괴물이 됨으로써 비로소 그 사회에 속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정말 일심동체인가요, 아니면 가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요? 어떤 분은 몇 년 전부터 우울증약을 먹고 상담을 받습니다. 저녁에 피곤해서 들어오면 그냥 의미 없이 TV를 돌려보다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약을 먹어도 크게 호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집에 둘이 있어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 아이들과 있을 땐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둘이 있어도 자신에게 짜증만 낼뿐 다정한 미소를 짓는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지옥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아내를 타인처럼 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친구와 머물 땐 천국이 됩니다. 누가 타인이고 누가 친구일까요? 타인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나에게만 신경 써 주는 사람입니다. 유럽에서는 남녀가 길거리에서 애정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합니다.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 같게 행동합니다. 이런 상태라면 둘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를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둘의 그런 모습에서 소외를 느끼고 그러면 지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몇몇 사람에 쏟아버릴 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켜버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관계에서 우리는 천국도 느끼고 지옥도 느낍니다. 타인을 좋아하여 지옥을 체험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으로 만들어 남도 지옥에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타인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관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됩니다. 우선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세상 모든 사람이 타인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줄 능력이 있으신 분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밖에 없다먼저 하느님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세상으로 관계를 넓혀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신경 쓰다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복을 사람들에게 걸어야 해서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이웃들에게서 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에 이와 관련된 아주 좋은 예화가 나옵니다. 행복은, 마치 숟가락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그것이 흘리지 않고 들고 다니며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숟가락 위의 기름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에너지가 남는 만큼 이웃과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이웃과의 관계에 집중하면 숟가락 위의 기름이 쏟아지고 그러면 내가 하느님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잃었기에 결국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애정을 구걸하러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그도 그 외로움 때문에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선행도 이웃이 아닌 하느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하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식할 때도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먼저 신경 쓰면 숟가락의 기름이 흐르는 것도 모릅니다. 숟가락에 기름이 흐르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한 타인으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라디오를 들을 때 두 주파수를 동시에 들을 수는 없다.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선은 지금 이 순간 세상을 타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하느님이 먼저 친구가 되면 그 기쁨과 계명으로 어떤 누구도 타인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선은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경을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보는 것보다 숟가락 위의 기름이 더 중요합니다.

  남의 허물을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마음으로 남을 먼저 존중해주는 마음으로 우리들이 먼저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고 누리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인생에 있어서 많은 고통을 면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기의 이익을 아주 적게 생각하는 일이다.''  - 쥬베르  -


♡2144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1일(요엘서 1장~)

  로렌스 굴드는 ''우리는 누구나 남이 나를 좋아하기 바란다. 자신이 뛰어난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태도는 결코 남의 호감을 얻지 못한다. 남이 나를 좋아하도록 하는 비결은 상대방의 기분을 유쾌하게 해주는 점에 있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대나무의 성장 폭발적 성장 (퀀텀 리프)를 아시나요? 중국의 극동 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 대나무" 그 지방의 농부들은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놓고 매일같이 정성들여 키운다.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정성과 관심을 쏟으며 한 해를 기다립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보이지 않는 싹을 바라며 두 해를 기다립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셋째 해가 되자 고개를 내민 죽순, '30cm' 그러나 넷째 해가 되어도 '30cm' '이렇게 자라서 언제나 저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4년의 노력과 인내가 '고작 30cm' 당신이 한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심은지 5년째가 된 대나무는 눈에 띄는 성장 정도가 아니라 폭발적인 성장, '퀀텀 리프(quantum leap)'를 합니다.

 대나무 마디마디 '생장점' 이 있어 하루에 1m 가까이 자라며 대나무의 1시간 길이 생장속도는 소나무 30년 길이 생장에 해당합니다. 폭발적 성장, '퀀텀 리프' 이것은 5년간의 뿌리 내림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서로 얽히고설켜 지반을 욺켜쥐듯 자란 뿌리 이 뿌리가 있어 마디마디가 성장하고 강한 비바람도 이기는 유연한 줄기를 뻗어 올려 어느새, 저 하늘 끝에 닿을 만큼 자란 대나무를 만듭니다. 눈에 보이는 '고작 30cm' 당신이 낙담한 그 순간에도 당신이 포기를 생각한 그 순간에도 계속 믿음의 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눈물로 심고 절제로 뿌리내린 인고의 시간이 있어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죽어라 노력하는데 성과를 보이지 못하거나 남들이 알이주지 않아도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보면, 불쌍히 여기거나 바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주 아주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당신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 죽어라 하는데 눈 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겁먹지 마라. 당신은 지금,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 어떤 학생이 수능이 끝난 후에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자신의 자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상담사가 왜 자살을 시도했느냐 물으니, 자신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도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 죽으려 했다는 것. 자신의 행복이 수능 잘 보는 것으로 단정을 짓는 것이었지요. 수능을 망쳤으니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 것. 자기 스스로 괴로운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수능을 잘 보지 못했어도 우리 각자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역할은 단지 수능을 잘 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수능이라는 것은 소중한 ‘나’ 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과정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문구류가 있었다. 좋은 문구류인데 서랍을 열어서 사용하지 않다 보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서랍 구석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 우리의 능력도 이렇게 서랍 속에 갇혀 있던 문구류와 마찬가지는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믿어주십니다.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도 잘 알고 계십니다. 충분히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한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

 
정말로 싫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향해서 내게 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도저히 개선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향해 내가 도와주겠다고 오라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초대하신 이유를 알 수 있다. 충분히 배울 수 있으며, 충분히 고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충분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서랍 속에 두고서 사용하지 않은 좋은 문구류처럼, 단지 아직 그 힘이 사용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님께로 지금 이 순간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주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자존감 높은 사람의 특징> 
1)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2)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원치 않는다면 고쳐 나간다.
 3)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어도 여유가 있다. 불안한 사람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큰 분노를 느낀다.
 4)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고 싶다면 맺고, 맺기 싫다면 맺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행동한다. 어떻습니까?

지금 이 순간 나는 과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특징들입니다. 자존감이 밥 먹여주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나를 살게 할 때가 참으로 많다. 그것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해보면 밥 먹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도해 봅니다. “하느님이 저를 축복하십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만사형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하신 이 기도로 우리의 자녀들, 몸과 마음이 아픔 이들, 그리고 우리들이 하시는 모든 일과 알고 계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


♡2145회 ‘기본 원칙에 충실하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2일(미카서 1장~)

  앤드류 매튜스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데도 가만히 있는다면 당신은 결국 그것 때문에 그들은 미워하게 될 것이다.''
 《침묵 속의 사랑》나는 과거에 자신을 믿었고 자신에게 희망을 두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제 나는 오직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게 희망을 두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단순하고 실증적인 진리의 총체적 적용은 참으로 어렵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서 침묵하는 것. 하느님께서 더 잘 들으시는 말은 침묵 속의 '사랑' 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뭔가 뚜렷한 것을 체험하거나 느끼려는 원의를 갖지 말고 사랑이 충만한 시선으로 그분을 응시하십시오. 하느님께 집중 사랑의 시선을 통해 영적 고요를 간직하십시오.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평화로운 고요 그 자체를 통해 말하십시오(십자가의 성 요한) 영적 고요 속에서 하느님께 사랑의 시선을 집중하기를 배우십시오. 그러면 차츰차츰 그리고 아주 빠른 속도로 하느님의 평화와 안식이 거룩한 사랑에 감싸여 있는 하느님께 대한 놀라운 최상의 인식과 더불어 당신의 영혼 안에 쏟아져 내릴 것.

당신이 독서를 통해 노력한다면 묵상을 통해 은총을 얻게 될 것이고 기도에 의탁한다면 관상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 그러나 결국 당신은 사랑의 시험대에 올려질 것.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사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그분을 사랑하기를 터득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일은 내맡기십시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은밀히 이루어지는 일은 그것이 하찮은 일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이루어지는 수천가지의 일보다 하느님께 더 기쁨을 드립니다. 사랑 때문에 여정에 오르는 동안 영혼은 피로하지도 않고, 남을 피로하게 하지도 않습니다.-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미국 UCLA 브루인스팀을 이끈 농구 코치 존 우든은 14차례나 내셔널 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 기록은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할 정도로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존 우든 코치를 마법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의 코칭 비법은 무엇일까요? ‘기본 원칙에 충실하라’ 라는 것. 매 시즌 우든이 라커룸에서 처음 하는 일은, 자기 선수들에게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게 양말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선수라면 웃어넘길 가르침이지만 이를 통해 그의 선수들은 발에 물집이 거의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다른 선수들의 발이 화끈거릴 때 그의 선수들은 시작할 때처럼 쌩쌩했다. 기본 원칙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갈 때, 자신이 원하는 것도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특별한 결과만을 원합니다. 단적인 예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상상만 합니다. 주님의 기본 원칙은 ‘사랑’ 입니다. 이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신 주님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을 전혀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그 밖에 자신의 어려운 문제 해결에 대해서만 기도만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세상이 아닌 하느님임을 분명히 이야기하십니다. 세상은 육신을 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영혼은 절대로 죽일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떤 영혼이나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 안에서 누릴 가치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세우신 기본 원칙이 중요합니다. 하찮아 보이는 참새라도 함부로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랑 넘치는 하느님이시기에, 참새보다 더 귀한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인간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실하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세상 안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대신 철저하게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면 나머지 원하는 모든 것이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하는 사람을 주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안다고 증언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주님을 증언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전혀 모르는 사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증언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 주님의 기본 원칙인 ‘사랑’ 을 항상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제까지 신부님께서 출판했던 책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책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계시더군요. 정작 이 책들을 쓴 아들은 부끄러워서 한 권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어머니는 아들이 쓴 책이라고 잘 보관하고 계셨다. 이 책들을 펼쳐보다가 눈물이 터졌다. 20년 전에 출판했던 책이야 어머니가 그래도 젊었을 때였으니 책 읽는 것이 힘들지 않으셨을 것. 그러나 80이 넘어가면서 시력이 좋지 않아졌으니 책 읽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데도 책에는 정성껏 그리고 꼼꼼하게 다 읽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이 잘 보이지도 않고, 또 눈도 매우 아프셨을 텐데 아들 책이라고 억지로 읽으시려고 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책 글씨 좀 더 키울걸 삽화를 더 많이 넣을걸 이제 후회하면 뭐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이 책이 어머니께 또 다른 고통을 드렸음을 깨닫습니다. 부모는 자식 때문에 늘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도 기뻐합니다. 자식 역시 부모 때문에 늘 아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아픔으로 괴로워합니다. 이 모습을 하느님께도 똑같이 보이는 우리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에 문제도 주시지만, 해답도 주십니다. 이제 우리들은 기도로 잘 살펴보시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은총의 해답을 찾아내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가장 곤란한 것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 알랭 -


****24.7.3**** 성 토마스 사도의 축일을 영광스러이 지내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보호로 항상 도움을 받게 하소서. 그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아 승복하였사오니,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소서.

♡2146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답이 보이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3일(즈카르야 1장~)

  다란벨은 ''어쨌든 노력을 계속 하시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과 용기가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인생덕목(1)》
  (말) 말을 많이 하면 필요없는 말이 나온다. 두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책) 수입의 1%를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헤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있다.
 (노점상)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깍지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웃음)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고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하고 젊은이를 동자로 만든다.
 TV(바보상자)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인생덕목(2)
(성냄)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기도)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 년 암혹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하며 만생을 유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이웃)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사랑)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멈춤) 가끔은 칠흑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 , 마음의 가슴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조급한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기나니.......

어느 회사의 입사 시험문제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다. 당신은 폭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밤에 운전하고 있다. 마침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있다.
1.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2.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의사
3.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의 스포츠카에는 단 한 명만을 태울 수 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 후 설명하세요. 당신은 위독한 할머니를 태워 그의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의사를 태워 은혜를 갚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정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200명의 경쟁을 제치고 1등으로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이렇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 가도록 의사 선생님께 차 키를 드리죠.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답이 보이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를 맞힐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일 것.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음란한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화를 절대 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면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 10살을 갓 넘은 마리아 고레티 성녀도 자신을 죽어가면서 자신을 수십 차례 찌른 청년을 용서하고 같이 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시카고에 사는 한 부자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전문의인 로렌스 박사를 초빙했다. 로렌스 박사가 정성스레 이 아들을 치료하여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크게 보도 되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년도 부잣집 아들과 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 신문을 보고 로렌스 박사가 시카고에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어머니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자신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 저명한 의사를 초대한다는 것은 꿈을 꿀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로렌스 박사는 산책하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 그 소년의 집에 잠시 들러 쉬기를 청했다. 로렌스 박사인 줄 몰랐던 소년의 어머니가 냉대하며 거절하여 병을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이 어머니는 자신이 쫓아 보낸 사람이 로렌스 박사였음을 알고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길에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은 영원한 후회를 남깁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이 보이지만, 할 수 없다고 믿으면 주님께서 도와주시려 해도 알아보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맙니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멩이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면, 당신은 내일 기쁘면서 또 후회스러울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길에 떨어진 돌멩이 몇 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날 주머니에 넣어 보니 그 돌멩이들이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정말 어제의 그 목소리처럼 기쁘면서 후회스러웠다. 기쁜 것은 그 돌멩이들을 가져온 것이고, 후회스러운 것은 좀 더 많이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똑같을 것.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만큼 기쁠 것이고,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은 영원한 후회 거리가 될 것.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전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 앞에서 어떠한 것들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이 순간 먼저 힘을 뺍시다. 그리고 은혜는 돌에 새겨서 영원히 기억하고, 원수는 물에 새겨서 흘러 보내어 잊어버리시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명성을 구하여 달리는 자는 명성에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명성에서 도망쳐 달리는 자는, 명성에 붙잡힌다.'' - 탈무드 -

♡2147회 신앙생활은 지금 이 순간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4일(마태복음 1장~)

  공자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자세를 가지거라''
《행복을 얻기 위한 기다림》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얼굴이 예쁘고 잘생긴 사람. 마음이 너무나 예쁜 사람. 애교가 많은 사람. 곰같은 사람. 다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다른 느낌의 사람들이 주는 행복도 모두 다르다. 만나면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 만나면 애처로와 보이는 사람. 만나면 시간이 빨리가는 느낌의 사람. 만나면 마냥 행복한 사람. 시간이 가는게 너무나 안타깝게 만드는 사람. 이렇게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주는 공통점은 기다림이 있다는 것. 언제 누굴 어떻게 만나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그 기다림이 절대 싫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음에 그 기다림이 행복인 것. 하루가 될지 한달이 될지 일년이 될지 아니면 영영 만나지 못할지라도 기다림이 있기에 하루 하루가 행복인 것. 기다림이 있는 동안은 그 누구보다 행복인것. 평생을 기다리는 행복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할지도 나에게 기다림이 있어 행복한 하루다 사랑이 있기에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인 것을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을 얻기위해 기다림을 시작한다. 샬롬~~^^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6-50)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그들은(밖에 서 있는 그들은) 나의 가족이 아니다.” 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예수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어떻게 하는 사람이) 나의 가족이 될 수 있느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족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참 가족’ 에 관한 가르침을 주려고 하신 것.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들처럼(내 제자들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나의 참 가족이 될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당신의 ‘참 가족의 표본’ 으로 삼으신 것은, 제자들의 신앙생활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지금 말씀하신 ‘하느님의 뜻’ 이 무엇인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 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구원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하느님의 뜻’ 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은,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 가족’ 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영적인 가족’(신앙인 공동체)에 관한 가르침으로 해석하고, 또 ‘영적인 가족’ 과 ‘육적인 가족’ 이 대립 관계인 것처럼 설명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의 ‘참 가족’ 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영적인 가족’ 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받는 일’ 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나의 참 가족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가족’ 과 ‘육적인 가족’ 은 대립 관계가 아닙니다. 

신앙인은 이 두 가족이 하나로 일치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큰 가정’ 이고, 각 개인의 가정은 ‘작은 교회’ 입니다. 만일에 두 가족이 하나로 일치되지 못하고 어떤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에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가족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 입니다. 혼인성사를 통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기 때문에 가정은 ‘혼인성사’ 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가정 자체가 ‘혼인성사’ 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성사’ 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거룩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또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자신의 자녀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주일이면 가족이 함께 미사 참례를 하면서 성체성사에 참여합니다. 다른 성사들도 가족이 함께 참여합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한다면 육적인 가족은 곧 영적인 가족이 됩니다. 두 가족은 대립 관계가 될 수가 없고, 영적인 가족을 위해서 육적인 가족을 버리거나 멀리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 뜻의 실행’ 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다음 말씀에 바로 연결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이 말씀은 가족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신의 가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는 것에만 만족하면 안 됩니다. 가족 모두가 구원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여정에서, 가족은 가장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만일에 가족 가운데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이산가족이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하고 슬픈 일이 될 것. 그 경우에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기뻐할 틈도 없이 가족 가운데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생긴 것을 먼저 슬퍼할 것. 그리고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 이기 때문에(1요한 4,8) ‘하느님의 뜻’ 을 ‘사랑 실천’ 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신앙생활은 지금 이 순간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사랑 실천 없는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아닌 생활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은 바로 가족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사랑 실천의 올바른 순서입니다.

 가족에게(가족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 실천해야 할 사랑 실천 가운데 첫 번째 실천은, 모든 가족이 함께 구원받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일입니다. 혹시라도 가족 가운데 하나라도 지금 이 순간 ‘구원의 길’ 에서 멀어지려 한다면, 지금 이 순간 죄를 짓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막고 회개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만일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죄를 짓는다면, 그러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착각하는 것. 그 다음에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과 이웃의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 사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한 가족이고, 형제입니다. 이웃의 가족을 외면하고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심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신앙생활은 인생의 가로수 등불을 끄고 켜는 삶 임을 그리고 십자가 안에 있는 말씀과 성체가 우리들의 희망의 등불로 우리들의 삶의 발자국을 밝혀주시어 지켜 보호해 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성공하는 사람은 송곳처럼 어느 한 점을 향하여 일한다.'' - 보비 -


♡2148회 사랑은 사랑을 낳는 법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5일(마태복음 25장~)

  루소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다.''

《10분의 기적》
첫째, 아침에 10분만 일찍 일어나십시오. 하루가 내 손 안에 들어옵니다.
둘째, 10분만 더 잘 씹어드십시오. 만병이 떨어져나갈 것입니다.
셋째, 10분만 먼저 출근하십시오.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갑니다.
넷째, 10분만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하십시오. 관계를 주도적으로 맺게 됩니다.
다섯째, 10분만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한 후 말을 하십시오. 다툼이 더 좋은 사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여섯째, 10분만 하루를 돌아보고 잠자리에 드십시오. 오늘의 기쁨과 보람이 내일로 이어지며 오늘의 실수가 내일 되풀이되지 않게 됩니다.
일곱째, 10분만 사랑과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는 데 쓰십시오. 사랑과 감사의 삶이 펼쳐지게 됩니다.
여덟째, 10분만 더 걸으십시오. 건강이 찾아옵니다.
아홉째, 10분만 잡담과 불필요한 인터넷과 전화를 줄이십시오. 하루가 여유로운 중에 집중될 것입니다.
열째, 10분만 더 웃으십시오. 이웃님의 삶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미움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에게서 꼬투리 잡을 허물만이 보이지만 사랑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 법입니다. 사물이 구부러져 있으면 그 그림자도 구부러지게 마련이듯이 마음이 비딱하면 나오는 것도 비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통하여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굽은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라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마태13,54)하고 말하였다. 지혜의 출처를 묻는 질문이었다. 지혜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지혜는 너무나 풍요롭고 깊어서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다.(로마11,3)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 신비한 비밀을 믿는 이들에게 드러내셨다.(1코린1,24.2,7)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시어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며 날로 지혜가 성장하였으며 당신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루카2,40.콜로2,3)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한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잠언9,10)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하느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 모든 지혜의 근원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지혜는 인생의 종합적인 사리 판단력입니다. 선한 것과 악한 것, 바른 것과 그른 것,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아는 것, 어떤 상황 안에서 그때그때 무슨 말과 행동을 할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인생의 올바른 방향감각입니다. 한 번 뿐인 나의 인생여정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인생의 목적지인 하느님의 나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잃지 않는 것. 지혜는 균형감각, 조화 감각입니다.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 불행해집니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불행합니다. 하느님과 세상,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조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말씀 안에서 균형과 조화의 올바르고 절대적인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은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내세우는 지식의 소유자 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헤아리는 지혜로운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지혜로운 삶 안에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은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하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소위 가문도 별로이고 배움도 많지 않은, 엘리트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저런 가르침을? 잘난 척 하지마라! 하고 생각한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그들의 뿌리 깊은 선입견이 진실을 왜곡하고 예수님의 진면목을 볼 수 없게 만들었으며 결국은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기적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무엇을 못마땅하게 여기는지요? 지금 이 순간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불평불만 하는 것은 아닌지요? 내 마음의 옹졸함이 불평을 키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에는 '불평금지' 스티커가 붙여있답니다. 내 삶의 여정에서 무엇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살펴야 하겠다. 자기정보가 다 인양, 지금 이 순간 확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섣부른 앎이 병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차라리 모르는 게 약입니다. 사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을 바꾸면 변화가 옵니다. 지금 이 순간 문제만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에 골몰하면 모두가 피곤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면 자신도 바뀌고 세상도 바뀝니다. “뿌리 깊은 선입견은 대상을 왜곡되게 보게 하는 색안경이 되어 진실을 가립니다.”(함께야) 내면을 모른 체 외면만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거두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금 이 순간 삶이 어려워도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먼저”인 “일사각오 믿음의 삶”으로 감당하며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아무리 위대한 천재의 능력일지라도 기회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 나폴레옹 -


♡2149회 “당신은 좋은 분입니까, 나쁜 분입니까?”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6일(마르코복음 1장~)

  John Dryden (영국의 시인, 극작가)은 ''사랑의 고통은 다른 어떠한 즐거움보다 달콤하다.''
《"덕담을 많이 하면 운명이 바뀐다."》내가 했던 말의 95%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말버릇을 고치면 운명이 변한다. 말투를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죽는 소리를 자주하면 죽을 일만 생긴다. 그것이 말의 영향력이다. 성공은 습관이다(Success is a habit) 습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어 가지만, 나중에는 그 습관이 우리를 만들어간다. 성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성품은 좋은 습관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들이 쌓여 성품이 바뀌고, 비로소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 남에 대한 배려는 주로 말투(a tone of speech)로 나타난다. 퉁명스러운 말투는 들어온 복도 깨뜨린다. 평소에 발성 연습을 게을리 말라.말의 영향력은 아주 많이 크다. 말의 힘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키고, 빠르게 창조를 일으킨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이 말의 파장이 운명을 결정짓는다. 자나 깨나 ‘감사합니다!’ 를 쉬지 않고 반복했던 말기 암환자는 한순간에 암세포가 사라졌다. 만년 꼴찌에게 칭찬 교육을 시켰더니 우등생이 되었고, 10년간 적자로 허덕이던 기업이 직원들 덕담 훈련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혼 위기의 부부 150쌍에게 언어 습관을 교정시켰더니, 146쌍이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 좋은 말 열 번 해도 나쁜 말 한번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조심하라. 자동차도 욕을 먹으면 계속 속썩인다. 물질 기계도 사람의 언어에 감응하기 때문이다. 덕담을 매일 가급적 많이 하라. 그것이 아주 많이 쌓이면, 기적이 일어난다. 

겸손과 배려와  사랑으로 덕담을 많이 해주며 상대방의 기를 살려주는 멋진당신! 좋은 일이 많이 많이 있을겁니다. 나에게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사람을 조심하라. 다른 사람이 나를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나요, 아니면 어렵게 대했으면 좋겠나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무시당하기 싫어서 센 척하고 권위를 내세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에게 격식을 차리는 사람과 무작정 뛰어와서 안기는 아이 중, 누구를 더 좋아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그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죄를 지었어도 어쩌면 뻔뻔하게 당신 앞에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몸을 가렸고 나무 뒤로 숨었고 이웃을 더 나쁜 사람으로 심판하였다.

 자신을 유혹한 하와를 만들어주신 하느님도 원망하였다. 사실 나중에 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나에게 가장 격식을 차리는 사람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사제가 되어 평신도분에게 사람들 앞에서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은 사제들에게 누구보다도 깍듯한 예의를 차리시는 분이었다. 신부님께서 어른 신부님에게 예의가 없어 보였던 것.  신부님께서는 그분을 아버지처럼 편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긴 것. 이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술자리에서 사제가 사제답지 않다고 심하게 신부님을 나무라셨다. 신부님께서 고개 숙이고 깊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했다. 그분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제를 보며 기분 흡족해하셨다. 윗사람에게 지나치게 깍듯하게 대하는 사람은 아랫사람들도 자신에게 그렇게 대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 주위에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만 있게 됩니다. 두려워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면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니 어느 순간에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윗사람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 개도 사람을 물 때 두려워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람이 두렵지 않으면 굳이 공격할 필요도 없다. 내 주위에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나를 물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이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린이처럼 다가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음을 중풍 병자를 치유하시며 보여주셨다. 율법 학자들은 사람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에 대해 하느님을 모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절대 인간에게 내어주실 수 없다고 믿는 것. 사실 이런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욕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여긴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분임을 믿는 것. 부모가 무서운 분이라고 여기면서 부모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면 부모를 자비로운 분으로 여기고 부모 앞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아테네로 돌아왔을 때 알렉산더는 자신들의 백성에게 인기순위 2위라는 것을 알았다. 인기순위 1위는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그는 술통에서 살면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르침을 전했다. 알렉산더가 신하를 보내어 디오게네스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디오게네스는 정 보고 싶으면 왕이 직접 오시라고 전했다. 화가 난 알렉산더는 술통에서 자는 디오게네스를 직접 찾아왔다. “내가 두렵지 않은가?” 술통에서 잠을 자고 있던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는 왕을 짜증나는 모습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좋은 분입니까, 나쁜 분입니까?” “당연히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제가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햇빛 좀 가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 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지, 하느님 자체를 두려워함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정말 감사해 죄를 지을 것을 두려워하는 은혜입니다. 알렉산더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디오게네스가 자신에게 굽신거리는 다른 신하들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 이런 사람은 절대 알렉산더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굽신대는 사람 중에 뒤에서 칼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나를 자신의 스트레스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르면 나를 물려고 할 것입니다.

  자비는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마음으로 느껴보십시오. 그러면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충만하여 몸과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사랑은 여자의 섬세함을 줄이고, 남자의 섬세함을 늘인다.'' - 장 파울(리히터) -


♡2150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7일(루카복음 1장~)

  장영실은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일 뿐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게 무슨 죄란 말인가.''

《참된 생명과 생동감 넘치는 길》생명에 대한 갈망은 우리시대의 본질적인 갈망이기도 하다. 요한은 영적핵심을 상실하고 내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에게, 참된 생명과 생동감이 넘치는 길을 제시하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진리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참된 실제를 만난다. 예수께서는 생명과 내적 생동감으로 영혼을 채워주심으로써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께서 우리 내면에 생명력이 넘치도록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에 참여할 것이다. 생명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신적생명을 가리킨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만이 신비가 아니라, 참된 생동감과 참된 자기 자신에 이르는 여정도 신비다

인간의 참된 구원이란 인간이 참된 자기 자신을 만나고 또한 실제와 만나는데 있으며 자신의 요구에 얽매여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데 있다. 물의 상징은 어떤 일정한 화학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만이 아니다. 물은 생명과 쇄신과 정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파괴와 홍수를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신앙을 통해 이제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일깨우신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느님에게서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친히 당신 자신에 대하여 일곱 번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세상의 빛, 문, 착한 목자, 부활이며 생명,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 나는 참된 포도나무다.”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마태 13,3-4)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마태 13,19) 씨 뿌리는 사람이 일부러 ‘길’ 에 씨를 뿌리는 것은 아닙니다. 실수로 길에 뿌리는 것도 아닙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백지 상태와 같은 ‘땅’ 에 씨를 뿌리는데, 어떤 땅은 ‘좋은 땅’ 이 되고, 어떤 땅은 ‘길’ 이나 ‘돌밭’ 이나 ‘가시덤불’ 이 됩니다. 그 당시의 농사법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의 뜻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 에게, 또 ‘모든 사람’ 을 위해서 선포됩니다. 누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모두가 다 처음에는 백지 상태와 같다. 본인들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좋은 땅’ 이 되고, 어떤 사람은 ‘길, 돌밭, 가시덤불’ 이 됩니다. 여기서 ‘깨닫지 못하면’ 이라는 말은, “믿지 않으면”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을 듣고서도 지금 이 순간 믿지 않으면, 그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 즉 사탄이 와서 빼앗아 간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버리는 것.

 지금 이 순간 믿지 않는 것은, 자기가 들은 ‘말씀’ 을 지금 이 순간 버리는 것과 같다. 예비신자 교리를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안 믿으려고 하고, 자기가 정한 어떤 기준으로 복음을 판단하려고 하고...... 믿음이란,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지금 이 순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 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또 지금 이 순간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기가 들은 복음을 지금 이 순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마태 13,5-6)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마태 13,20-21)뿌리가 없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의지가 부족하고 인내와 끈기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편안할 때에만 신앙생활을 하고, 힘들 때에는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경우, 또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갈 마음도 없고, 자신을 버리려는 노력을 할 마음도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처음에는, 또는 편안한 시기에는 ‘돌밭’ 과 ‘좋은 땅’ 에 차이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사실 아무 어려움이 없는 시기에는 누구나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어떤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금방 드러납니다. “선천적으로 의지가 부족하고 인내와 끈기가 없는 경우라면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지, 인내, 끈기가 선천적인 문제인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든 신앙생활에서는 의지, 인내, 끈기는 ‘믿음’ 과 관련된 것. 지금 이 순간 믿음이 부족하면 믿음을 지키려는 의지도 부족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인내와 끈기도 부족해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믿음을 강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비결은 없다. “나는 원래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 같은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마태 13,7)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태 13,22) ‘가시덤불’ 은 현세에서 지금 이 순간 먹고사는 일을 ‘영혼 구원’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지금 이 순간 현세의 삶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 섬김의 신앙생활을 지금 이 순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빌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린다는 말은,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점점 커져서 지금 이 순간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겨를이 없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신앙생활의 목표라는 것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먹고사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 말씀들을 이 질문의 답으로 삼을 수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빵도 필요하지만, 말씀이 더 필요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영원한 것은 잊어버리고 허무한 것에 대해서만 집착하면, 그것이 허무하게 사라질 때 그것과 함께 사라질 것.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2테살 3,10) “...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2)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노동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숨’ 이 막힐 정도로 물질에 집착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우리들 마음 안에 좋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면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시기를...  그리고 주일 미사 중에 우리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상처 난 마음을 치유 받으시는 거룩한 은혜가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누군가 다른 사람의 반쪽이 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완전한 인격체이다.'' - 앤드류 매튜스 - 


♡2151회 사랑에는 사랑 말고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7월 8일(요한복음 1장~)

독일속담 ''한 번 실수하는 것보다 두 번 묻는 것이 더 낫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라!》얼마나 오래 사느냐,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하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을 활짝 열고 넓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삶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사는데 있다. 따라서 삶이란 많이 체험하고 노동 후에 즐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며,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데 그 의미가 있다. 현존하는 것을 인지하고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여라! 순간을 자유롭게 살고 당신을 억누르는 일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져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며 마음이 원하는 일을 행하고, 현존하는 것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데 참 의미가 있다. 시간이란 최대한 이용해야 할 재산이다. 신과 하나가 되는 장소이다. 신에게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그것은 흘러가는 것이지만 또한 영원과 같은 것.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은, 충만한 자신을 감지 할 수 있으며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2)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무덤에 간 것은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마르 16,1) 그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급하게 무덤에 모시는 바람에(마르 15,46)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장례 예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자마자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간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마리아는 무덤 내부를 들여다보았을 것.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제자들에게 달려갔을 것. 마리아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거나, 아니면 사도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숨어 있다는 것을(요한 20,19) 알고 있었을 것.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마리아가 놀라고 당황하고 슬퍼한 것은 “예수님을 잃었다.” 는 상실감 때문입니다. 그 상실감은 이미 십자가에서 한 번 겪었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었을 것. 어쩌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 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20,11-15)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울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 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이 이야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었다.” 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천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것도 역시 자기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눈과 귀가 가려져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 마리아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시신’ 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을 찾았을 것. 그때까지는 아직 부활 신앙이 없었고, 예수님의 ‘부활 예고 말씀’ 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장면을 보면(루카 24,36-42),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했다는 말도 있고,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는 말도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 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6-18)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여인아.” 라고 부르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리아야!” 라고 부르셨을 때에는 금방 알아보았다. 이 일에 대해서는 흔히,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데리고 간다는 요한복음 10장 3절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처음에는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시고 “여인아.” 라고 부르셨을까? 처음부터 당신이라는 것을 밝히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마리아를 시험하신 것은 아닐 것. 그것은 아마도 부활 신앙으로 인도하는 과정이었을 것. 또는,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지 마라. 살아 계신 분은 살아 있는 신앙으로만(부활하신 분은 부활 신앙으로만) 만날 수 있다.” 라고 가르쳐 주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든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은, 마리아의 간절한 마음과 사랑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신 일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인도’ 에 마리아가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합해서 “언제나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만나려면, 우리 쪽에서도 지금 이 순간 믿음과 사랑으로 간절하게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게 합니다.(요한 14,21)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완성된 믿음에 도달합니다.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셔도 정원지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당신이라는 것을 직접 밝히셔도 유령이라고 생각했을 것.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난 인물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증인들 가운데에서 첫 번째 증인으로서, 우리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 마리아 막달레나일까?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편애하신 것은 아니고,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 대답이 될 것. 그러면 마리아는 왜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했을까? 사랑의 이유나 계기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려고 시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사랑 말고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저희 인생의 마지막 남은 것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들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시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행복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다.'' - 주베르 -


💖성령봉사자 박재만 세례자요한 010 - 3878 - 6634
  (수필가ㆍ전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말씀추천강사)
💖성령봉사자 류태숙 M.막달레나 010 - 6560 - 7354
  (시인ㆍ수필가ㆍ꽃예술설화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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