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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기도회 봉사

♡2093회 "인생을 부귀로서 낙을 삼는다면 좀처럼 낙을 누리지 못한다" - ♡

♡2093회 "인생을 부귀로서 낙을 삼는다면 좀처럼 낙을 누리지 못한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1일(이사야서 49장~)

  넬슨 만델라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 거기에 삶의 가장 큰 영광이 존재한다." 넬슨 만델라는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일어서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삶은 언제나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일어나는 순간들이 우리에게 큰 가치와 영광을 선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행복은 마음속에서 크는 것》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웃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 생각해 보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이 세상은 하나이다. 그러기에 행복은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요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행복도 하나의 기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 높은 학력을 가졌으면서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 많은 부자이면서도 불행을 호소하는 사람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기에 만족이나 행복은 반드시 소유에 비례하지 않으며 지성이 그것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인 백낙찬은 "인생을 부귀로서 낙을 삼는다면 좀처럼 낙을 누리지 못한다" 라고 하였다. 만족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지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는 뜻일 것. "만족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해도 부자로 살 수 있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많이 가졌어도 가난하다"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느끼느냐 행복하게 느끼느냐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인 것. 슬기로운 사람은 남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조건 속에서도 만족함을 발견해 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 속에서도 눈물 흘린다.

 행복하려거든 감사함에 눈 떠야 한다. 내가 살아 있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함에 감사하다. 그래서 옛 성인은 "존경과 겸손, 만족과 감사 그리고 때때로 진리를 듣는 것은 최상의 행복이다" 라고 하셨다 존경할 스승이 있고, 섬겨야할 어른이 있으며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나 이웃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일 것인가. 남들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길지라도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갖는다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은 따분한 인생을 산다. 할 일이 없어 누워있는 사람보다는 거리에 나가 남이 버린 휴지라도 줍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배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기쁨은 반드시 커다란 일에서만 오는것은 아니다 남의 평가에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보람을 찾으면 된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거짓 없이 진실로 대할 때 행복한 것이지 아무리 큰일이라도 위선과 거짓이 들어 있으면 오히려 불안을 안겨주고 불행을 불러오게 된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명성보다는 진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지나간 일에 매달려 잠 못 이루지 말고 잊을 것은 빨리 잊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한 성자에게 "당신은 가진 것이라곤 없는데 어찌 그렇게도 밝게 살 수 있느냐" 고 여쭈었다. 그때 그 성자는 대답하셨다. "지나간 일에 슬퍼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일에 근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당장 일에만 전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지고 근심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일에 매달려 슬퍼한다." 그렇다 공연한 일에 매달려 근심 걱정하지 않고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버려 마음을 비우는 것은 행복의 길이다. 슬펐던 일을 자꾸 떠올려 우울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말고 화나게 했던 일, 기분 나빴던 일을 회상하여 분해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못된다. 체념도 하나의 슬기로움인 것

항상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환희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밝게 만들어 준다. 이렇듯 행복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음속에서 더욱 견고하게 그 뿌리를 내리는 것. 현악기 연주자들은 주로 왼손으로 현을 누르고 오른손을 활을 켜서 소리를 냅니다. 이들은 피나는 연습을 반복하는데, 이로 인해 손가락에 해당하는 두뇌 피질의 두께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두꺼워지고 넓어집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런던 골목길이 너무 복잡해서 특별한 학습과 기억능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단기기억을 단단하게 하는 해마의 기능이 뛰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런던 택시 기사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큰 해마를 가지게 됩니다. 연습을 통해 뇌의 구조가 바뀌는 것.  “나는 안 돼” 라는 말은 결국, “나는 노력하기 싫어!” 와 같은 말이 아닐까요? 노력을 통해 뇌의 구조가 바뀌고 나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 우리는 ‘바꿀 수 없다’ 라는 생각을 너무 쉽게 합니다. 그 부분에 관심을 두고 힘을 기울인다면 틀림없이 바꿀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맙니다. 

자신을 불신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불신하는 것이며, 자신을 믿는 것은 내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된 베드로와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준 바오로. 이 둘은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사도들입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완벽했을까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고 교회의 반석이 된 베드로이지만,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나약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스승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기 뜻을 내세우는데 목소리를 높였던 섣부른 사람이기도 했다. 바오로도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부족함이 많은 베드로와 바오로였지만, 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큰 죄에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은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다면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박해했던 모습에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듬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가는 참 제자가 될 수 있었으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교회를 성장시키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면서 많은 좌절과 포기의 마음의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해서도 또 좌절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뜻에 따르려는 끊임없는 노력만이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우리는 원래 잘 웃도록 태어났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어린아이는 참 잘 웃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깔깔대며 신이 납니다. 이렇게 잘 웃던 어린아이가 웃음을 잃어갑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자신감을 잃게 되고 걱정도 많아집니다. 실제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는 아이는 하루 평균 400~500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은 몇 번이나 웃을까요? 많아야 15~20번 정도라고 합니다. 웃지 않는 사람이 원래부터 그랬을까요? 본래는 많이 웃었던 우리입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했고 또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잘 웃던 나를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좋은 것만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만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의미를 찾아 사는 삶을 산다면 그 가능성을 찾을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하루 얼마나 웃었습니까? 그 웃음의 횟수를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창조 본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평화와 은총이 우리 가운데 축복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그래서 그 믿음으로서 우리 마음속에 얼음이 녹고, 새로운 삶의 기운 속에 살아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를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 장 드 라 퐁텐 -


♡2094회 “가장 작은 것 하나”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2일(예레미야서 1장~)

  대니 케이는 "인생은 하나의 캔버스와 같다. 가능한 많은 물감을 거기에 쏟아부어라." 대니 케이는 우리가 인생을 캔버스로 생각하고, 우리 자신을 예술가로 여기며 다양한 경험과 색깔을 삶에 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경험과 열정을 삶에 담아내야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수고하지 않고 얻는 기쁨이란 없습니다.》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 그러나 거두기 위한 것으로만 열매가 맺지는 않습니다. 길쌈과 각종 수고가 있을 때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평화를 가져오는 평안의 가치는 전쟁의 비참함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죽음이 우리 곁에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나긴 장마는 햇볕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가뭄의 목마름은 단비의 소중함을 잊지 않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합니다. 우리 자신의 의미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불청객들에 대해 불평하지 마십시오. 달콤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장과 성실한 일상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고단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해도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고난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압니다. 기쁨의 열매를 거두기 위한 우리 자신의 수고는 반드시 결과를 얻게 될 것.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오늘 발걸음이 가벼울 것.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하느님의 계명과 율법들이 미완성 상태여서 그것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앙생활이 너무 부족하고 잘못되어 있는 상태여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치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법을 폐지하고 당신의 독자적인 법을 세우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하느님 법의 실천’ 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오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바리사이파의 ‘율법주의’ 는 잘못된 신앙생활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겉으로만 보면 계명들과 율법들을 철저하게 지키는, 완벽한 신앙생활로 보이지만,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겉으로만, 또 형식적으로만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키는 잘못된 신앙생활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계명들과 율법들을 주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날이라고 가르치셨다

 그것이 안식일을 정하신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율법주의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주일 잘 지키고, 교무금 잘 내고, 판공성사 잘 보고, 단체 활동 잘하고... 그러나 이웃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복을 받아 누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겉으로만 보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 실천은 없는... 그런 모습도 율법주의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법은 영원하다는 뜻이고, 또 아무도 그 말씀과 법을 마음대로 폐지하거나 바꿀 수 없다는 뜻입니다. 폐지와 개정은 하느님만의 권한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도 그 권한이 있다. 유대인들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음식에 관한 율법들을 예수님께서 폐지하셨는데(마르 7,19), 그 율법들의 바탕이 되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5)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폐지하신 것은 아니고, 이 계명을 실천하는 방법을 올바르게 바로잡으신 것.

십계명의 경우를 보면, 원래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었던 제3계명을 우리 교회는 주일을 지키라는 계명으로 바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심으로써 안식일보다 주일이 더 중요한 날이 되었기 때문에 주일로 바꾼 것. 이것은 안식일을 정하신 하느님의 뜻과 주일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뜻을 모두 지키기 위한 것. 본래 ‘안식일의 정신’ 은 쉴 틈 없이 일만 해야 하는 노예들도 쉴 수 있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 그렇게 하여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4-15)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계명들과 율법들은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똑같이 중요하니까, 똑같이 지켜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으로 구분해서, 덜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무시하고 안 지키는 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자기 혼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그것을 시킨다면, 그것은 더 큰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율법주의의 반대쪽에 편의주의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형식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들을 자기 마음대로 무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편의주의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가, 아닌가? 를 판단하는 것은, 신앙인 자신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여기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라는 표현 때문에, 혹시라도 “예수님께서 신경과민증에 걸릴 정도로 세심하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시는 것은 아닌가?” 라고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니고, 인간들이 마음대로 계명들과 율법들을 분류하고, 무시하는 것을 금지하신 말씀입니다. “가장 작은 것 하나” “인간들이 자기 마음대로 가장 작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하나” 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가장 작은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라는 말씀과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아서, 계명이 큰 것으로 보이든지 작은 것으로 보이든지 간에, 하느님의 계명들을 모두 다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작은 것’ 이라고 판단하고 무시하는 것은 사랑 없는 태도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자세는 ‘정성’ 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섬긴다면, 정성을 다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신앙생활에 정성이 없다면 그것도 사실상 형식주의이고, 율법주의입니다.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가들은 음 하나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집중합니다. 만일에 한 음이라도 틀리게 연주하면, 그 연주 전체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바로 그렇게 집중하고, 바로 그렇게 정성을 다 쏟아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들 곁에 있는 주님의 사랑을 느껴보시기를 그리고 감사할 일 찾아보시기를 그리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입는 하루가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 ''인생은 재주가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너무 짧다.''    - 제프 베이조스 -

♡2095회 “열심히 살아, 그러면 또 좋은 날이 올 거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3일(예레미야서 23장~)

  이소룡은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대답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어리석은 질문에서 얻는다.''

(어제 받은 말씀)《사람을 귀히 여기라》"돈을 귀히 여기는 자는 재물을 가지나, 사람을 귀히 여기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 라는 말이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거대한 농장을 가지고 있는 농장 주인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시작과 끝이보이지 않는 그 넓은 밭을 일구기 위해서는 많은 일꾼이 필요했다. 어느 하루는 멀쑥하게생긴 청년이 찾아와 먹여주고 재워만 주면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해서 일꾼으로 채용하였다.

 농장 주인은 지미라는 이 청년에게 창고의 구석진 방을 쓰도록 했다. 오갈데 없는 신세에 거처와 일 자리를 준 주인이 너무 고마워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매사에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 지미의 태도는 주인의 외동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래서 하루 일이 끝나면 둘이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속삭이곤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둘이 만나는 것을 농장주인이 알게 되었고 주인은 종 놈 주제에 겁도없이 주인의 딸을 넘 본다며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청년은 짐 하나 챙기지 못한 채 맨 몸으로 벌벌기어 목숨만 간신히 건져 그 곳을 빠져 도망 갔다.

 그 후 35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고 제임스 아브람 가필드가 미국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어 온 나라는 축제로 떠들석 했다. 그는 맨 손으로 자수성가 하여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전역 한 후 여섯 번의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어느덧 나이 많은 농장주인이 오래된 창고를 개조하기 위하여 구석진 방을 치우던 중 오래 전 지미가 쓰던 짐 가방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인은 그 가방의 옷가지 사이에서 낡은 가죽 성경 한 권이 있기에 꺼내어 첫 장을 열어 보았다. 그 성경 책 첫 장에 적힌 글을 보고 나이 많은 농장주인은 갑자기 손을 부들 부들 떨며 성경 책을 바닥에 떨어 뜨렸다. 그 성경 책에 '제임스 아브람 가필드' 라고 서명이 되어 있었던 것. 그 이름은 미국을 대표하는 20대 대통령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아, 지미! 제발 나를 기억하지 말아줘요,  대통령 가필드..." 미국대통령을 사위로 둔 장인어른이 될 뻔한 행운을 놓쳐버린 것이지요. 겉 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맙시다. 


※전에 보낸 말씀《사람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간다.》어느 가난한 부부가 딸 하나와 살고 있는데 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여보, 오늘 수술을 못하면 '수미' 가 죽는데 어떻게 해? 어떻게든 해봐!” 아내의 통곡어린 말이 남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힘없이 병실 문을 나서는 남자가 갈 수 있는 데라고는 포장마차였다. 아픔의 시간에 혼자 외로이 견뎌내는 슬픈 원망 앞에는 소주 한 병과 깍두기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우울한 마음으로 술을 마신 남자가 어둠이 누운 거리를 헤매다가 담배 한 갑을 사려고 멈춰 선 곳은 불 꺼진 가게 앞이었다. 술김에 문 손잡이를 당겼더니 문이 열렸다.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눈에는 달빛에 비친 금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여보 어떻게든 해봐!' 하던 아내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금고문을 열고 정신없이 주머니에 닥치는 대로 주워 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는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백발의 할머니가 서 계셨다. 남자는 주머니에 담았던 돈을 금고에 다시 옮겨 놓고 있을 때, 말없이 다가선 할머니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잔돈을 가져다 어디에 쓰려고? 무슨 딱한 사정이 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나 들어보세.” 남자는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을 하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네. 오죽 힘들었으면, 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 인생 아니겠나. 힘내게!” 할머니는 남자의 손에 무언가를 손에 쥐어 주며 말하였다

. “부족하겠지만 이것으로 급한 불은 끄게나.” 가게문을 나서 걸어가는 남자가 어둠 속에서 계시는 할머니를 자꾸만 뒤돌아 보면서 울먹이고 있을 때 할머니가 말하였다. “열심히 살아, 그러면 또 좋은 날이 올 거야.” 똑같은 가을이 세 번 바뀌어 가던 어느 날에, 할머니 가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가게 주인인 젊은 여자가 말하였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남자가 물었다. “저어... 여기 혹시 할머니...” “아, 저의 어머니를 찾으시는군요.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남자는 할머니의 딸에게 지난 사연을 말하고 돈을 갚았다. 얼마 지난 후 물어물어 남자가 찾아간 곳은 할머니가 묻히신 산소였다. “할머니께서 빌려주신 돈을 잘 쓰고 딸에게 돌려 드렸습니다. 그땐 너무 감사했습니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던 남자의 눈에 묘비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간다.'

 사계절이 두어 번 오고간 후 해맑은 하늘에 사랑비가 간간히 뿌려지는 날 오후, 공원에 푸드 트럭 한 대가 할아버지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나눠 주고 있었다. 남편은 밥, 아내는 국, 딸은 반찬을 맡아서 나눠 주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트럭의 지붕 맨 꼭대기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에. '사람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간다.' 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 사회가 어두운 것은 의롭고 밝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알면서도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됨이 적어서입니다. 진리가 부족해서입니다. 정의가 바로 서 있지 않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빛을 비추지 않고,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이 더 필요합니다. 소금의 역할이 간절합니다.

 어떤 분을 만났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열흘을 입원했대요. 특별히 아프지도 않은데 일행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아프지 않았답니다. 이쪽, 저쪽 보험금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비를 제외하고 1백여만 원씩 받았다고 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 신자가 이정도인데..... 사도 바오로는 선언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2,15)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진실을 가리는 어두움, 정신의 어두움, 마음의 어두움을 비춰야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이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 를 찬양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은 어두운 밤에 더 빛나게 보입니다. 사회가 어둡다고 생각될수록 우리의 빛이 비추어져야 하겠다. 세상이 부패했다고 생각될수록 우리에게 소금의 역할에 대한 소명을 일깨웠으면 좋겠다. 까만 밤에 우리의 삶이 더욱 빛나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믿음으로 기도를 붙들고 살아가는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좋은 인성은 한 주나 한 달 만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 헤라클레이토스 -

♡2096회 내 힘을 빼고 믿고 꾸준히 기도하면 다 들어주십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4일(애가 1장~)

  로버트 프로스트는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뚫고 나가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명언은 어려움이 닥쳐도 뒷걸음질하지 말고 힘을 내서 직면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는 것보다 직면하여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삶이 곧 기도인 것을》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이 기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하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장은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활동의 현장입니다. 일상생활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어떤 곳에서든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사랑을 나누고 그분을 믿고 참회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도록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해서입니다. 기도 시간이 다른 시간과 구별되게 하는 것은 기도하는 시간만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과 같다. 기도는 마음속으로 하는 내면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삶에 얽매인 가운데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쌓여있다 할지라도 기도할 수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하는 내적 마음가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상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하느님이 떠오를 때 겸손 되이 그분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에 우리 삶을 맡겨드리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을 의탁하게 될 때 우리 안에서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봉헌하게 되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후한 마음을 가지게 되며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에게도 용서를 해주고 오히려 친절을 베푸는 관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은총의 선물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초자연적 목적이 그 안에 숨어 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이해하는 것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주삼덕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향기"(2고린 2,15)를 전하는 것. 진정한 기도는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진정한 행동은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강하다 할지라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허수아비 믿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는 죽은 것입니다. (야고 2,14-17) 삶의 경험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내 삶 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찾아보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찾아내어 기도하십시오. 내가 경험한 것을 통해서 주님께 드리는 기도는 내 삶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기도가 되기 때문에 최상의 기도가 되는 것이고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내가 겪은 경험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며 그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훤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니 물이 굽어진 길을 따라 묵묵히 흘러가듯이 내 모든 것을 꾸미려 하지말고 자연의 이치와 같이 흐르는 물결 따라 흘러가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며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최고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내는 통로이고 삶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것이며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길입니다.

 유명 성과향상 코치인 앤서니(토니) 라빈스의「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란 책이 있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 안에 잠들어있는 거인이 있음을 자각하라는 것. 대부분 사람은 자신 안에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한 번도 문질러보지 못한 채 먼지만 쌓이게 내버려 둡니다. 우리 안에 잠든 거인이 있다. 우리가 찾아서 문지르기만 하면 거인은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해 줄 것.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거의 배가 침몰 될 위기가 닥치자 비로소 예수님을 깨웁니다. 이 배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각자 자신 안에 잠든 거인인 예수님이 사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못 하시는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우리 안에 잠든 거인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당연히 두려움도 있을 수 없다. 이 믿음이 없으니 혼자 힘으로 해보려고 하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그 동굴에 들어가기 위한 “열려라. 참깨!” 의 주문을 모른다는 것. 요술램프는 동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그런데 그 동굴의 입구를 통과하려면 올바른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주문은 ‘기도’ 입니다. ‘기도하면 다 된다.’ 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문을 외우면 바위 문은 반드시 열립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나, 기도의 힘을 믿지 않는 것이나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다 돼요.” 라고 말하면, “기도해도 잘 안 되던데요?” 라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하려고 하면서 청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기도는 나를 봉헌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힘을 빼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을 때는 예수님을 깨우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는 예수님을 깨우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지 않으면 기도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기가 부모에게 온전히 맡기듯이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기도가 시작됩니다. 두 번째는 될 때까지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냥 “열려라. 참깨!” 하고 ‘안 되네!’ 라며 뒤돌아섰을 수도 있다. 문을 열고 동굴 깊숙한 곳에서 램프를 찾아내어 손으로 문질러야 합니다. 믿으면 끝까지 하게 되어 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기도가 들어지지 않은 때가 없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다 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내 안에 잠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 그분을 깨우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내 힘을 빼고 믿고 꾸준히 기도하면 다 들어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내 안의 잠든 거인은 바람과 호수까지도 꾸짖어서 복종시켜주실 것. 기도하면 다 된다는 생각은 옳습니다.

  하느님은 똑같은 은총을 주십니다. 다만  그 은총이 믿는 이들마다 다르게 나누어지긴 합니다. 받을 수 있는 신앙의 그릇에 따라서 은총을 알맞게 받아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사실을 늘 간직하며 살아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너무 많이 믿으면 속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믿지 않으면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 프랭크 크레인 -

저는 “기도하면 다 된다.”라는 믿음을 신학교 때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체를 영할 때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제가 보답하기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 할까요?”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붙어있기만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시험 기간이 되어도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이상하게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한데도 성적은 잘 나왔습니다.
유학 가라고 했을 때도 이탈리아어로 인사할 줄도 몰랐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면 다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자마자 ‘하루 세 시간은 성체조배 한다.’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한국에까지 “전삼용 신학생은 공부는 안 하고 성체조배만 한다.”라는 소문이 났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공부도 빠르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했다면 훨씬 힘들었고 훨씬 늦어졌을 것이 확실합니다.
강론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성체조배 한 시간만으로 부족할 것 같아서 미리 걱정합니다. 그러나 한 시간 묵상할 때 강론 거리를 안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2097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린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5일(에제키엘서 1장~)

  세인트 오거스틴은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한 군데 머물면 한 페이지짜리 인생이다." 세인트 오거스틴은 마치 세상이 하나의 큰 책이고, 우리가 그 속에서 한 페이지씩 삶을 써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책의 한 페이지와 같이 우리의 인생을 형성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즐기고 각 페이지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진심만을 말하라. 상대의 환심을 사면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는 늘 기분 좋게 느끼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은 아부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또한 상대를 마음대로 하려는 얄팍한 술책이거나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아첨이라고 말한다. 칭찬과 아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칭찬은 진심이 뒷받침 된 것. 칭찬을 할 때 칭찬 그 자체 외에 다른 뜻이 없는 진실한 마음은 눈빛으로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똑똑한 척하지 말라. 똑똑한 척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도 운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우선 똑똑한 척 행동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똑똑하면 이로울 게 없는 것. 지금 이 순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감사하라. 당신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당신이 이룬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될 것. 지금 이 순간 단정하게 차려 입어라. 단정하고 화려하게 차려 입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색상이나 잘 어울리는 옷차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당신이 단정하게 매력적으로 차려 입으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적극적으로 자극을 받아 당신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인내심을 가져라. 운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순간에 페달을 밟지 앓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할 지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질투심을 반드시 버려라. 가장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질투심이다. 질투를 하면 스스로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운과 기회를 망치게 된다. 질투심이 많아 보이면 당신은 결코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운 나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배 아파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 지금 이 순간 마음을 편히 가져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 뜻한 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어쩌다 힘든 날일뿐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너무 너무 힘들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가정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정말이지 중차대합니다. ‘어머니’ 는 가정의 주인이요, 태양, 여왕이요 중심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 초등학교 어린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초인종을 눌러도 무반응입니다. 가방 속에서 키를 꺼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그래서 어두컴컴하고 황량한 집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반대로 살맛나는 가정이 있다. 순전히 어머니 때문입니다. 아이가 초인종도 누르기 전에 어머니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를 직감적으로 알아듣고 문을 열어줍니다. 활짝 웃으면서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뿐만 아닙니다. 간식으로 과자 한 봉지 툭 던져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수제 간식을 아주 정성껏, 직접 만들어 줍니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 있으면 자상하게 가르쳐줍니다. 남편이 힘겨웠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할 때도 마찬가지겠지요. 남편이 퇴근길에 멀리서 바라보는데 집에 불이 꺼져있다. 짜증 제대로 나겠지요. 반대로 아내가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며 반겨줍니다. 집안 전체는 맛갈진 음식 냄새와 소리가 진동합니다. 고등어 자반 굽는 냄새, 얼큰한 매운탕 끓는 소리, 압력밥솥 돌아가는 소리... 생각만 해도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여왕이자 주인이 분명합니다. 어머니 없는 가정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입니다. 어머니 없는 가정, 허전하고 쓸쓸할 뿐입니다. 가정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막중한 것처럼, 하느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어머니 역할을 할 여인을 선택하셨는데, 그분이 곧 성모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양떼, 우리 교회를 위해 성모님을 간택하셔서 우리의 협조자, 동반자, 조력자가 되게 하셨으며, 우리를 위한 갖은 수고를 다 하게 하셨다. 우리를 위한 봉사와 조력의 삶을 살도록 성모님을 이끄셨다. 주님의 영광스런 그날이 오기까지 성모님께서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도록 준비하셨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서’ 계십니다. 그런데 그냥 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방관자나 감독관으로 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중개자로, 협조자로, 안내자로, 인도자로 그렇게 서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부족한 우리의 입을 대신해서 하느님께 잘 말씀드려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실수나 과오를 잘 변호해줄까? 어떻게 하면 우리를 하느님께 잘 드릴 수 있을까? 순간순간 고민하시고 노심초사하시는 분이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이신 것. “가장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즉 하느님의 모든 백성, 신자들과 사목자들의 어머니로 선포하며,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올 어머니로 부르는 바입니다.”(바오로 6세 교황님)

 어제의 사람의 자리에서 겪었던 아픔, 힘듦, 어려움을 보듬어 주시는 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오늘의 삶의 자리를 아름답게 이끌어주시는 주 예수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을 기쁘게 하는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악의가 그것을 공격할 수도 있고, 무지가 그것을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존재한다.'' - 윈스턴 S. 처칠 -


♡2098회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빈손으로 가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6일(다니엘서 1장~)

  크리스토퍼 몰리크는 "큰 성공은 작은 성공을 거듭한 결과다." 크리스토퍼 몰리크는 성공은 한 순간에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성공들을 연속해서 거듭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크리스토퍼 몰리크는 우리가 작은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을 경험하며, 이를 누적시키면 최종적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건》행복입니다. 나의 빈자리가 당신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기다리는것은 즐거움입니다. 라일락의 향기와같은 당신의 향을 찾는 것은 그리움입니다. 마음속 깊이 당신을 그리는 것은 간절함입니다. 바라 볼수록 당신이
더 생각나는 것은 설레임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보다
말하지않아 더 빛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런말 하지 않아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은 것이 편안함입니다. 자신보다 당신을 더 이해하고 싶은것이 배려입니다. 

차가운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은 것은 당신의 따뜻함입니다. 카나리아 같은목소리로 당신이름 부르고 싶은 것이 보고싶은 마음입니다. 타인이 아닌 내가 당신곁에 자리하고 싶은것은 바램입니다. 파아란 하늘과 구름처럼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음은 존중입니다. 하얀 종이위에 쓰고싶은 말은 사랑입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7-13) 복음을 선포하러 떠나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활동 지침’ 인데, 관점을 바꾸어서 ‘복음을 전해 듣는 사람’ 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신앙생활의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선포하신 복음은(기쁜 소식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입니다.(마태 4,17) 예수님의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후에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는 소식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 는 소식으로 바뀌었지만(루카 24,46-47; 사도 2,38), 본질적으로 같은 복음입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구원을 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이지 세속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세속에서 잘 살게 되는 것을 복음으로 선포한 적이 없다. 이쪽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것만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목적지를 잊어버리고 중간 경유지에서 멈추어 서는 어리석은 나그네와 같다.

 신앙인의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도들이 병자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마귀들을 쫓아낸 일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해 준 일이기도 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해 준 일입니다. 그 일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되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수단으로 병자들을 고쳐 준 것은 아니라는 것. 복음 선포는 ‘말’ 로 할 수도 있고, ‘치유의 은총’ 으로 할 수도 있다. 어떤 병에 걸렸을 때,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병이 치유되었을 때, 그것으로 만족하고 멈추면 안 됩니다. 바라는 대로 병이 낫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 실망해서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은총은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복음 선포 활동은 자기가 무상으로 받은 은총을 다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활동입니다. ‘나의 것’ 을 나누어 주는 활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하느님의 것’ 을 전달해 주는 활동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은총을 받아 누리는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치는 것은 은총의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봉헌 예물은 언제나 감사 예물입니다. 또 이 말씀에는, 헌금을 많이 바치면 그것에 비례해서 복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치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셨고, 계속 내려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마치 하느님과 거래하듯이 하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빈손으로 가라.” 는 지시는, “복음을 전하러 갈 때에는 복음만 가지고 가라.” 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세속의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라.” 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만일에 “활동비 한 푼 없이 어떻게 선교활동을 하나?” 라고 걱정하면서 간다면,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 을 전해 주기는 커녕 ‘걱정스러운 소식’ 만 전해 주게 될 것. 산상 설교에 있는 “걱정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에 연결됩니다.(마태 6,25-34) 

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에게 당연히 먹을 것을 주신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빈손으로 가는 일꾼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라고 물으셨는데, 그때 사도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루카 22,35)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기도’ 를 바치면서 ‘일용할 양식’ 을 청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실제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만일에 믿음도 없이 기도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숙식을 제공할 사람을 찾으라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너희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먹이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직접 도와주실 때도 있고, 천사를 보내실 때도 있고, 마음 착한 사람을 통해서 도와주실 때도 있다. 사람에게서 오는 도움이 곧 하느님의 은총일 때가 많다.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더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옮겨 다니지 마라.”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가를 보실 뿐이고, 성실하게 일했다면 실패의 책임은 묻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업적을 쌓았는가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시는 분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루하루 거룩하고 충실하게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한 생활입니다.

  시편 18편 2절에... 다윗이 주님께 아뢰는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라는 사랑 고백처럼, 우리도 주 예수님께 대한 진실한 참 사랑 고백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진실은 그 진실을 아주 불쾌하게 만들고 그것을 가진 사람을 혐오스럽게 한다.'' - 라비 자카리어스 -

♡2099회 자기성찰을 한다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7일(아모서 1장)

  테너시 윌리엄스는 "항해에 나서라. 그리고 시도하라.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테너시 윌리엄스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것에 대해 나서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남겨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참된 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 입니다》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입니다. 자신에게 바탕을 둔 솔직함은 교만을 불러옵니다. 진리에 바탕을 둔 솔직함은 겸손입니다. 오류 앞에 겸손한 척 하는것은 위선이고 아첨이며 교활한 것. 또한,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잘못된 겸손의 포장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성모님의 겸손이 진리에 바탕을 둔 솔직함에서 나왔음을 성서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부하느님께 잔을 거두어 주실 것을 청합니다. 겸손히 아버지의 뜻에 맡깁니다. 성모님 또한 창조의 진리에 어긋난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씀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겸손히 순명합니다. 성모님이 본인이 알고 있는 진리에 반한 천사의 말씀을 듣고 완고한 사고로 웃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교만일 것. 성모님은 먼저 본인이 알고 있는 진리에 반한 말씀에 대하여 질문하였고 깨닫게 되어 겸손히 순명하였던 것. 우리는 무식한 겸손이 아니라, 주님께 물어보는 겸손함에 맛들여야 합니다. 겸손은 완고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입니다. 겸손은 지나친 굽신거림이 아닙니다. 겸손은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입니다. 겸손은 진리에 대한 물음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나누는 것
(가르쳐주는 나눔)입니다. 겸손은 오류, 사이비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형제, 자매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나누는 것. 겸손은 모든 사람의 행실에 겸손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모상에 대하여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살리고 남을 살립니다. 겸손은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하느님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겸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입니다. 겸손은 사랑입니다. 아멘.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면 남의 단점이 유난히 잘 보입니다. 남의 보기 싫은 모습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럭저럭 살아갈 때가 이 꼴, 저 꼴 안보고 마음이 편했다. 차라리 옛날처럼 살아가고픈 마음이 가득합니다. 언제쯤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일까?’ 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고, 남을 되질하지 말라.’ 고 하셨다.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들보를 빼내야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으니 먼저 자신을 점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운지라 여전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지 못하고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곤 합니다. 자신은 완벽하고, 다른 사람은 허물투성이처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입니다. 이러다가 결국 누군가에게 똑같이 심판을 받게 될 것.

 더더욱 하느님께로부터 그렇게 심판을 받는다면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입니다. 나에게 부드러운 만큼 타인에게도 부드럽기를 희망합니다. 남에게 엄격하기에 앞서 나에게 엄격하고 절제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자기성찰을 한다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자신을 살펴본 후에야 남을 도와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진정한 사랑으로 도와줄 수 있다. 혹 남보다 내가 낫다는 마음을 가지고 누구를 돕는다면 받는 사람은 고마움보다는 비참함을 느끼게 될 것. 또한 다른 사람이 잘 될 수 있도록 충고한다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내 삶의 모범 없이 강요하는 가르침이라면 상처만 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성찰을 한 후 행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한 도움은 기꺼이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옛 말씀도 “자기 몸을 닦은 뒤에 집안을 거느리고, 자기 집안 거느린 뒤에 나라를 다스린다.” 身修而后家濟, 家濟而后國治-대학- 고 했다. 자기 성찰이 모든 행위의 처음과 나중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자기성찰에 충실한 열심과 정열이 주어지길 기대합니다. 잘못된 열심은 영혼을 상처 나게 합니다.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열심이 더할수록 하느님 앞에 나를 비추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하루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보십니까? 그 횟수만큼 내면을 비추어 본다면 이미 성인입니다. 평생 직접보지 못하는 얼굴은? 자신의 얼굴입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은 직접 이리저리 살필 수 있으나 자신의 얼굴은 거울이나 반사경을 비추어야 볼 수 있다. 그래서 남의 티는 잘 보면서도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나 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주 예수님께 배운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힘을 쓰고 살아가는 축복된 하느님의 사람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뭐라고 말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난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 조나단 데이비스 -


♡2100회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8일(나훔서 1장)

 공자는 "산을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은 작은 돌부터 들어낸다." 공자는 큰 목표를 이루려면 작은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는 우리가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성공들을 계속해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행복은....》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루를 좋은 날로 만들려는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나중에 라고 미루며 시간을 놓치는 사람은 불행의 하수인이 됩니다. 힘들 때 손 잡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의 당선자이고 그런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 낙선자입니다. 

사랑에는 기쁨도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슬픔의 순간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작은 집에 살아도 잠잘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작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남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사람은 이미 행복하고 상대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것만 섭섭한 사람은 이미 불행합니다. 미운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반비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정비례 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라고 하는 사람은 불행의 독불장군이지만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연합군입니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누구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사회’ 가 될 것이라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비대면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본성상 사회적 동물임을 간과한 채 쏟아내는 예측입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제 사람들이 집에서 버티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람과 대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 어느 신부님께서 한 자매님이 상담을 원해 들어주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에 걸리게 된 것. 우울증 증세 안에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외로움도 들어있다. 사람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함께 있는 것. 이런 일이 더 심해지면 귀신도 볼 수 있고 환청도 들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데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해버리면 저절로 마귀와도 관계를 맺게 됩니다.

 신부님께서 보좌 신부로 어떤 본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왔다. 오전 10시 미사를 마치고 신자분들과 인사를 하고 성당 로비에는 신부님 혼자만 있었다. 사제관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한 자매님이 비를 홀딱 맞고 머리를 귀신처럼 늘어뜨리고 성당으로 들어왔다. 신부님 앞으로 오더니 뜬금없이 상담하자고 하였다. 자신 안에 마귀가 있는데 그 마귀가 지금 성당에 들어가면 보좌 신부 혼자 있을 것인데 상담을 하고 오라고 했다는 것. 자신은 서울 사는 사람이고 신자도 아니고 그냥 지나는 길이였다고 하였다.  신부님께서는 집무실로 들어가 문을 열어놓고 상담을 하였다. 그냥 상태만 보아도 노처녀에 경쟁심이 클 것으로 보였다. 예쁘기는 했지만 무서운 사감 선생님처럼 생겼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은 보험설계사로 나름 잘 나가고 있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였고, 특별히 남자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였다. 다른 것은 부족함이 없는데 ‘외로움’ 때문에 마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종교는 없지만, 그 존재가 마귀인 것은 안다고 하였다. 그 마귀와 심지어 잠자리까지 함께한다고 하였다. 

신부님께서는 갑자기 서울 어디 사는지가 궁금하여, “아까, 잠실에 사신다고 하셨나요?” 라고 물으니, 남자의 거친 목소리로 바뀌며 눈을 매섭게 뜨고 소리치듯 말했다. “제가 언제 잠실이라고 했어요, 목동이라고 했지.”(저도 어느 자매님과 전화면담시 남자의 굵은 목소리를 경험한바 있다. 즉시 구마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한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화가 난 것. 신부님께서는 좀 무서웠지만 위축되면 안 되기에, “아니, 그럼 자매님은 한 번 들으면 다 기억해요?” 라고 따졌다. 그랬더니 “아뇨.” 라고 하며 인정하였다. 신부님께서는 이럴 때마다 말해줍니다. 마귀는 자신이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외로워서 스스로 마귀와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우리 선택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외롭든가, 불편하든가.” 분명 사람을 만나는 일은 불편합니다. 혼자 있으면 편합니다. 세상은 경쟁의 시대이고 그렇게 사람을 경쟁자로 보게 만듭니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몸은 편합니다. 마귀와 친구가 되는 것. 세상에서 마귀와 친구가 되는데 어떻게 외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보이기 시작하면 엄청 불편합니다. 혼자 있을 때도 혼자가 아니게 됩니다. 그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불편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매 순간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삶을 살았다. 베드로만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아보았고, 바오로만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며 항상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심을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그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영원히 외롭게 살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받아들이던 수도회가 있었다. 스승은 그 작은 수사님들 중 한 아이만 특별히 사랑하였다. 이에 다른 아이들의 불만이 컸다. 스승은 각자에게 참새 한 마리씩 주며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죽여 오라고 했다. 그래야 수도원에 머물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다들 으슥한 곳을 찾아 참새를 죽여왔다. 그 작은 아이만 못 죽이고 참새를 살려서 가져왔다. 왜 죽이지 못 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을 찾아도 주님께서 보고 계셔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모든 수사는 왜 원장이 그 아이만 사랑하는지를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전쟁터에서 참호에 수류탄이 떨어지면 군인들은 분명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될 것. 다시 집어던지던지, 피하든지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라면 수류탄이 떨어져도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이도 이와 같다.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렇게 사신 분들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입니다. 외롭든지 불편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며 온종일 불편한 삶을 산다면 외로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멘 !!!

 지금 우리 자신이 하시는 일 안에서 기도로서 녹아진 소금들이 되어 서로 화목하고 은혜롭고 평화로운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네 자신의 무지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 알버트 아인슈타인 -


♡2101회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지요?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19일(말라키스 1장)

  찰스 다윈은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힘이 제일 세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다. 변화에 가장 민감해서이다." 찰스 다윈은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우리는 그에 따라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기다림》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삽니다.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기다림은 사랑입니다. 기다림은 곧 삶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려왔고, 우리도 구세주를 기다렸다. 애타게 기다려 온 메시아, 그 구원의 메시아께서 고요한 이 밤에 소박하고 거룩하게 오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려온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최고의 표현으로 우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이 땅을 찾아오셨다. 세상 모든 만물을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사람만은 손수 빚어 만드시고 숨을 불어 넣으시어 생명을 주신 그 하느님께서 우리처럼 세상에 오신 겁니다. 당신의 성향을 닮기를 한 없이 바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기다려 주십니다. 당신께 마음을 돌리고 당신을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 순간까지 기다리며 살 겁니다. 무엇인가 희망하며, 누군가를 사랑하며, 그렇게 기다리며 살 겁니다. 마침내 이 세상의 끝자락에 죽음을 기다리며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고 사랑을 잃지 않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희망하며 그 마지막에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며, 영혼이 육신을 벗고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삶입니다. 

기다려 주시는 그 분께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이 삶이기에 그래서 기다림은 곧 희망이며, 또 하나의 사랑이며, 살아 숨 쉬는 이유이며, 삶의 시작이며 마지막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예전에 어떤 강의를 듣게 되었다. 법에 관한 것이었는데, 강사의 말은 느리기만 했고, 강의 내용도 너무나 지루했다. 어떤 예도 없이 법에 대한 원론적인 것만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강사의 말이 잘 들렸을까요? 이 강의실에서는 강사만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하지만 강사의 말이 제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신부님께서 친한 신부와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다. 맛있는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 사람들이 가득했다. 한참을 줄 서서 안에 겨우 들어갔는데, 식당 안은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해서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 신부와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고 나왔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참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끄러워도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조용한 곳이라도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님을 이해하지도 또 믿지도 않는다면 어떤 말을 들어도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 주님을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일상 안에서 주님의 말과 그 뜻을 들을 수 있고 내 마음을 그분께로 향하게 할 수 있다. 나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지요? 혹시 주변 탓을 하면서 주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두가이들이 주님께 대한 신뢰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 그 물음은 육신에 관한 것인데, 부활한 뒤에도 혼인에 매여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일곱 형제의 아내가 된 한 여인을 예로 들어, 그 여인이 형제들 가운데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답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부활을 선포하는 성경도 모르고 있으며, 죽은 이를 살리실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도 믿지 않고 있다며 혼을 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신성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으며, 우리 역시 부활한다는 희망을 주셨다. 이 희망은 세상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날 때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하셨다.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사두가이들은 예수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주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주님의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다면, 주님으로부터 어떤 소리도 들을 수가 없을 것. 

“신부님, 제 딸 때문에 걱정이에요.” “왜요?” “아직 시집도 가지 않았는데, 살이 얼마나 쪘는지 몰라요.” 체중과 시집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딸의 직업을 물었지요. 웹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디자이너와 체중이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딸도 성인데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살을 빼겠지요." “그만큼 자기 관리를 못 한다는 거잖아요. 그런 정신으로 회사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연예인이 살찌면 엄청난 댓글이 붙는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 관리를 못 한다, 프로의식이 없다는 식의 댓글 말입니다

. 배우는 배우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가수는 노래 잘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체중은 자기 건강을 잃지 않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이어트가 자기 관리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보다 자신의 정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부정적인 생각,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여기에 물질적인 것만 최고로 여기는 욕심과 이기심의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 관리를 못 하는 것.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아름답고 또 멋지게 만드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영생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고, 십자가의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 주 예수님의 은총과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나는 그들의 인내심과 은혜에 정말 감사하다.'' - 맷 라우어 -


♡2102회 “이 자리가 네가 있어야 할 자리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20일(마태복음 1장)

  에픽테토스 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기분이 상했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들을 생각해라. 곧 분노의 마음은 잊게 될 것이다.''


《만약 과 다음》혹시... 후회해 본 일이 있는가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시간 낭비가 아니던가요? 뉴욕의 저명한 한 신경정신과 의사는 퇴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나는 그동안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생활방식을 바꾸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스승은 환자들이 입에 담는 "만약" 이란 두 글자 였다. 나와 만난 환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난 일을 회고하고 그때 반드시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 하면서 보내는걸 보았다. "만약,,, 내가 그때 몸 관리를 잘 했더라면..." "만약,,, 그때 그 의사 말을 잘 들었더라면..." 하지만 그렇게 후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인 소모를 가져올 뿐 이지요.

 "차라리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당신이 습관처럼 쓰는 "만약" 이란 말을 "다음" 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세요." "다음에 기회가 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를 향한 희망이 생겨 납니다. 그것은 또한 생의 힘이 되어 지병이 호전되어 가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 대한 후회 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이미 지난 일을 가슴에 담아두지 마세요. 문득, 지난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면 이렇게 말하세요! "다음엔 그런 바보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한다면 과거의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정열을 현실과 미래에 쏟을 수 있을 것. 만약은 절망이고 다음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성체 성혈은 생명의 양식이고 생명의 음료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고 하지 “일용할 음식을 주시고” 라고 하지 않습니다. 분명 양식과 음식이라는 단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성체를 음식으로 먹고 어떤 이들은 양식으로 영합니다. 그렇다면 음식과 양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부담스럽지 않으면 음식이고 부담스러우면 양식입니다. 음식을 돈 주고 사 먹으면 부담스럽지 않지만 누군가가 거저 주면 왠지 부담스럽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가 우리 양심 안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 아기들은 부모가 주는 음식을 당연한 듯이 먹습니다. 이때까지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의식이란 것이 생기면서 부모가 주는 음식도 공짜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무언가로 보답을 하려 합니다.

 이때부터는 양식이 됩니다. 우리에게 성체는 음식인가요, 양식인가요? 성체를 당연한 듯이 영하며 그것을 주시는 분께 부담스럽지 않다면 음식을 먹는 것. 영혼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성체를 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담스러우면 양식이 된 것. 양식을 먹으면 상대의 기대를 그 대가로 채워줘야 합니다. 성체가 양식이 되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도 가장 빈민촌에 속하는 카트웨. 이곳은 사람들이 각종 오물과 배설물들을 버릴 정도로 더럽고 낙후된 지역이었고, 음식물을 구하기 매우 어려워서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가족과 함께 집 없이 사는 무테시라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오빠는 우연히 길을 걷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합니다. 한 선교사가 체스를 가르치고 있었고 “자네가 이걸 배운다면, 먹을 것을 주지!” 라고 말했다. 오빠는 동생도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무테시를 데리고 왔다. 무테시는 단순히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체스를 시작했지만, 점점 그녀의 천재적인 체스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체스를 배운지 겨우 6개월 만에 체스 교실의 실력자들을 모조리 꺾습니다. 선교사는 그녀를 체스 선수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집도 없고 밤에 책을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실력을 더 성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교사는 축구 게임 등을 해서 돈을 땁니다. 그 돈으로 무테시를 위해 경기 출전자금을 마련합니다. 무테시의 엄마는 결혼 때 입은 가장 아끼는 옷을 팔아 밤에도 체스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등유를 삽니다. 그리고 나가게 된 수단에서 열린 ‘우간다 여성 주니어 선수권 대회’ 에서 14살 무테시는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삶을 극복할 만한 상금은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마취도 못 하고 수술을 받게 되고, 홍수 때문에 거처의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그래도 어머니와 선교사의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수천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노력을 보면서 무테시는 끝까지 버텨냈고 곧 국제 체스대회에 참가합니다.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 체스대회에서 무테시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머니와 코치 선생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피오나는 선교사 코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 옥수수를 파는 애예요. 그건 할 줄 안다고요. 마스터는 못 될 거예요. 여기도 오면 안 됐어요. 차라리 체스를 안 가르쳐 주셨다면 좋았을 거예요!” 코치는 말합니다. “이 자리가 네가 있어야 할 자리야!” 그러나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동아프리카 수도 공사에서 코치에게 엔지니어링 감독관 자리를 제안한 것. 그러나 노숙자 무테시를 위해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피오나는 다시 힘을 냅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체스 여왕에 등극하고 체스 마스터가 됩니다. 체스 마스터가 되면 연맹으로부터 계속 돈을 받게 됩니다. “상금으로 무엇을 하실 건가요?” 그녀는 말합니다.

“우선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릴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겁니다.” 그녀는 현재 고향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체스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와 책으로 만들어져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울 때면, “저는 보잘것없는 인간에 불과해요. 더는 버텨낼 수 없어요. 전 여기서 그냥 주저앉을 거예요.”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그때마다 예수님은 당신 살과 피를 양식으로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넌 보통 인간이 아니야. 네 안에 내가 머물잖아. 보통 인간은 포기하겠지만, 네 안엔 하느님이 계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 이걸 믿으라고 내 살과 피로 네 안에 머무는 거야.” 이것을 믿게 된다면 진정 성체성혈이 생명의 양식과 음료가 됩니다. 양식 안에는 주는 사람의 ‘기대’ 가 담겨 있기에 음식과 구별됩니다. 양식은 부담스럽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양식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억합시다. 내가 영하는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몸소 양식이 되셨음을. 그리고 믿읍시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니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성체를 양식으로 영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처구니없는 일이 닥쳐오더라도 우리 모두가 주 예수님을 믿고 영원히 사는 사람처럼 감사를 드리고, 나날이 하느님께서 베푸신 축복된 날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가는 자는 쫓지 말며, 오는 자는 막지 말라.'' - 맹자 - 

*****💖성령봉사자 박재만 세례자요한 010 - 3878 - 6634
  (수필가ㆍ전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말씀추천강사)
💖성령봉사자 류태숙 M.막달레나 010 - 6560 - 7354
  (시인ㆍ수필가ㆍ꽃예술설화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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