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3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5월 31일(탈출기 1장~) 오쇼 라즈니쉬는 ''사랑은 소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감사에 관한 것이다.''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가족이란 늘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함께 생활하는 사람인지라 흔히 소중함을 잊고 지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곁에 없는 삶을 상상하면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낍니다. 서로 바라보고 지켜주며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 속에 홀로인 것처럼 외롭고 공허할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의미가 사라지는 것.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면 많은 재물을 모으고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즐거움이 있을까? 비록 무심하고 뚝뚝한 남편이나 바가지와 잔소리꾼의 아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그늘이자 마음의 버팀목인 아내와 남편이란 이름은 세상 속에서 당신이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 당신의 아내와 남편에게 한 세상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세요.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당신이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꿈과 소망을 함께 키우며 사랑의 동반자로 함께 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내 사람 바로 당신의 남편과 아내입니다. 가장 큰 계명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신앙생활의 근본정신은 사랑이고, 사랑은 자기 자신을 백퍼센트 바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하느님을 사랑하니까 하는 생활이고, 사랑으로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사랑 없는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아닌 생활입니다. 즉 사랑 없이 한다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겨 놓은 것은 하나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바치는 것. 예수님께서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 이시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은, ‘하느님 사랑’ 은 ‘하느님만’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 ‘양다리 걸치기’ 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이 아닌 것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 예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신 것은 재물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하나만 확실하게 선택해서 섬겨라.” 가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만 섬겨야 하고, 다른 것을 함께 섬기면 안 된다.” 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느님을 사랑해서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 동전 두 닢을 바친 어떤 과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3-44)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실 때, 그들이 바치는 돈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보셨다. 큰돈을 바친 부자들 가운데에도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헌금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을 것. 그들은 헌금을 바친 뒤에도 여전히 부자였다. 큰돈을 바쳤지만, 그들의 재산은 줄어들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는 것. 가난한 과부의 경우에는 동전 두 닢을 바친 뒤에는 남아 있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 을 첫째로, ‘이웃 사랑’ 을 둘째로 구분하셨지만, 이것은 두 사랑의 중요도나 순서를 구분하신 것은 아니고, 편의상 구분하신 것일 뿐입니다. ‘하느님 사랑’ 과 ‘이웃 사랑’ 은 똑같이 중요하고 동시에 실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 은 ‘하느님 사랑’ 을 바탕으로 해서 실천해야 하는 사랑이고, ‘하느님 사랑’ 은 ‘이웃 사랑’ 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하는 사랑입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그 사랑의 첫 번째 모범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나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9)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또 예수님께서 하신 일 전부가 우리를(나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 일을 볼 수 있다. “......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창세 18,1-5) 그 나그네들이 하느님과 천사들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아보고 그렇게 극진히 대접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누구인지 모르는 낯선 나그네들을 대접했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황금률이 연상됩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아브라함의 나그네 대접은, 나그네들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금률을 실천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아브라함이 한 일이 너무 지나친 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처럼’ 이라는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다지 지나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알고 있는 것으로 그쳐도 되는 계명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해야 하는 계명입니다. 만일에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를 말씀하신 다음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라고 명령하셨다.(루카 10,37) 사랑이란,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 하는 것’.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은총과 축복된 삶이 만들어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작은 도끼라도 찍고 찍으면 큰 참나무는 넘어진다.'' - 세익스피어 - |
♡2114회 “행복한 삶”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1일(레위기 1장~) 로랜스 굴드는 ''남이 당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싶거든, 당신 자신이 귀와 눈을 닫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표시하라. 이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간이 있고 능력이 있더라도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불가능하다.'' 《인내를 갖고 기다려라!》항상 무언가를 움켜쥐려 애쓰는데도, 쥔 손을 펴보면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우리는 지구상에 잠시 머물 뿐이다. 진정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당신에게 시간을 허용하는 것만이, 시간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시간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충만하다. 이들은 시간이 선물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천천히 가는 사람이 종종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사람은 무언가에 쫓겨 미친 듯이 달리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까닭이다. 지금 이 순간 인내심을 갖는 법을 배우고 뭔가에 매달리고 열중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라! 그러면 영혼은 내적으로 단단해지고 당신의 삶도 성공하게 될 것. 인내와 기다림은 인간적인 삶에 속한다. 인내에는 변화와 전환을 감당해낼 수 있는 힘이 숨어 있다.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만이, 그리고 기다 릴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성숙함에서 꽃피운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경직된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의 발전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오직 인내뿐이다. 꽃이 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즉각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는 서서히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찾아온다. -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 1997년 프랑의 '장 도미니크 보비' 라는 분이 “잠수복과 나비” 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영화도 나왔다. 장 도미니큰 보비가 어느 날 뇌졸중으로 몸이 굳어져 갑니다. 또 “폐쇄 증후군” 이라는 병이 와서 마지막에 가서는 다 굳어지고, 왼쪽 눈 하나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의 언어를 치료하는 언어 치료사가 아이디어로 알파벳 글씨에 하나둘씩 손을 짚으며 눈을 깜빡깜빡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1년 3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쪽 눈만 깜빡거리는 것만…. 알파벳을 보여주고 눈을 깜빡거리면 받아 적고, 또 받아 적고. 이렇게 눈을 하나하나 깜빡거리면서 무려 1년 3개월 동안 눈을 20만 번 깜빡거려서 103페이지 달하는 책을 썼다. 그런데 아쉽게도 책이 나오기 전에 ‘장 도미니크 보비’ 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몸은 완전히 물속에 잠수복을 입고 갇혀있는 사람 같았지만, 그의 영혼은 나비처럼 날아갔다고 해서 책 제목을 “잠수복과 나비” 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그 책 머리말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나의 간절한 소원은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는 일입니다. 내가 만일 내 힘으로 흘러나오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는 것은 “행복한 삶” 입니다.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저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저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첫째가 바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이것은 “진복팔단(참 행복)” 이란 말입니다. 신명기서 10장 13절 “너희가 잘되도록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면 행복해진다.”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인가요?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 지금 이 순간 침을 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지금 이 순간 침을 한번 삼켜 보십시오. 침을 스스로 삼킬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감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남을 위하여 살아가는 감사의 거룩한 마음입니다.” 나 스스로 조심할 수 있는 것이 남을 위하는 마음이요, 그런 남을 위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행복한 마음이고,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주님의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배고프면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버리나니 이것이 바로 인정의 널리 퍼진 폐단이다.'' - 채근담 - |
♡2115회 마음도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 ♡알림 : 농번기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전달합니다. (주일과 월요일 : 새벽미사참례, 미사전ㆍ후 발송합니다)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2일(민수기 1장~) 세종대왕은 ''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되고, 위엄과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자는 항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게된다.'' 《정성들여 살게하소서!》나이드는 것에 감사 할 수 있으므로 나의 삶을 기쁨으로 엮게하소서.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 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게한 성스러운 존재와 옆에 있는 마음의 지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므로 정말로 기쁜 웃음을 갖게 하소서. 정직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면 부끄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삶에 자족하게 하시고 나의 미래를 설레임으로 맞을 수 있게 하소서. 완벽함을 추구하여 빈틈없는 삶보다는 조금 부족하여도 넉넉함으로 삶의 향기를 갖게하소서. 어차피 인간은 완벽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 어우러져 사는 삶을 배우게 하소서. 인생의 큰 흐름이 소망과 감사로 이루어져 있기에 얼마간의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그 흐름 속에 쉽게 녹아 없어질 수 있음을 알게하소서. 나의 부족에도 이런 행운과 함께 삶을 바라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하심을 감사하며 더 나이들어도 깊어지는 기쁨과 소망의 골짜기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이 들었지만 맑고 상큼한 마음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받는 일에 마음을 다하면서 삶을 감사함으로 소중하게 엮어가게 하소서.아멘! 한 자매님이 신부님에게 상담한 적이 있다. 중년 자매님이었는데 집도 넉넉하게 잘 살고 자녀들도 말썽 안 부리고 성당 잘 다니며 남편도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에서도 착실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자매는 무슨 일로 밤에 혼자 앉아 눈물을 자주 흘린다는 것. 가슴이 허한 것 같은데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몸과 영혼과 마음’ 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입니다. 몸이 편하다고 다 편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해서 다 편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까지 편해야 합니다. 몸은 잠을 자면 되고, 영혼은 자기 생각을 멈추고 주님 말씀 안에 머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마음도 쉬게 해 주어야 합니다. 마음도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몸은 물질로 되어 있어 물질적인 환경에서 쉴 수 있고, 영혼은 정신적이라 정신적인 환경 안에서 쉴 수 있지만, 마음은 영적이라 영적인 관계 안에서만 쉼이 가능합니다. 영은 사랑입니다. 나의 마음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안에서만 안식을 누립니다. 영국의 문인 부르크가 미국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부두에는 전송객으로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전송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서운함을 느낀 부르크는 부두에서 놀고 있는 한 어린아이에게 “얘야! 내가 네게 6실링을 줄 테니 내가 저 배를 타고 떠날 때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렴” 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6실링을 받은 아이는 정말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부르크는 고백합니다. “돈 받고 흔드는 손을 보고 나는 더욱 큰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사랑 안에서만 쉴 수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안에서만 쉴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내가 먼저 누군가의 마음을 쉬게 해 주는 마음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지 못했다면 누구도 나의 쉼터가 되어줄 수 없다. 뉴스에서 감동을 주는 사진을 보았다. 한 청년이 차 안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호흡이 멈춘 할머니를 구 강대 구강 호흡법으로 살리려고 하는 장면이 찍힌 것. 손자는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호흡의 어려움을 겪고 의식을 잃었던 것.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자는 100% 자신도 바이러스에 전염될 것을 알면서도 구강 대 구강 호흡으로 할머니를 살리려고 한 것. 할머니는 그렇게 운명하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행복한 죽음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그런 손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손자가 아무것도 받지 않았는데 그런 사랑을 베풀 줄 알았을까요? 그만큼 할머니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할머니도 손자를 위해 그렇게 할 것을 자신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도 안식을 취하시겠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안식처를 지니신 분이셨다. 그래서 행복한 분이셨다. 그리고 그 안식처는 결국 할머니가 만들어놓으신 것.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다른 사람 마음 안에 자신의 안식처를 만들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알려주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의 스승이셨다. 온유함은 사람을 심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상대를 항상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고 상대가 더 영광을 받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입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부터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안식을 누리셨고, 우리는 또한 그렇게 새로 태어나는 영적인 자녀들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다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가, 아니면 화를 내고 심판하는 마음으로 대하는가. 내가 먼저 안식처가 되어주지 않으면 누구도 나에게 마음 쉴 곳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시는 그분을 바라보며 주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둘도 없는 귀한 분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머물러 살아가는 축복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남의 이익에 신경 써라. 분배되지 않는 이익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 볼테르 - |
♡2116회 은총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3일(신명기 1장~) 애머슨은 ''열의 없이 성취된 위업이란 아직 하나도 없다.'' 《칭찬을 받으면!》칭찬을 받으면! 기쁨이 솟아나고 가슴속에 꽃이 피어난다. 칭찬은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이다. 칭찬을 하려면 솔직함, 자연스러움,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 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당신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칭찬을 함으로써 당신은 세상을 또 다른 빛으로 볼 수 있다.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도록 해주는 것도 바로 칭찬인 것이다. 칭찬은 당신의 영혼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항상 사랑의 말이다. 마음이란 神이 머무는 장소이다. 마음 안에서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는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는 문도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준다.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하늘은 그들 위에 열려 있다. - 안젤름 그륀 신부 -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마태 8,1-4)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라는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나는 원한다. 깨끗해져라.” 입니다. 병자가 한 말을 예수님의 말씀에 맞추어서, “저는 주님께서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로 바꿀 수 있다. 병자는 예수님의 권능은 믿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나는 원한다.” 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그 병자가 간청하지 않았어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깨끗하게 해 주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병자들이 간청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모든 병자를 고쳐서 건강을 되찾아 주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래 바라시는 일이라는 것. 병자가 간청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 일이 실제로 있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 를 고쳐 주신 일과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눈먼 사람’ 을 고쳐 주신 일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 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사람’ 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일이고, 동시에 예수님 자신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신 일입니다. ‘순종’ 도 순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신 일입니다. “나는 원한다.” 라는 말씀에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제때에 주신다.” 만일에 알고 계시기만 하고 그것을 제때에 주시지 않으면, 알고 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무의미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기 때문에(요한 10,30),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언제 주는 것이 좋은지를, 아버지께서 알고 계신 것과 똑같이 알고 계시고, 그것을 제때에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은총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는 우리 쪽의 문제입니다. 하늘에서 ‘만나’ 가 내렸을 때, 하느님께서는 ‘만나’ 를 땅에 내려주시기만 했고, 그것을 거두어들여서 음식으로 만든 것은 사람들이 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 하느님께서 ‘만나’ 를 직접 먹여주신 것은 아닙니다. 용서와 회개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는데, 그 용서가 나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면 회개해야 하고,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도 않고, 이웃을 용서하지도 않으면, 이미 주어진 ‘용서의 은총’ 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여기서 ‘깨끗하다.’ 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병이 치유된 상태를 뜻하는 말인데, 이 말을 상징적인 말로 생각하면, ‘구원의 은총을 받은 상태’ 예수님께서 주신 은총을 받아서 구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2-4) 예수님께서 몸의 병을 고쳐 주신 일은 ‘몸의 병’ 만 고쳐 주신 일이 아니라, 치유의 은총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 일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모든 병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만일에 병자 자신이 ‘몸의 병’ 이 나은 것에만 만족하고서 그냥 예수님을 떠나버린다면, 그래서 영혼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는다면, 몸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도를 거부하는 것과 같고, 구원의 은총을 스스로 버리는 것과 같다. 깨끗해진 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구원의 완성이라는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몸의 병을 고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몸의 병을 고친 다음에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루카복음 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병자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병이 나은 병자 열 명 가운데 한 사람만 되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고, 다른 아홉 사람은 그냥 가버렸습니다.(루카 17,11-19) 그냥 가버린 아홉 명은 몸의 병이 나은 것에만 만족하고서 그것으로 그친 사람들로 해석되고, 되돌아온 사람은 영혼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한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오늘날에도 눈앞의 작은 소원만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만족하고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은총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예리코의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그는 예수님께 간청해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눈을 고친 다음에 새 직업과 새 인생을 찾아서 떠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마르 10,52)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분이었고, 또 바르티매오를 만났을 때에는 수난 직전이었다.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의 사정을 몰라서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닐 것. 아마도 그가 희망했던 ‘새로운 인생’ 은, 새 직업을 얻어서 편안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메시아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바르티매오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는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해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신앙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오늘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매 순간 솟구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앙의 신비, 기적의 신비를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 - 맹자 - |
♡2117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4일(신명기 28장~) 앤소니 로빈스는 ''당신의 삶의 질은 당신의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좋은 것은 비밀입니다》 좋은 것은 비밀입니다. 안 좋은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좋은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비밀의 문안에 두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열쇠로, 내 생각의 힘으로, 내 말과 행동의 손으로 비밀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사랑은 비밀입니다. 사랑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문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희망은 비밀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문은 오늘을 성실히 사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평화는 비밀입니다.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문은 큰사랑으로 자유함을 얻은 사람에게 열립니다. ♡기쁨은 비밀입니다. 날마다 기쁨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문은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용기는 비밀입니다. 참다운 용기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의 문은 뜻이 곧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3-27) 큰 풍랑 때문에 곧 침몰할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의 ‘작은 배’ 를 교회로, 또는 각 개인의 인생으로 해석할 때가 많다. 교회의 경우, ‘큰 풍랑’ 은 ‘박해’ 와 여러 가지 위기로 해석됩니다. 개인의 인생이라면, 종교 박해를 포함해서 인생살이의 고통들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상황은, 마치 예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의 상황으로 해석됩니다.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해도 응답을 얻지 못할 때... 우선 이야기 속의 상황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모습은 지쳐서 잠든, 대단히 인간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큰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만물의 주님이신 분’ 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노련한 어부들인 제자들을 믿으셨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주무셨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실력을 믿으셨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못 믿은 상황.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얼마 동안은 풍랑 때문에 고생하겠지만, 배가 침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중간에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았어도, 그냥 계속 주무셨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제자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무엇이 부족했을까? 예수님께서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라고 꾸짖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옆에 계신데도 그들의 믿음이 약했던 것, 그래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낸 것, 그런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했던 말, ‘주님, 구해 주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 아닌가?” 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라고 제자들이 말한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큰 풍랑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 이라고 믿고서 예수님을 깨운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믿음도 없이 그냥 다급하니까 예수님을 깨웠다는 것. 마르코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구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고,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라고 예수님을 비난하는 말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마르 4,38)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걱정을 하시거나, 아니면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마르코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제자들의 말에서, ‘요나서’ 에 나오는 선장의 말이 연상됩니다. “당신은 어찌 이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소? 일어나서 당신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나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주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요나 1,6) 제자들의 심정은 그 선장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23절의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믿으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신다면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자면 됩니다. 살든지 죽든지 간에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면 된다는 것.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이 말은 사도의 입장에서 한 말이고, 이 말을 예수님의 입장에서, “나는 살아도 너희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너희를 위해서 죽는다.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전부를 너희를 위해서 내놓았다.” 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신 그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경우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과 주무시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모두 직접 볼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우리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일하시는지 주무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내가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정말로 나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들으셨지만 무시하셨는지, 주무시느라고 못 들으셨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나는 정말로 ‘믿음’ 을 갖고서 기도하고 있는가?” 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으로서, 나의 모든 사정을 알 고 계시고,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나를 위해서 결코 주무시지 않고 나를 보살펴 주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 없이 바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빈말’ 입니다. 2) “내가 바치는 기도의 지향이 정말로 올바른 것인가?” 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만 좋은 것이고, 남에게는 해로 운 것은 아닌가? 주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나쁜 것을(악한 것을) 청하는 것은 아닌가? 3)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주님께 모든 것을 전부 다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기도를 하지는 않는가?” 를 반 성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면 되고,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은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고, 해야 하는 일도 안 하면서, 기도만 하는 것은 대단히 오만한 태도입니다. 4) 믿음을 갖고서 올바른 지향으로 또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다 하면서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도 응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의 침묵’ 은 조금 더 기다리면서 계속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주님 은 결코 미적거리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루카 18,7) 이번에는 하지 못 했으니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꼭 해내겠다.” 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하느님의 것으로 드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검은 구름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을 경계하라.'' - 발타자르 그라시안 - |
♡2118회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 주십시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5일(여호수아기 20장~) 헤르만 헤세는 ''사랑받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다.'' 《보리 고개》조선(朝鮮)영조 35년 왕후(王侯)가 세상을 뜬지 3년이 되어 새로 왕후를 뽑고자 하였다. 온 나라에서 맵시 있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처녀 20명이 뽑혀 간택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이 중에 서울 남산골 김한구의 열다섯살 난 딸도 있었다. 드디어 간택시험이 시작 되었다. 자리에 앉으라는 임금의 분부에 따라 처녀들은 자기 아버지 이름이 적힌 방석을 찾아 앉았다. 그런데 김씨 처녀만은 방석을 살짝 밀어 놓고 그 옆에 살포시 앉는 것이었다. 임금이 하도 이상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식이 어찌 가친 존함이 씌여 있는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으오리까 고 대답했다. 임금이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이 세상(世上)에서 제일 깊은 것은 무엇인가? 동해바다 이옵니다. 서해바다 이옵니다. 남해바다 이옵니다. 하는데. 김씨 처녀만은 사람의 마음 속이 제일 깊은 줄로 아옵니다. 어찌하여 그러는고? 네 아무리 바다가 깊다 해도 그 깊이를 잴 수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깊어 그 깊이를 잴 수가 없사옵니다. 이어 다른 문제를 또 냈는데 이 세상에서 무슨 꽃이 제일 좋은고? 네 복사꽃 이옵니다. 모란꽃 이옵니다. 양귀비꽃 이옵니다. 그런데 또 김씨 처녀만은 네, 목화꽃이 제일 좋은줄로 아뢰옵니다. 그건 어이하여 그런 것인고? 다른 꽃들은 잠깐 피었을 때는 보기가 좋사오나, 목화꽃은 나중에 솜과 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니 그 어찌 제일 좋은 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아옵니까! 이어서 세번 째 질문을 하는 하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는 무슨 고개인고? 묘향산 고개지요.한라산 고개 이옵니다. 우리 조선에서 백두산 고개가 제일 높지요. 이번에도 김씨 처녀만은 또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보리고개가 제일 높은고개 이옵니다. 보리고개는 산의 고개도 아닌데 어이하여 제일 높다 하는고? 농사 짓는 농부들은 보리 이삭이 여물기도 전에 묵은해 식량이 다 떨어지는 때가 살기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그래서 보리고개는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라고 할수 있지요. 이에 임금은 매우 감탄하였다. 이리하여 김씨 처녀는 그날 간택 시험에서 장원으로 뽑혀 15세 나이에 왕후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정순왕후다. 이렇게 하여 보리고개가 제일 높다라는 속담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힘 내라며 담아 주시던 고봉밥 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자식을 대하고. 부모님을 대하고 이웃을 대한다면, 모두가 좋은 부모요, 좋은 자식이요. 좋은 이웃일 텐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흘러가고 흘러가니 역사도 인생도 아름답습니다. 구름도 흘러가고 강물도 흘러가고 바람도 흘러갑니다.생각도 흘러가고 마음도 흘러가고 시간도 흘러갑니다. 좋은 하루도 나쁜 하루도 흘러가니 얼마나 다행인가! 흐르지 않고 멈춰만 있다면 물처럼 삶도 썩고 말텐데 이렇게 흘러가니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픈 일도, 힘든 일도, 슬픈 일도 흘러가니 얼마나 감사하며, 세월이 흐르는 건 아쉽지만 새로운 것으로 채울수 있으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요 어차피 지난 것은 잊혀지고, 지워지고, 멀어져 갑니다. 그걸 역사라 하고, 인생이라 하고, 세월이라 하고 회자정리 (會者定離) 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해질녘 산등성이에 서서 노을이 너무 고와 낙조인 줄 몰랐다. 이제 조금은 역사가 뭔지 인생이 뭔지 알 만하니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이웃들을 사랑 하세요. 이웃들을 사랑해 주세요. 언젠가 우리는 보고 싶어도 못 보게 됩니다. 그러고 어느 날 모두 후회한답니다. 왜 좀 더 이웃들을 사랑 하지 못했냐고요. 좀 더 세심하게 보리고개를 돌아 보며 이웃들에게 사랑이 가득한 특별한 날들을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소서. 대단히 感謝합니다. ‘변명’ 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 하느님께서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에게 ‘너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물으셨다. 아담은 알몸인 것이 부끄러워 숨었다고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묻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합리화하고 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하느님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다른 하나는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 도의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 158명의 숭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대도 이렇게 변명하였다. ‘경찰이 있었어도, 안전조치를 했었어도 사고를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린 것은 하나의 현상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변명’ 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회개’ 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고한 목숨을 잃어버린 사람과 그 유족들에 대한 솔직한 사과와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하는 것.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도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물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으면서도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느님께서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실 것 같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욕심과 욕망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이 멸종하였다.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고, 노예로 전락하였고, 숲은 파괴되었고, 물과 공기는 오염되었다. 어쩌면 우리들도 카인과 같은 대답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나중에는 거짓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라고 이야기합니다. 평소에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이 오면 신앙을 저버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눈을 보았던 베드로 사도는, 닭이 우는 시간에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던 아버지처럼, 우리가 회개하고 뉘우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랐다. 100세의 나이에 얻은 아들 이사악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 이사악입니다. 그런 이사악을 하느님께서는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면 좋겠느냐?’ 그러자 이사야 예언자는 주저 없이 대답하였다.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는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구세주가 오시면 일어날 일을 예언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 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오늘을 이기며 살아갈 힘을 주실 것을 믿고... 반드시 우리들이 희망하고 바라는 일을 이루어 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몸가짐은 각자가 자기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 괴테 - |
♡2119회 잠시의 방심과 나태함 때문에 또다시 어려움이 시작되곤 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6일(사무엘하 10장~) 디오도어 루빈은 ''대체로 내향적인 인간은 내향적인 인간과 외향적인 인간은 외향적인 인간과 잘 사귄다. 그것은 마음이 우선 편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다는 상태는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좋은 상태는 아닌 것이다.'' 《멋진 사람이 되는 10가지》 1. 힘차게 일어나라.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 육상선수는 심판의 총소리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다. 0.001초라도 빠르게 출발 하기 위해서다. 올해 365번의 출발 기회가 있다. 빠르냐 늦느냐가 자신의 운명을 다르게 연출한다. 시작은 빨라야 한다. 아침에는 희망과 의욕으로 힘차게 일어나라. 2. 당당하게 걸어라. 인생이란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행진이다. 목표를 향하여 당당하게 걸어라. 당당하게 걷는 사람의 미래 는 밝게 비쳐지지만, 비실거리며 걷는 사람의 앞날은 암담하기 마련이다. 값진 삶을 살려면 가슴을 펴고 당 당하게 걸어라. 3.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내라.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미루는 습관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살고있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 다. 내일은 내일 해가 뜬다해도 그것은 내일의 해다. 내일은 내일의 문제가 우리를 기다린다. 미루지 말라. 미루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4. 시간을 정해 놓고 책을 읽어라. 책 속에 길이 있다. 길이 없다고 헤매는 사람의 공통점은 책을 읽지 않는데 있다. 지혜가 가득 한 책을 소화 시켜라. 하루에 30분씩 독서 시간을 만들어 보라. 바쁜 사람이라 해도 30분 시간을 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하루에 30분씩 독서 시간을 만들어 보라. 학교에서는 점수를 더 받기 위해 공부하지만, 사회에서는 살아 남기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5. 웃는 훈련을 반복하라.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자다. 그렇다면 웃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지름길도 웃음 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웃다보면 즐거워지고 즐거워지면 일이 술술 풀린다. 사람은 웃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바뀐다. 웃고 웃자. 그러면 웃을 일이 생겨난다. 6. 말하는 법을 배워라. 말이란 의사소통을 위해 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기가 자신에게 말을 할 수 있고, 절대자인 신과도 대화 할 수 있다. 해야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간하는 방법을 깨우치자. 나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는 것은 공해다. 상대방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는 말 힘이 생기도록 하는 말을 연습해보자. 그것이 말 잘하는 법이다. 7. 하루 한가지씩 좋은 일을 하라. 인생에는 연장전이 없다. 그러나 살아온 발자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에 크건 작 건 좋은 일을 하자. 그것이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좋은 일 하는 사람의 얼 굴은 아름답게 빛난다. 마음에 행복이 가득차기 때문이다. 8. 자신을 해방시켜라. 어떤 어려움이라도 마음을 열고 밀고 나가면 해결된다. 어렵다, 안된다, 힘든다고 하지말라. 굳게 닫혀진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보자. 마음을 열면 행복이 들어온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으면 너와 내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쁨 가득한 세상을 만들게 된다. 마음을 밝혀라. 자신을 해방시켜라. 9. 사랑을 업그레이드 시켜라.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나 사랑을 한다. 말이 사랑이지 진정한 사랑이라 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에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퇴색된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뜨거운 용광로처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사랑을 불살라 버리자. 새로운 사랑으로 신장 개업하라. 10. 매일 매일 점검하라. 생각하는 민족만이 살아 남는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 생존일 뿐이다. 이제 자신을 점검 해 보자. 인생의 흑자와 적자를 보살피지 않으면 내일을 기약 수가 없다. 저녁에 그냥 잠자리에 들지 말라. 자 신의 하루를 점검한 다음 눈을 감아라. 나날이 향상하고 발전한다. ♡♡♡특별히 믿음을 가져라. 지 금 이 순간 천국을 확보하라. 그 시기는 아무도 알수 없다 .♡♡♡ 산보 가는 길에 새의 둥지를 보았다. 소나무 가지 사이에 둥지가 있었다. 어미 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어미 새는 몇날 며칠 둥지를 떠나지 않았고, 알을 품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지만 어미 새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10일 이상 지났으니 곧 둥지에서 새끼 새를 볼 것 같다. 한 마리의 새끼 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미 새의 눈물겨운 품기가 있었음을 보았다. 돌아보면 쉽게 포기한 것이 참 많았다. 자존심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고, 게으름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고, 열등감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고, 이기심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고, 주변의 환경을 탓하며 포기한 적도 있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 몇 번 들었다. 4년전에 마지막 방송을 했는데 1987년부터 진행했으니 33년이 되었다. 방송할 때는 20대 였는데 지금은 50대 후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눈이오나 비가 오나 시청자들을 위해서 방송했다고 합니다. 33년이란 긴 시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던 강석, 김혜영 진행자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세상은 이렇게 충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 같다. 잠시의 방심과 나태함 때문에 또다시 어려움이 시작되곤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하는 말 같다. 바오로 사도의 말은 ‘죽비’ 가 되어 신발 끈을 다시 조이게 합니다. 신앙인은 천사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카엘 천사처럼 나의 신앙을 굳게 지키며,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담대히 신앙을 증거해야 합니다.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처럼 나의 뜻이나 나의 욕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파엘 천사처럼 신앙의 여정에 좋은 안내자가 되어야 하고, 상처 입은 이웃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 해 주어야 하겠다. ‘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베푸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나의 마음에 무엇을 쌓아 놓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냈으면 합니다.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기억하면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도록 기도해 줄께...” 오늘 우리들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 성심의 자비로움을 살아가 보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절제는 모든 미덕의 진주, 고리를 이어주는 비단의 실이다.'' - 홀 - |
♡2120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7일(열왕기상 1장~) 베토벤은 ''사랑은 나누는 것이며,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삶에 적용되는 멋진 생각들》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다. 당신이 하루종일 아무런 문제에 부닥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 성공을 위한 3가지 필수 조건 ㄱ.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 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할 것 ㄷ. 남보다 큰 기대를 갖지 말 것 승리하는 자는 설명이 필요없다. 패배하는 자는 변명 전에 스스로 사라져야 한다. 당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을 모욕하는 것. 당신이 보이는 사람들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1등이 꼭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보다 더 잘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나는 1000번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실패할 수 있는 1000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 모두들 세상을 바꾸려 들지만 스스로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무나 믿는 것은 위험한 짓이지만 아무도 못 믿는 것은 더욱 위험한 짓이다. 인생에 있어 실패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삶에 있어 소중히 지켜야 할 것들은 믿음, 약속, 인관 관계 그리고 상대의 마음이다. 이 네 가지는 깨질 때 소리는 나지 않지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찾나이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시편42,2-3) 늘 들어도 감미로운 시편 말씀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웃을 때 얼굴은 그대로 꽃같다. 면담 때 “지금 이 순간 많이 웃어요!” 합니다. 그대로 이웃에게 전염되는 행복의 바이러스, 웃음의 바이러스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대헌장이라는 산상설교는 참행복 선언입니다. 영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산상설교중의 참행복 선언으로 영향을 받은 이들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톨스토이는 물론 종파를 초월해 간디, 불교의 성철스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세의 십계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참행복 선언입니다. 모세의 기본적 십계명만으로 참행복에 이를 수 없다.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참행복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 언젠가 살아야할 행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행복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마지막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질문도 ‘행복하게 살았느냐?’ 는 하나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소망이자 기쁨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설교의 서두에 참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과연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행복은 발견의 은총이요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마음의 눈’ 만 열리면 발견되는 행복이요, 또 선택해야 하는 행복이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지금 이 순간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무지에, 탐욕에 눈멀어 행복을, 감사를, 기쁨을 앞에 놔두고도 보지못해 불행을 사는 어리석은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깨달아 눈만 열리면 널려 있는 행복들입니다. 참행복의 뿌리에는 하느님이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께서 행복하다고 선언한자가 누굽니까? 한결같이 결핍된 자들입니다. 1.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2.슬퍼하는 사람들, 3.온유한 사람들, 4.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5.자비로운 사람들, 6.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7.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8.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여덟가지 행복한 사람들이라 선언받는 사람들 한결같이 결핍된 자들입니다. 각자 참행복 점수를 계산해 봐도 좋겠습니다. 20점은 기본점수로 하고 8개 참행복 항목별 10점 만점에 도합 80점, 합하여 100점 만점에 몇점쯤 되는 지 지금 이 순간 한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처럼 결핍된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채워주시는 희망의 하느님이 계시기에 행복하다는 것. 참으로 궁극의 희망을 하느님께 둘 때 참행복이요, 언젠가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미 하느님을 만날 때 이뤄지는 행복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바로 하느님이 참행복의 원천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교황님의 교회의 부유함에 대해 나눈 말씀이 생각납니다 .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데 교회는 왜 그렇게 부유합니까?” “교회란 말마디는 너무 포괄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부에, 돈에 속하는 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의 마음이 거기에 집착한 탓이다. 그가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그는 더욱 가난해지게 된다. 동시에 복음에 따라 순수한 마음으로 부를 잘 관리하는 부자들도 있다. 누구든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려면 모든 부로부터 멀어져야 하고, ‘가난한 마음a poor heart’ 을 지녀야 한다. 부를 관리하도록 불림을 받았다면 개인적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들을 돕는데 써야 한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말했다. 가난은 ‘생명의 어머니mother of life’ 이니 타인을 위한 ‘자아의 선물the gift of self’ 인 ‘너그러움generosity’ 을 낳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너그러울 수 있고 부자가 더 인색할 수 있다. 바로 부유함이 주는 참행복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도 분명 하느님과 맘몬(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하셨다. 참 행복을 위해서는 주님이 ‘삶의 중심’ 에 확고히 자리잡아야 함을 봅니다. 열왕기 상권의 엘리야가 참행복한 사람입니다. 외적으로는 가난의 극치이지만 하느님의 배려중에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며 특별 피정 시간을 갖는 내적으로는 참 행복한 부자 엘리야입니다. 다음 아름다운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바로 하느님을 찾는 가난한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축복을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해주는 예화입니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진리를 깊이 깨달았을 것.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느님을 찾는 우리 모두 참행복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 아멘. 매 순간 근심과 염려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들에게 주신 기도와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은총 가득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나는 한 가지 책임만 아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 Albert Camus (프랑스 작가) |
♡2121회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8일(열대기상 1장~) 로렌스는 ''상대방에 주는 자기의 인상을 조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까닭이다. 대개 사람의 호감이란 먼저 남이 표시해 준 것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타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주라.'' 《지금 이시간에》행복할 수 있는 시간엔 최대의 행복을 맛보라 그리고 힘겨운 시간엔 그 행복한 시간을 꺼내어 그 힘겨움을 지혜롭게 넘겨보아라. 밀물과 썰물처럼 삶이란것도 잃는것과 얻는것이 있듯 사는데 어찌 좋은 시간만 있으랴 앞만보고 달리다 잠시 쉬어 뒤돌아본다 힘겨웠던 시간보단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더 많았던것 같다. 현실이 벗어나고 싶다하여 벗어 던질수 없다면 그 벽을 뚫으리라 삶에서 무너져 내린 순간은 한번으로 끝이리라. 내 길에 아무리 깊게 파인 웅덩이가 가로막는다하여도 난 그 길을 넘어갈것이다. 내 가슴이 뛰고있는한 나는 달릴것이며 내 삶을 소중히 아주 소중히 할것이며 내 삶의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 내 선택이 힘겨움의 길일지라도 난 이순간이 내 선택이었고 내 길이니 최선을 다 함이라 아이들 웃음소리에 행복이 묻어나면 난 그것이 곳 행복이다. 그러하여 난 힘을다하여 삶을 피해가진 않을것이며 내 등의 짐을 내려 놓지 않을것이다. 내 등의 짐은 내가 곧은 걸음 걷게하는 기름이며 삶의 힘이기에 난 이 순간도 삶을 부여 잡는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아무리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런 말 정도 알고 계실 것.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 이런 명언을 남긴 주인공은 기원전 470년에 태어난 대철학자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역사에 길이 남을 대 철학자가 되기까지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지식 탐구를 향한 끝없는 갈망, 철학이라는 특정한 분야에 대한 평생에 걸친 한 우물 파기, 선택과 집중, 인간과 세상을 향한 깊은 애정, 탁월한 지적 능력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외에도 한 가지 특별한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부인 ‘크산티페’ 였다. 그녀는 오늘날 까지도 ‘악처의 대명사’ 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크산티페의 특징은 입이 거칠고 성격이 포악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현자 중의 현자인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왜 그런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질 때 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승마의 전문가가 되려는 사람은 고분고분한 길들여진 말을 타서는 안 됩니다. 그럴 경우 승마 기술의 발전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성질이 고약하고 난폭한 말,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타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친 말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어떤 말도 잘 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이 여자의 괴팍함을 잘 견뎌내다 보면 천하의 어떤 사람도 무섭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를 향해 1분에 한 번씩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붓는 부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 들으면 시끄러운 물레방아 도는 소리도 자꾸 듣다보면 전혀 괴롭지 않게 됩니다.” 한번은 크산티페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소크라테스에게 퍼부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가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자, 찬물을 한 바가지 떠와서 남편에게 확 들이부었다. 갑자기 물까지 한 바가지 얻어맞은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비참하기를 넘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편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천둥 번개가 친 후에는 큰 비가 오는 법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중요한 삶의 지혜를 전수해주시는데,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는 것. 악에 악으로 보복하지 마라는 것. 욕설에 욕으로, 주먹에 주먹으로, 복수심에 복수심으로 대응하지 마라는 것. 그렇게 대응할 때 우리가 너무나 잘 체험하며 살듯이 결과는 심각한 상처입니다. 결국 패가망신입니다. 모두가 망하는 것. 예수님의 계명을 따른다는 것, 예수님을 추종한다는 것, 사실 말이 쉽지 너무나 어려운 길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결국 바보천치처럼 사는 것. 그러나 정말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길처럼 현명한 길은 다시 또 없다. 정말 어렵지만 바보가 되라는 예수님의 권고를 죽기 살기로 따르게 될 때, 그 결과는 잔잔한 평화입니다. 지속적인 마음의 평정입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 악이 다가올 때 악으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내 큰 인내와 내 큰 관대함, 내 큰 사랑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분명히 악인을 만납니다. 꼭 악인이 아니어도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악한 현실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내 선에서 악이 더 이상 증식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더 큰 사랑, 더 큰 희망, 더 큰 인내와 측은지심으로 악을 억제시키는 그런 노력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 목숨, 정신, 힘, 이 단어들에 이미 하느님의 사랑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은총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항상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은총이 충만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화를 내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 그레이스 켈리 - |
♡2122회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6월 9일(열대기하 25장~) 공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기라. 내 몸만 귀한 것이 아니다. 남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보 은(報恩)》손녀 하나만 바라보고 그녀를 양육하며, 일생을 살아온 90세의 미국인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하고 아들과 손녀 셋이서 단란하게 살았는데 아들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면서 어린손녀를 할아버지 혼자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 들어 옆구리를 잡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러시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가 20대에 6.25 한국전쟁에 파병이 되어 중공군과 싸우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아서 당시 의술로는 그냥 총알을 몸에 지닌 채로 사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의사의 권유로 지금까지 그냥 지내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들고 면역력이 약해지니 그로 인한 여러가지 몸의 상태가 안좋으시다는 말씀을 들은 손녀는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국병원비는 아마 집한 채 값을 들여야 할것 같아 마음 뿐이었지 어찌 할수가 없었다. 한국은 의술도 좋고 병원비가 저렴하다는 소문을 들은 손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치료를 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으로 왔다. 병원에 입원하고 모든 검사를 마친후 담당의사는 "몸에 총알을 담고 어찌 지금까지 사셨습니까?" 하고 이유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중공군과 싸울 때 얻은 훈장이라고 설명을 하자 담당의사가 "저희 할아버지도 6.25참전 용사셨는데 총을 맞고 후송이 되었지만 결국 열악한 의료시설과 낙후한 의술 때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의사가 되시려고 생각하셨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의학 공부를 할수 없어서 아들인 제가 의사가 되었다." 는 이야기를 하며 "염증이 생겨 그냥 두면 안되는 상황인데 잘 오셨다." 고 말하며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참전용사를 수술할 수 있게 되어 영광" 이라고 말을 했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고 회복한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완쾌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을 위해 수속을 준비하면서 그손녀는 치료비가 어마어마 하게 많이 나왔을 것이라 예상을 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계산을 하러 창구로 갔는데 수납 창구에서 봉투 하나를 내어 주었다. "얼마일까?" 하며 봉투를 열어보니 계산서엔 "진료비 0원" 에 미화 $1,000이 들어있었다. 동봉한 작은 쪽지에는 "당신이 흘린 피로 지켜진 우리나라의 자유는 영원할 것입니다. 귀국하시거든 여생을 편안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고 물으니 병원측과 담당의사가 치료비를 모두 부담 하였다는 것이었다. 깜작 놀란 손녀는 집도 의사를 찾았지만 의사는 만날 수가 없었다. 퇴원하여 미국으로 귀국 길에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에도 한국 군인들은 듬직하였고 정이 많은 병사들이었다. 한국이 놀랍도록 발전 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발전 했으리라 고는 생각지 못했다. 산(山)은 붉은 흙과 돌들 뿐이었고 참으로 가난한 나라였었는데, 울창한 산림과 빌딩 숲을 보니 내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보람이 있다." 고 말씀을 하시며 기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국격을 높인 젊은의사! 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를 위해 15만 여명의 연합군이 죽거나 다치거나 또 실종되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평화가 있었을까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의사당 앞 한국 공원엔 한국 전에서 전사한 50,000명의 미군들 명단과 공원 바닥에 쓰여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구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안보 현실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게 됩니다. ‘지금 힘들지만, 정말 모두가 힘들까?’ 요즘 참 많이들 힘이 듭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악이 언제든 끼어들 수 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 나쁜 일로 나를 이끄는 사람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악은 이미 우리 안에 잠재해 있다는 것. 내가 약해지면 언제건 나를 집어삼킬 안좋은 바이러스들이 우리 안에 내재하여 있다. 특별히 세속, 육신, 마귀와 같은 욕구들이 우리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가 우리가 약해지면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죄에 물들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검사하는 것’ 입니다. 전혀 이상이 없어도 검사해보는 것. 이를 위해 이동을 할 필요도 없고, 돈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기도’ 한 번 외워보면 됩니다. 내가 진정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있는가? 내 영광이 아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가? 내가 아버지의 지배를 받기를 원하는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말씀과 성체의 양식을 찾고 있는가?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지금 이 순간 바로바로 용서하고 기도하고 있는가? 유혹 거리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가? 세속, 육신, 마귀의 자아의 욕구로부터 벗어나려 지금 이 순간 노력하고 있는가? 이렇게 주님의 기도를 외우며 나 자신을 자주 되돌아보면 죄의 바이러스에 넘어갈 일이 없다.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주님의 기도라는 키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 기도를 당신의 삶을 바로잡고 주님의 도우심을 청했다면 당연히 이 좋은 키트를 우리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죄의 삶과 거룩한 삶의 두 가지 길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자주 측정해야 합니다. 그 삶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기준으로 ‘주님의 기도’ 를 주신 것. 다른 이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죄도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의 기도는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아침, 저녁 기도뿐만이 아니라 수시로 외우며 나의 삶이 하느님 자녀의 삶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조기종식 시킬 수 있고 괜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내비게이션과 같다. 자주 바라봅시다. 그래야 길 잃고 고생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다가 답답하고 억울한 일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마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밑에 있는 돌에 구멍을 내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남자란, 말하며 접근할 때는 봄이지만 결혼해 버리면 겨울이다.'' - 셰익스피어 - |
💖성령봉사자 박재만 세례자요한 010 - 3878 - 6634
(수필가ㆍ전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말씀추천강사)
💖성령봉사자 류태숙 M.막달레나 010 - 6560 - 7354
(시인ㆍ수필가ㆍ꽃예술설화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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