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4년 프랑스 로렌느 지방의 에리메넬에서 태어난 니콜라스 헤르망은 신심 깊은
부모님 도미니코와 루이즈에게서 훌륭한 그리스도교적 신앙 교육을 받았다. 독일과
의 30년 전쟁에 참가한 그는 '청년기의 무질서' 와 '과거의 죄' 로 후회하게 될 군대
생활을 마친 후 회심하여 잠시 은수 생활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몇 년간 하인으로 일
하기도 하였다.
1640년 6월 회심의 생활을 하려는 크나큰 결심 끝에 파리의 가르멜 수도원의 평수
사로 입회하여 '부활의 라우렌시오' 라는 수도명으로 착복한 그는 짙은 어둔 밤을 가
는 가르멜회의 카리스마, 곧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신비적 체험
을 거친 뒤 하느님과의 친밀한 삶으로 깊이 몰입했다. 그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눈길
아래 끊임없이 머물렀으며, 하느님 현존의 생활과 기도 방식에 탁월한 지식을 지님
으로써 가르멜 전통을 온 삶으로 입증하였다.
"만일 제가 설교가라면 하느님 현존의 수련 이외에 다른 것은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편지 3)
그는 일생동안 주방일과 신발 수선일, 수도원의 허드렛일을 하였다. 감탄할 정도로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심오한 그의 내적 생활을 알아차리고 도움을 청해오는 모든 이
들에게 "신적 불이 맹렬히 타오르도록" 하느님 현존의 수련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
았다. 생의 마지막 무렵 "오, 믿음이여! 오, 믿음이여!"하고 되뇌는 그에게 무슨 생각
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영원에서 하게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축복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흠숭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성소의 저
부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평소 그가 예견했던 대로 1691년 2월 12일, 그렇게도 끔찍했던 고통도 경련도 사
라진 듯 온전한 의식을 지닌 채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부활의 라우렌시오 수사는
하느님을 마주 뵈옵고 그의 면전에 영원히 머물기 위해 그분께로 옮겨갔다.
교회를 위한 선물 "가르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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