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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라우렌시오

[스크랩] 편지 영적지도자에게

 

편지 2 영적지도자에게

 

공경하올 신부님              1682-1683 

 

   며칠전 신심깊은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영성생활은 은총의 삶으로써 노예적 두려움으로 시작하여 영원한 생몀에 대한 희망으로 커가고 순수한 사랑으로 완성되며 이 복된 완성에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길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 죄의 보속으로 하느님께 저를 온전히 바칠것과,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기도할때 대개는 죽음, 심판, 지옥, 천국 그리고 제 죄들에 대해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년을 계속했으며 하루 중 다른 시간에는 일하는 동안에도 늘 제 곁에 게시고 때로 제 마음 아주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수련하는 데 주의 깊게 전념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게 하느님께 대한 지극한 훔숭의 정을 불러 일으켰고, 이 문제에 대해서 오직 믿음만이 저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점차로 저는 묵상기도를 할 때도 이렇게 하게 되었고 이것은 제게 큰 기쁨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처음10년간은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 하느님께 속하지 못했다는 것과, 늘 제 눈앞을 떠나지 않는 지난날의 죄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아낌없는 은총에 대한 걱정이 저의 모든 고뇌의 요지였습니다 

 

     그당시 저는 자주 넘어졌지만 즉시 다시 일어나곤 했습니다.제게는 모든 피조물과 이성과 그리고 하느님마저도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듯 했으며 오직 믿음만이 제 편이었습니다.

 

    때로 저는 이 모든 것이 다른 이들은 고생스럽게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그곳을 단숨에 도달하려는 제 주제넘음의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생애를 이런 근심 걱정으로 마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자 순식간에 완전히 변해 버린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근심 걱정들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제 믿음을 굳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늘 혼란스럽던 제 영혼은 마치 자신의 중심과 쉼의 자리를 발견한 듯 깊은 내적 평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신부님께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 상태에 대해서 걱정도 의심도 느끼지 않는데, 저는 하느님의 뜻 외에는 그 어떤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애쓰고 있으며, 그분의 명을 거스르거나 혹은 순수한 사랑 이외의 그 어떤 동기로 땅에 떨어진 지푸라기 하나 조차도 줍지 않을 만큼 그렇게 제 자신을 내 맡기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거룩한 현존에 늘 머물러 있으려 애썼습니다.

 

 오직 주님의 거룩한 현존에 늘 머물러 있으려 애 썼습니다 저는 단순한 주의 집중과 하느님께 대한 관대하고도 사랑 겨운 지견으로 이 현존 안에 머물러 있는데 저는 이것을 “하느님의 실제적 현존”이라 일컫습니다. 더 잘 설명 드리자면 하느님과 영혼 사이의 고요하고 은밀한 대화로서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상처가 터져 악취가 가득하여 저의 임금님을 거슬러 온갖 종류의 죄를 범하였고 깊은 통회의 정에 이끌려 제 모든 죄를 하느님께 고백한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으로 여깁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당신 좋으실대로 하실 수 있으시게끔 그분의 손에 저를 내어 맡깁니다. 어지심과 자비심이 넘치는 이 임금님께서는 저를 벌하시기는 커녕 오히려 저를 다정스레 껴안으시어 당신 식탁에 앉히신 다음 손수 시중을 들어주시고 제게 당신 보화의 열쇠를 주시며, 모든 것에서 저를 당신의 총애하는 사람으로 대해 주십니다.

 

  저의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하느님을 향한 이런 단순한 주의 집중과 관대하고 사랑겨운 깨달음이며 여기서 저는 아기가 엄마의 젓가슴에서 맛보는 것보다도 더 감미와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맛보고 체험하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감미로움으로 말미암아 감히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저는 기꺼이 이 상태를 “하느님의 젖”이라 부르겠습니다. 

 

  이따금 제가 용무나 혹은 나약함  때문에 떠나게 된다면 하느님께서는 말씀드리기 황송할 정도의 매우 황홀하고도 기쁜 내적 충동으로 즉시 저를 당신께 불러주십니다.

 

    어떤 때는 묵상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어려움이나 노력도 없이 즉시 온 정신과 영혼이 높이 들어 올려짐을 느끼게 되고, 영혼의 중심이나 쉼의 장소에서처럼 하느님안에 정지되어 항구해 뿌리 내린 채로 머물게 됩니다.

 

 

 

 

 

출처 : 한국재속가르멜회
글쓴이 : 관구전례참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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