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1회 ''제 삶과 제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해 주소서.''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3월 30일(시편 74편~) 스티브 잡스는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옳은 삶을 살 것이다.'' 《아침에 바치는 축복 기도》자비롭고 좋으신 하느님, 지난밤을 잘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당신의 신실하심으로 감싸 주셨습니다. 꿈속에서도 저를 잊지 않고 붙들어 주셨습니다. 제 마음속 깊은 곳까지 빛으로 비추시고, 저에게 위로와 평화를 선사해 주셨습니다. 주님, 새날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새날을 당신께서는 제 손에 맡기셨습니다. 새로운 날에도 당신의 사랑과 자비가 이 세상 가득히 넘쳐 나도록 말입니다. 그러니 이날을 강복하소서. 단지 저뿐만 아니라 제가 오늘 만나게 될 모든 이를 위해 이날이 좋은날이 되도록 강복하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옛것과 엎질러진 것을 씻어 버리시며, 당신의 새로운 사랑이 샘솟듯 저희 안에 흘러넘치게 하심을 오늘 아침 제가 알게 해 주소서. 이 아침을 축복하시어 제 마음이 당신의 영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오늘을 강복하시어, 제가 당신과 이전의 좋은 관계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지난 잘못들이 저를 더 이상 짓누르지 못하게 하시고 새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일하게 도와주소서. 제 삶과 제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해 주소서. 자신을 포기한 이들에게도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소서. 그들에게 지치지 않고 항상 활기 넘치는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주소서. 오늘 제가 해야 할 모든 일과 계획들을 강복하소서. 저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결과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신의 강복 없이는 아무것도 바로 설 수 없으며 어떤 일도 이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의 강복으로 이날을 꿋꿋하게 걸어 나가도록 해 주소서. 제가 시작하는 모든 일이 당신의 강복으로 완성되도록 도와주소서. 제가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그들은 당신의 따뜻함과 친밀감을 가까이 느끼길 원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것들에 강복하시어, 마침내 완성을 보게 하소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강복하소서. 당신의 강복이 단단한 끈이 되어 저희가 서로 하나가 되도록 해 주소서. 자비롭고 좋으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은총을 넘치도록 베푸시며 저희를 받아 주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을 저와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와 동행하게 하시어 오늘도 저희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 주소서. 저희가 걸어야 할 길을 앞서 보여 주시길 청합니다. 저희가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저희를 강하게 해 주소서. 저희가 넘어질 때면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저희의 사랑이 부족해서 서로 갈라서게 될 때면 저희를 다시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 주소서. 좋으신 하느님, 당신의 거룩한 영으로 저희를 감싸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의 거룩한 영은 저희에게 마르지 않는 샘과 같습니다. 또한 무기력한 저희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시고 뜨거운 사랑을 심어 주시는 광채이옵니다. 그 거룩한 영의 도움으로 오늘 저희가 말과 행동으로 뿌린 씨앗들이 마침내 결실을 맺도록 해 주소서. 좋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 모두를 강복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안셀름 그륀 신부 -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가끔씩 ‘뜻밖의 선물’ 이 우리 앞에 주어질 때가 있다. 오래 전 어느분께서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일입니다. 설립 초기 생산 라인 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로 인해 오랫동안 심한 자금난에 허덕였는데, 어느 해였던가, 납품이 시작되는 동시에 경기도 활성화되면서 회사는 엄청난 매출 수익을 올리게 되었지요. 최고경영자는 열심히 따라준 직원들이 고마웠던지 정해진 급여나 상여금 외에 꽤 큰 성과급을 지급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목돈’, ‘뜻밖의 선물’ 을 손에 들고 다들 어디에 써야 되나, 행복한 고민들을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가끔씩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 이 주어질 때가 있다. 젊은 시절, 삶을 돌아보니 삶이 꽤나 팍팍하고 암울했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처럼 매사가 잘 안 풀렸다. 특별한 희망도 기대도 없이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저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이웃과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격리시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도하는 중에 한 단어가 제 머릿속에 들어왔다. ‘일체유심조!’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봄날의 꽃길도, 가을날의 풍성한 결실도, 겨울의 설경도 주님께서 주셨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연히 여름날의 혹독한 더위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방식 이제 그만 떨쳐버리자.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 주님과 함께 하는 세상은 더 더욱 살아볼만한 세상, 이제 그만 일어나보자.” 는 생각이 온 몸을 뚫고 지나갔다. 그 다음날 아침, 정말 특별한 체험을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출근 시간이 그렇게 괴로웠다. 자명종 버튼을 누르면서 혹시 오늘 공휴일 아닌가, 혹시 오늘 정전이라도 돼서 출근하지 말라고 연락 오는 것은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을 다했었는데, 그날은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자동으로 잠을 깼다.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깜짝 놀랐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그 뒤로 떠오르는 일출, 넘실거리는 바다, 매일 봐왔던 풍경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감탄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체험이자 변화였는데, 그 변화는 그 누구도 아닌 성령께서 주신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힘차게 활동하실 때 기적 같은 변화를 직접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 지옥 같은 현실이 살아볼만한 현실로 변화될 것. 미움덩어리였던 이웃이 사랑덩어리로 변화될 것. 그런데 뜻밖의 선물인 성령의 도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목숨 걸고 열심히 기도해야 주어집니다. 충만한 영성생활의 가장 큰 독소들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 ‘질투심’ ‘완고함’ ‘물질만능주의’ 를 극복해야 가능합니다. 성경을 손에 들어야, 영적생활에 맛을 들여야 시작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할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 바람이 일어도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천국은 이 세상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곳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의 결과인 잔잔한 평화와 은은한 기쁨, 진정한 화해와 용서, 일치와 나눔이 이루어지는 내 안에서 시작되는 곳입니다. 오늘을 꽉 잡으십시오. 기회가 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될 수 있다. 더 나아진다. 더 새로워진다.” 희망으로 '내일이라는 오늘' 을 진정으로 기쁘게 맞이하는 은총 충만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당신은 항상 영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사람은 될 수 있다.'' - 괴테 - |
♡2052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겸손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3월 31일(잠언 1장~) 루이자 메이 올코트는 ''우리 모두에게는 추구하는 자신만의 삶이 있고 이루어야 할 자신만의 꿈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꿈을 현실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계속 그것을 믿기만 한다면" 《새똥으로 갑부되어 국민에게 매년 1억 주다 새똥으로 완전망한 나라》새똥지리! 혹 나우루공화국이란 나라는 들어 보셨나요? 호주 부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울릉도보다 작은 나라, 인구는 고작 1만명이 조금 넘고요. 일반 국민들이 자가용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 쇼핑을 하는 나라. 도로 위에는 람보르기니와 포르쉐 등 최고급 승용차가 즐비한 나라. 전 국민에게 매년 1억원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나라. 주거, 교육, 의료비가 모두 공짜인 나라.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나라. 이 작은 섬나라는 지구상 가장 귀하다는 희귀자원 인광석이 지천에 깔린 섬이라서 그 자원 만으로도 벌써 198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부자나라였다. 이렇게 된 것은 섬에 지천으로 널린 새똥 때문이었답니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 섬에 수만년동안 쌓인 새똥은 산호층과 섞이면서 인광석이 되었던 것. 나우루공화국은 이 희귀광석 인광석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국민에게 공평 분배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해 왔다. 덕분에 국민들은 아무 일도 안 하고 그저 소비생활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인광석을 채굴하는 일까지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와 일하게 하고, 모든 가정에는 가정부와 집사를 고용해 편하게 생활했다지요. 심지어 공무원까지도 전부 외국인들로 고용했다니 말 다했지요. 정부나 국민 할 것 없이 있는 거라곤 돈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30년이 지나자 나우루공화국 사람들은 집안 청소하는 방법은 물론, 요리법까지 잊어버렸지요. 섬나라임에도 어선이 사라졌고, 전통문화가 없어졌으며, 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돼 버린 겁니다. 그들은 그저 먹고 놀고 여행하는 습관만 남게 되었지요. 그러자 국민들 80%가 비만에 시달렸고 비만율, 당뇨병 사망률 1위 국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3년부터 인광석 채굴량까지 갈수록 줄어들면서 나우루공화국의 국고 또한 고갈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가난해진 국민들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청소하는 법, 요리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고기잡이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놀고 먹던 국민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 이었지요. 일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그들에게는 나태함과 무기력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나우루공화국은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는데, 무리하게 땅을 파헤쳐 인광석을 채굴해 수출을 하다 보니 섬의 고도가 낮아진 것. 그 때문에 만약 수면이 높아질 경우 섬이 통째로 가라앉을 위기를 맞게 된 것이지요. 어떤가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요...! 이는 바다 건너 먼 나라만의 일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풍족함은 언젠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나우루 사람들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출산을 줄이기 위해 산아 제한 정책 1명 낳기를 강조했던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고 밑에 장관, 정부 고위직에 있던 돌대가리들이 50년 후의 인구 정책을 잘못 판단했고 앞으로 50년 후이면 인구 부족으로 외국인을 전부 요소요소에 고용하지 않으면 산업, 공업, 농업, 어업, 기타 모든게 인구 부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악날한 북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로 국방의 안보까지 완전 무너지는 현상이 코앞에 와있는데도 출산율 높이는 정책 발표는 아직 없다. 또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공무원 연금법, 국민 연금법, 의료 보험법 등등을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꺼내 만든 그 당시의 관계 장관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국민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들 해보십시오! 끔찍합니다. 고생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체험적으로 터득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누리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부모님 덕이고 내 자식의 풍요는 내가 베푼 것이고 손자가 누릴 것은 자식의 능력과 노력의 덕이라는 것을 가르쳐야지요. 명심보감 계선편에 이런 말이 있지요. 자식을 위한다고 많은 책을 물려주어도 자식이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하고, 많은 돈을 물려주어도 지켜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물려줄 것은 책을 읽는 습관이고 검소한 습관이고 노력하는 습관이다. 퍼주는 사람이나 그걸 받으며 뒤가 어떻게될지를 모르는 사람이나 우리를 돌아 봐야겠네요. 아마존의 어느 원주민 부족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일부러 흠집 난 구슬을 한 개씩 끼운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영혼의 구슬’ 이라고 부릅니다. 영혼을 지닌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고대 페르시아의 카펫 직조공들 역시 카펫을 짤 때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에 의도적으로 흠을 하나씩 남겼다고 합니다. 오직 신만이 완벽하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페르시아의 흠’ 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가 부족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실수하지 않고, 빈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삶만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어떤 사람이 더 인기가 많았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약간의 실수도 하고 부족한 사람에게 오히려 호감이 갑니다. 이런 사람이 훨씬 편하며 이 사람 역시 관대함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실수 없이 살아가려니 힘들 수밖에 없다.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가 완벽해지려고 하니 당연합니다. 이렇게 완벽에만 온 힘을 쏟다 보면 다른 이와 함께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로라도 부족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다. 자기 마음도 편안해지고, 남도 나를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 이는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완벽함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주님께 불평불만을 할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는 함께하는 삶을 원하시는데, 많은 이가 자기 혼자의 삶만을 요구합니다. 당연히 주님과도 함께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제자 중에는 어부 출신이 많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자기 힘으로도 전혀 대처할 수 없음을 알았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웠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하게 만드는 큰 힘을 가지신 분임을 보여 주는 것. 이런 분과 같은 편이 되고 또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서 마치 맡긴 것을 찾으려는 사람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겸손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때 주님의 그 큰 힘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해주실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걱정에 사로잡힌 좋은 땅을 가지신 우리들이시여! “걱정하지 말라.”라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붙들고 기도하면서 우리들의 좋은 땅에서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은총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또 다른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꿈을 꾸기에 절대 늦은 나이란 없다.'' - 클라이브 루이스 - |
♡2053회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1일(코헬렛 1장~) 헨리포드는 ''당신이 된다고 생각하든 안 된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생각은 옳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내 행복은 당신 입니다. 혼자 짊어지고 가던 모진 나의 삶의 무게를 덜어준 당신 언제든지 찾아가 쉴 수 있고 무거워진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 순간의 행복이 나의 꿈이라고 할 만큼 부러웠던 삶이었다. 하루를 보내면서도 기억하기 싫었던 시간들 수많은 시간들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지금처럼 행복한 적은 없었다. 늘 오늘이 나의 전부였고 내일은 나의 아픔이었다. 희망을 말하고 싶은 당신을 만났고 내일의 행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당신을 알았기에 주저 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제 같은 삶은 나를 멀리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이슬처럼 잊혀져간 기억일 뿐입니다. 오늘만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희망도 꿈도 꾸지 않겠습니다. 허락 없이 당신을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사랑해도 당신의 마음부터 얻어야겠습니다. 강물은 말없이 흘러가도 맞닿을 수 있는 바다가 있었지만 난 닿을 수 없는 거리만 걸어 다녔기에 당신을 만남이 나에겐 뜻밖의 행운입니다. 나보다 더 나를 이해해 주고 있는 당신 당신을 먼저 본 것은 나였지만 가슴에 먼저 안은 것은 당신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나의 인생여정 당신에게서 멈추고 싶다. 그 곳이 굽이진 길이라 해도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센 곳이라 해도 당신이 그곳에 있다면 발길 멈추겠다. 당신에게서 나의 행복을 노래하고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한때 성공회의 주교가 되기를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글이라는 청년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왔다. 그러나 부스 장군은 그의 지원을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그에게 다른 훈련생들의 군화를 닦으라고 지시했다. 낙심한 브랭글은 속으로 ‘내가 군화나 닦으려고 내 꿈을 좇아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예수님께서 어부들의 발 위로 허리를 굽히시는 모습을 꿈으로 보았다. 그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주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저는 그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데레사 수녀는 대답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올포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가장 단순한 진리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가 있다. 받아들임은 낮아짐이란 것입니다. 자신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내가 주님보다 높아져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 우리는 손님에게 일을 시킬까요, 아니면 우리가 할까요? 모든 맞아들임은 내가 종이 되는 일입니다. 아기를 맞아들인 엄마는 어떨까요? 태중의 아기를 위해 봉사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는 제자들을 당신 품으로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예수님을 맞아들이려면 또한 예수님을 높이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라고 하십니다. 산은 물을 담아놓을 수 없다.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곡은 산보다 낮으므로 물을 맞아들이고 강은 더하고 바다는 더합니다. 성모님께서 바다와 같은 분이셨기 때문에 은총 자체를 맞아들일 수 있으셨던 것. 그때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주님의 뜻대로 이웃을 맞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주님도 맞아들이지 않는 것. 그러니 이웃들에게 겸손하고 이웃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이들은 바로 ‘교회’ 입니다. 교회를 섬길 줄 모르면 예수님도 섬길 줄 모르는 것. 교회에 발꿈치를 들면 예수님께 발꿈치를 드는 것.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은 바로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시작됩니다. 이웃을 섬길 줄 모르면 교회도, 그리스도도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16세기 ‘로마의 사도’ 라 불리는 재속 사제로 오라토리오회를 창설한 필립보 네리의 일화입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거룩한 영성으로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녀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녀원에 다다랐다. 그는 사람을 시켜 수련 수녀를 오도록 했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 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다. 한 재속 사제가 진흙으로 범벅이 된 신발을 벗기라고 하니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시키는 사제를 판단하고는 자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 수녀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와서는 교황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궁금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엔 성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안에 맞아들인 주님이 나를 성전으로 만듭니다. 내가 맞아들인 사람들이 나의 열매들이 됩니다. 하느님 앞에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려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내 발밑에는 오로지 나 자신만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저는 하느님만을 보고 삽니다.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라는 고백으로 우리들이 하느님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하느님의 자애와 사랑을 누리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생각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되는 대로 생각하라." - 크리스틴 콜린스 - |
♡2054회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2일(집회서 24장~) 브래드스트리트는 ''만일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토록 즐겁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이 이따금 역경을 맛보지 않는다면, 성공은 그토록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부부[夫婦]의 정[情]》참으로 영원할 것 같고 무한할 것같은 착각속에 어이없게도 지내고 보면 찰나인 것을 모르고 꽃길같은 아름다운 행복을 꿈꾸며 우리는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얼마전 병문안을 드려야할 곳이 있어, 모 병원 남자 6인 입원실을 찾았다. 암 환자 병동이었는데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는 대부분이 환자의 아내였다. 옆방의 여자 병실을 일부러 누구를 찾는 것처럼 찾아들어 눈여겨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 대부분이 할머니를 간호하는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이었다. 늙고 병들면 자식도 다 무용지물, 곁에 있어줄 존재는 오로지 아내와 남편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간혹 성격차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생활고나 과거를 들먹이며 부부관계를 가볍게 청산하는 부부도 있지만... 님들 이여! 너무 서두루지 마시라. 우리는 언젠가는 갈라져야 하는 운명이며 다만 신께서 때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젊음은 찰나일 뿐 결국에 남는 것은 늙어 병든 육신만 남아 고독한 인생여정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때는 잘 나가던 권력자나 대기업가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권력의 뒤안길에서 그들이 지금 누구에게 위로받고 있겠는가? 종국에는 아내와 남편 뿐일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도 종국에 곁에 있어 줄 사람은 아내와 남편 뿐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했노라! 고생했노라! 희미한 조명아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더 늦기전에 한번 해볼 일이다. 혹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한 잔의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말이다. 주마등 같은 지난 세월에 부부의 두눈은 말없이 촉촉해질 것이다.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부부 간에도 같이 있을때는 잘 모르다가 반쪽이 되면 그 소중하고 귀함을 절실히 느낀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늙으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며 화기애애한 여생을 갖도록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면서도 가까운 사이 부부.. 곁에 있어도 그리운게 부부.. 한 그릇에 밥을 비벼 먹고 같은 컵에 입을 대고 마셔도 괜찮은 부부.. 한 침상에 눕고, 한 상에 마주 앉고, 몸을 섞고, 마음도 섞는 부부 둘이면서 하나이고, 반쪽이면 미완성인 부부 ... 혼자이면 외로워 병이 되는 게 부부.. 세상에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젊은이는 아련하게 고독하고, 늙은이는 서글프게 고독하다. 부자는 채워져서 고독하고, 가난한 이는 빈자리 때문에 고독하다. 젊은이는 가진 것을 가지고 울고, 노인은 잃은 것 때문에 운다. 청년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에 떨고 노년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 떤다. 젊은이는 같이 있어 싸우다가 울고, 늙은이는 혼자 된 것이 억울해서 운다. 사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을 잃었을때보다 더 애련한 일은 없다. 그것이 부부일 때 더욱 그리하리라. 젊을 시엔 사랑하기 위해 살고, 나이가 들면 살기 위해 사랑한다. "아내란 ... 청년에게 연인이고, 중년에게 친구이며, 노년에겐 간호사다" 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인생 최대의 행복은, 아마도 부도 명예도 아닐 것이다. 사는 날 동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랑을 나누다가, "난 당신 만나 참 행복했소!“ 라고 말하며.. 둘이 함께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행복하세요. 夫 婦 夫婦 ... 남편 글자가 먼저라고 높아서 먼저가 아닙니다. 건장한 남편이 힘든 일 먼저 하라고 사내 夫자가 먼저일 뿐, 높은 자리라고 생각을 했다간 큰 코 다친다는 것... 이제 모르는 사람 없을 겁니다. "사랑하며 살아도, 남은 세월은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3가지 유혹을 받으셨다.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유혹보다는 다른 유혹을 함께 나누고 싶다. 첫 번째 다가오는 유혹은 '다음에 하지’ 입니다. '사랑하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이라는 말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데 늘 내일을 생각하면서 오늘 꼭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곤 했다. 유명한 사상가도 자기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매번 내일로 미루더니 오늘 땅에 묻혔다는 의미입니다. 담배를 끊겠다고 하는 것도, 평일 미사를 가겠다고 하는 것도, 부모님께 전화하겠다고 하는 것도, 사과의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다음에 하지라는 유혹에 넘어가곤 합니다. 두 번째는 ’남들도 그렇게 하는데‘ 입니다. 나의 잘못과 허물을 남들에게 떠넘기는 것. 그런 경험이 있다. 앞의 차가 빨간 불인데 갔다. 저도 따라갔습니다. 경찰이 저만 잡았다. 앞의 차도 갔다고 말을 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남들도 그렇게 하는데’ 라는 표현은 나보다 더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따라갈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을 따라가면서 그런 표현을 해야 할 것. 세 번째는 ‘나는 안돼’ 라는 열등감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유다 사도는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그러나 두 사도의 삶은 달랐다. 유다 사도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나는 안돼’ 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은 사람이 ‘나는 안돼’ 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지만,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죄가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안돼’ 라는 열등감에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뉘우치기만 한다면, 우리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 우리의 신앙은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아멘 !!!! 오늘 우리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저 하늘 펼치신 주님께서 주신 생명과 사랑의 귀한 은혜를 선물로 받으시고, 찬미하는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존경받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 에이브러햄 링컨 - |
♡2055회 어머니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3일(이사야서 26장~) 로버트 플로스트는 "인생은 짧고, 미소는 길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험문제를 냈다. 시험문제는 "첫 글자가 M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성질과 힘을 가진 단어를 쓰시오" 였다. 정답은 magnetic(자석)이었다. 그런데 85% 이상의 학생들이 답을 mother(엄마)라고 썼다. 고민하던 선생님이 마침내 mother를 정답으로 처리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학생들이 m으로 시작하는 말로써 상대를 끌어들이는 성질을 가진 단어를 "마더" 로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서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뽑았는데 1위로 선정된 단어도어머니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은 젖 먹는 자기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사진전시회에 가서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을 감동 깊게 본 적이 있다. "기다림" 이라는 제목의 사진이었는데 해질 무렵 동구밖 느티나무 아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 때는 출타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외지에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기다림과 그리움이었다. 어머니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여자는 어릴 적엔 아버지를 기다리고 성장하여 결혼하면 남편을 기다리고 자식을 낳아 출타하면 자식을 기다린다. 기실 기다릴 수 있고 그리워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랑이란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그리움과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말이다. 전쟁이 터졌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다가 폭탄이 떨어지면 아버지는 짐 보따리를 부여잡고 몸을 숨기지만 어머니는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방패막이가 된단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동물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 시골에 화재가 났는데 불이 꺼지고 난 다음 날 광에 들어가 보니 암탉이 병아리들을 나래 안에 품은 채 새까맣게 타서 죽어 있더란다. 그러나 병아리들은 화상을 전혀 입지 않은 채 살아있었다. 지난 2013년 1월 26일자 J일보에 '불만의 시대- 1000가지 감사를 써 내려간 사람' 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었다. 주인공은 '감사 나눔운동' 을 펼치는 박점식(58)씨로 치매를 앓는 어머니(2011년 돌아가심)를 돌보며 써 내려 간 1000가지 감사글이 동기가 되어 감사나눔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 1.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감사합니다. 2. 제가 어머니의 아들인 것이 감사합니다. 3.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저를 알아보신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 올리며 쓴 감사노트의 첫째 장의 내용이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노트에는 무려 1000가지의 감사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가족여행을 갔다가 자식이 늙은 어머니를 홀로 둔채 돌아가 버려 경찰이 양노원에 입원시켰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놀라운 것은 그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과 주소를 결코 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자식은 어머니를 버려도 어머니는 자식을 버릴 수 없음에서다. 어머니가 살아 있어서 번거롭고 불편한 불만의 시대!. 부모는 어릴 적엔 디딤돌, 나이들면 걸림돌, 더 늙으면 고인돌이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그건 모든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고향같은 존재이다. 모든 것을 다 품어 주시고 모든 것을 다 주고서도 기억하지 않는~ 어머니! 그건 영원한 향수이며 불러도 불러도 자꾸만 그리울 마음의 고향과 같은 이름이다. 고향에 어머니가 계시는 분들은 오늘 한통의 전화를 해 보시기 바란다. 어머니가 안 계신 분들은 어느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어머니,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를 크게 외쳐보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이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일제 강점기에 이흥렬(李興烈) 이라는 음악의 남다른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으니 음악공부를 더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소자는 음악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한편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진것도 없었지만,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때까지 동네 근처부터 원거리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 쉼없이 솔방울을 긁어 모았다.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 (1930년대 쌀 한가마는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다. '이흥렬' 그가 제일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양주동님의 詩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서는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서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해,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어머니!!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사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전수 조사해서 '위대한 스승들' 이란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를 읽은 처칠은 신문사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귀 신문사에서는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미국의 전 레이건 대통령도 어머니날 특집프로에 출연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나의 어머니 '넬리 레이건' 여사입니다.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뒤에는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신을 대신하는 이름의 어머니는 끝없는 사랑으로 인간을 만드는 위대한 스승이다. 신학기인데도 선생님이 부임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무료한지 여럿이 모여 모래 쌓기를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한 노인이 안타까운지 선생님이 어디에 계신지 아는가? 지금 곧장 집으로 돌아가게나! 그대들을 맞으러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자네들을 가르쳐줄 선생님이야! 아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는 아들을 껴안고 말했다. 왜 이리 늦었어! 배고프지. 어서 들어가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의 정이 인성교육이었다. 사소한 것부터 조금씩 시작하다보면, 의외로 위대한 결과를 수없이 만들어냅니다. 그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 제35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존 F. 케네디' 이다. 생명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는 맘마고 엄마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보는 것도 엄마의 눈동자다. 어머니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 언제 생각해도 눈물나는 이름 어머니!! 그 고마우신 이름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이 글을 묵상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계십니다. 젊은이건 나이든 어른이건 어느 누구에게나 부르면 눈물나는 이름 어머니, 눈에 흙이 덮여도 부르고 싶고, 안기고 싶은 사람 어머니! 유독 많이 생각나는 어머니입니다. 우리들 자신은 “둘째 단추를 끼우기 전에 나는 첫째 단추를 끼웠는가?”라는 물음으로 용서받는 기쁨을 살아가는 축복된 영적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반복은 모든 미덕의 어머니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
♡2056회 '행동하려는 본능이 생기는 순간과 뇌에서 행동을 막는 순간 사이에는 5초'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4일(예레미야서 3장~) 플라톤 (BC428~ 348)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미워하지 말고 잊어버려라.》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언덕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지금 이 순간 내게 미움이 다가 왔을때 미움 안으로 몸을 담그지 마십시오. 지금 이 순간 내게 걱정이 다가왔을때 긴 한숨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미움과 걱정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마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속에 빛을 떠올려 보십시오. 미움과 걱정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 언덕에 서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갚을 수 없고 걱정은 걱정으로 지울수 없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언덕에 서서 미움과 걱정을 향해 손 흔들 수 있을 것. 어느분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저의 형 누나들이 학교에서 받아오는 많은 상장들을 보면서 저 역시 그런 상장을 많이 받으리라 생각했다. 형 누나들처럼 항상 시험 성적도 좋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래서 하루빨리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드디어 8살이 되어, 어머니 손을 잡고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붙이고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저의 예상과 달리 많은 상장을 받을 수도 없고, 또 좋은 성적 받기도 쉽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반에 7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저는 너무나도 평범했다. 더군다나 한글도 아직 제대로 모르는 저로서는 학교 문의 문턱은 너무나도 높아 보였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감은 줄어만 갔고 학교 가기가 싫어졌다.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며 “어렸으니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인 역시 마찬가지임을 깨닫습니다.> 자신 안에 자신감이 사라질 때,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많이 좌절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까?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다시 시도하면 또 다른 미래를 만들 수가 있는 법입니다. 실제로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면 뇌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두려움에 따른 포기, 자신감이 없다고 포기, 관심이 없다고 포기하는 우리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만 느껴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힘차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안 계실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을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일에 관한 생각으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의 부재를 눈으로 바라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축복이 주어질 것. 이 축복이 바로 ‘성령’ 이었다. 성령께서는 세상이 단죄한 구원자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심으로써 의로움에 관한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 주님을 단죄했던 유다인들의 잘못을 밝히시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길임을 드러내신다는 것. 혹시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한 마음을 종식하고, 대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세상에 주님을 증거할 힘을 얻을 수 있기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여전히 주님의 뜻을 따르는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 우리 자신을 맡기며 힘차게 주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인간의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체 활동을 억제하는 것, 즉 게으름을 피우는 것에 고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경험할 것.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정말로 싫습니다. 뇌가 내 신체 활동을 억제하는 것.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쉬고 싶지 않습니까? 역시 뇌가 억제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멜 로빈슨은 ''행동하려는 본능이 생기는 순간과 뇌에서 행동을 막는 순간 사이에는 5초의 간격이 있다'' 고 말합니다. 뇌는 편안함을 즐기고 게으름을 추구하려는 속성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떠오르면 그것을 방해할 만한 구실을 찾아냅니다. 이 간격이 5초입니다. 5초가 지나고 나면 해야 할 일을 행동에 옮기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무조건 5초 안에 실행하는 ‘5초의 법칙’ 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5초 내에 행동하면 뇌는 자동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 바로 행동하는 모습, 미루거나 포기하는 모습보다 훨씬 나 자신을 위해서도 유익합니다. 매 순간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지혜로운 눈(영안)이 열려, 다른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돌보면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우리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삶이 되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감사합니다!!!! 요한형제님 막달레나자매님 오소서 성령님 ~~~ 💖💖💖 오늘의 명언 💖💖💖 ''이뤄낸 사람은 자신의 모든 돈, 시간, 에너지를 쏟은 사람이다. 당신은 지금 그것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 GAIA - |
♡ 2057회 사랑하는 벗님! 지금 이 순간 벗님 곁에 누가 있습니까?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5일(바룩서 3장~) 일론 머스크 는 ''상상력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미래가 될 수 있다.''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어느 때인가 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작은 돌 하나까지도 내게는 다 삶의 의미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내 인생의 가장 큰 의미는 내 이웃들 슬픈 이, 기쁜 이, 외로운 이, 미운 이, 착한 이, 가난한 이 이 모두는 내 삶의 이유이다. 내 소중한 이웃이 없다면 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하고 미워하고, 함께 울고 웃고, 괴로워할 수 있기에 내 인생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난한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소중한 삶의 시간들은 너무도 짧다. 한정돼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삶의 순간 순간이 시간속에 묻혀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졸인다. 더 사랑해야지. 더 크게 울고 웃고 괴로워해야지. 이 귀한 삶의 시간들이 그냥 소홀히 지나쳐가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최후만찬 중에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요한 13 -17장)를 묵상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 들려 주시는 말씀으로 제자들이 겸손한 봉사의 삶을 살아라고 당부하시며, 당신이 '섬기러 오신 메시아' 이심을 다시 한 번 보여주십니다. 이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시작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관계의 끈을 관상합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6-17) 예수님께서 행복의 비결을 일러 주십니다. 곧 자기 분수를 알면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에 대한 자각,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힘으로 살아가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아는 사람은 아는 것을 삶으로 표현합니다. 진실한 자기 인식은 겸손의 첫걸음이지요. 세례자 요한이 그 모범입니다. "그분께서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사도 13,25)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해 그분보다 앞서 파견된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라고 착각하거나 기대하며 추앙해도 그는 자기 본분을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어 자기에게까지 이어진 관계의 질서를 겸허히 존중합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20) 우리는 이 세상에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 영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겸손하고 진실한 자기 인식은 자신의 근원을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나를 성장시키고 파견한 무수한 인연과 손길들을 잊지 않습니다. 그 손길들을 거슬러 올라가, 그 끝에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계심을 감지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설교 부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 준비시킨 존재답게 이스라엘의 구세사를 간명하고 명료하게 정리하여 선포합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사도 13,23)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이끌어 오신 하느님께서 때가 차자 당신 아드님을 다윗 가문에서 구원자로 보내셨는데,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예수님에게서 그분을 파견하신 하느님을 뵈어야 했지요. 예수님을 맞아들임으로써 자기들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하느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요. 이제는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도들과 신자들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뵈어야 할 것. 비록 한때 무지와 고집으로 구원자를 배척해 죽였지만, 그 모든 걸 용서하시고 사도들을 통해 내미시는 새 기회의 손길에서 그분 얼굴을 발견해야 할 것. 사랑하는 벗님! 지금 이 순간 벗님 곁에 누가 있습니까? 그에게서 그를 파견하신 예수님을, 예수님에게서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의 얼굴이 보입니까? 우리가 맞아들이는 가난하고 작고 보잘것없고 때로는 성가시고 귀찮고 부담스러운 이들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지요! 병들어 신음하는 생태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차별, 자기 안위를 위해 조장하는 분열과 대립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고요하고 묵묵히 선을 추구하며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파견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과 하느님의 마음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맞아들이는 이들 안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기도생활의 발전 단계를 옛부터 구송기도 - 묵상 - 관상 이라는 삼단계로 표현해 왔다. 또 이러한 기도생활과 관상의 최고 목표는 다름 아닌 <지복직관>, 즉 하느님을 맛대면 하고 뵈옵는 것이라 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만나고 대면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하는 기도생활 가운데서도 하느님 그분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체험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나의 기도가 구송기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인가? 입으로만 묵주기도를 바치고 기도문을 외우지만 실제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그리워하지도 않는 것은 아닌가? 그게 아니면 묵상을 한다고는 하는데 머리로만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소위 명상이라는 훈련들이 이 수준에 머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훈련되지 않으면 묵상이 망상이 되고 온갖 잡생각에 시달리는 시간으로 끝나고 만다. 하느님은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관상의 단계에서는 이제 마음으로 그분을 느낀다. 그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그분의 뜻이 무엇이고 의향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정확하게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뭔가를 느끼게 된다. 이제 뭔가 잡힐 듯 하지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실천이 관상 다음 단계에 놓여져야 한다. 실제로 희미하게 깨닫게 된 것이 명료하게 되기 위해서는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그 베일이 벗겨지면서 신비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그때 하느님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큰소리로 이렇게 가르치신다 .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보기 위해서는 이렇게 매개자가 필요하다. 그 매개자, 중개자가 곧 예수 자신이요. 예수 자신은 우리가 만나는 일상 가운데 현현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우리들의 봉헌과 기도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시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인생이 끝날까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이 시작조차 하지 않을 수 있음을 두려워하라.'' - 그레이스 한센 - |
♡2058회 ''믿음이 없으면 영혼의 평화도 없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6일(다니엘서 1장~) 피터 드러커는 "계획은 바로 다음 단계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내가 알게 된 참된 겸손》책을 읽다가 '겸손은 땅이다.' 라는 대목에 눈길이 멈췄다. 겸손은 땅처럼 낮고 밟히고 쓰레기까지 받아들이면서도 그곳에서 생명을 일으키고 풍성하게 자라 열매맺게 한다는 것. 더 놀란 것은 그동안 내가 생각한 겸손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겸손을 내 몸 높이로 보았다. 몸 위쪽이 아닌 내 발만큼만 낮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겸손은 그게 아니었다. 내 발이 아니라 그 아래로 더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밟히고 눌리고 다져지고 아픈 것이 겸손이었다. 그 밟힘과 아픔과 애태움 속에서 나는 쓰러진 채 침묵하지만 남이 탄생하고 자라 열매맺는 것이었다. 겸손은 나무도 물도 바람도 아닌 땅이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평화’ 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는 상태” 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평화를 누리려면, 지금 이 순간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 은 평화를 누리게 해 주는 힘입니다. 예수님 수난 때 제자들의 모습에서,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산란해져서 평화를 잃어버린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시어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루카 22,45) ‘슬픔에 지쳐’ 라는 말은 지칠 정도로 크게 슬퍼했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평화를 완전히 잃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감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50)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는데, 그 모습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마음과 영혼의 평화를 완전히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거나 배반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두려움에 휩쓸렸을 것.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요한 20,19)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는 것은 숨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뒤에, 자기들도 박해받고 죽을까봐 두려워서 숨어 있었다. 그 모습도 평화를 완전히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 때에 제자들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들에게 특별히 ‘평화’ 의 은총을 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때에는 믿음이 흔들렸고, 마음이 산란해졌고, 평화를 잃었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주신 은총 자체는 제자들 안에 씨앗으로 남아 있었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 뒤에 열매를 맺었다. 제자들의 다음 모습이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5,40-42) 전에는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화를 잃고 숨어 있었던 제자들이었는데, 나중에는 박해를 받아도 굴하지 않고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서 더욱 열성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로 변화되었다. 그 모습은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의 은총의 씨앗이 제자들 안에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운 모습입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라는 예수님 말씀의 표현만 보면, 무슨 물건을 주시듯이 평화를 주시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평화의 은총’ 을 주신 것. 원래 ‘은총’ 이란, 주시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능동적으로 응답해야 결실을 맺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12-13)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은 “평화의 은총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면” 이고, 그 ‘응답’ 은 바로 ‘믿음’ 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영혼의 평화도 없다. 여기서 ‘내 평화’ 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 다른 곳에서 평화를 가지고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평화를 주셨다. 그 평화는 예수님의 것이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이미 예수님께서 누리고 계시는 것이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 예수님은 평화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믿음이 있는 한, 아무도(사탄도, 박해자도) 우리에게서 그 평화를 빼앗지 못합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두 종류의 평화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평화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하느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 인데, 그 평화는 ‘하느님의 의로움’ 을 바탕으로 한 평화이고,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평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혼자서만 편안해도 평화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혼자서만 편안한 것은 평화가 아니고, 모두가 함께 편안해야 평화입니다. 이웃에 대해서 관심 없이 이기적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참 평화가 없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이 어떤 상태이든지 간에 겉으로만 잘 지내면 그것을 평화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아무리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죄 속에서 살고 있으면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는 선에서 오고, 평화 자체가 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잘 먹고 잘 살면서 몸이 편안하면 그것을 평화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참 평화는 몸의 평화가 아니라 영혼의 평화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도 ‘몸의 편안함’ 보다 ‘마음의 평화’ 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마음의 평화’ 와 ‘영혼의 평화’ 는 다릅니다. 마음의 평화는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일 뿐입니다. 영혼의 평화는 “지금 이 순간 주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얻는 영적인 기쁨” 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성령의 능력을 보고, 성령의 은총을 받았음을 아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축복된 하느님의 사람들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 고태공 - |
♡2059회 “표징의 책” 과 “영광의 책”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7일(즈카르야 2장~) 아미트 레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첫걸음이다.'' 《진정한 기도 속에 영광이 있다.》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기도를 통하여 그 분 안에서 포근한 안식처를 발견하게 되며, 우리가 하느님을 찾고자 할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아무리 잘 꾸미고 독창적으로 멋진 삶을 만들어 가려고 하지만 하느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섭리에 의해 살아가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느냐?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힘들게 살아가느냐? 는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달라지게 되며 그 선택은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에 의해 나 자신이 선택해야 할 과제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것은 그 분께서 나에게 인간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은 그 분께서 생명을 가두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무리 많은 것을 꾸며 놓았다하더라도 또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다하더라도 죽음 순간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 빈손으로 태어났고 빈손으로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사랑을 배우기 위한 실습장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내 탓으로 말씀드리지 못하고 때문에 란 말로 자신을 모면하려 했다. 그 순간 진실한 사랑은 깨어져버렸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을 먹고 자라며 사랑을 갈구하면서 죽어 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고통 받으며 울기도 하고 사랑에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참 행복을 찾지 못하고 쾌락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가 고대하던 메시아로 오신 그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언제나 그분과 함께 하시려고 틈만 있으면 조용한 곳으로 가서 그 분 안에 머물려했던 시간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 머문 결과에 의해 부활의 영광을 얻어내셨다. 그 영광을 얻어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지금 이 순간 회개하라" 고 하십니다. 이 응답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길이고 삶입니다. 진정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을 “표징의 책” 과 “영광의 책” 으로 나눌 때, “표징의 책” 이 끝나는 12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 말씀해 온 것들을 요약하면서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의 서두인 ‘로고스 찬가’ 에서부터 줄곧 계속되어 온 ‘빛의 자녀 찾기’ 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간절함으로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2,44). 그것은 “나는” 으로 표현되는 네 번에 걸친 당신 자신에 대한 계시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고 계시하십니다. 그 이유를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46절)이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라고 계시하십니다. 그 이유를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47절)이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나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라고 계시하십니다. 그 이유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49절)이라고 하십니다. 네 번째는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고 계시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50절)이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 계시 선언에 앞서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4)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가 원천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가 원천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 이면에는 아버지의 권능이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는 아버지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이는 “내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요한 7,16)라는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시는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곧 당신은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 속하며, 아버지의 계시자이고. 그래서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되고, 아버지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구원은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말씀하시는 아들의 말씀을 듣고 믿고 받아들이는 일에 달려있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빛 안에서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빛이신 말씀으로 환히 비추고 있다. 아버지를 비춰 드러내주고, 아버지께로 향하여 이끌어 갑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말씀의 엔진인 성령에 따라 힘차게 달려야 할 때입니다. 아멘. 저는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이 주님의 뜻대로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의 신비...’ 의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하는 것이다." - 리차드 파인만 - |
♡2060회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4월 8일(마태복음 6장~) 이승만은 ''고문으로 인해 내 손가락은 으스러져 있었기 때문에 동료 죄수가 성경을 대신 펴 주어 읽었다.'' 《지금 이 순간 시작하고, 지금 이 순간 사랑하자.》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이 순간 하십시오. 오늘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 것이 아니니 지금 이 순간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이 순간 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이 순간 웃어 주십시오.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에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이 순간 부르십시오. 지금 이 순간 결단하고, 지금 이 순간 일어서십시오. 사랑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시작하고 지금 이 순간 바치고 지금 이 순간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여기서 ‘진리’ 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뜻하기도 하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진리의 영’ 이십니다.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또 믿음을 통해서 얻는 구원으로 사람들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신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또는 새로운 것을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앞으로 올 일들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즉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재판을 받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7)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왔다. 구원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일 것이다.나를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것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는 것은 모두 구원의 진리를 거부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 라는 반응을 보였는데(요한 18,38), 그의 말은, “진리 따위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라는 뜻입니다. ‘구원’을 받는 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 등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고, 그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의 영’ 이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관심 갖지 않아서 못 받는 것.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을 그들 자신들이 차단해 버리는 것.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관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자유’는 하느님 나라에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사람의 행복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원’은 ‘참되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것’. 그래서 예수님 말씀의 뜻은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대로 살면 너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통해서 자유를 얻는 것의 반대 상태를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요한 8,34) ‘진리’ 의 반대쪽에는 ‘죄’ 가 있고, 참되고 영원한 자유’ 의 반대쪽에는 ‘죄의 종’ 이 되어서 사는 상태가 있다. 성령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서 진리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도움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 즉 죄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살기를 희망하고, 또 그 희망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죄 속에서 살면서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진리’ 로 표현하신 것은, 당신의 복음이 아닌 것은 모두 ‘거짓’ 이라고 가르치신 것이기도 합니다. 거짓 복음을 믿고 그것을 따라가면 구원이 아니라 멸망을 향하게 될 것. 바오로 사도는 ‘거짓 복음’ 에 관해서 이런 말을 했다.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주니 말입니다."(2코린 11,3-4)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7-9) 사도들이 전해 준 예수님의 복음만이 진리입니다. 자기가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또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복음인 것처럼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 이단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사탄의 수법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복음과 다른 것을, 또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4-6).” 구원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만일에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하와가 뱀의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은 뱀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한 이유입니다.이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신자들이 이단 종파와 사이비 종교의 주장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그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또 자기가 이미 받아들인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리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삶이 오더라도 당당한 믿음으로 “하느님, 이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들의 모든 삶을 선하게 이루어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은총과 축복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지금 이 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그리운 시간으로 만들자.'' - 구글러 김태원 - 💖성령봉사자 박재만 세례자요한 010 - 3878 - 6634 (수필가ㆍ전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말씀추천강사) 💖성령봉사자 류태숙 M.막달레나 010 - 6560 - 7354 (시인ㆍ수필가ㆍ꽃예술설화중앙회장) ■묵상글 나눔 추천■ [성명, 본명, 본당, 휴대폰번호] 카톡이나 문자로 보내주시면 복음과 묵상말씀을 카톡으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 추천 해주신 모든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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