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넘어간다는 건
산을 걸어서 넘어간다는 건
지평의 논리를 버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팡이를 제대로 다듬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소나무 뿌리처럼
드러내놓고 얽힌 바람길을 부는 일이다.
- 이하석의 시집 《기억의 미래》에 실린
시 〈산 넘어가기의 성찰〉 전문 -
* 산을 넘어간다는 건
잘 닦인 탄탄대로를 걷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 아닌 길을 지팡이 하나 들고 길을 내며
가는 것입니다. 바윗길, 벼랑길, 가시덩굴 길도
마다않고 소나무 뿌리처럼 질긴 의지로
묵묵히 걷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지평의 논리를 버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팡이를 제대로 다듬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소나무 뿌리처럼
드러내놓고 얽힌 바람길을 부는 일이다.
- 이하석의 시집 《기억의 미래》에 실린
시 〈산 넘어가기의 성찰〉 전문 -
* 산을 넘어간다는 건
잘 닦인 탄탄대로를 걷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 아닌 길을 지팡이 하나 들고 길을 내며
가는 것입니다. 바윗길, 벼랑길, 가시덩굴 길도
마다않고 소나무 뿌리처럼 질긴 의지로
묵묵히 걷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나를 응시하는 너 말고 이 세상에 누가 더 낯선 시인가?”
반백 년 시력의 자장 안에서 세계의 틈을 응망하는 관찰자 과거에 새겨진 미래의 기억, 이하석 열네번째 시집 출간 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어느덧 시력 50여 년을 넘어선 시인은 그간 갈고닦은 세월만큼 담담하고 그윽한 시선으로 이 세계의 음지陰地를 응시한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는 단어를 조합한 제목 “기억의 미래”에서 그간의 시 세계를 잇고 확장하는 동시에 여전히 스스로를 갱신하고자 하는 시인 이하석의 낯선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2015년 『연애 間』(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하며 ‘기억’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시들을 묶어낸 바 있다. 기억의 흔적을 되짚고 반추하는 시편들은 지나간 과거를 지우려 노력할수록 그 얼룩은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라는 성찰을 담아낸 한편, 기억을 기록하는 이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이를 정확한 문장으로 응시하는 시인의 원숙한 내면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른 2023년의 봄날, 시인은 한층 넓어진 시선과 깊어진 사유로 ‘기억의 미래’를 노래하고자 한다. 과거에 갇혀 있는 ‘기억’의 한계를 넘어 그다음의 날들을 꿈꾸고자 한다. 그것은 애정을 갖고 무언가의 과거와 현재를 가만히 바라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왜 서로 낯선 시인가? 언어여,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서 말을 비틀기만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비시적이면서 가련한 존재인가? 다만, 봄날 저녁의 보랏빛과 붉은색, 노란색이 뒤섞인 노을이 꽃 핀 산딸나무를 물들이는 걸 있는 그대로 본다.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거기 앉아 지저귀는 후투티의 목청은 애틋하게 쉬어 있다. -‘뒤표지 글’ 부분 |
작가의 말전반부가 삶/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후반부는 구름의 주소록? 어쩌면 다 구름의 주소록? 나는 참 멀리 와서도 여전히 제자리에서 주소가 없느니. 2023년 봄 이하석 |
저자(글) 이하석시인 이하석은 194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 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녹』 『고령을 그리다』 『것들』 『상응』 『연애 간』 『천둥의 뿌리』 『향촌동 랩소디』 『다시 고령을 그리다』, 시선집 『유리 속의 폭풍』 『비밀』 『고추잠자리』 『환한 밤』, 육필시집 『부서진 활주로』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도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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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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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말라빠진 약성藥性.
달콤한 시럽을 밀봉한 채 납작하니 뒤틀린 사상의 봉투가 바람 속에 내던져져 있다. 미래의 답장은 당연히 올곧게 선 나무로 무성해진 소식이겠지만 그 시작이란 게 저렇듯 얇은 질문의 꼬투리에 불과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 센 모성母性으로부터 쫓겨나 바람 속에 내버려진 열매의 답서를 우체통에 편지를 넣듯이 나의 뒤뜰에 심는다. -「조협皁莢」 전문 틈만 나면, 찻길과 인도의 감전感電으로 피워낸 제비꽃들이 바람에 왁자지껄하다. 마스크 쓴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들도 모르게 그 선 밟은 채 버스를 기다린다. 그게 무에 그리 위험한지 버스보다 먼저, 기우뚱거리며 질병 관리 본부의 방역차가 달려와 또 소독제를 뿌린다. -「틈만 나면」 전문 갈라져서야 서로 불러대면 귀가 난청이 되지만 서로의 시선들에 사뭇 틔어 있기에, 우리 사이 철조망이 자라도 바람에 비에, 서로의 숨결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녹슨다네. 바람아 흔들어보아라. 서로 넘나드는 번역 안 해도 되는 푸나무와 바람의 말로, 사뭇 틘 귀와 눈 서로 철조망 통하기에, 아직 우리네 사랑은 아는 도둑처럼 속지 않고 서로 훔친다네. -「서로」 전문 사랑은 시로 할 수밖에 없는 것. 시의 말로 약속 잡고 결국 더 시선을 건드리지. 그런 음지陰地지. 사랑은 시간의 공간이어서 잔 이별마저 시로 돌아보는 거야. 너는 내게 눈웃음 짓는다, 나무 의자 수리하는 시인같이. 그런 시는 도대체 무슨 눈길일까? 퇴고할 수 없는, 그래, 나를 응시하는 너 말고 이 세상에 누가 더 낯선 시인가? -「낯선, 시」 전문 |
출판사 서평“거기 앉아서, 나도 내다보는 자,”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들 블루 콤마의 주인도 내다보는 자에 속하지만, 자주 카페 밖으로 나가 강변 풍경이 되어서 담배를 피운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그럴 때마다 연기가 급히 그의 몸을 부풀리다가 위축시킨다. 제 생을 제대로 왜곡시킬 줄 아는 것 같다. 나도 카페의 손님들도 그 모습을 멍하니 내다본다. 하지만 결국, 서로 빤히 들여다보이는 느낌이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서로 울컥해진다. -「블루 콤마」 부분 강변 카페인 ‘블루 콤마’의 손님들은 유리창 안쪽에 앉아 풍경을 내다본다. 때로는 이 카페의 주인마저 “강변 풍경이 되어” 전망된다. 그가 담배를 피우며 숨을 쉴 때, 연기가 “그의 몸을 부풀리”고 “위축시”키는 장면은 ‘연기’에 독자적인 시선을 불어넣음으로써 이 시의 주체와 객체를 또다시 전도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문주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시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모두 보는 주체이자 대상으로 세계에 참여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인간 중심의 위계적 감수성이 사물의 시각에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풍경의 세계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흙 속에 그의 씨가 숨겨졌고, 그건 나의 지금으로 피어난다. 봄이 그걸 밝힌다. 이 당연한 역사가 제 화사한 응시의 그늘을 드리운다. -「제비꽃 역사」 부분 우리가 이 세계를 보고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사물 각각이 스스로를 보여주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문명 비판적 사유나 생태적 상상력에 국한하지 않는 이하석의 시 세계를 짐작게 한다. 이는 현실의 구체적인 고통을 아름다운 언어로 좌시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특히, 이번 시집의 3부는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풍경을 집중적으로 그려낸다. 1950년 일어난 ‘대구 가창골 민간인 학살’(「가창댐 아래서」 「가창댐」), 5.18민주화운동(「자장가」) 등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시편들은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 시기의 비극 앞에서 “고스란히 눈 뜨고”(「호명 2」)자 하는 시인의 단호한 결의를 증언한다. “버려진 것들은 늘 더 버려져, 있다.” 어둠이 내리면 들려오는 소리 밤이 낮은 소리들로만 정밀하게 얽혀 짜입니다. 쌓아놓은 도서관의 책들에서 말들이 부식되어 뭇 시간들에 녹아들 듯 오래 펼쳐져 펄럭이는 늪은 새로 말문을 틉니다. 내가 부르는 소리들은 동심형으로 늪을 확장하지만, 매번 수면과 가시연잎의 틈이 더 조밀해집니다. -「우포늪」 부분 이하석의 시에서 ‘깊은 밤’은 주체가 된 사물이 율동하는 시간이다. 밤이 찾아오면 우포늪의 생명들이 새로 말문을 튼다. “낮은 소리들”이 “수런대는 고요 속에” 자리한 우포늪의 ‘틈’은 생명들이 오가고 부대끼는 길로서 활력을 불어넣는다. 소리의 파장이 커질수록 생명들의 사이는 긴밀해진다. 또 다른 어느 밤엔 목줄이 풀린 개가 “어둠을 향해 으르렁댄다”. 모두가 잠든 밤 쓰레기장을 뒤지는 개는 “이 동네가 버린 어둠들”(「개」)을 발각해낸다. 버려진 사물들의 종착지인 쓰레기장에 “가로등 불빛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개의 우짖음은 그곳을 외면하려는 ‘나’에게 비릿한 공포감을 유발한다. 시인은 흔히 생명을 빨아들이는 존재로 인식되는 늪과 더럽고 음습한 쓰레기장에 생명들의 ‘소리’를 채우며 어떤 ‘틈’을 마련해낸다. 삶의 뒤편에 숨겨진 고요한 곳, 달리 말해 쓸쓸하고 적적한 곳들을 부러 찾아가 그곳의 숨겨진 생기를 들춰낸다. 이는 시인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폐허의 적요가 피우는 꽃”(뒤표지 글, 『것들』)이 되어 삭막한 음지를 밝힌다. 이러한 시인의 자성은 “사랑은 시로 할 수밖에 없는 것”(「낯선, 시」)이란 오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환하고 따뜻한 사랑이 아닌, “캄캄한 뜨거운 네 속에서 나를 응시하며”(「뒤늦은 처음」) 일구는 사랑일 것이나, “아직도, 간절히, ‘말’하고 싶은”(뒤표지 글) 시인은 한껏 주름진 얼굴로 “그런 음지陰地지. 사랑은”(「낯선, 시」) 하고 읊조릴 수밖에 없다. |
리뷰 -cr********* 이 시집은 가볍지만 무게는 엄청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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