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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과 비움 /윤동주

- 권효진의 시집 《카덴자의 노래》 에 실린시 〈꽃이 별을 닮은 이유〉 전문 -

꽃이 별을 닮은 이유


꽃이 별을 닮은 이유는
밤마다 별을 보고
별을 꿈꾸기 때문이다

별을 보며
하늘 꽃밭을 꿈꾸고
별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오직 별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 권효진의 시집 《카덴자의 노래》 에 실린
시 〈꽃이 별을 닮은 이유〉 전문 -


* 사랑하면 닮습니다.
서로 바라보아도 닮습니다.

얼굴도 닮고, 미소도 닮고, 마음도 닮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함께 꾸면 꿈도 닮습니다.
별이 아름답게 빛날 때 꽃도 빛나고
꿈도 더불어 빛이 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1부. 햇빛의 씨앗

거울 속의 나 / 무언無言의 도시 / 노래의 시원始原 /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람 / 날마다 해가 뜨는 이유 / 나이테 / 혀 / 바람 / 구름의 마음 / 입속에 사는 개구리 / 알파고와 달 / 바다와 거북

2부. 도란도란

그릇 / 도란도란 / 딱새와 박새 / 두부 먹는 저녁 / 장화를 신으며 / 귀가 / 창가의 고욤 / 꽃이 별을 닮은 이유 / 자벌레의 일기 / 거북의 눈물 / 고요와의 입맞춤 / 빗방울 / 작은 새

3부. 어두운 길 홀로 밝히며

경칩 / 사월 꽃비 / 해 저물녘 / 오월의 숲 / 사과 한 알 /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가네 / 우리가 만난 날 / 아가에게 / 엄마의 무릎 / 하지夏至 / 카덴자의 노래 / 고독의 심장 / 쟈허히티 헤허에 부는 바람

4부. 어여쁜 꽃밭 하나

자작나무에게 / 고요의 이름 / 눈 내리는 아침 / 망종芒種에 내리는 비 / 커피콩을 볶으며 / 나만의 꽃밭 /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 만돌린을 켜보세요 / 버선발로 뛰어나가는 아이처럼 / 꽃의 침묵 / 열매 맺지 못한 사람의 후회 / 염화미소拈華微笑

5부. 말갛게 미소 짓는

꽃의 비밀 / 아주 가끔 / 사랑의 인사 / 마음이 와닿을 때 / 비엔나커피 / 칠월의 인사 / 씨앗의 말 / 춤추는 바다 / 성에 낀 아침 / 달콤한 고요 / 깊은 마음 / 황혼 / 빛바래다
권효진 소설가의 첫 시집이다. 5부로 나뉜 63편의 시는 자연을 통해 얻게 되는 침묵과 고요, 이타적 사랑과 기쁨을 담고 있다.
 
시를 잃어버린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시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다는 것을

내가 시를 떠나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시를 떠난 이유를 알았다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시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오래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시가 사랑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말」중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
고요한 가운데 침묵으로 오는
우주의 노래
---「1부 노래의 시원始原」중에서

거북이 흘리는 눈물은
바다의 눈물

숱한 울음을 다 받아주고도
바다가 의연한 것은
거북이 있기 때문이다
---「1부 바다와 거북」중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만나는
새벽

완전한 것은
언제나 고요하다
---「2부 고요와의 입맞춤

눈 속의 성자가 웃을 수 있었던 까닭은
고독의 심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대 아직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스산한 그 길을 따라가라
심장으로 다가서라
---「3부 고독의 심장」중에서

아무도 없는 초원의 끝에 다다른 말이 보이거든
만돌린을 켜보세요
그때 말은 만돌린 소리로 울음 울 거예요

달의 그리움을 알아버린 말은
만돌린 소리로 울음 우는 법을 배운답니다
---「4부 만돌린을 켜보세요」중에서

오늘 밤은 유난히 춥네요
지금 저는 난로 속에 마른 장작을 집어넣고
불을 지피고 있어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숲속 오두막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혼자 불을 지피고 있답니다

오늘은 바람 소리도 제법 사납군요
하지만 저는 담담하게
밤의 어둠을 지킵니다
어둠의 숲속에 혼자 있지만
결코 두렵지 않아요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외롭지도 않아요

아직 그 사람은 오지 않았고
언제쯤 올지도 알 수 없지만
저는 마냥 기다리기로 합니다

언젠가 그 사람이 이곳을 찾아온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어요
정말로 오래 기다렸다고요
---「5부 사랑의 인사」중에서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혼자 서 있으면
춤추는 바다를 볼 수 있어요

고래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내게로 다가오는 바다

햇살이 투명한 날엔 바다로 가보세요
그곳에 가면
춤추는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5부 춤추는 바다」중에서
완전한 것은
언제나 고요하다


도시는 고요하다. 광고와 뉴스가 넘쳐 살아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속삭이는 말조차 광고의 문장이고, 영혼 없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도시엔 커다란 전광판이 사람의 말을 대신해 밥을 먹고, 인사하고, 포옹을 한다. 어쩌다 진심인 듯한 속삼임도 결국 죽어가는 말의 환영일 뿐이다.

그런 도시에 사는 시인의 입 속에는 혀와 수많은 개구리가 산다. 주체하기 힘든 긴 혀가 무서워서, 입을 열기만 하면 순식간에 밖으로 튀어나와 지껄이는 개구리가 무서워서 시인은 입을 꼭 다문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만나는 새벽이 오고, 시인은 고요와 입 맞춘다.

자연은 고요하다. 종잡을 수 없는 구름의 마음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생이라는 게 고작 한 번 움츠렸다가 한 번 길게 몸을 펴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자벌레는 편안하게 누워 별을 본다. 바다 대신 눈물 흘리는 거북의 울음은 소리가 없다. 적요의 아침이 오고, 소리 없는 비 한 방울에 온 우주가 떨린다.

그대 카덴자여!
용기를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떠는 영혼이여!
이제 숲에서 빠져나와 드넓은 광야로 나아가라!
광야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대 영혼이 어디로 가려는지 깨닫게 될 테니
(「카덴자의 노래」 중에서)

고요에 귀 기울인 시인은 침묵으로 오는 우주의 노래를 듣는다. 인간이 지구 위의 딱새나 박새쯤 되는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물처럼, 향기처럼, 사랑처럼 투명하게 스미는 고요는 달콤하다. 시인은 홀로 우뚝 서서 비로소 영혼이 어디로 가려는지 깨닫는다. 길을 잃고 숨은 영혼, 카덴자에게 깨어나 위대한 영혼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권효진 시인은 《한국소설》에 단편소설 「사냥의 추억」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2020년 소설집 『좀마삭에 대한 참회』를 출간하며 자연의 생명력으로 치유받는 인간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시집 『카덴자의 노래』에서는 소설가가 아닌 시인 권효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언어 이전의 마음에 가닿고자 하는 바람을 꽃과 나무, 바다와 거북 등 자연을 통해 표현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내면의 고요함을 구하고, 고요 속에서 얻게 되는 기쁨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인은 그 내적 성찰의 여정을 언어적 기교나 꾸밈 없이 시에 그대로 담았다. 자연을 통해 얻게 되는 침묵과 고요, 이타적 사랑과 기쁨이 담긴 시는 잔잔하면서도 다정하다.

홀로 등불 하나 들고 가는 이 외롭지 않네
그의 뒤에는 내가 있고,
내 뒤에는 또 누군가가 있으니
서로가 그런 줄 알면서 가는 길
아무도 외롭지 않네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가네」 중에서)

우리가 햇빛의 씨앗이기에 오늘도 해가 뜬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인은 어린 새싹을 보듯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사랑하는 별을 닮은 환한 꽃이었다가 어느새 빛나는 사과 한 알이 된다. 시인은 달콤하게 잘 익다 보면 언젠가 나무가 될 것이라 말한다. 고요의 기쁨을 좇아 힘차고 자유롭게 걸어가는 시인은 외롭지 않다. 이 시집을 펼친 독자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카덴자의 노래를 듣고 시가 사랑인 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