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 하느님 없이는 마음의 평화도 없다. - 칸탈라메사 추기경 - 1독서: 사도 15: 1-2.22-29 2독서: 묵시 21,10-14.22-23 복음: 요한 14: 23-29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이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평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른 민족이나 국가 간의 전쟁과 갈등이 없는 외적인 평화만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은 평화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언급하신 평화입니다. 여기에서 그분께서는 또 다른 내적 평화, 마음의 평화, 그리고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바로 다음에 덧붙이는 말씀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이것이 바로 다른 곳에는 없는 근본적인 평화입니다. 수십억 방울의 더러운 물이 깨끗한 바다를 만들 수 없고, 수십억 개의 불안한 마음이 인류를 평화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는 “샬롬”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눴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는 부활절 저녁에 그분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인사한 방법이며 사람들에게 인사하라고 명령하신 방법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샬롬은 단순히 전쟁과 불안이 없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웰빙, 휴식, 안전, 성공, 영광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심지어 “하느님의 평화(필리 4:7)”과 “평화의 하느님(로마 15:32)”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냅니다. 찬송가 중 하나에서 교회는 삼위일체를 “평화의 바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마음의 평화가 하느님 없이는 그분 없이는 결코 완전하거 영원히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는 많은 사람들이 신곡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구절로 이 모든 것을 요약했습니다. “그분의 뜻은 우리의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반대가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혼란, 근심, 두려움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말은 쉽지만, 누군가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집어삼키고 작은 평화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불안과 초조함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이러한 것들에 기질적으로 더 많이 노출됩니다. 위험이 있으면 이는 확대되고, 어려움이 있으면 이는 100배로 불어납니다. 모든 것이 불안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악에 대한 만병통치약을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정도는 우리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상태이며, 우리가 훨씬 더 큰 힘과 위협을 받도록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해결책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이루는 장은 다음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해결책은 바로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스탈린그라드에서 온 마지막 편지”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투옥된 독일군 병사들이 보낸 편지로, 러시아군의 마지막 공격으로 모두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 호송대에서 쓰여진 편지입니다. 전쟁 후에 발견된 이 편지 중 하나에서 한 젊은 군인은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사에서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할 때, 무엇을 바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 건강,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평화”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고모님 피정으로 복음나눔 없습니다 예비자 교리 시작되었습니다 신부님 목요일 미사마치고 저는 일요일 미사 마치고 성령께서 함께 해주심를 알게 해주소서 |
* 부활 7주 수요일 예수님의 고별사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떠나시는 날이 얼마남지 않자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십니다. 마치 유언처럼 말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회칙을 충실하게 지키라는 마지막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은 죽기전에 가장 중요하고 이것만은 꼭 지켰으면 하는 한 가지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고 싶던 마지막 말씀은 다름 아닌 하나됨 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사실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성격도 제각각 출신성부도 가지가지 어느 하나 공통되는 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누가 잘났나하며 싸우곤 하였죠. 이런 제자 공동체를 보면서 예수님도 참 걱정이 많이 되셨을 겁니다.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뭉쳐지지 않는 모래들이 과연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물과 기름은 하나가 될 수 없죠. 뭉쳐지지 않는 모래들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화학물질 가운데 계면활성제란 물질이 있습니다. 이 물질은 우리가 쓰는 비누, 세제, 치약등에 포함된 물질입니다. 계면활성제의 분자를 살펴보면, 계면활성제 양 끝에는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쪽에는 물을 좋아하는 친수성 이온이, 반대쪽에는 기름을 좋아하는 친유성 이온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과 기름이 계면활성제를 만나면 계면활성제의 친수성이온은 물쪽에 붙어 표면장력을 약화시키기고, 친유성 이온은 기름에 붙어 기름의 표면장력을 약화시켜 물과 기름을 하나가 되게 합니다. 이번에는 뭉쳐지지 않는 모래를 하나가 되는 방법을 볼까요? 모래는 진흙과는 달리 물기가 없기에 뭉쳐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릇에 담으면 모래는 하나가 되죠. 모래 자체로는 하나가 될 수 없지만 그릇에 담겨있을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름과 물 처럼 하나될 수 없는 사이가 있음을 체험합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모래알처럼 서로 반목하며 흩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기 어려운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 이 사람들도 하나가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물과 기름 같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방법, 모래알처럼 뭉쳐지지 않는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의 이름 외에는 없습니다. 물과 기름 같은 너와 나 사이에 계면활성제와 같은 아버지가 존재하시면 너와 나는 하나가 되고, 흩어지는 모래알같은 우리를 그리스도라는 그릇에 담으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 하나가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출처 : 가르멜
글쓴이 : 유스띠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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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의 스트레스 처방 1. 어떠한 긴장이든 기도에 가져간다. 2. 자신이 불편한 것을 분명히 알고 기도하기 3. 불편한 것을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용기로 주님께 아뢰기 4. 슬픔을 감사로 바꾸는 훈련을 열심히 하기 5. 몸과 정신, 심리적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 6. 다스리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없다. 그 원인을 찾아라. |
미사의 은혜/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