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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 3월 6일 사순 제4주일 (루카 15,1-3 11-32)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돌아온 작은아들 이야기는 복음서 내 수많은 비유와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더불어 죄인인 우리 각자를 향한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이 너무나 명확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비의 해’ 동안 틈만 나면 반복해서 읽고 묵상해야 할 복음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을 한 명 한 명씩 그려보며 생각해보는 것도 아주 좋은 묵상기도 방법입니다. 한 번도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뼈 빠지게 일만 했던 큰아들은 셋 중에 가장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온 몸과 마음이 동생과 아버지를 증오하는 마음과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무엇에 큰아들은 앞서 아버지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마음과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져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루카 15,29) 뿐만 아니라 본인 입장에서 너무 수치스러워 평생 감추고 싶은 동생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돌아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30) 하늘을 찌르는 교만과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큰아들은 비단 열심히 일했지만 가장 큰 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 살아있어도 참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작은아들은 보십시오. 비록 챙겨나간 유산을 다 탕진한 후였지만 가슴을 치며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큰 죄인이 있겠는가?’하면서 외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주십시오.” (루카 15,18) 여기서 우리는 자비하신 하느님 앞에선 한 죄 많은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노력 한 가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 큰 아들의 이미지 안에도 우리의 모습이 들어있고 작은아들의 이미지 안에도 우리의 모습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큰아들에서 작은아들로 넘어가려는 노력입니다. 아무리 판공성사 보라고 외쳐도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판공성사 본지는 5년, 10년이 넘었는데도 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길이길이 남을 패악을 저질러놓고도, 무고한 백성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슬픔과 생채기를 남겨놓고도 너무나 의기양양하게 활보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 큰 아들입니다. 큰아들에서 작은아들로 넘어온 이후에 또 한 가지 과제가 생깁니다. 날이면 날마나 ‘나는 큰 죄인이다.’ ‘나보다 더 큰 죄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라고 외치기만 하면서 살아서는 또 안 될 일입니다. 이제는 작은아들에서 아버지에게로 넘어갈 순간입니다. 죽을죄를 짓고 돌아왔지만 두 손을 활짝 벌리고 뛰어나와 맞이하신 아버지의 크신 자비를 온 몸으로 느낀 작은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그 한없는 따뜻함, 그 극진한 환대를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용서받은 자로서 이제 밥 먹듯이 용서할 때입니다. 치유 받고 구원받은 자로서 이제 틈만 나면 치유와 구원의 손길을 펼칠 때입니다. 탕자의 귀환을 통해 드러난 영적 순환(큰아들☞작은아들☞아버지), 그것은 오늘 우리네 일상생활 안에서 부단히 되풀이 되어야 할 아름다운 스토리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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