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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밭을 일구면서..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밭을 일구면서..> 3월 2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마태 5,17-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밭을 일구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멀리서,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는 조금도 보이지 않더니,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니 그 안에 얼마나 ‘작은 것들’ ‘소중한 생명’들이 숨어있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물웅덩이에는 벌써 뭔지 모를 작은 알들이 우글우글 거립니다. 적당히 부드러워진 땅 속에는 새끼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댑니다. 이웃 밭과의 경계선으로 심어놓은 나무 가지 마다에는 수많은 작은 꽃들이 보송보송 매달립니다. 바닥에는 아주 작은 노란 풀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오릅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 ‘작은 것’들의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만 타고 다닐 때는, 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보지 못할 눈부신 광경입니다.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개발 논리, 속도전에 젖어 살아와서 그런지 너무 큰 것, 빠른 것, 대단한 것, 뛰어난 것, 앞서 가는 것만 선호합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것, 평범한 것, 소박한 것, 가족적인 것,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과 가치는 어느 새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신앙생활 안에도 많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 안에서도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다닙니다. 특별한 분위기만 선호합니다. 말씀 좋고 ‘기도빨’ 세다는 곳만 순례합니다. 요즘 몇 군데 사순특강을 다니면서 단단히 느끼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본당 안에서 특강은 한 번씩 분위기를 바꿔주는 외식이나 간식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명강사라 할지라도 반짝 한번 왔다 가는 것입니다. 특강 한번 듣는다고 뭐가 특별히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 간식이나 외식이 아닌 주식은 본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매일의 미사입니다. 매일의 간단한 아침 저녁기도, 이것 역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하루 세 번 간단히 바칠 수 있는 삼종기도, 하루 기본으로 한번 정도는 바치는 묵주기도, 수시로 바치는 화살기도, 매일의 꾸준한 작은 봉헌, 일상적인 십가가의 수용, 이런 것들이 사실 신앙의 기본이자 근간입니다. 여기 저기 특별한 곳, 대단한 곳, 신기한 곳, 줄기차게 찾아다녀봐야 그 끝은 언제나 허탈함이며 공허함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작은 것, 일상적인 것들을 중요시 여기고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큰 것, 대단한 것도 중요시 여기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것, 반복적인 것, 구체적인 것,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충실하게 해나가야겠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 큰 사람, 대단한 사람들도 잘 대우하고 환대하지만 내 가장 가까운 가족, 형제, 이웃, 직장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작고 소소한 일상들에도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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