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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소멸의 아름다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소멸의 아름다움> 3월 1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마태 18,21-35)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저, 도서출판 나무심는 사람들 출간) 이란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한때 장래가 촉망되는 문인으로서 이제 막 생의 활기찬 걸음을 내딛으려던 순간, 갑자기 "죽어가는 기술(Art of dying)"을 배워야 하는 암담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장미 빛 꿈을 모두 접게 된 저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겪게 되었는데, 그로 인한 고통이나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웠고, 루게릭병이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에 걸려 추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이토록 극심한 고통 속에서 번민하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즐기고 떠들어대는 것, 역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극심한 고통가운데를 헤매던 어느 순간 저자는 자신의 삶 한 귀퉁이로부터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 스며들어 옴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은 결국 성장을 위한 신비"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진실로 용서하고 진실로 마음을 열면 이 세상은 문제덩어리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 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자는 행복한 삶을 엮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삶의 원리는 "낙법(落法) 배우기(learning to fall)"임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머지않아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은 사라지므로 미리 낙법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의 좌절, 체력의 저하,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병이나 죽음...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인생의 낙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낙법이란 다름 아닌 "놓아버림", "자신과 이웃에 대한 놓아버림", 다시 말해서 자신과의 화해이며, 이웃에 대한 용서입니다. 평소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 성취,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놓아버리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억울함, 상처, 분함, 복수심, 시기심, 경쟁심 등을 모두 놓아버리는 순간, 다시 말해서 용서하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니 490번을 용서해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보고 인간이 아니기를 바라시는 말씀, 바보가 되기를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은 우리의 용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강한 어조로 "용서의 일상화"를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용서는 지극히 어려운 덕행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가 겪게 되는 영육간의 고통을 잘 내다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 참된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다. 용서를 통해서 진정한 새출발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통해 성장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이웃들을 용서하려는 노력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노력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입니다.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을 놓아주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 자신과 화해하지 못해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우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이웃에 대한 용서도 중요하지만,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하고자 노력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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