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앞세우기보다..>
2월 23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마태 23,1-12)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오늘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당대 유다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층 인사들이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그릇된 처신을 신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질타의 대상이 무엇이겠습니까?
행동이 조금도 뒷받침해주지 못하던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말만 앞섰지 몸이 전혀 따라주지 못했던 그들의 이중성이었습니다.
속과 겉이 다르던 이율배반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난 설 연휴 동안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주방 자매님의 빈자리가 참으로 크게 느껴지던 연휴였습니다.
밑반찬은 넉넉히 준비해두고 가셨기에,
밥과 국만 잘 만들면 별로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밥이 문제였습니다.
‘형제들이 밥이나 제대로 한번 지어봤을까’,
의심하면서도 한번 맡겨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기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그럼 그렇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물 높이를 잘 못 맞췄는지 거의 ‘꼬두밥’이었습니다.
밥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 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러려니 하고 참았습니다.
삼시세끼 식사 시간은 어찌 그리 자주 찾아오는지요.
어느새 다음 식사 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보나, 식당에 들어갔었는데,
이번에는 질척질척 죽밥이었습니다.
심기가 많이 불편했지만, 꾹 참고 먹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또 다시 다음 끼니때가 왔습니다.
형제들을 집합시켰습니다.
그리고 우선 단단히 야단 먼저 좀 쳤습니다.
“자네들,
도대체 다 큰 사람들이 어떻게 밥도 제대로 못하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거 사람이 살수가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특별 밥 짓기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잘들 보라구.
쌀은 이렇게 씻는 거야.
너무 빡빡 씻지 않아도 되.
그리고 밥솥의 물은 손등 반 정도 오게,
이 정도로 하는 거야.
다들 알아들었어?”
“예!”
밥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떡하지?
야단치지 말고, 조용히 밥만 했었어도 좋았을 텐데...’
드디어 밥솥뚜껑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형제들의 시선이 일제히 전기밥솥으로 향했습니다.
결과는?
차라리 지난 두 번이 훨 나았습니다.
이건 죽도 이런 죽이 없었습니다.
거의 왕자표 ‘딱풀’ 수준이었습니다.
상당히 어색한 순간이 흘렀습니다.
형제들이 슬슬 웃기 시작하더군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던 저는 그랬습니다.
“거 참, 이상하네.
아무래도 전기밥솥에 문제가 있는가봐.
참 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삶도 그랬겠지요.
큰 소리 뻥뻥 쳐댔지만 결과는 ‘개∼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말만 앞섰습니다.
실속이 없었습니다.
사순절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말없는 행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쓰잘대기’ 없는 빈말보다는
깊은 침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외면에 신경 쓰기보다는
영혼의 내면으로 향하는 침묵의 여행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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