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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의롭다는 것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의롭다는 것은..> 2월 19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마태 5,20-26)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주변 열강들의 외세에 시달려왔던 우리 민족이기에, 숱한 나날 동안 식민 통치에 이력이 난 우리들이기에, 긴 세월 동안 군부 통치에 시달림을 받아온 우리들이기에 '의로움'이란 단어만 보면 즉시 뇌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강함' '결사항전' '혈서' 같은 말들입니다. 의로운 사람 하면 즉시 떠오르는 대상은 불의를 보면 절대 못 참는 사람, 삭발하고 머리띠 두른 사람, 길거리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한자 의(義)자 분석해보면 재미있습니다. 의(義)자는 양(羊)과 나(我)의 합성어입니다. 결국 의로운 사람은 자신 안에 한 마리 양이 들어있는 사람입니다. 양은 어떤 동물입니까? 순한 채식동물, 염소와는 달리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동물, 흠없고 순결한 동물, 겸손하고 순응적인 동물의 대명사입니다. 성경 안에서도 양은 염소와 대비되어 천국의 동물, 하느님의 동물로 묘사됩니다. 이는 우리가 장례미사 때 마다 읽게 되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이 오면 양은 오른 쪽에 염소는 왼쪽에 갈라놓듯이 의인은 오른쪽에 악인은 왼쪽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의롭다는 것은 강경일변도, 투쟁일변도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기보다 겸손하다는 것, 순수하다는 것, 순응적이라는 것, 부드럽다는 것, 하느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학자들의 표방했던 의로움은 거짓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은 한없이 뻣뻣했습니다. 그들의 콧대는 하늘 높은지 몰랐습니다. 그들의 뒤는 구리고 또 구렸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철저하게도 이중적이었고 위선적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꿰뚫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때로 이 한세상 살아가다보면 불의 앞에 날 선 대립과 섬뜩한 비판, 강한 투쟁과 강직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부드러움과 온유함도 필요합니다. 따뜻한 배려와 측은지심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행적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얼마나 자상하고 부드러우셨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섬세하고 다정다감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예수님의 한없는 부드러움이 우리 인류를 구원한 것입니다. 그분의 한없는 측은지심과 연민의 마음이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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