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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그리스도인의 야망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그리스도인의 야망> 2월 24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마태 20,17-28)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 사도 어머니의 ‘인사 청탁’ 사건은 생각할수록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사도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베드로 사도와 더불어 최초로 불림 받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총애했던지 타볼 산 변모 사건 때도 이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오셨습니다. 두 아들의 스승님을 찾아온 극성 어머니가 그냥 오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아마도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오셨을 것입니다. 한 손에는 질 좋은 토종꿀 한 병, 그리고 다른 손에는 씨암탉 한 마리가 든 보자기를 들고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보아하니 어머니는 두 아들과 사전 조율이 있었던가 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들과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무엇인가 청하였다.” (마태 20,20) “무엇을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어머니는 너무나 당당하게 청하는데 그 내용을 들으신 예수님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두 제자는 어머니를 등에 업고 노골적인 인사 청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마태 20,21) 참으로 어색한 분위기 앞에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갈 길이 먼 두 제자 앞에서 한숨이 다 나왔을 것입니다. 두 제자는 용감히 부르심에 응답하였지만 아직도 그들의 성소는 정화와 쇄신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는 세속적인 야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제자는 스승께서 염두에 두고 계시는 새로운 왕국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여타 다른 지상 통치권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있었으며, 곧 도래할 그리스도 왕국에서 넘버 2 자리와 넘버 3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제자가 더 비겁한 것은 그런 야심이 있었으면 솔직하게 남자답게 직접 스승님께 말씀 드렸으면 덜 창피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스승님, 나중에 아시죠? 저 꼭 한 자리 부탁합니다!”라고 청했으면 나았겠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치사하게도 어머니까지 들러리로 세워 스승님께 인사 청탁을 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토록 수치스런 두 핵심제자의 치부를 마태오 복음사가는 감추거나 삭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서가 허위나 과장이 아닌 진정성으로 가득한 참된 생명의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직도 세상의 물이 덜 빠진 두 제자들, 아직도 겸손의 덕에는 도달하지 못한 제자들, 아직도 영적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을 향한 스승님의 가르침이 유난히 날이 서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6-27) 가톨릭교회를 가장 좀먹는 사람들은 출세주의자들입니다. 교회를 통해 개인적인 야심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예수님과 교회를 욕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종교는 개인의 욕심을 실현시켜주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과 동일시되려는 야망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이웃을 섬기려는 욕심이어야 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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