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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지속적인 겸손의 중요성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지속적인 겸손의 중요성> 3월 5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루카 18,9-14)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별것도 없으면서 스스로를 엄청나게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천하가 자기 것인 양 자신만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까놓고 보면 거기서 거긴데 ‘나처럼 잘 나가는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 그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사람입니다. ‘인생 한 방’이라고 순식간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근본적으로 영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지속적인 인생의 상승곡선만 그리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물 좋은 자리’ ‘대단한 직책’에 올랐다 해도 불과 5년 10년이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변화무쌍한 이 세상 안에서 근원적 결핍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크게 넘어지거나 수직낙하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이 겸손의 덕입니다. 한번 두 번 겸손하고 말 일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겸손이 필요합니다. 특히 내 인생이 온통 장밋빛일 때, 만사가 술술 잘 풀릴 때 우리는 더욱 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겸손의 덕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겸손의 의미는 차원이 다릅니다. 겸손의 덕을 쌓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 또 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은 얼마나 큰 것인가, 그분의 업적은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크신 하느님에 비해 나란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삼라만상을 좌지우지하시는 그분 앞에 나의 힘, 나의 능력, 나의 지식은 참으로 보잘 것 없구나, 참으로 초라하구나, 하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아무리 뛰어봐야 그분 손바닥 안이로구나, 결국 내가 살길은 그분 자비의 품안에 안기는 일이로구나, 하며 철부지 어린이처럼 그분께로 다가서는 것이 겸손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도에도 겸손의 덕이 요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만만하던 바리사이의 기도를 완전히 깔아뭉개시고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한 채 성전 기둥 뒤에 숨어 서서 바치던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사실 바리사이의 신앙생활은 경탄할 만 것이었습니다. 우리처럼 일 년에 두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빼먹지 않고 단식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어렵다는 십일조를 꼬박꼬박 실천했습니다. 윤리 도덕적으로도 깨끗했습니다. 정말이지 그 정도면 완벽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겸손의 결핍이었습니다. ‘나야 나!’ ‘내가 누군 줄 알아?’하는 교만함이 그의 발목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를 한번 보십시오. 송구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당당히 성전으로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성전 기둥 뒤에 숨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외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세리가 바친 이 기도는 기도중의 기도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진심어린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간절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느님의 자비만을 바라는 진솔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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