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 같은 예수님>
2월 14일 사순 제1주일
(루카 4,1-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형제들과 ‘1박2일’ 비슷한 것을 하러 바닷가로 갔습니다.
큰 방파제가 하나 있길래,
답사해보려고 차를 몰고 방파제 쪽으로 향하는데,
진입로 양쪽에는 ‘유혹거리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수족관 마다 가득 차 있던 ‘자연산 횟감’들,
식당들로부터 풍겨 나오는 흐뭇한 냄새, 떠들썩한 분위기는
강하게 우리들을 손짓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습니다.
마음 약해지면 절대 안 되,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이 뭐야?
‘극한 체험’을 하러 왔는데, 초반부터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지.
그런 마음과는 달리 몸은 따로 놀았습니다.
마침 한 청년이 우리 차 앞을 가로막더니
맛있게, 푸짐하게, 그리고 싸게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앞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뱃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꼬르륵 소리...
저는 단 몇 분 만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유혹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존재, 근본적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죽어도 끄떡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지만
작은 바람 한 줄기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한 때 금강석 같던 다짐도 오래가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이런 우리 앞에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큰 산’처럼 여겨집니다.
악마의 유혹은 참으로 달콤했습니다.
악마가 눈앞에 펼쳐놓은 장밋빛 청사진,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유혹들 사이로 난 생명의 길로 홀연히 걸어가십니다.
그 달콤한 제안들 앞에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당신의 길을 유유히 걸어가십니다.
참으로 당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인(聖人)이란
한 가지 일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성인들이 지닌 공통점 한 가지는
자신의 내면 안에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에너지들을
통합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정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 ‘한 방향’이란 결국 영성적인 삶이겠지요.
가난한 이웃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이겠지요.
예수님의 일생 역시 비슷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자렛에서의 30년간 숨은 생활 동안
예수님은 많은 수련을 닦으셨을 것입니다.
자신 안에 들어있는 에너지들을 한 방향으로 통합하는 수련,
인류구원을 위한 희생의 삶이란 유일한 목표를 위해
많은 가지치기 작업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극도로 단순화시키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의 선택을 위해
부차적인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작업을 계속하셨습니다.
짧은 생애, 오직 한 가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데만 충실했던 예수님,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작은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내면이,
예수님의 삶 전체가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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