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스코의 매력>
1월 31일 연중 제4주일
(루카 4,21-30)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저녁식사 후에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옆집에 사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더군요.
젊음이란 것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다들 추워서 바깥외출조차 삼가는 데, 어떤 친구는 반팔 차림입니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에 함박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운동장에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살레시오 회원이 함께 있었습니다.
심판 겸 보호자로, 아버지요 스승,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로서 함께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분위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요 풍경이 되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살레시오회에 입회할 무렵,
꽤나 큰 문화충격이 있었습니다.
수도회라고 하길래 미리 꿈을 꾸고 있었죠.
약간의 경건함, 그리고 엄숙함, 위계질서, 깊이 있는 기도생활...
그러나 정작 생활을 해보니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기도생활은 보장되어 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기가 과연 수도원인가?
의아해했습니다.
어딜 가나 분위기는 늘 밝고 명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좀 가볍기도 했습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앞 다투어 농담 따먹기 대회가 벌어졌습니다.
일과 중에 주요 프로그램은 축구나 농구였습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장소를 실내로 바꾸어
탁구시합이나 카드시합이 계속되었습니다.
방학이 와도 바쁘기는 여전했습니다.
여름 캠프나 피정,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야영이나 국토순례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적응이 안 되다보니
과연 여기가 내가 평생 몸담을 수 있는 곳인가?
이 수도원에도 영성이 있을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점점 이 집 분위기가
마음에 들게 되었습니다.
어딜 가나 기쁘게 환대하는 분위기,
먼저 다가서는 열린 분위기, 단순하고 소박하며
자연스런 살레시오회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창립자 돈보스코(1831~1888)의 매력에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돈보스코가 개척한 독창적인 교육방식인 예방교육은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유효합니다.
이 시대 대세남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저희 살레시오 학교에 다니시면서
살레시오 교육을 받으셨다는 것에 대해
저희 살레시안들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가끔씩 교황님께서 살레시오 가족들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학창시절 살레시안들과의 정겨웠던 추억들을 회상하곤 하십니다.
돈보스코는 강압이나 지시가 아니라
온유와 친절한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섰습니다.
그는 생기 잃은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보스코 오라토리오의 아이들은 늘 바빴습니다.
틈만 나면 체육대회요 여차하면 소풍이었습니다.
연극 발표회나 음악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돈보스코는 천부적인 교육자였습니다.
아이들의 일과를 아주 바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기다릴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하게 하루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이런 저런 걱정이나 나쁜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무죄하고 천진난만한 천사 같은 아이들의 내면을
악이나 죄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버리는 방법,
그것이 바로 돈보스코 예방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가난한 청소년들을 사랑했던지
그의 머릿속은 온통 청소년의 영혼 구원 그 것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청소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악마에게라도 절을 하겠습니다.”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저는 항상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소원 한 가지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항상 행복한 것입니다.”
돈보스코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단 한 순간에 사로잡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대체로 다른 수도회의 창립은 창립자와 동료들,
그리고 추종자들로 창립멤버가 구성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살레시오회는 설립과정이 조금 독특했습니다.
창립자 돈보스코는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고 성장시킨 당신의 어린 제자들 가운데
원하는 사람들을 뽑아 수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사제나 수도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이유 돈보스코와 함께 있기 위해서,
돈보스코를 돕기 위해,
돈보스코를 위해서 수도회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돈보스코는
한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한 매력과 영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성소는 강요가 아니라 매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돈보스코는
벌써 200여 년 전 부터 실천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 교구나 수도회들이
성소 급감 현상으로 심각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우리 사제들과 수도자들, 사목자와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우리 사제 수도자들이 가장 먼저 가슴을 치며
회복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살아생전 돈보스코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면 정답입니다.
갑이 아니라 을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쓸데없는 권위를 버리고 섬김의 삶을 선택해야겠습니다.
울적한 얼굴을 펴고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환대해야겠습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삶을 접고
하루해가 짧을 정도로 뜨겁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저 내 한 몸 부지하기 위해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고 고통당하는 많은 영혼들이
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되어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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