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날이 아무리 부끄럽다 해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마태 1,1-17)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우리 일생일대 가장 소중한 손님인
메시아 오심을 기다리는 중요한 시기,
대림절을 잘 보내시고 계십니까?
지난 가을,
본부에서 저희 수도회 총장신부님께서
살레시오회 한국 진출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방한하셨을 때,
오래 전부터 ‘총장신부님을 드디어 뵙는구나’ 하는 설레는 마음,
‘혹시라도 준비가 소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기억이 새롭습니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손님이 방문하시면
우리는 보통 어떻게 처신합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할 것입니다.
켜켜이 쌓여있는 먼지들도 털어냅니다.
손님께서 드실 음식도 그럴듯하게 준비합니다.
손님이 도착하시면
‘어떻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보다 품위 있게 접대할 것인가?’
또 ‘어떻게 기쁘게 해드릴 것인가?’
‘오랜만에 방문하셨는데,
금 쪽 같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잘 사용할 것인가?’
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이제 오실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우리의 준비는 어떠합니까?
혹시라도 ‘올테면 오고 갈테면 가라’는 식으로
전혀 신경 끄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그분이 오시는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있다고
호들갑을 떠는거야’ 하는 ‘막가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이제 딱 7일 남았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그리 많은 시간도 아닙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시길 바랍니다.
성탄을 한 몫 잡는 기회로 생각하는
상업주의에 현혹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내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진지하게 지난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간 잔뜩 쌓아온 잡동사니들 가운데,
정리정돈 해야 할 것들은 어떤 것인지 챙겨보도록 합시다.
어떻게 해서든 그분을 맞아들일 공간을
확보하도록 노력하는 나날 되시길 빕니다.
저희는 요즘 아이들과 성탄준비를 위해
점심식사 전에 성당으로 모입니다.
성탄 장식이나 성탄제 준비도 중요하지만,
내적 준비가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매일 9일기도를 드립니다.
9일기도 마지막 순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께서 한 말씀씩 하시는데,
오늘 ‘예수님의 족보’와 관련한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족보는 무엇입니까?
족보는 한 가문의 역사책입니다.
족보는 우리 조상님들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족보를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고,
다른 책은 다 처분해도 족보만큼은 목숨처럼 끼고 사시는가봅니다.
누구나 족보 안에 기록된
조상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분이길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족보 안에 명기된 많은 인물들 가운데,
특별히 4부부에 제 시선이 많이 갔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를 먼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저 나이에!’ 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연로한 나이에 아들, 이사악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바탕에서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십니다.
살몬과 라합 부부를 보십시오.
라합은 그 출신이 너무도 기구했습니다.
창녀 출신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라합은 메시아가 탄생할 가문의 조상 치고
너무도 부적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토록 부족하고 부당한 인간을
도구삼아 당신사랑의 기적을 계속하십니다.
다윗과 우리야에게서 솔로몬이 태어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야는 다윗의 둘째 부인이었습니다.
첩이었습니다.
다윗과 우리야 사건은 당대 큰 스캔들이었고,
사람들의 비난과 원성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창피스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토록 기가 막힌 사건,
있을 수 없는 사건을 통해서도
당신의 구원사업을 펼쳐나가십니다.
마지막으로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보십시오.
이들은 실제적으로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총각과 처녀였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서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말을 맺으시는 겁니다.
“우리 친구들,
어떤 친구는 아버지가 두 사람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세분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인간 세상에서 늘 벌어지는 일들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우리가 아무리 부끄러운 생활을 한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도구삼아
당신 구원사업을 계속해 나가실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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