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부정적인 경험조차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루카 1,39-45)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아기 예수를 잉태한 소녀 마리아가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여인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한편 거룩하게, 다른 한편 장엄하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아직 스물도 안 된 처녀 마리아입니다.
더구나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뱃속에는 아기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혼모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의 여인은 더 황당했습니다.
너무나 쑥스럽고 머쓱해서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는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산모인 엘리사벳의 나이는 가임연령을 넘어도 훨씬 넘어
이제 인생을 마무리지어야할
그런 나이였는데 아기를 가졌습니다.
두 분의 만남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어이없고,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정녕 황당한 대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맞이하며 교회 역사 안에
길이 남을 찬미의 송가,
마리아의 노래를 부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분의 만남 안에는
분명 특별한 누군가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시는 분, 울음을 춤으로 바꾸시는 분,
역경을 순경으로, 고통과 십자가를 축제와 환희로 바꾸시는 분,
성령의 활동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생애 안에, 그리고 엘리사벳의 인생 안에
크게 돋보이는 장면이 한 컷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이라 할지라도
더 성장하고 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도구로 삼는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바처럼 삶이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인생이란 우리에게 언제나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끝도 없는 우여곡절과 산전수전,
그 한가운데를 항해해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관건은 수시로 우리네 인생 앞으로 다가오는
삶의 부정적인 경험과 깊은 상처들을
어떻게 다스려나가고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노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양한 인생의 풍파, 끝도 없는 휘몰아치는 삶의 폭풍,
전혀 예기치도 않았으며 조금도 원치 않았던
인생의 모험 앞에서도 성모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혹독하리만치
극심한 시련 한 가운데를 걸어 가시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그녀의 내면에 하느님을 향한 강한 신뢰심과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
그 어디도 물들지 않은 순수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잠시 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예!’하고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또 다시 다양한 초대가 이루어집니다.
때로 성공과 안정, 평화에로의 초대도 있지만,
많은 경우 쓰디쓴 실패, 좌절,
모험에로의 초대도 부지기수입니다.
때로 좋은 것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만,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표시로,
좀 더 성장하라는 표시로 우리가 원치 않는 고통과 십자가도
허락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삶의 모든 국면들, 다양한 초대 앞에서 성모님처럼 기쁘게,
기꺼이 ‘예!’라고 응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하느님의 초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예!’라고 응답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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