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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는 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는 일> 12월 1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루카 10,21-24)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하고 싶은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기술 한 가지 확실하게 익혀 하루 온종일 아이들 곁에서 보내고 싶은 바램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적한 바닷가에 아이들 집 하나 마련해서 머리 쓰기 싫어하는 아이들만 따로 골라 함께 살며 밥해주는 일입니다. 함께 밭을 일구고 함께 낚시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추억을 쌓아주는 일이 제 꿈입니다. 살면 살수록 단순한 삶이 얼마나 은혜로운 삶인가를 실감합니다. 비록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매일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매일 땀흘려 일하다보면 하루해가 짧은 소박한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너무 머리 쓰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한적한 자연 속의 삶이 별 가치 없어 보이는 삶 같지만 사실 본래 인간 본연의 삶이었고, 정상적인 삶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세분화된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의 틀 안에서 잠시의 여유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입니다. 잠시의 여유라도 있으면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의아심이 들 정도입니다. 할머니들도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일일이 스케줄을 확인하시는 세상입니다. 바쁜 사람이 잘 사는 사람,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다보니 한적함, 단순함, 소박함, 겸손함, 천진함, 동심, 비움, 버림, 떠남과도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사용하기에 너무도 어색한 단어, 별세계에서나 사용되는 단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눈만 떴다하면 머리를 회전시키고, 밥만 먹었다하면 복잡한 문명의 바다로 우리의 온몸을 던져버리니 철저하게도 영적인 존재인 하느님을 체험할 여유가 참으로 부족합니다. 이런 우리 앞에 예수님께서는 보란 듯이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보다 단순하게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보다 여유 있고, 보다 자연스럽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우리 삶의 여백에, 우리 삶의 주변 어디든 자리잡고 계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인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도록 말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가난하다는 말은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결국 가난한 사람은 소유의 상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에, 성낼 필요도 없게 됩니다. 결국 가난함으로 인해 자유를 느끼고 가난함으로 인해 영적인 눈이 뜨여 하느님의 손길을 보다 자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버리면 버리는 만큼 진리와 자유에로 결국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을 닦는 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는 일입니다. 쫓기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주시고 굳어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 양승국 신부 -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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