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관한 우리 시각의 긍정화>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루카 21,12-19)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날, 종말, 재림 때의 최후의 심판...
이런 단어들을 떠올릴 때 마다
다가오는 느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공포, 두려움, 걱정, 안절부절...
자비의 하느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지니신 두드러지게 우세한 특징
편안함, 따뜻함, 친절함, 포근함과는
전혀 거리가 머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래서 종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보다 긍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됐던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잘 되기만 바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멸망하기보다 구원되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인내의 주님이십니다.
진정으로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자녀에게 어떻게 대합니까?
물론 자녀가 지닌 장점, 성공, 성취에 대해 크게 칭찬도 할 것입니다.
자녀의 부족함을 큰마음으로 감싸 안으며
격려와 위로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자녀가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바보같이 처신할 때,
몹쓸 짓을 할 때는 당연히 강하게 혼도 내고, 불같이 화도 내고,
빨리 돌아오라는 마음에서 경고도 하고 질책도 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때로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시기도 하고
우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시기도,
때로 우리가 좀 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좀 더 크게 성장하라고, 그래서 더 확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경고도 하시고 채찍질도 하시는 것입니다.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여러 가지
경고성 발언 앞에 두려워하기보다
그분 말씀 뒤에 감추어진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의 등 뒤에 서셔서
우리가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뒤에서 든든한 지지가 되어주시며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건네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신명 31,6)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노심초사, 안절부절못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것을 바라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편안하게, 안심하면서, 두려움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의 인생은
그야말로 두려움 투성이입니다.
그들의 한 평생은 갖은 걱정거리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나이 들어갈수록 더 큰 걱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종말에 관한 걱정, 죽음에 관한 걱정,
세상의 끝에 관한 걱정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나눠주신 사랑의 계명으로 인해
더 이상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쫒아냅니다.”(1요한 4,16-18참조)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불확실함으로 인한 우리네 인생,
그 폭풍의 바다를 건너가면서 우리가 직면하는
갖은 두려움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하느님께 순종하면,
끝까지 희망하고 기다리다보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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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메모 : 희망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인 심판
불로 태워 고통스러운 변화거치며 그분의 눈길 마음이 어루만져주는 치유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와 진리와 사랑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면(금속) 우리죄 (지푸라기- 탄다)가 우리를 영원히 더럽히지는 않습니다. -희망으로 구원된우리 베네딕토 1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