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길 떠나는 성모님>
11월 21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마태 12, 46-50)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성모님 관련 일화들을 종합해볼 때
그분은 한 마디로 침묵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가브리엘 천사의 예수님 탄생 예고 앞에
마리아가 보인 일관된 자세는 침묵과 기도였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하느님의 초대였습니까?
동시에 얼마나 은혜롭고 감지덕지한 초대였습니까?
이토록 엄청난 하느님의 초대이기에
마리아는 시종일관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브리엘 천사와의 대화에 임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란 마리아의 응답,
간단히 줄여서 “예!”란 응답은 그분의 기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기도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달한 것은
명령이 아니라 초대였습니다.
마리아는 어렸지만 온전한 자유의지를 지난 한 인격체였습니다.
당연히 천사의 초대장을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라고 응답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예!”였으며 위대한 “예!”였습니다.
마리아의 응답과 관련해서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것 것은
그분의 “예!”가 예수님 탄생 예고 때 단 한번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한평생에 걸쳐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 출산 앞에서도
그분의 대답은 “예!”였습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전갈 앞에서도
그분의 대답은 지체 없는 “예!”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겪은 다양한 이해하지 못할 사건들 앞에서도
그분의 대답은 항상 “예!”였습니다.
성모님의 침묵이 유난히 돋보이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위해 출가하신 이후
성모님의 촉각은 온통 아들 예수님께로 쏠려있었습니다.
어머니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삼시세끼 굶지 않고 지내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내가 아들을 위해 뭐든 할 일은 없는지...
그러던 어느 날
친척을 통해서 들려오는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
“아드님이 미쳤답니다.
목숨 두려운 줄 모르고, 이스라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권력자들과 언쟁을 벌인답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큰 봉변이라도 당하겠습니다.
한번 찾아가봐야 되지 않을까요?”
아들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센 성모님은
친척들을 앞세워 예수님이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제자 중 한 사람에게 부탁을 좀 했겠지요.
“나는 예수의 어머니인데, 너무 걱정되어 찾아왔답니다.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
스승님의 어머니라는 말씀에 제자는
한 걸음에 달려가 예수님께 이 상황을 알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 같았으면 반가운 마음에
만사 제쳐놓고 어머니를 만나러 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안심을 시켰을 것입니다.
“어머니, 제가 걱정이 돼서 이 먼 길을 찾아오셨군요.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
지나가는 길에 꼭 한번 들를게요.”라고 말씀 드리며
용돈이라도 손이 좀 쥐어드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고금과 동서양을 막론하는 통상적인 예의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뛰어넘습니다.
어머니가 걱정되어 찾아오셨다는 데도 밖으로 나와 만나지도 않습니다.
그러고는 하시는 말씀을 더욱 난해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8~50)
정말이지 이해하지 못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성모님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침묵하십니다.
그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십니다.
또 다시 성모님은 또 다시 자신의 내면을 비워냅니다.
또 다시 가장 밑바닥에서 또 다른 신앙 여정을 출발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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