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만 살려주신다면..>
8월 5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마태 15,21-28)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가끔씩 아주 어려운 부탁을 누군가에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청원은 죽기보다 싫지만 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어렵게 ,어렵게 부탁합니다.
어떤 경우,
단호하게, 그리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때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힘들겠네요.”
이런 말과 함께 거절당하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뭐라고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간땡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네요!”
“그게 어떤 부탁인지 알고나 하세요?”
“지금 제 정신으로 그런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인 역시 똑같은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딸이 마귀에 걸려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몹시 시달리고 있다’는 여인의 말을 통해,
그리고 처절하게도 간청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마귀에 시달리는 모습, 생각하기조차 싫은 모습입니다.
한 사람 안에 마귀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집니다.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사지가 뒤틀립니다.
몇 시간이고 발작이 계속됩니다.
입에서는 하느님을 모욕하고 인간을 저주하는
괴상한 말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두렵습니다.
그런 딸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간청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라도 하시려는 듯이
일부러 뜸을 들이십니다.
일부러 냉정한 모습으로 대하십니다.
묵묵부답으로 응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이런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신다 해도 여인은 상관없습니다.
막무가내입니다.
여인은 길길이 뛰고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딸의 치유를 간청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꽤 모욕적인 언사였습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제가 그런 말씀을 들었다면 엄청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예수님 앞에 크게 낙담하고
즉시 돌아서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심한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이방인들을 ‘개’라고 칭하는 습관이 있었고,
또 이 텍스트에서는 ‘개’라는 표현보다는
조금 부드럽게 ‘강아지’라고 부르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표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오직 딸만 생각합니다.
그저 하루하루가 지옥인 딸만 치유된다면
자신은 개, 돼지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가나안 여인의 이 말은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예수님을 향한 투철한 믿음, 철저한 겸손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과 겸손의 사람이었던 가나안 여인은
백인대장과 함께 큰 칭송을 받습니다.
교부들은 가나안 여인에게서 성스런 교회의 상징을 보았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서 나는 교회의 겸손, 신앙, 인내를 봅니다.
자신의 딸의 치유를 확신하는 믿음,
되풀이되는 거절에도 단념하지 않고 계속 청하는 인내,
자신을 강아지와 똑같이 여기는 겸손...”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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