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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이 순간이 다가 아닙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이 순간이 다가 아닙니다> 8월 10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요한 12,24-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돌아보니 제게도 끔찍하고 혹독한 십자가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다들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인데, 유독 내 하늘만 짙은 잿빛이었습니다. 왜 하필 제게, 하며 하느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루하루는 어찌 그리도 길게 느껴 지던지요. 삶은 또 왜 그리도 팍팍하고 힘겹게 다가오던지요. 사람들은 왜 또 한결 같이 아군은 하나도 없고 다들 적군들 뿐이던지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힘겨웠을까, 생각해보니 즉시 답이 나왔습니다. ‘죽지’ 못해서였습니다. 크게 내려놓으면, 이것 저 것 다 놓아버리면, 결국 자신을 좀 더 죽였으면 아무 문제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내려놓기가 어려웠든가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힘겹게 살았든가 봅니다. 현실의 십자가가 너무 크게 다가올 때 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세월,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지만, 사람이란 것이 참 묘한 존재라서 사노라면 또 잊혀지기 마련이고 극단의 상황에도 견뎌내며 적응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는 특별한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느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분위기, 사방이 온통 절벽으로 가로막힌 듯한 상황,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리는 듯한 고통과 십자가를 체험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극단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극복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몇 십 년, 아니 평생 해결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는 철저하게도 다릅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도 마음 놓고 의지할 언덕, 견뎌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희생과 속죄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한 알 밀알이 되신 분, 우리 구원을 위해 제사상에 오른 한 마리 어린 양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토록 크신 하느님의 사랑 앞에 우리 인간이 취할 자세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우리도 희생양이자 속죄양이신 예수님을 따라 이웃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는 일입니다. 우리 앞으로 끊임없이 다가오는 다양한 십자가 앞에서 의연하게 견뎌내는 일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입니다. “짧은 시간도 슬픔의 날카로운 경험을 통해 길게 느껴진다.” 그렇습니다. 슬프거나 지루할 때 시간은 너무도 천천히 흘러갑니다. 그러나 즐거울 때는,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요. 마치도 아름다운 영화 속 한 장면, 아니면 감미로운 꿈결 같습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고통도 고통이 아닙니다. 불편함도 불편함이 아닙니다. 그저 모든 것이 다 좋고, 모든 상황을 다 너그럽게 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나를 금쪽처럼 여기시는 하느님, 나를 당신 눈동자보다 더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께서 나와 늘 함께 현존하신다는 의식, 하느님께서 내 인생길에 늘 동행한다는 의식입니다. 지금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간이 온다는 것,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특히 이 순간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순간이 다가 아니고,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얼마나 큰 위로요 다행인지 모릅니다. 결국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 한 가지는 내 고통, 내 십자가에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래서 기쁘게 견뎌나가는 일, 결국 죽는 일, 내려놓는 일, 크게 물러서는 일, 그리고 나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이웃들에게 사랑과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일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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