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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8/04)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8/04)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 리옹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 사제로 활동하면서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고행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정성을 다하여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평생을 아르스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산 그에게 해마다 2만여 명이 고해성사를 받고자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1859년 선종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성하고, 4년 뒤에는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미르얌과 아론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자, 주님께서 모세의 탁월한 역할에 대해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다른 예언자들에게는 환시나 꿈을 통해 말씀하시지만, 모세에게는 직접 마주하여 말씀하신다. 계시의 전달자라는 측면에서 모세는 구약 성경 안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자기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시도록 청한다. 그분의 명에 따라 베드로가 물 위를 걷기 시작하지만, 의심을 품는 순간 물에 빠져든다(복음).
    제1독서
    <모세는 다른 예언자와 다르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그를 비방하느냐?>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12,1-13 그 무렵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가 아내로 맞아들인 그 에티오피아 여자 때문에 모세를 비방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주님께서 이 말을 들으셨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주님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르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셋은 만남의 천막으로 나오너라.” 그들 셋이 나오자, 5 주님께서 구름 기둥 속에 내려오시어 천막 어귀에 서시고, 아론과 미르얌을 부르셨다. 그 둘이 나와 서자 6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님이 환시 속에서 나 자신을 그에게 알리고 꿈속에서 그에게 말할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환시나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며 떠나가셨다. 구름이 천막 위에서 물러가자, 미르얌이 악성 피부병에 걸려 눈처럼 하얗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론이 몸을 돌려 미르얌을 보자, 과연 그 여자는 악성 피부병에 걸려 있었다. 아론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아, 나의 주인님,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여 저지른 죄의 값을 우리에게 지우지 마십시오. 미르얌을, 살이 반은 뭉그러진 채 모태에서 죽어 나온 아이처럼 저렇게 놓아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자 모세가 주님께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2-36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면 몇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선 마태오 복음은 베드로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배는 제자들의 공동체 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배가 맞바람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부족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며, 위험 속에서 그분의 도움을 간청합니다. 신자 공동체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다른 사람은 그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할 수도, 그가 물에 빠지지 않게 할 수도 없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부르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가능할까요? 믿는 이들의 작은 공동체가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오라고 베드로에게 명하십니다. “오너라.”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물 위를 걷는 삶이겠지요. 믿음이 없는 이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아무 근거도 없고 오히려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 삶이니 말입니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우리도 분명 우리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생각하다 물에 빠지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에 빠질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약한 믿음을 한탄하시면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부르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우리도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인생을 만경창파, 바다의 거센 풍랑에 시달리는 조그만 나룻배에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산다는 것은 괴로워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임마누엘’의 하느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면서 “오너라.” 하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대로 이루어 질것이다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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