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6월 5일 연중 9주간 금요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르 12,35-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구약시대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의인중의 의인, 참 신앙인이 한 사람 있는데
그는 바로 토빗입니다.
토빗은 아시리아의 포로가 되어 니네베로 유배를 떠납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붙여 살던
고국 땅을 뒤로 하고 유배를 떠난다는 것,
이보다 더 서글픈 일이 또 있을까요?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우리 민족들도 똑같이 체험한 슬프디슬픈 일이 유배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고 건강하고 똑똑한 우리 청년들이
남의 나라 땅으로 끌려가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지혜롭고 호감 가는 청년이었던 토빗은
아시리아의 임금 살만에세르의 눈에 띄어 고급 관리에 임명됩니다.
임금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을 사들이는
재무 담당자가 된 것입니다.
임금의 최측근이 되어 그의 막대한 재산을 관리하게 된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토빗이었지만
유배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고 있는
동포들의 사정을 나 몰라라하지 않았습니다.
토빗 스스로 고백한대로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은 이들에게는 입을 것을 주었으며,
동포 가운데 누군가가 죽어서 니네베 성문 밖에 던져지면
당시 위법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매장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선하고 의로운 토빗에게도
난 데 없이 큰 불행이 들이닥쳤습니다.
불법으로 죽은 동포를 매장해준 것이 발각되어
토빗에게 수배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 많던 재산에 모두 몰수당했고
잡히면 즉시 사형이었기에 도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때 승승장구하던 토빗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자신의 몸과 아내 안나,
그리고 아들 토비야 뿐이었습니다.
엎친데 덮진 격으로
어느 날 마당에서 잠을 청하던 토빗의 두 눈 위로
뜨거운 참새 똥이 떨어져 눈에 멀게 됩니다.
생계마저 곤궁해진 나머지
할 수 없이 아내 안나가 날품을 팔아 하루하루 연명하게 됩니다.
급격한 상승곡선만 그리던 토빗의 인생 곡선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완전 급강하하여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당시 토빗의 상황이 얼마나 괴로웠던지는
다음의 기도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시어 제 목숨을 앗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흙이 되게 하소서.
저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당치 않은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하고
슬픔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토빗 3,6)
구약시대에는 죄와 벌에 대해서
오늘날과는 사뭇 다른 해석을 내리곤 했습니다.
한 개인에게 역경이나 시련, 병고나 장애가 찾아오면
그것을 인간 측의 과실 혹은 그가 저지른 죄와 벌의 결과로
여기는 사상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안 그래도 병고에 시달리며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안 그래도 장애를 극복하면서 살아가느라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데
그 위에 죄인이라는 굴레가 덮씌워진 것입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토빗의 불행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빗은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을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끝까지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순간 하느님과 소통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습니다.
심연의 바닥에서조차 하느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항구히 기도했던 토빗이었습니다.
끝까지 모범적인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고
참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했던 토빗이었습니다.
이런 토빗에게 하느님께서 크신 자비를 베푸십니다.
모든 것을 원상 복귀시켜주실 뿐만 아니라
흘러넘치도록 보상해주십니다.
토빗은 천사 라파엘의 보호와 아들 토비야의 극진한 효심에 힘입어
잃었던 시력을 되찾고 사라라는 아름다운
여인까지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분의 나라도 찬미 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벌을 내리기도 하시지만 자비를 베풀기도 하시고
땅 속 가장 깊은 곳 저승으로 내려가게도 하시지만
그 무서운 파멸에서 올라오게도 하신다.”(토빗 13,1-2)
우리도 짧지만은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역경과 시련 앞에 서게 됩니다.
다양한 한계와 약점을 지닌 유한한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토빗이 보여준 삶의 자세는
참으로 탁월한 귀감이 됩니다.
토빗이 그러했듯이
성공도 실패도, 삶도 죽음도
모두 주님 손아귀에 달려있는 것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잘 나갈 때는 더욱 겸손하고 더 많은 자선을 베풀며
하느님을 찬양할 일입니다.
역경 앞에 설 때는 더욱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 나를 더 큰 그릇으로 만들려는
주님의 의도려니 생각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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