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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까?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까?> 5월 26일 연중 8주간 화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마르 10,28-31)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재물과 예수님 추종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울적한 얼굴로 떠나간 부자청년과는 달리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베드로 사도의 목소리에는 약간은 과장되고 조금은 우쭐한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요즘 말로 치면 ‘나야 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베드로 사도는 참 예수님 추종을 위해 참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아니 다 버렸습니다. 아마도 단란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부인도 버렸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열병에 걸린 베드로 사도의 장모를 치유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루카 4,38-39) 베드로 사도의 장모께서 왜 열병에 걸리셨나, 생각해보다가 약간은 웃기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장모님 입장에서 볼 때 베드로 사도는 때로 착하고 성실하고 다정다감한 사위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냥 착한 사위, 뭔가에 한번 필이 꽂히면 대책 없는 사위였습니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란 사람에 매료되어 따라다니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가정도 팽개치고 그분을 따라 가출해버렸습니다. 아무리 큰 뜻을 품고 출가했다고는 하나 장모 입장에서 정말이지 열 받고 속 터질 일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장모는 열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웃기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어쨌든 베드로 사도는 장모와 아내는 물론이고 친부모마저 뒤에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지니고 있었던 배며 그물이며, 부동산이며 통장잔고도 내팽개쳤습니다. 자신이 그간 쌓아왔던 인맥이며 나름의 경험도 다 버렸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주안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과연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렸나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초월과 이탈의 동기는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따라나선 가장 우선적인 동기는 결혼생활이나 직업, 세상살이에 대한 염증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더 큰 가치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가 과감한 버림의 1차적인 동기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백번이나 눈 씻고 바라봐도 찾지 못하던 값진 보화를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습니다. 그 값진 보물을 발견한 이후로 이전에 보물처럼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쓰레기처럼 여겨졌습니다.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왔던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주던 소중한 생업의 도구마저도 순식간에 의미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어르신들 사이에서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 이런 말들이 사용되곤 했습니다. “에이, 머리나 깎고 절에나 들어갈까?” “살기도 막막한데 확 수도원에나 들어가 버릴까?” 그런데 수도자 양성을 담당해오면서 제가 봐온 바에 따르면 세상살이 힘들어서 수녀원 들어온 사람들 백이면 백 다 중도 포기합니다. 실연당한 홧김에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간 사람 오래가지 않아 대부분 다 하산합니다. 수도생활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던 사람, 세속에서 충만히 자신을 실현시키던 사람이 수도생활도 잘합니다. 예수님 추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다해보다가 안되니 마지막에 어쩔 수 없는 차선으로 예수님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추종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 가운데서 가장 고귀하고 장엄한 선택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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