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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스크랩] ~ 사랑하는 빵을 먹으며 / 이해인 수녀님 ~

      사랑하는 빵을 먹으며 - 이해인 수녀님 사랑하는 제자 세 명을 데리고 타볼산에 오르셨던 주님,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암시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시의 그 '영광스런 변모'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신 주님, 매일 새벽 밀떡 속에서 변화되시어 제게 오시는 당신의 그 '거룩한 변모'를 체험하면서도 타볼산의 그 제자들처럼 좀 더 뜨겁게 감동할 줄 모르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영광의 기쁨에 취했던 그 제자들처럼 저도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 늘 좋은 것 기쁜 것, 영광스러운 것만 선택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자인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당신의 고통까지 선택하는 것이라는 점을 더 깊이 깨우치고 알아듣게 도와주소서. 요즘은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또 한 번의 부활 축제를 맞이하는 듯 새롭고 기쁜 마음이 됩니다. 성당에서 묵상중에 듣는 시계바늘 재깍이는 소리조차도 생명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삶이란 일회적인 것이며, 한 번 가버린 순간들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지요. 살아 있는 시간들을 정말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되겠기에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자신만의 성 안에 갇혀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우쳐주시는 주님, 타볼산에서 제자들이 당신께 엎드려 절한 것처럼 저도 당신께 엎드려 절하겠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저의 구원자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이 함께해주시기에, 그리고 사랑의 성령을 계속 보내주시기에 감히 저같은 '작은 자'도 당신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한몫을 다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저 또한 당신의 사랑받던 그 제자들처럼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전하며 당신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노래하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매일의 생활에서 저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기쁨과 평화와 인내, 온유와 겸손과 선행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당신 가슴에 기대어 당신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도 요한처럼 저도 당신 곁에 바싹 다가앉아서 당신의 그 모습을 살펴보렵니다. 당신이 지난 날 제게 베풀어주신 무한한 은총과 사랑을 다시 기억하며, 붉은 포도주가 넘쳐흐르는 저의 술잔에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저의 참회의 마음을 눈물로 담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번번히 당신을 배반하고도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발뺌만 하려드는 뻔뻔함을. 당신의 그 깊은 말씀을 절반도 채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하는 이 죄인을 용서하십시오. 오늘은 "주님,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주십시오"라고 당신께 청을 드린 사도 베드로처럼 저도 당신께 제 때묻은 손과 발과 머리를 드리오니 씻어주소서.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주님, 당신이 씻어주신 깨끗한 손으로 저는 당신의 거룩한 두 발을 씻어드리게 하소서, 떠나시는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왜 이리 없습니까. 왜 이리 무력한 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까. "정말 잘 들어두어라." 늘 애절하게 하시는 그 말씀을 잘 듣고 살지 못했음이 오늘은 뼈에 사무치는 서러움으로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제게 주신 극진한 사랑을 돌려받지 못하고 번번히 상처만 받으신 사랑의 주님, 당신이 떼어 주신 사랑의 빵을 먹으며 당신이 저를 위해 행하신 숱한 일과 놀라운 기적들을 생각했습니다. 빵처럼 제 마음에 부풀어오르는 당신의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하오나 주님,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그토록 큰 사랑으로 저를 늘 이렇듯 당황하게 하십니까? 당신이 너무 큰 사랑을 베풀어주실수록 저는 더욱 사랑에서 멀리 있는 듯한 작은 자의 외로움을 맛봅니다. 오, 주님, 오늘은 당신이 베푸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날, 저의 이런 마음을 기도로 바치오니 받아주소서. 사랑이 부족해서 가난한 저이오나 저의 전 존재를 봉헌하오니 받아주소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듯이 지금은 제 마음의 성으로 조용히 들어오시는 주님, 아무래도 전 당신이 오시는 길에 깔아드릴 것이 마땅치 않아 부끄럽습니다만, 못나고 초라한 제 마음 그대로를 깔아드리렵니다. 오늘 당신의 눈은 제게 잃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따라와. 난 네가 필요해.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게 견딜 힘을 주겠다"라고. 주님, 오늘은 몹시 고단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또 새 힘을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풍랑을 잔잔히 하신 나의 주님, 제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풍랑이 제 마음의 바다에 뜬 믿음의 배를 파산시키려 할 때, 당신이 그 풍랑을 가라앉혀주소서,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가까이 오시는 당신을 제가 알아뵙지 못하고 겁을 먹고 있을 때,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이렇게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면 제가 마음놓고 삶의 거친 파도위를 걸어가겠나이다. 종종 한적한 곳으로 피해 몸을 숨기시고 기도하신 주님, 제가 사람들과 일 사이에서 마음의 시달림을 받을 때 "잠시 나와 함께 외딴 곳으로 가자" 고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면 제가 다른 일 제쳐두고 당신과 함께 기도의 산으로 오르겠나이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 곧 이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이 것이 가장 진실한 저의 기도임을 다시 알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그저 상투적으로 이렇게 밖에는 기도할 줄 몰랐던 제가 메마름이 슬퍼져서 오늘은 실컷 울었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남은 날들을 오직 이렇게만 기도하게 하옵소서. 저는 이제사 비로소 사랑이신 당신을 사랑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 속엔 끊임없는 감사와 찬미의 기쁨도, 마르지 않는 참회의 눈물도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루의 첫 시작과 마지막 기도는 오직 이것으로 충분하게 하옵소서. - 피정 일기 중에서

          출처 : 가르멜산 성모 재속 맨발가르멜회
          글쓴이 : 수호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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