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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부활

<부활 제5주일>(5.18)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5.17)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14,9)

'나는 믿는 사람인가?'

오늘 복음(요한14,7-14)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아버지께 가는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가 지금 사목하고 있는 합천성당에 견진성사가 6월1일(주님승천대축일)에 있습니다. 27명이 준비하고 있고, 교구장이신 이성효리노 주교님께서 첫 방문을 하셔서 견진성사를 집전하십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한 달, 매 주일마다 교중미사 후에 견진교리를 하고 있는데, 견진교리의 제목은 '교리 십계명'입니다. 이 제목은 제가 정한 것으로, 신자들이 꼭 알아야 하고 간직해야 할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 열 가지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나는 누구인가?
2.무엇을 믿는가?
3.왜 믿는가?
4.하느님은 보이는가? 성사란?
5.가장 중요한 성사는?
6.고해성사란?
7.기도란?
8.믿음이 구체적인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9.그리스도인의 사명은?
10.신자들이 지켜야 할 여섯 가지 의무?

견진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는 성사로서, 세례 때의 은총과 약속을 다시금 확인하고 갱신하는 성사입니다. 중요한 예식은 주교님의 도유와 안수이며, 성령의 은혜를 받습니다.

세상이 참으로 혼란하고 시끄럽습니다. 그런 속에서 복음 안에 계시되어 있는 불변하는 하느님의 가치와는 다른,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가치 안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단순성'입니다. 단순성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첫째로 삼았던 덕목인데, 프란치스코처럼 단순하게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보다 더(radical)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14,12)

(~ 예레25,38)

이병우 루카 신부

새교황 레오 14세의 탄생을 기뻐합니다.세계사를 알면 교황직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레오란 교황명을 가진 분이 등장하는데, 서 로마제국이쇠퇴할 때였습니다.

그 이름은 레오 1세교황입니다.이분이 없었다면 로마시는 한때 대 참사의 도시로 변할 뻔했습니다(452년경).

 당시  아무런 힘도 없던 서로마황제 발렌티누스 3세는 레오 1세 교황에게 외교권을 위임했습니다.훈족의 왕 아틸라와 담판을 잘해 로마를 구하기를 부탁합니다. 아틸라는 프랑스를 침범하고 로마로 진격했고 로마는  함락직전이었습니다.
 로마시민은 레오와 아틸라의 협상 결과를 숨죽이고 지켜보았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일이 일어났으니 아틸라는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지금도 그 회담내용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그후 로마의 권력은 교황직으로 점차 기울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영국에 선업혁명이 일어나자 시골에서 올라온 도시근로자들은 빈민으로 전락합니다.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심각한고통을 겪었습니다.하루 12-16시간의 노동에 시달렸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렸으며 어린아이들도 노동현장에 내몰렸습니다.아이들은 위험한기계를 만지거나 탄광에서 일하며부상당하거나 목숨을잃기도 했습니다.

이때 빈민의 고아를 소재로한 소설책이 나왔는데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란 책이었습니다.
근래 우리나라 작가가 만든 에니메이션 *왕중왕*이 미국 극장가에서 인기를 누리는데,이 저자 역시 찰스디킨스입니다.올리버트위스트란 책 내용에서  빈민 고아로 태어난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에서 끔찍한 대우를 못견디어 런던으로 도망치고 소매치기 범죄단에 넘어가고  온갖 고통을 겪는 가운데 선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가족의 품에 안긴다는 스토리입니다. 
 아름다운 작품입니다.일독을 권합니다.

우리는 당시 유럽의 노동환경이얼마나 열악했는지 드리마나 영화로도 알 수있습니다.

우리는 빅트르 유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여주인공의 어머니가 딸 코제트를  찾기 위해 시궁창같은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죽어가며 쟌발쟌에  딸 코제트를 부탁하며 죽는 장면을 봅니다.
산업혁명으로 고통받는
빈민층의 참상입니다. 

이런 아픈 시대적 환경에서 찰스디킨스와 함께
  빈민들의     아픔을 느낀 레오13세 교황께서 노동회칙*새로운사태*를  발표했으니 세상이 놀랍니다.

어느시골신부란 책을 쓴 베르나노스는 그의 소설내용중이렇게 교황을호평합니다.
,,
이를테면 교황레오 13세의 유명한 회칙 ^새로운사태^는 
지금 자네들이 사순절 담화문이나 읽듯 건성으로 흘려읽지...그 당시에는 이보게 젊은 친구,우리는 발 밑에서 온 땅이 뒤흔들리는 줄 알았다네.얼마나열광하고 고무되었던지...
,,

아무튼 이 회칙. ^새로운 사태^는 돌고 돌아 반세기가 흘러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해방전 사상적 갈등을 겪던 한 지성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가톨릭대표지성인 김수환,김홍섭,장면, 구상등과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은 김익진.
그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 일본에 유학갑니다.큰 형 김우진과 윤심덕의 현해탄동반자살의 충격으로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중국 베이징 대학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모택동과 주덕이 지휘하는 홍군에 가담 장개석의 국민당과전투중패전합니다.그리고 아버지의 강요로
1935년 귀국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추천을 받고
서울혜화동본당 오기선신부를 면담합니다.

마침 신부님이 새벽미사 차  사제관을 비우자 그곳에서 레오 13세의 노동헌장을 읽고 사상적 갈등을 마무리짓습니다.

그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1936년 목포에서 세례를 받고 프란치스코 3회 입회하고 

대지주의 재산을 모두 소작농들에게 넘겨주고 대구로 이사합니다.

가톨릭계 왜관순심학교, 김천 성의학교(역댁 교장  최재선 신부. 김수환 신부),  그리고 경주
근화중학교에서 교감으로 실질적 학교교육의 책임자가 됩니다.
 교황레오13세의 노동헌장 *새로운 사태*의 내용 중에는 사유재산의 사회적 기능도 다 포함하며  중개적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가르침도 줍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와는 확실한 선을 거었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은 사유재산을부정했기 때문입니다.
레오 13세교황님은 위대한 학자이기도합니다.천사적 박사인 토마스아퀴나스를 현대 신학 철학의 스승으로 인정하며 전세계 가톨릭신학교에서 그의신학과 철학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근대주의 현대주의와 상대주의로 오염된 그릇된 사상에서 참그리스도교 진리를 토마스 성인세계에서 배워야한다는 취지였습니다.
  페루에서. 오랫동안 노동사목을 하신 새 교황 레오 14세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2025년. 5월 신신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일이 일어났으니 아틸라는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지금도 그 회담내용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그후 로마의 권력은 교황직으로 점차 기울게 됩니다....
1.나는 누구인가?
2.무엇을 믿는가?
3.왜 믿는가?
4.하느님은 보이는가? 성사란?
5.가장 중요한 성사는?
6.고해성사란?.
7.기도란?
8.믿음이 구체적인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9.그리스도인의 사명은?
10.신자들이 지켜야 할. 여섯가지 의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단순성'입니다. 단순성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첫째로 삼았던 덕목인데, 프란치스코처럼 단순하게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보다 더(radical)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14,12)

프코와 제가 단순하게  그냥 믿고 사랑하는것이라고 얘기 했는데 극 공감입니다 

<부활 제5주일>(5.18)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예수님의 사랑법!'

오늘 복음(요한13,31-33ㄱ.34-35)은 '새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신 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요한13,31)

이 영광은 유다의 배신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이요, 희생제물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고, 이 뜻에 순종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영광스럽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영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33,34)

'새 계명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는 계명이 새 계명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 극진한 사랑, 순수한 사랑, 다함 없는 사랑, 실천적 사랑'이었습니다. '모두에게 열려져 있고 모두를 위한 사랑', 곧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었고, 당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랑'이었습니다.(루카23,34 참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법'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랑법을 믿고 지금 여기에서 이 사랑법으로 서로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이 약속을 지킵시다!
지키려고 노력합시다!

(~예레25,38)

이병우 루카 신부

<부활 제5주간 월요일>(5.19) -교육 주간-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14,26)

'성령을 받아라!'

오늘 복음(요한14,21-26)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14,21.23ㄱ)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호자이신 성령(파라클레토스)을 약속하십니다. 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신 후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참사도가 된 것은 '성령강림 이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난 이후'입니다. 그 모습과 기록들이 바로 요즘 우리가 독서로 듣고 있는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고 사도가 되자!'

이것이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예언직의 사명인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는 내 힘,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 곧 하느님의 힘으로' 합니다.

오늘부터 청소년 주일인 부활 제6주일까지는 '교육 주간'입니다. '교육 주간의 참의미'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의 본질이요 성령의 창구'인 '십자가'를 향해 있고, '그 사랑의 실천'을 향해 있습니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마산교구 사제단 1차 피정이 있어 제가 피정에 참석합니다. 교구장이신 이성효 리노 주교님께서 피정 강사이십니다. 주교님과 울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예레32,44)

이병우 루카 신부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14,26)

'성령을 받아라!'
'우리도 성령을 받고 사도가 되자!'
♧ 마음의 등불 ♧

마음은 빈 상자와 같다.
寶石(보석)을 담으면 보석 상자가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쓰레기 상자가 된다.

진정한 위로란"힘 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힘들지?"라고 묻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되는 사람"보다,누군가 
"기대도 되는 사람"으로 살아라.

대개 실패하는 사람들의 몸에는  못된 벌레 한마리가 살고 있다.
그 벌레의 이름은 "대충" 이다.

죽음이란 神(신)이  정해준 유통기한이고 ,
熱情(열정)이란 신이 넣어준  防腐劑(방부제)이다.

에티켓을 잘 지켜라.
禮儀(예의)는 넥타이와 같고,
無禮(무례)는 올가미와 같다.

많이 배웠다고 自慢(자만)하지 마라.
가방끈이 길면  땅에 끌리게 마련이다.
성공을 찾으려면 눈에 불을 켜고,
행복을 찾으려면마음의 불을 밝혀라.

몸의 때는 물로 씻고,마음의 때는 책으로 씻고,
영혼의 때는 눈물로 씻어라.

감투는 그 사람의 신분을 알려 주지만,
말투는 그사람의 인격을 알려 준다.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펄럭이는 날개가 아니라 펄떡이는 심장이다.

후회가 과거를 바꾸지  못하며,
걱정이 미래를 바꾸지 못하며,
오직 행동만이 현재를 변화시킨다.

인생을 헛되이 살고싶지 않다면 도장을 찍고 한 약속보다 새끼 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을 더 잘 지켜라.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것이 사람이고,
가장 무서운 것도 사람이다.

그래도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 사람이다. 

♧ 감사 합니다..!! 사랑 합니다..!!♡♡
제목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5.20) -교육 주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

'예수님의 평화!'

오늘 복음(요한14,27-31ㄱ)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평화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살아계실 때에 평화를 주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십니다.

어제 끝기도 성경소구는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1테살5,5-10)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하느님께서 땀을 흘리셨고, 마침내는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이며,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은 근본 이유'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더 많이 가짐으로써, 더 높아 짐으로써, 더 인정 받음으로써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전쟁이 없고 폭력이 없는 상태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것을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공동선의 실현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겸손과 비움을 통해 함께 잘 사는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평화의 인사를 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하셨으니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이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평화와 하나됨'은 우리의 작은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내 안에서 작은 믿음이 자라나, 지금 여기가 예수님의 평화와 하나됨이 넘쳐나는 하느님의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레35,19)

이병우 루카 신부

<부활 제5주간 수요일>(5.21) -교육 주간-

"내 안에 머물러라."(요한15,4)

'예수님의 마음이 되자!'

오늘 복음(요한15,1-8)의 제목은 '나는 참포도나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15,1.4.5)

지금 마산교구 사제단 피정(5.19-23) 중인데, 피정의 주제는 '인공지능과 만남'(인공지능에 대한 신학적.윤리적.인간학적 탐구)입니다. 강사는 이 책의 공동저자이신 이성효(리노) 주교님이십니다.

인공지능, 곧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사전적 정의는 '판단, 추론, 학습 등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숙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의료시설, 생산시설, 자동차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이처럼 우리는 지금 AI를 거부할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AI에 대한 신중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인간인 우리가 기계인 AI에 먹잇감이 되지 말고, 도구로써 더 잘 사용하고, 올바른 수단으로 잘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공지능(AI)의 문제점인 다원성의 감소와 여론의 양극화와 획일적 사고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 중심에 하느님과 만나는 내적 자리인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찰은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여야 하며, 인간성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오늘 강의 요약)

이런 차원에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강하게 들려옵니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 예레39,18)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5.22) -교육 주간-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15,9) 

'무엇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복음(요한15,9-11)은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가지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9.11)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전 속도가 너무나도 빠릅니다. 분명 의료분야와 생산분야 등 많은 분야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 표현으로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복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이 토대 위에서 인공지능(AI)을 바라보아야 하고 인공지능이 발전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은 날에 인공지능(AI)이 큰 재앙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아니 노예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잠시 잊어버리면 맨붕에 빠집니다.

이 기계가 우리에게 많은 좋은 정보도 주지만, 가짜뉴스나 가짜 정보나 편협된 정보에 빠지게도 합니다. 그제 밤에 보내드린 기도에 대한 동영상도 내용은 좋았지만 왠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에 훅 넘어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제들도 복음(말씀) 안에서 시대를 보고 강론이나 강의를 준비하지 않고, 기계에 의존해서 남이 만들어 놓은 강론이나 강의를 나의 것인양 포장해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제 강의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레42,22)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부활 제5주간 금요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5.23) -교육 주간-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아날로그의 삶을 잊지 말자!'

오늘 복음도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요한15,12-17)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사흘에 걸쳐 듣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요한15,4)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15,9)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15,10)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인공지능(AI)과 만남'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마산교구 사제단 피정이 오늘로 끝납니다.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피정을 마치면서 마음 안에 간직된 것은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본질'과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실천이라는 그리스도인의 본질' 위에서 인공지능(AI)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날로그의 삶을 잊지 말자!'

'아날로그의 삶'은 '디지털이라는 기계가 등장하기 이전에 우리가 더 살았던 삶', 곧 함께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함께 땀 흘리며 살았던 삶, 몸을 더 움직였던 삶, 희노애락이 있는 부딪김이 있었던 삶, 정이 살아 있었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활의 삶도 바로 이런 삶이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큰 산물인 '기계 인공지능(AI)'은 우리가 거역할 수도 없고,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꼭 필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 속을 살아가면서 함께 꼭 기억합시다!

스마트폰과 같은 기계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아날로그의 삶에도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 그러기 위해서 '멈춤과 기억과 머뭄의 시간'인 '피정과 기도와 미사참례와 말씀묵상의 시간'에도 충실하려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 예레48,47)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5.24) -교육 주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15,18)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자!'

오늘 복음(요한15,18-21)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15,19ㄴ)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15,20ㄴ)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15,21)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본질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삶,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걸어가신 예수님의 길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박해자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히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면, 우리를 위해 먼저 겪으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부활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걸으셨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을 수난과 죽음에서 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부활하게 하는 힘이며 그 원천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귀는 우리를 계속해서 그 고통만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게 하고, 결국에는 우리를 부활하게 합니다.

'아하!'
이 '아하체험'이 곧 '부활체험'입니다. '아하체험'은 지금 내가 여기에서 겪고 있는 고통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겪으셔야만 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체험이며 고백입니다.

(~예레50,46)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