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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성주간

<주님 수난 성지 주일>(4.13)"'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의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제목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4.13)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의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루카19,38)

'가장 거룩한 한 주간!'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복음'(루카19,28-40)과 ,
'루카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루카22,14-23,56)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성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곳입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고향 나자렛 땅 갈릴래아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 땅으로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종착지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임금님, 높은 데서 호산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제자들의 무리가 이렇게 기뻐 찬미하며 환호합니다. 그런데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또 다른 백성은 이렇게 소리높여 외칩니다.

"그자는 없애고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루카23,18.21) 

두 마음을 만납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두 마음도 바라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믿음과 불신의 삶이 교차하는 변덕스러운 우리의 모습도 바라봅니다.

나를 위해 오셨고,
나를 위해 땀 흘리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엄청난 사랑입니다.
극진한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을 믿고, 이 사랑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삶으로 따라가는 제자들이 됩시다!

오늘은 교회 달력인 전례력으로 일 년 중 가장 거룩한 주간인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때'입니다.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집회35,26)

이병우 루카 신부

<성주간 월요일>(4.14)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를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12,7)

'주님의 장례를 위한 나의 예물은?'

성주간 월요일의 복음(요한12,1-11)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다.'입니다.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립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요한12,7-8)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 모두의 구원을 위해 죽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며, 그것이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마리아가 예수님께 극진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드러냅니다. 삼백 데나리온, 이 가치는 노동자 일당(1데나리온)을 10만원으로 했을 경우 3천만원에 해당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투덜거릴만한 큰 돈입니다.

하지만 이 큰 돈보다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마리아는 기꺼이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 앞에 내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곧 다가올 예수님의 장례(죽음)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내어놓을 것인가? 예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나의 예물은 무엇일까?

쉽게 흔들지 않는 믿음과 회개가 아닐까?

(~집회38,34)

월욜- 예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나의 예물은 무엇일까?
쉽게 흔들지 않는 믿음과 회개가 아닐까?-사랑에 눈이멀은 봉사되기
 토욜 -예수님을 향해 이런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구원받았고, 이 간절함이 없었던 사람들, 교만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구원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성지주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때'입니다.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오른손이 한일을 오른손 조차도 모르게 하라 

<성주간 수요일>(4.16)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26,15ㄱ) 

'하느님을 두고 흥정하지 말자!'

오늘 복음(마태26,14-25)은 세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단락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말씀'이고, 다음 단락은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말씀'이며, 마지막 단락은 '제자가 배반할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배신자 유다가 예수님을 두고 수석 사제들과 흥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깁니다. 예수님의 가치가 은돈 서른 닢이라니. 하지만 은돈 서른 닢은 구약성경이 전하는 '목자의 품삯'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나의 값어치를 매겨 내놓은 그 잘난 품삯을 금고에 넣어라.' 나는 은 서른 세켈을 집어 주님의 집 금고에 넣었다."(즈카11,13)

하느님을 두고 흥정하지 맙시다!

유다와 같은 충동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곤 합니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그러합니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믿음,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하느님을 두고 흥정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주간의 독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종의 노래'입니다. 첫째와 둘째 노래는 '소명(부르심)에 관한 말씀'이고, 셋째와 넷째 노래는 '수난과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주님의 종이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순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하게 믿고 굳게 믿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세월호 11주기입니다.
불쌍하게 희생된 304명의 영혼들을 기억합시다!

(~집회43,33)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종의 노래'입니다. 첫째와 둘째 노래는 '소명(부르심)에 관한 말씀'이고, 셋째와 넷째 노래는 '수난과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주님의 종이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순했으면 좋겠습니다.단순하게 믿고 굳게 믿어,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세월호 11주기입니다.
불쌍하게 희생된 304명의 영혼들을 기억합시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4.17)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13,15)

'예수님처럼 하자!'

오늘 복음(요한13,1-15)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결정적인 때,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때가 되었습니다. 때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표시로 제자들과 만찬을 하신 다음에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13,14-15) 

오늘은 모든 교구에서 오전에 '성유축성미사'를 거행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파스카 성삼일의 시작을 알리는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밤샘 성체조배'가 이어집니다.

'성유축성미사' 때에는 사제들의 서약을 공적으로 새롭게 하는 '사제들의 서약 갱신'이 있고, 이어서 일 년 동안 사용할 성유를 축성하는 '성유 축복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만찬 미사'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하는 미사입니다.

성체성사(미사)의 제정을 통해 우리에게 양식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도 예수님처럼 너에게 양식이 되어 너를 살리는 도구가 됩시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발을 씻겨주는 사랑이 됩시다!

오늘은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제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사제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거나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오히려 저를 포함하여 그런 사제들을 위해 더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11,26) 

행복한 날 되소서!

(~집회48,25)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발을 씻겨주는 사랑이 됩시다!
오늘은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제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사제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거나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오히려 저를 포함하여 그런 사제들을 위해 더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11,26) 
행복한 날 되소서! 아멘 !!!


<주님 수난 성금요일>(4.18)

"예수님께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19,30ㄷ)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수난예식 때 듣는 복음은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요한18,1-19,42)입니다.'

오늘은 성찬 전례를 거행하지 않고,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와 영성체'로 이어지는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합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6ㄴ)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7ㄴ) 
"목마르다."(요한19,28ㄴ)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ㄴ)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이사53,4-5.10ㄱ/'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고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5,8-9)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합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종합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읍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합시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입니다.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각 성당에서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과 수난 예식에 적극 참여합시다!

(~이사2,31)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고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5,8-9)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순종하며 죽읍시다! 예수님처럼 부활합시다!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4.19)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24,5ㄴ-6ㄱ)

'주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가장 큰 날입니다. 주님 부활을 기뻐하며 축하드립니다.
이 큰 기쁜 날에 복음 묵상글을 통해 매일 만나는 형제자매님들과 가정 안에 주님 부활의 큰 은총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구약의 파스카는 예수님 부활인 신약의 파스카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주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예표입니다. 곧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부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표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4)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부활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어둠을 이기시는 빛으로써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시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갑시다!
그러니 우리도 부활합시다!
그래서 너와 세상이 함께 부활하게 합시다!

이것이 참으로 주님 부활의 참된 의미이며,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의 소명입니다.

어제 30년 냉담한 교우가 십자가의 길을 함께 바치고 고해성사로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오는 큰 부활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지만, 우리의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활이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 이사3,26)

"그리스도 우리의 빛!"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둠을 이기시는 빛으로써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시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도 부활합시다!
 너와 세상이 함께 부활하게 합시다!
 참으로 주님 부활의 참된 의미이며,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의 소명입니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
 
“예수님이시니까.”
 
사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부르짖었던 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 안에 해결되지 않는 왜곡된 분노의 표출임을 예수님께서 보셨기에,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 구원 사건의 절정이 오늘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에 다 일어나고 있기에 거룩한 주간이라고 합니다. 이 거룩한 한 주간 동안에 인간 구원사건의 절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오늘 수난 복음을 통해 들려주는데, 그 여러 사건 중에 제 마음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대목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께 놀림을 하는 그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한 때는 예수님 당신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죽음을 요구하고 모욕을 하는, 그들을 위해 어떻게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하시는지 참으로 이해하고 받아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예수님이시니까.” 라고 쉽게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믿음이고 대답이라 여겨집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을 뭉뚱그려 단지 군중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그냥 뭉뚱그린 군중으로 보지 않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따로 떼어놓고서 본 것입니다. 만일 군중으로만 보았다면 그냥 그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지만, 한 개인으로 다들 따로 떼놓고 보면 그들 각자 지니고 있는 그 나름의 문제와 이유를 볼 수있게 되고 이해가 됩니다.
 
로마식민지시대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좌절감, 삶의 힘겨움에서 오는 팍팍함, 가질 것이 없는 것에 오는 허탈감, 살아남기 위해 아부할 수밖에 없는 비굴함 등으로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다 보셨습니다. 사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부르짖었던 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 안에 해결되지 않는 왜곡된 분노의 표출임을 예수님께서 보셨기에,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신 인간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 그냥 인간들로 뭉뚱그려 보지 않으십니다. 고유한 한 개인인 우리 자신을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대하시는 그런 마음을 이 성주간에 알아들었으면 합니다. 우리 역시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고유하고 유일한 사람으로서, 이해와 사랑으로 소중하게 여기면서 다가가 가 보고자 노력해보는, 그런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진선진 마태오 신부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영혼을 구하기 위해 났느니라 믿음은 우리의 명운이 달려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과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이끄십니다  네  ( 아기예수의  아녜스) 여기 있습니다. 돌들마저도떼구르르 구르며  기뻐  웃는 부활 !!!  신부님 부활 축하!!!!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