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 (Ep. 130,9,18-10,20; CSEL 44,60-63) |
일정한 시간에 우리 마음을 기도하는 일에로 되돌이키도록 합시다 |
에스델서에 의한 독서 | 3,1-15 |
유다인들이 중대한 위험 속에 빠지다 |
1 주여 그들 속에다 겁을 집어 넣으시와 * 저희가 인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시온의 대문에서 당신의 영광을 전하오리다. |
○ 나를 가르치시어, 당신의 법을 지키게 하소서. ◎ 이 마음 다하여 지키리이다. |
제1독서 |
에스델서에 의한 독서 유다인들이 중대한 위험 속에 빠지다 |
그 무렵 1 아하스에로스왕은 아각 사람 함다다의 아들 하만을 높이 들어 다른 대신들 윗자리에 앉혔다. 2 궁궐 대문에서 일보는 왕의 신하들은 모두 왕명을 따라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려 하지 않았다. 3 궁궐 대문에서 일보는 왕의 다른 신하들은 “자네는 왜 어명을 거스르는가?” 하며 4 날마다 충고를 하였으나 모르드개가 끝내 듣지 않자 이를 하만에게 고하였다. 모르드개가 스스로 유다인이라고 하니 얼마나 버티는가 보자는 심산이었다. 5 하만은 모르드개가 정말로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지 않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는 몹시 화가 났다. 6 하만은 모르드개가 어느 민족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는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아하스에로스 왕국에 사는 유다인들을 모두 함께 전멸시키기로 하고 그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7 아하스에로스왕 십이년 정월, 곧 니산월이었다. 사람들이 유다인을 해치울 날을 정하려고 하만 앞에서 주사위를 던지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이 나왔다. 주사위를 그 곳 말로는 불이라고 하였다. 8 날이 정해지자 하만이 아하스에로스왕 앞에 나아가 말했다. “이 나라 백성들 가운데는 남과 섞이지 않는 한 민족이 각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 민족의 법은 어떤 민족의 법과도 달라서 임금님의 법마저도 지키지 않으니 도저히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9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그들을 멸하라는 영을 내려 주십시오. 그렇게만 하신다면, 신은 은화 일만 달란트를 달아서 재산 관리인에게 넘겨 내탕고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10 왕은 인장 반지를 뽑아, 유다인을 박해하려는 아각 사람 함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일렀다. “돈은 그대가 차지하여라. 그리고 그 민족은 그대 손에 넘길 터이니 좋도록 처리하여라.” 12 정월 십삼일에 하만은 왕의 비서관들을 불러 왕의 제후들과 각 지방 총독들과 각 민족 수령들에게 보내는 칙서를 받아 쓰게 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아하스에로스왕의 이름으로 서명하고 왕의 인장 반지로 인봉한 다음 13 보발꾼을 시켜 전국 각 지방에 발송하였다. 그 내용은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유다인은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자 할 것 없이 다 죽여 버리고 사유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14 그리고 각 지방에 법령으로 선포될 이 문서의 사본을 모든 민족에게 공포하여 그날에 대비하게 하였다. 15 보발꾼들은 왕명을 받고 급히 흩어져 갔다. 이 법령은 수사성에도 나붙어 온 수사성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왕은 하만과 함께 잔치를 차려 먹고 있었다. |
제2독서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정한 시간에 우리 마음을 기도하는 일에로 되돌이키도록 합시다 |
주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복된 삶을 항상 욕구하며 그 열망이 끊임없는 기도가 되도록 합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이 열망을 냉각시켜 버리는 분주한 일과 걱정거리를 떠나 일정한 시간에 우리 마음을 기도하는 일에로 되돌이키고 기도의 말로써 우리가 욕구하는 것에다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식어지는 열망을 자주 분발시키지 않는다면 완전히 냉각되어 그 열망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라는 사도의 권고 말씀은 우리가 그 소원을 하느님께 알려 드려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서는 안되고(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려 드리기 전에 그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소원을 더 잘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해 보이는 것이 되기보다 하느님 면전에서 인내심에 찬 끊임없는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좋은 일이나 꼭 해야 할 일이 막지 않는 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오랫동안 기도 드리는 것은 나쁜 일도 아니요 무용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말씀 드린 대로 이런 경우에도 항상 같은 열망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기도 드리는 것은 많은 말로 기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말로 기도 드리는 것과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주님 친히 밤새워 기도하시고 또 동산에서 오랫동안 기도하셨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신 것은 지상에 계실 때 올바르게 기도 드리시고 이제 영원 속에 아버지와 함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그분이 기도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었겠습니까? 이집트에서 은수 생활을 하는 형제들은 기도를 자주 바치되 그것을 짧은 화살 기도의 형식으로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 바치는 이에게 너무도 중요한 것인 열정과 주의력이, 기도 바치지 않는 시간이 너무 길어, 약화되거나,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형제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두 가지 점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열정과 주의력이 지속되지 못할 때 그것을 강제로 생기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이 지속될 때 재빨리 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도에서 지나치게 긴말은 없애 버려야 하겠지만 열정이 지속될 때에는 많은 간구가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많은 말로 기도 드리는 것은 필요한 것을 불필요한 말로 청하는 것이지만, 한편 쉬지 않고 기도 드리는 것은 하느님의 문을 간단없는 경건한 마음의 열정으로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이 기도의 일은 말로써 보다는 탄식으로써 숨소리보다는 눈물로써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아 두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들의 말을 요구하시지 않는 하느님께 “우리의 애통은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 항상 정성된 마음을 가지게 하시며 성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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