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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Ep. 130,14,25-26: CSEL 44,68-71)
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에스델서에 의한 독서 5,1-5; 7,1-10
에스델이 베푼 잔치에 왕과 하만이 참석하다
51 당신은 임금에게 큰 승리를 주시고 +
기름 부음 받은 자 다윗에게와 *
영원할 그 후예에게 자비를 내리셨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주께 만세 만세, 날 구하신 하느님을 높이높이 찬양하라.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소서.
 당신 법의 묘함을 나는 보리이다.
제1독서
에스델서에 의한 독서 에스델이 베푼 잔치에 왕과 하만이 참석하다
5,1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델은 궁중 예복을 입고 왕의 거처가 바라보이는 대궐 안뜰에 들어섰다. 마침 왕은 궁궐 문이 마주보이는 용상에 앉아 있다가 2 에스델 왕후가 뜰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반가워하여 손에 들고 있던 금 지팡이를 에스델에게 내밀었다. 에스델이 가까이 다가가서 지팡이 윗머리에 손을 대자 3 왕이 물었다. “에스델 왕후, 웬일이오? 무슨 간청이라도 있소? 이 나라 반이라도 주리다.” 4 에스델이 말했다. “소첩이 오늘 임금님을 모시려고 잔치를 차렸습니다. 좋으시다면 하만과 함께 와주셨으면 합니다.” 에스델의 초청을 받고 5 왕은 곧 영을 내렸다. “왕후의 소원이니 하만을 곧 들라고 하여라.” 7,1 그리하여 하만은 왕과 함께 에스델 왕후가 베푼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2 두 번째 날에도 왕은 술을 마시면서 에스델에게 물었다. “에스델, 어서 소청을 말해 보오. 무엇이든지 들어주겠소. 진정 소원이라면, 나라 절반이라도 떼어 주리다.” 3 왕후 에스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만일 임금님께서 소첩을 귀엽게 보아주신다면, 또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이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제 소원은 이것입니다. 제 겨레도 살려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4 지금 저와 저의 겨레는 다 죽어 멸종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종으로 팔려 간다고만 해도 아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임금님께서 입으실 손해는 무엇으로 메우시겠습니까?” 5 “도대체 그 놈이 누구요? 그런 음모를 꾸민 놈이 지금 어디 있소?” 하고 아하스에로스왕이 캐어 묻자, 6 왕후 에스델은 그제야 사실을 털어 놓았다. “우리를 박해하는 우리의 원수, 그 사람은 바로 이 교활한 하만입니다.”

에스델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7 왕은 너무 화가 나서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안뜰로 나갔다. 틀림없이 왕에게서 벼락이 내릴 것을 알고 하만은 왕후 에스델에게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8 왕이 안뜰에서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 보니, 에스델이 몸을 누이고 있는 평상에 하만이 엎드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왕은 “네놈이 내 거처에서, 더구나 내 앞에서 왕후를 겁탈하려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왕의 입에서 이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하만의 얼굴은 수건으로 가리워졌다. 9 왕을 모시던 내시 가운데 하르보나가 나서서 말하였다. “마침 하만의 집에 높이가 쉰 자나 되는 기둥이 하나 서 있습니다. 임금님을 살려 드린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하만이 세워둔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그 기둥에 이 놈을 달아라.” 어명을 따라, 10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기둥에 자기가 매달려 죽게 되었다. 그제야 왕의 노여움이 풀렸다.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물어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사도는 ‘우리가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하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한 사도나 그것을 들은 신자들이 주님의 기도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런데 사도는 자기 자신도 이런 모르는 상태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오로가 자기가 받은 계시의 웅대함으로 말미암아 들뜨지 않도록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그를 줄곧 괴롭혀 온, 육신을 가시로 찌르는 병을 얻었을 때, 그는 자기가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그 고통이 자기에게서 떠나게 해주십사고 세 번이나 간청한 것입니다. 이 점을 보아서 그 당시에 사도가 무엇을 청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내 그는 왜 자기와 같은 위대한 사람이 청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리고 이루어지는 것이 왜 합당치 않은 일인지를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에게는 내 은총으로 충분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는 이들 고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은 언제나 무겁고 짜증스러우며 인간의 허약감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공통 심리에 따라 그것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 주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 고통을 우리에게서 거두지 않으신다 해도 그분이 우리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어려움을 경건한 인내력으로 참아 낸다면 우리가 더 좋은 것을 얻으리라 기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위의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사람이 청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을 애타게 청함으로써 자기 기도가 응답될 때 교만해지지 않게끔 하기 위함이고, 또 한편 실상 청하는 바를 얻게 된다면 더 지독한 고통이 초래되거나 또는 얻은 행운이 도리어 그를 타락으로 떨어뜨리게 할 수 있기에, 하느님께서 그 청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데, 그런 경우 큰 실망감에 젖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청하는 것과 반대되는 어떤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내로이 견디고 만사에서 감사 드리면서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 우리에게 더 적합한 것임을 조금도 의심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중재자께서는 우리에게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를 다음의 말씀에서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고 말씀하신 다음, 당신의 인성 안에 취하신 인간의 의지를 바꾸시고는 덧붙여 즉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바로 이 때문에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든 사람의 의롭게 된 것입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 항상 정성된 마음을 가지게 하시며 성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