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 (Ep. 130,8,15. 17-9,18; CSEL 44,56-57. 59-60) |
우리의 욕망이 기도 안에서 수련되도록 합시다 |
에스델서의 시작 | 1,1-3. 9-13. 15-16. 19; 2,5-10. 16-17 |
와스디를 몰아내고 에스델을 택하다 |
9 구원은 오직 주께 있사오니 * 당신의 백성 위에 복을 내려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내 머리를 들게 하시나이다. |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풍부히 머물며, ◎ 너희는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충고하라. |
제1독서 |
에스델서의 시작 와스디를 몰아내고 에스델을 택하다 |
1,1 아하스에로스 시대의 일이었다. 아하스에로스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 2 아하스에로스는 수도 수사성에서 왕위에 올라, 3 나라를 다스린 지 삼 년째 되던 해에, 큰 잔치를 베풀고 고관 대작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와 메대의 장군과 귀족과 각 지방 수령들을 초대하였다. 9 한편 와스디 왕후도 아하스에로스 왕궁에다 잔치를 베풀고 부인들을 초대하였다. 10 칠 일째 되는 날, 왕은 취흥이 돋아 자기를 모시는 일곱 내시 므후만, 비즈다, 하르보나, 비그다, 아박다, 제달, 가르가스에게 11 “와스디 왕후를 화관으로 단장시켜 모셔 오너라.” 하고 분부를 내렸다. 왕은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고관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12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내시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도 나오지 않았다. 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13 왕은 법에 밝은 학자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일은 법학자와 법관들에게 문의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 15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내시들을 시켜 내린 분부를 와스디 왕후가 거역했으니, 법대로 다스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16 므무간이 앞으로 나서며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와스디 왕후는 임금님께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아하스에로스 왕국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신하들과 백성에게도 못할 일을 한 셈입니다. 19 그러니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다시는 와스디가 어전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명을 내리십시오. 그리고 이 일을 페르시아와 메대의 법령에 써 넣어 결코 뜯어 고치지 못하게 하시고 왕후의 자리는 그보다 나은 분에게 물려주십시오.” 2,5 그때 수사성에는 모르드개라는 한 유다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야이르의 아들로서, 할아버지는 시므이, 증조부는 키스였다. 6 모르드개는 유다왕 여고니야가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올 때 예루살렘에서 함께 잡혀온 사람이었다. 7 그에게는 부모 없는 사촌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에스델이라고도 하고 하다사라고도 했다. 에스델은 몸매도 아름다웠고 용모도 단정하였다. 그는 양친을 여읜 뒤 모르드개의 양녀로 들어가 있었다. 8 어명이 공포되자 많은 아가씨들이 뽑히어 수사성에 올라와 궁녀들을 맡아보는 헤개에게 맡겨졌다. 이렇게 궁궐에 불리어 와서 헤개에게 맡겨진 아가씨들 가운데 에스델도 끼여 있었다. 9 이 아가씨는 유난히 헤개의 눈에 들어 그의 굄을 받게 되었다. 헤개는 곧 몸치장에 쓰이는 것들과 음식을 주며 가장 좋은 궁에서 지내게 하고, 궁궐에서 시녀 일곱을 골라 그를 시중들게 하였다. 10 그런데 에스델은 모르드개가 일러준 대로 자기의 혈족과 인척 관계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16 에스델이 어전에 불려 들어간 것은 아하스에로스 칠년 시월, 곧 데벳월이었다. 17 왕은 다른 어느 여자보다도 에스델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하여 에스델은 모든 처녀를 물리치고 왕의 굄과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왕은 그의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비로 삼았다. |
제2독서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욕망이 기도 안에서 수련되도록 합시다 |
기도할 때 우리가 응당치 않은 것을 청할까 두려워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유익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그만두고 오히려 다음의 시편 말씀으로 기도함이 좋겠습니다. “오직 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당신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그것이외다.” 거기 주님의 집에서는 날들이 오고 가는 일이 없고 한 날의 시작은 그 전날의 끝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모든 날은 동시에 끝없이 계속되고 그날을 살아가는 삶은 끝이 없습니다. 생명 자체이신 분께서는 이 복된 삶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을 더 많이 할수록 주님이 우리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는 양 그것을 많은 말로 하라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주 친히 말씀하시듯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그것을 청하기 전 우리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시는 분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하기 전에 주님이 우리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신다면 왜 청하라고 하십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시는 우리의 욕망을 더 잘 아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을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 안에서 우리의 욕망이 수련되기 위해서입니다. 실은 주님이 주시려고 하는 선물은 크지만 그것을 받으려고 하는 우리 마음은 작고도 협소합니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짝짓지 말도록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주님의 은혜는 참으로 큽니다. 그것은 “눈으로 본 적이 없고(색깔이 없습니다.)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음의 진동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은 그것에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더욱 충실히 믿고 더욱 굳게 희망하며 더욱 열렬히 욕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시들지 않는 욕망으로 늘 기도하지만 일정한 시간과 때에 어떤 선택된 말을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 드릴 때도 있습니다. 이는 그러한 말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권고를 받고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진전했는지 깨닫게 해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강렬히 이 욕망을 증대시키도록 분발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욕망이 더 불타면 불탈수록 그에 뒤따르는 효과도 그만큼 더 가치롭습니다. 이 욕망을 분발시키기 위해 사도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쉬고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고 주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영원한 삶인 복된 삶을 끊임없이 갈망하라는 뜻입니다. |
사은찬미가 |
찬미하나이다 우리 천주여 *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원하신 아버지를 * 온 세상이 삼가 받들어 모시나이다. 모든 천사 하늘들과 그 모든 능한 이들 + 케루빔과 세라핌이 *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어 노래부르오니, 거룩하셔라 거룩하셔라 * 온 누리의 주 천주 거룩도 하시어라. 엄위로운 당신의 영광 * 하늘과 땅에 가득도 하시어라.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 그 보람 뛰어나신 선지자의 대열, 눈부시게 무리진 순교자들이 *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땅에서는 어디서나 거룩한 교회가 * 그 엄위 한량없는 아버지를, 뫼셔야 할 친아드님 당신 외아드님을 * 아울러 위로자 성령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여 * 당신은 아버지의 영원하신 아드님, 인간을 구하시려 몸소 인간이 되시고자 * 동정녀의 품안을 꺼리지 않으셨나이다. 죽음의 가시를 쳐버리시고 * 믿는 이들에게 천국을 열어 주셨나이다. 지금은 천주의 오른편 아버지의 영광 안에 계시어도 * 심판하러 오시리라 우리는 믿나이다. 보배로운 피로써 구속받은 당신 종들 * 우리를 구하시기 비옵나니, 우리도 성인들과 한몫에 끼어 *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 주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 당신의 기업을 강복하소서. 그 백성 당신이 다스리시고 * 영원까지 그들을 이끌어 주소서. 나날이 주님을 기리는 우리 * 세세 대대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비오니 주여 우리를 지키시어 * 이날에 죄 없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당신 자비를 우리에게 내리시어 * 당신께 바란 대로 되게 하소서. 주여 우리 당신께 바랐사오니 * 영원토록 부끄럼이 없으리이다. ¶ 이 부분은 생략할 수도 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 항상 정성된 마음을 가지게 하시며 성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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