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각자는 자기 이익을 찾지 말고 그리스도의 이익을 찾아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6-7: CCL 41,533-534)
각자는 자기 이익을 찾지 말고 그리스도의 이익을 찾아야 합니다

 ''모자란다는 여백, 그 여백이 오히려 기쁨의 샘이 된다.'' - 파스칼 -

예언자 에제키엘서에 의한 독서 10,18-22; 11,14-25
주님의 영광이 저주받은 도읍을 포기하다
22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
모든 조물들아 너희는 *
주님을 당신 나라 곳곳에서 찬양들 하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모든 조물들아,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라.
 주여, 당신의 계명 길로 날 깨우쳐 주소서.
 묘하신 당신의 일들을 깊이 생각하리이다.
제1독서
예언자 에제키엘서에 의한 독서 주님의 영광이 저주받은 도읍을 포기하다
그 무렵 10,18 주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거룹들 위에 멈추셨다. 19 그러자 거룹들은 날개를 펴,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아 떠나갔다. 바퀴들도 함께 떠나갔다. 거룹들이 주님의 성전 동쪽 정문간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거룹들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20 내가 일찍이 그발강 가에 있을 때,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는데, 나는 그 생물들이 이 거룹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21 거룹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가 넷인데, 그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보였다. 22 그 얼굴 형상은 내가 일찍이 그발강 가에서 본 바로 그 얼굴이었다. 거룹들이 하나씩 앞으로 곧장 움직였다.

11,1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5 “너 사람아,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네 겨레, 포로로 붙잡혀간 네 동포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당신들이 모두 주님 앞을 떠났으니, 이 땅은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 하고 주장한다. 16 그러니 너는 이렇게 일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을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쫓아 보내어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게 하였지만, 나는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얼마 동안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 주리라.’ 17 너는 또 이렇게 일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얼마 있다가 나는 그들을 뭇 백성들 가운데서 찾아내리라. 그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 그 여러 나라에서 모아들여, 이스라엘 농토를 돌려주리라. 18 그들은 이리로 돌아와서 구역질나는 우상, 보기에도 역겨운 신상을 모두 몰아낼 것이다. 19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도록 해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 20 그래서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도록 만들겠다. 그제야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1 그러나 구역질나는 우상, 보기에도 역겨운 신상만을 마음에 두고 사는 자에게는 그 소행대로 벌을 내리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22 말씀이 끝나자 거룹들이 날개를 펴는데, 바퀴들도 함께 움직였다. 그 거룹들 위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었다. 23 그 주님의 영광이 도성 한가운데서 떠올라 동쪽 산 위에 멈추었는데, 24 나는 신비스런 발현 가운데서 그분의 기운에 들려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온 겨레들에게 돌아왔다. 이렇게 발현을 보다가 깨어난 다음 나는 25 주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모든 것을 사로잡혀 온 겨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각자는 자기 이익을 찾지 말고 그리스도의 이익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양의 젖을 짜 먹는 것이 무슨 뜻인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는 것이 무슨 뜻인지 보기로 하겠습니다. 젖을 준다 함은 양식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양털을 준다 함은 영예를 주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양 떼를 제대로 기르지 않는 목자들이 신자들에게서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즉 생활비를 제공받는 혜택, 그리고 영예와 칭송입니다.

옷이란 영예를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옷을 입어 알몸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는 연약합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나라고 해서 다를 바 있겠습니까? 나도 육신을 가지고 있으며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고 잠자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태어나고 또 죽습니다. 여러분이 “나”라는 인간 그 자체를 두고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인간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에게 엄청난 영예를 바칠 때 흡사 그의 나약성을 옷으로 가리우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의 착한 백성들에게서 이와 같은 옷을 얻어 입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느님의 천사와도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나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큰 영예를 얻은 후 그들을 꾸짖는다면 그 영예가 혹시 거부되거나 감소되지 않을까 두려워, 길을 잘못 들어선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까? 만일 그렇게 했다면 자기 자신은 돌보고 양들은 제대로 기르지 않는 목자들의 부류에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각자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자. 내 생계도 염려할 바 없고 내 영예도 안전하다. 젖과 양털, 이런 건 충분히 갖고 있다. 각자 자기 길을 가도록 해주자.” 그래, 각자가 자기 길을 간다고 할 때 당신의 모든 것이 안전하겠소?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지도자로 삼는 것을 거부하겠소. 당신을 백성 가운데로 돌려보내겠소.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아파하지 않겠소?”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들한테 받은 영예를 잊어버린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그들에게서 받은 영접을 상기하면서 그들에게 자기를 하느님의 천사와도 같이 영접해 주었고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주었을 것이라고 중언합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그는 병든 양들을 찾아가 썩은 데를 잘라 내어 부패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제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입니까?” 바오로는 우리가 먼저 본 대로 양들의 젖을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었지만 양들을 돌보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이익을 찾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익을 찾았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천주여, 우리를 굽어보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뒤에 특히 공동으로 바칠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