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의 성 아나스타시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 (Oratio 5, de Resurrectione Christi, 6-7. 9: PG 89,1358-1359. 1361-1362)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비천한 육신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 | 15,12-34 |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희망입니다 |
12 내 영혼아 어찌하여 시름에 잠겨 있느냐 * 어찌하여 내 속에서 설레이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 나는 다시 그 님을 찬미하게 되리라 * 내 낯을 살려 주시는 분 내 하느님을.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3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
○ 주여, 당신 사랑 누리에 가득하오니, ◎ 말씀하신 대로 나를 살려 주소서. |
제1독서 |
안티오키아의 성 아나스타시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희망입니다 |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13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짓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16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22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24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25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 발 아래 굴복시키셨다.”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굴복시키셨다고 할 때 굴복시키시는 그분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8 이리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굴복당할 때에는 아드님 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하느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 29 그런데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30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살고 있습니까? 31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32 내가 설혹 에페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위험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당한 일이라면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 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집니다.” 34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부끄러운 줄을 알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
제2독서 |
안티오키아의 성 아나스타시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비천한 육신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분이 다스리시는 죽은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이 그들을 다스리시니,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다시 죽지 않으시는 것처럼, 이제는 그들도 살아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하여 부패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죽음에 참여하셨듯이 후일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영원히 잠겨 있는 청동 성문을 두드려 부수고 쇠 빗장을 부러뜨리며 노예 신세 대신에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 생명을 부패에서 구하여 당신께로 끌어올리시기 위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죽고 육신은 썩고 있으므로 이 같은 구원 계획이 미완성인 것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배신의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어디선가 말씀하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자리에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말한 모든 은혜 외에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을 통해서 보증을 받았으며 이미 하늘 높이 올라가 있고 우리를 당신과 함께 높이 들어 올리신 그분과 함께 한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부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우리가 유치함을 버리고 완전한 어른이 되면 구원 계획의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기를 지배하시는 성부의 계획대로 한번 받은 은혜는 변할 수 없으니 다시 우리 정신이 유치하게 되어 단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영적인 몸이 부활하였으므로 사도 바오로께서 우리 육신에 대하여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살아난다.” 하셨습니다. 즉 우리를 앞서가신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닮는다는 뜻이니 더 말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오로께서 당신이 알고 계신 대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시어 당신의 빛나는 몸과 같아지게 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인류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변화라는 것은 영적인 몸으로 변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닮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셨으니 “천한 것으로 묻혔지만” 영광으로 변하였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인성의 첫 열매를 성부께로 이미 인도하셨으니 전인류를 인도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높이 달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끌어당기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비옥한 땅을 맡겨 주시고, 땅을 가꾸어 인간 생존의 양식을 마련하게 하신 천주여, 금년에도 제때에 비와 햇볕을 고루 내려 주시어 풍부한 곡식을 거두게 하셨으니, 햇곡식으로 우리 가족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함께 나누며, 먼저 가신 조상들과 부모님들을 기억하오니, 그들에게는 천상 행복을 풍부히 허락하시고, 우리에게는 영육의 건강을 내려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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