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5회 ‘비워야 채워진다.’ 성공하려면 절제하라.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1일(시편 76편~ ) 나폴레옹은 ''불가능은 소심한 자의 환상이요 비겁한 사람의 도피처이다.'' 《말의 힘》세상의 말에는 힘이 있다.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격려의 말', '칭찬의 말', '축복의 말' 은 최고의 언어입니다. "당신은 잘 될 겁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 보십시오. 누구에게나 힘을 불어넣어 주는 오늘이 되십시오. 세상에서 성공하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말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운’ 입니다. 일본 최고 납세자 ‘사이토 히토리’ 씨는 “운은 힘이 셉니다. 실력보다 힘이 셉니다. 그러니 운을 키운다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단지 운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운 없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을 운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어떻게 성공의 운이 모이게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절제’ 입니다. 모든 성공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 이 ‘절제’ 를 말합니다. 미즈노 남보쿠는 ‘대일본’ 이란 칭호를 받았듯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은 사람입니다. 이분은 ‘비워야 채워진다.’ 라는 신념으로 ‘절제의 성공학’ 이란 책을 썼다. 자신이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술과 도박과 싸움을 일삼고 살다가 그렇게 수천 명의 제자까지 둔 인물이 되기까지 이끌어준 것이 바로 ‘절제’ 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별히 몸에 음식을 다 채우면 성공의 운이 다한다고 말합니다. 채워지면 비워지는 것만 남고, 가장 높이 뜬 태양은 떨어지는 일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가 18세 때 도둑질을 하다 감옥이 간 일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인상이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인상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옥살이하고 관상가를 찾은 그는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니 속히 절로 가서 출가를 청하시오.” 라고 말해줍니다. 출가하기 위해 절에 갔더니 절의 주지 스님은 1년 동안 보리와 흰콩만으로 식사하고 오면 받아주겠다고 합니다. 1년 동안의 그렇게 절제된 식사를 마치고 절로 가는 길에 전의 그 관상가를 다시 찾았다. 남보쿠를 알아본 관상가는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군요. 어디서 큰 덕을 쌓았소, 아니면 사람의 목숨을 구했소?” “생명을 구한 일은 없지만, 보리와 흰콩만 먹고 1년을 살았다.” “식사를 절제한 것이 큰 음덕을 쌓았구려. 그것이 당신을 구했소!” 남보쿠는 출가보다는 운명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처음 3년은 머리 만지는 일 하며, 그 다음 3년은 목욕탕에서 일하며, 마지막 3년은 화장터에서 인부로 일하며 얼굴과 몸과 골격을 공부하였다. 그렇게 관상을 보니 처음엔 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죽을 운명이면서도 죽지 않고, 망할 운명이면서도 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생겨났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음식을 절제하며 사는 이들이었다. 병에 걸려 죽을 운명도 음식을 절제하니 그 빈 곳에 없던 운도 깃든다는 것을 발견한 것. 그는 3년 동안 음식을 절제하고도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비워져야 하늘의 기운이 그 안에 차게 된다는 것. 남보쿠는 노년에 거대한 저택에 큰 창고만 7동이 되었으나, 쌀은 물론 쌀로 만든 떡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3천 명이 넘는 제자들이 따랐고, 일본 조정에서 대일본이라는 파격적인 칭호까지 받았다. 어차피 먹고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평생 배고픈 삶을 산 남보쿠가 부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성공한 것처럼 좋은 차를 타고 술과 고기를 배부르게 먹는다면 그 사람의 운명은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다 채워졌기 때문에 이제 비워지는 일만 남은 것. 어느 나라나 망할 때는 다 배부르게 먹고 마십니다. 이것이 국운도 좌우하는 것. 미국으로 건너가서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세계 최대 음식 가맹점을 성공시킨 김승호 회장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성공하려면 절제하라는 것. 음식을 적게 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 돈을 절대 쓰지 말라고 합니다. 사치하지 말라는 것. 월세나 전세 살면서 비싼 외제차 타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앞으로 성공할 것 같나요? 샴페인을 미리 터뜨리면 거기까지입니다. 성공한 이들을 부러워하여 자신을 절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공할 것이고, 이미 성공한 것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은 항상 부족한 삶을 살게 될 것.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 넣어주신 법칙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비워가던 이들이 받게 될 보상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충만한 생명을 채우려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산다면 저승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진시왕이나 카다피는 어떤 상을 받았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으려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 생명으로 다 채워졌으니 죽음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성인의 삶은 조금 비우는 삶입니다. 조금 비우니 이 세상에서조차 걱정거리도 없고 편안하고 심지어 존경도 받습니다. 그러면 많이 비우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의 명예를 모욕으로, 배부름을 배고픔으로, 소유를 가난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의 모든 운을 끌어오게 될 것. 하늘의 운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늘이 영원한 것처럼 그 운도 영원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채우는 삶이 아니라 비우고 비워서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은총의 공간을 넓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 재물이든, 명예든, 생명이든, 비워야 채워집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도, 그리고 매 순간에 삶 속에서도 부족한 한 가지를 채우시기를 그래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병들지 않음으로, 치유의 은총으로 그리고 모든 일에 회복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모르는 것보다는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 마크 트웨인 - |
♡2197회 사람은 성숙에 먼저 집중을 해야지 성공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3일(시편 136편~ ) 손자병법에 ''수가 많다고 강한 것은 아니다.'' 《완덕으로 나아가는 지름길》나의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 내가 하는 말을 더 기록하여라.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너희 영혼들이 완덕(完德)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 완덕에 이르는 특수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를 나와 친밀히 결합시키는 것이 완덕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너희들의 모든 행위를 영혼 중심적 행위로 변화시킨다면 너희 일상생활의 가치는 그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있겠느냐? 너희 영혼들이 사랑을 가지고 일을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 그러나 사랑이 없이 냉냉한 가운데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짜증이 날 것. 이럴때에는 나의 성심에 다가와 용기를 얻어라. 낙담과 실망 권태 등 모든 잡다한 것들은 내 앞에 모두 드러내 놓아라. 그러면 그날 하루는 너희 영혼들에게 있어서 매우 보람있는 하루가 될 것. 나의 마음은 인간들의 모든 어려움을 알고 동정하고 있다. 너희 영혼들이 나와 결합하되, 예사롭게 결합하려는 것은 싫다. 나는 이 결합이 서로 사랑하여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의 결합이어야 하고, 영원하고도 긴밀하게 맺어지는 결합이 되기를 원한다. 항상 대화는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 서로서로 마음을 주고 정을 줄 수 있지않겠느냐? 너희 영혼들은 내가 주는 평화와 위안 속에 있으면서 설사 번민과 비애가 너희를 엄습해 와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라. 나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된다. 나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너희들은 내 마음의 애정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영혼들에게 나의 마음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를 말해 주려 한다.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나는 모든영혼들이 나만 바라보고 다른 데에 시선을 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제발 나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여 예사로운 보통 사랑으로 잘못 아는 일이 없기 바란다. 나의 성심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거북스러운 것도 아니다. 감미롭고도 용이한 것이 바로 내 사랑이다. 이 사랑의 높은 단계에 오르려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너희들의 크고 작은 행위를 순결한 지향으로 나의 성심과 친밀하게 결합시키면 된다. 그 외 다른 것은 나의 성심이 다 해줄 것이다. 아멘! 어머니는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네?” 라고 말하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야!” 라고 노랫말을 되풀이하십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다 늙었다!” 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많이 익었지?” 라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좋다. 과일도 익은 것은 맛이 있지만 늙은 것은 먹을 수 없다. 인생의 성공도 이것에 달려있을 것. 늙지 말고 익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늙는 것과 익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최고가 된 파타고니아의 성공 비결과 ‘이본 쉬나드’ 의 60년 경영 철학을 공개한 최초의 책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교복이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조끼’ 의 주인공이자,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기업입니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 의 인생 목표는 바로 ‘지구’ 입니다. 지구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그 사랑의 마음을 평생 키워왔다. 젊었을 때부터 암벽 등반을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개척한 북한산 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벽에 박아 놓은 피톤들을 잘 빼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피톤의 머리가 너무 쉽게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산에 갔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 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등반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 그렇게 시작된 것이 파타고니아입니다. 그는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 란 캠페인을 했다. 고쳐서 쓰면 되지 뭐하러 새로 사느냐는 것. 지나친 소비가 지구를 죽이고 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제품부터 소비를 줄이라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한 것. 자신의 제품은 물론 타사의 제품까지 가져오면 다 수리를 해 주었다. 수리되지 않는 물품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 중 하나입니다. 그는 옷에 들어가는 소재인 면을 일반 목화로 쓰지 않고 유기농 목화를 쓴다고 합니다. 목화는 많은 농약을 주어야 하기에 땅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농부와 결탁하여 훨씬 비싼 재료인 유기농만을 사용합니다. 그런데도 매해 꾸준한 성장률을 경신하며 전 세계에서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게 된 기업을 일구었다. 만약 이본 쉬나드가 돈을 버는 것에만 전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늙었을 것. 그는 마음 안에 사랑의 씨앗을 키우는 것에 전념하였다. 그 씨앗을 키우면 성숙합니다. 사람은 성숙에 먼저 집중을 해야지 성공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성숙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성숙에 집중하면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존경받는 모습으로 죽을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 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행복’ 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시는 것. 그런데 그 행복은 내가 일하고 있는 그 밭에 묻혀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건 그 밭에 행복이 묻혀있다. 다만 행복은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밭에 묻힌 보물’ 다음 비유로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 의 비유가 이어지는 것. 금은방을 하시는 한 자매님이 지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지인은 인도 여행 중에 어떤 착한 사람에게 싼값으로 진주를 한 무더기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사를 할 때도 꼭 챙겨 다니며 10여 년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보석상을 하시는 분이 그것을 보고 “아니, 왜 가짜를 그렇게 열심히 들고 다녀요?” 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그것들의 신세는 묵주 팔찌 재료가 되었다. 진주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비싸고, 양식도 민물양식과 해수양식이 있는데 바다에서 길러진 것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그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상당히 다양하여 정말 비싼 진주의 가치는 그것에 관심이 있어서 많은 공부를 한 전문가만이 알 수 있다. 우리 각자의 밭에 보물이 있어도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원하여 그것을 위해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그 보물을 발견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원해야 인생의 성숙이 시작됩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의 성숙만을 바라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빌 게이츠’ 와 ‘워런 버핏’ 을 함께 초대하여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였다. 이때 어떤 학생이 “그렇게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워런 버핏이 먼저 “인성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빌 게이츠도 동의하였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인성의 성숙’ 이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그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늙으면 실패하는 것. 익으면 성공한 것. 인생 100% 성공하는 방법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기 위해 에너지를 쓰면 됩니다. 나의 밭에는 언제나 나의 인성을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보물이 있다. ‘사랑’ 입니다. 나의 인성적 성숙을 얻기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를 그것에 쏟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익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명하는 낚시대를 던져 우리들의 문제도 해결 받는 살맛나는 기적을 맛보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가정은 삶의 보물 상자가 되어야 한다.'' - 코르뷔제 - |
♡2198회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데 심판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적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4일(잠언 1장~ ) 영국속담에 ''금은 진흙 속에 있어도 금이다.'' 《시련을 통해 우리의 거친 모서리를 둥글게깍는다.》 하느님은 우리를 빚으시고 단련시키신다. 하지만 우리가 곤란을 피하는 데만 급급하면 하느님이 제대로 일하실 수가 없다. 주위의 상황과 사람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내면을 돌아보고 하느님이 밝혀 주시는 문제를 처리할 여유가 없다. “하느님, 이 상황을 바꿔 주시면 제가 변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태도를 바꾸고 하느님이 밝혀 주시는 문제를 처리한 후에야 하느님은 상황을 바꿔 주신다. 하느님이 우리를 자주 궁지에 모시는 이유는 시험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시려는 것. 우리의 인생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상황이 끼어들지만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의 거친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내기 위해 주시는 시험일 뿐이다. 우리가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하느님은 문제점을 계속해서 끄집어 내신다. -믿는 대로 된다,<긍정의 힘>- 세상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나 거추장스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것은 우리의 거친 성격의 모서리를 둥 글게 깎아 내어 너그럽게 되고, 상대의 부족한 점까지도 수용하여 용서하는 덕을 닦도록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 준 은인이라는 마음을 먹으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어려운 상황이나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그들에게 집착하여 정신이 팔려 버리면 그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럴 때 한 걸음 물러나 객관화해서 바라보며, 나의 편협한 성격을 고치고 겸손의 덕을 쌓도록 하느님이 나에게 보내신 은총의 기회가 아닌가, 하고 묵상합시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마태 9,32-34) 예수님은 우리를 온갖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마귀 들린’ 상태는 마귀의 억압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과 마주치기만 하면 그것들을 쫓아내셨다. 그 일은 마귀의 억압에서 인간들을 해방시킨 일입니다. 마귀 들린 상태를 ‘병’ 으로, 마귀를 쫓아낸 일을 ‘치유’ 로 해석할 때가 많다. 그렇게 해석해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인간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일입니다. 여기서 “마귀 들려서 말을 못하는” 상황을, 마귀의 억압과 방해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예수님 수난 때에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잠가 놓고서, 숨어 있었다.(요한 20,19) 그 모습은 ‘두려움’ 이라는 마귀의 억압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랬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평화’ 를 주셨고, 또 ‘성령’ 을 주셨다.(요한 20,19-23) 그것은 사도들을 두려움이라는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신 일입니다. 그렇게 해방된 사도들은 숨어 있던 곳에서 밖으로 나갔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모습으로 복음을 선포했다.(사도 2장) 그런데 우리는 그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도들 자신들이 은총에 응답하려고 노력했고, 용기를 내려고 노력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없었던 용기가 성령이 내리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려고 노력하니까 성령께서 도와주셨다. 마귀 들려서 말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셨지만, 말을 하는 것은 그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마귀가 쫓겨난 후에도 스스로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또는 말을 하더라도 ‘빈말’ 만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헛일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독재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의 독재 권력을 지키려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모습은 꼭 ‘마귀 들려서 말 못하는’ 모습과 같다. 그런데 독재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되찾은 다음에도 제대로 말하지 않는 언론이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거나, 가짜 뉴스를 말하거나, 진실을 이상하게 왜곡하거나...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라는 바리사이들의 말은 전형적인 ‘가짜 뉴스’ 입니다. 사이비 언론사가 진실을 왜곡하는 일들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5-38)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억압과 착취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힘없는 서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경고 말씀을 하셨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2,40) 일차적으로는 율법학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실제로는 율법학자들뿐만 아니라 권력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는 자들 모두를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참 목자’ 이신 분입니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는데, 예수님은 가엾게 여기시는 것으로 그치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가엾은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추수철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수확에 동참하는 이들이 적다.”, 즉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는데 아직도 회개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다.” 로 해석됩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하여라.” 로 해석됩니다. “더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여라.” 라는 뜻도 들어 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 사업을 도와드리는 일꾼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세례를 받기 전에는 교회의 선교활동의 대상이지만, 세례를 받으면 선교활동을 함께 하는 일꾼이 됩니다. 그래서 선교활동은 일꾼을 모집하는 활동입니다. 여기서 ‘일꾼’ 은 품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는 자녀를 뜻합니다. 품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은 ‘남의 일’ 을 하는 사람이지만, 자녀는 ‘나의 일’ 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일은 곧 자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확’ 을 심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데 심판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적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에 ‘일꾼’ 은 심판 때에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사람을 뜻하고, ‘일꾼이 아닌 사람’ 은 심판 때에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일꾼이 되기를 바라신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손에 보호를 받는다.” 라는 축복이 베풀어질 수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사람은 목표를 잃었을 때 죽어간다.'' - 빅터 프랭클 - |
♡2199회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 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매어 두면 못쓰게 - 되고 맙니다.”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5일(코헬렛 1장~ ) 아라비아 속담에 ''무엇인가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 《예수성심께 의탁하는 영혼》너희 영혼들을 향한 나의 사랑은 여전히 깊고 그침이 없다. 나의 사랑은 너희들의 작은 일에도 나의 신성한 가치를 붙여 주어 너희들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하려고 한다. 비록 너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 헤매면서 쓰라린 고통을 당하고 연약하여 죄악에 떨어진다 하여도 너희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사실 너희 영혼들은 시련에 부딪치고 가련한 처지에 떨어져야만 자신이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진다. 자기 자신은 사도 성직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타인을 완덕의 길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부적격자라고 느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을 낮추게 된다.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겸손되이 승복하고 나에게 달려오지 않았던 점에 대해 나에게 용서를 빌어라. 나의 마음에게 힘과 용기를 달라고 간청하여라. 그러면 나의 마음은 너희를 사랑의 눈으로 보아 줄 것이고, 너희들이 하는 일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겠노라. 매일 노력하며 희생하면서도, 쾌할한 마음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영혼들도 있다. 이러한 영혼들의 생활은 약속만 하고 진실한 실천이 없는 빈 껍데기 생활이다. 실천에 옮기려는 마음도 없고, 나의 사랑을 증거하겠다는 열의도 없이 약속만 남발하는 습관만 가진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창고에 쌓아 둔 너희들의 곡식에 내가 불을 지르거나 바람에 휩쓸려 날려 보낼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라" 고 나는 다음과 같은 영혼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 어떠한 경우에는 자신을 버리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영혼, 그러나 자기 자신의 타고난 성격, 환경, 건강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나와 맺었던 진실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 이럴때에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허약함을 인정하여 용기를 내어 내게 용서를 비는 영혼, 잘못을 인정한 후 나의 성심에 의탁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게 맡기며 새롭게 굳은 결심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속하는 영혼, 이러한 영혼들이 진정으로 나를 현양하는 영혼이다. 그래서 나는 나약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영혼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에 더 정진하여 나를 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들의 약점 때문에 나의 마음은 상처받지 않는다. 아멘! 15년 동안 오로지 골프에 둘러싸인 박세리가 골프여왕답지 않게 두 경기를 계속 컷오프당한 뒤 “골프에 지쳤다. 이제 골프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다. 나는 골프 말고 다른 일상생활을 즐기는 게 필요하다.” 라고 자가진단과 처방을 내린 적이 있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었지만, 그때가 가장 최악의 슬럼프였다. 그녀는 스승이기도 한 아버지에게 “다른 건 다 가르쳐놓고 왜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것은 가르치고 쉬는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면 다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달리는 것은 가르치고 브레이크 잡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제7일의 안식일이 우리가 힘겹게 일하고 사는 오늘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6일 동안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 고생의 대가로 누리시는 것이 안식일이었다. 따라서 주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은 안식에 들게 됩니다. 물론 그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도 세상에서의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안식에 드셨다. 예수님께서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행의 보상은 안식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왜 모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사이들은 그 안식에 들 수 없을까요? 바로 선행에 대해 또 다른 ‘보상’ 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안식일을 자기만족의 또 다른 일하는 날로 삼은 것. 그들에겐 남을 비판하면서 오는 맛이 그들 선행의 보상이었다. 안식일이 보상이 아니라, 안식일에도 남을 비판하며 일하고 있었던 것. 사도 요한의 제자였고 스미르나 교회의 주교였던 폴리카르푸스의 일화입니다. 자고새 한 마리와 놀고 있던 폴리카르푸스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성인이라는 분이 어떻게 새와 놀며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폴리카르푸스는 빙그레 웃으며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 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매어 두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것 자체가 그분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지쳐있을 수도 있다. 일하며 보상을 달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과 함께 쉬는 것만을 보상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안식일도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기에 다른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지쳐 쓰러집니다. 부자들은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큰 부자가 되는 것? 이미 부자입니다. 그들은 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합니다. 돈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놀지 못하게 될까 봐 돈을 버는 것. 일도 마찬가지일 것. 일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것. 그렇게 모든 것을 성취한 자유, 그다음에 오는 것이 안식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안식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쉼이 목적이 아닌 일은 그 쳇바퀴에 영원히 갇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도 일하고 있었다. 안식일은 열심히 일한 것의 유일한 보상입니다. 쉼만으로 모든 것이 충만히 채워집니다. 쉼이 아닌 다른 보상을 바라는 사람이 쉬지도 못하고 안식에 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사업에 협력했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는 안식에 들 수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쉬는 것,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 노력에 부어주시는 유일한 행복입니다. 열심히 주님 뜻에 따라 살아갑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주님과 함께 머무는 쉼을 즐깁시다. 이것을 잘할 수 있을 때 영원한 안식에도 들 수 있다. 하느님 사랑의 힘이 우리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사랑의 힘으로 미움이 그치고, 몸과 마음이 평온한 가운데 인간은 노력할 뿐 하느님 사랑의 힘을 믿는 기도의 은총이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 이디스 워튼 - |
♡2200회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6일(지혜서 1장~ ) 오쿠라 기하치로는 ''사업이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면 오래 가지 못한다.'' 《걱정 대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라》기도하고 나면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의 마음에 걱정거리 대신 다음 것을 담아두면 마음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밀어내어진다는 것.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된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4,6.8). 마음에 무엇을 담아두었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같은 장독이라도 간장을 담으면 간장독이 되고, 김치를 담으면 김칫독이 되듯이 같은 마음에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 한복판에서 그분과 함께>- 사도 바오로는 부정적인 근심 걱정을 마음의 장독에 담지 말고 긍정적인 것들, 즉 참된 것, 고귀한 것, 의로운 것들을 담아 두면 비로소 신앙의 장독, 은총의 장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생각과 말을 담아 두면 그것들이 우리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가라앉아서 생명력을 얻어 에너지화 되어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엮어 버립니다. 맹독성의 상처를 주는 말이나 생각이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채워지면 노이로제나 우울증을 유발하는 경향성이 되살아나서 성한 사람의 마음과 몸에 균형을 깨뜨려 병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앙인이 복 있는 자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존재의 중심에 모시기 때문에 말씀이 내면화되어 충만한 말씀 장독이 되어 있으니 다른 사악한 말이나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 힐러리 클린턴과 도날드 트럼프의 토론을 보았다. 몇년 전의 토론입니다. 풍부한 행정 경험, 논리적인 언변, 미래에 대한 통찰은 분명 힐러리 클린턴이 앞섰다. 단순함, 직설적인 화법, 경제적인 논리는 분명 도날드 트럼프가 앞섰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우직하고, 단순한 트럼프의 말이 귀에는 더 잘 들어왔다. 미국 우선주의, 경제의 회복, 일자리 창출과 같은 단순하지만 미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몇년 전 미국인은 도날드 트럼프를 선택했고, 도날드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나 한국의 정치나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시민이 결국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것. 아메리카 원주민이 손녀에게 하였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욕심을 채우고, 자기만 알고, 남을 억누르고, 못된 짓을 일삼는 늑대입니다.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가진 것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선행을 베푸는 늑대입니다.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할아버지의 대답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와 같았다.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우리 마음의 밭에도 밀과 가라지가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밀이 풍성하게 자랄 것. 불평과 원망으로 자신은 물론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가라지가 넘쳐날 것.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십시오.” 깨어있는 마음이 하느님나라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농원에서 수확을 하고 있다. 깻잎을 땄고, 고추를 땄고, 가지를 땄고, 복숭아를 땄고, 살구를 땄고, 오이를 땄습니다. 방울토마토도, 호박도 열렸다. 자녀와 나눠 먹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물을 주고, 지지대를 세우고, 줄로 묶어 주었다. 처음에는 언제 자랄지 몰랐다. 매일 물을 주는데도 그대로 였다. 요즘은 몰라보게 자란 텃밭의 친구들을 봅니다. 잎이 커져서 작은 우산같이 되었다. 자연은 솔직한 것 같다. 정성을 기울이고, 이파리도 정리해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거름도 주고, 물을 주면 쑥쑥 자라납니다. 사람의 마음은 더 깊은 관심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은 텃밭에 심었던 모종보다 더 나약한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어떤 사람은 예언자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로 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언자를 무시하고, 죽이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그러나 선택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 주셨다. ‘身土不二’ 라는 말이 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서양의 철학과 학문을 배우면서 분석하고 나누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진리는 어쩌면 ‘통합과 통섭’ 속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원리와 기초를 생각하는데 자꾸만 죄가 떠오릅니다. 죄는 부끄럽고, 죄는 멀리해야 하겠지만 우리 삶의 발자국에 함께 따라오는 것. 병은 우리 몸에 깊은 상처를 주지만 우리 마음은 그 병 때문에 오는 ‘근심, 걱정, 두려움’ 에 더욱 큰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완전하게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는 음식을 섭취하고 나서 배설물을 남기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입니다. 배설물은 혐오스럽고 피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배설물은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갖게 됩니다. 굳이 오래 간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에너지로 사용되고 남은 배설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것. 죄란 어쩌면 우리의 몸과 둘이 아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죄라는 배설물을 남기게 됩니다. 죄는 지금 이 순간 버리면 되는 것. 그러나 죄의식은 우리 영혼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죄의식은 2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교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약함을 거짓으로 감추는 행위입니다. 다른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이 또한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그동안 많은분들께 면담을 통하여 영ㆍ육ㆍ혼을 모두 주님께 드러내고 용서와 축복과 사랑으로 어두움을 떠나보내고 하느님 일 순위의 삶을 살수 있으나 일부는 모두 드러내지 못하고 포기하여 죄의 종으로써 살아감을 봅니다. 죄인은 회개를 만나면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다. 죄인은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죄인들은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변화되었다. 사도 바오로도 주님을 만나서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 사도 베드로도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주님의 길을 충실히 따라갔다. 우리가 아는 많은 성인들도 죄 중에 있었지만 회개를 하였고 신앙의 별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랬다. 우리들 역시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음으로, 그 믿음은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은총의 마음으로, 그리고 베풀어주신 은총 가득한 그 마음은 우리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능력이 될 수 있으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 |
♡2201회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7일(집회서 1장~ ) 파스칼은 ''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여기서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 이라는 말은,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힘과 권한’ 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권한에는 ‘마귀들을 쫓아내지 않을 권한’ 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이 권한을 주신 것은 사실상 마귀들을 쫓아내는 ‘임무’ 와(과제와) ‘힘’ 을 주신 것. 마귀들을 쫓아내는 임무와 힘은 교회의 임무와 힘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마귀들에 맞서 싸워야 하고, 마귀들을 쫓아내야 하고, 마귀들의 억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마귀들의 세력을 ‘악의 세력’ 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교회의 임무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이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악의 편에 서는 것과 같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는 일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해 주는 일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해 준다는 말은,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사랑과 하나이고, 신앙생활은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고쳐 주게 하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을 암시합니다. 뒤의 8절을 보면,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죽은 이들을 일으키는 권능과 권한’ 까지 주셨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일으킨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적은 사도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일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옛날에는 많았던 기적들이 오늘날에는 왜 없는가?” 답은 “옛날보다 믿음이 부족해서.” 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다.” 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해서 기적을 보아도 기적인 줄을 모른다.” 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이 아니라, ‘기적을 알아보는 믿음’ 이 부족한 것. 오늘날에도 옛날과 다름없이 하느님의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들을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쪽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아보고 깨닫는 믿음이 부족해서 기적이 일어나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 이 일은 기적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기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일이 많다. 기적은 과학과 대립 관계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냐, 아니냐? 가 중요합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5-7) 다른 민족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 가지 말라는 말씀은, 산상 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예수님 말씀에서 ‘다른 민족들’ 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우상 숭배자들을 ‘개들’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 은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기지 않는 이단자들로 해석됩니다. 산상 설교에 나오는 ‘돼지들’ 도 이단자들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상 숭배자들과 이단자들에게는 가지 말라고 지시하신 것은, 아주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중에’ 가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자들과 이단자들을 처음부터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버리신 것이 아니라, 잠시 미루신 것. 언제까지? 그들 쪽에서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 를 할 때까지.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서둘러 가라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이스라엘 집안’ 이라는 말은 유대인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있고 믿고 있고 올바르게 섬기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길 잃은 양들’ 메시아와 메시아의 복음을 갈망하고 있지만, 누가 가서 전해 주기 전까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해 주어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의 책임은 복음을 거부한 그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해 듣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의 책임은 복음을 전해 주지 않은 우리 쪽에 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서 그 나라를 맞이하여라.” 라는 선포입니다. 복음으로 선포되는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이미 시작되었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 완성되는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늦어질 수도 있지만, 오늘 밤일 수도 있고, 내일 아침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회개를 미루기만 하다가는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후회만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복음 선포를 잠시 미루었던 ‘다른 민족들’ 과 ‘사마리아인들’ 은 언제 회개하나? 그들에게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심판이라고 믿습니다. 복음을 먼저 들은 사람이든지 나중에 들은 사람이든지 간에 똑같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기회는 복음을 들은 바로 그때입니다. 매 순간, 특히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의 부르심이 있고, 주님의 손길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기도하면서 우리들이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는 은총과 축복이 가득한 삶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인간이란 미소와 눈물 사이를 왕래하는 시계추와 같은 것이다.'' - 바이런 - |
♡2202회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28일(집회서 21장~ ) 영국속담에 ''금은 진흙 속에 있어도 금이다.'' 《축복의 통로가 돼라.》자기 중심적인 삶은 이제 그만! 우리에게는 줄 것이 너무도 많다.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복을 놓칠 뿐만 아니라 남의 기쁨과 복까지 빼앗는 사람이다.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우리가 그 일을 소홀히 하면 남의 복을 빼앗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남의 흠과 잘못을 꼬집어 비판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다. 하느님은 우리더러 남을 세워 주라고 하신다. 믿음과 승리의 말을 해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신다. -믿는 대로 된다,<긍정의 힘>- 남에게 복을 나르는 통로가 되라고요? 내가 복이 없는데 남에게 복의 통로가 되라고요? 그렇다. 사람은 남에게 복을 지어 주어야만 자기에게 복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자기 중심과 자기 이기심에 갇혀 있으면 우리가 누리는 하늘은 제한적입니다. 아내에게 “사랑하오. 당신이 내 아내라서 행운이요.” 직원에게 “자네는 참 부지런하고 일도 잘 하는군!” 한 마디의 말로 복의 통로가 되어 주는 것은 자기의 기쁨이 되고 복이 됩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마태 13,24-26)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마태 13,37-39) ‘좋은 씨’ 를 뿌린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고, 악마가 와서 가라지를 뿌린다는 말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방해하고, 하늘나라가 아닌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간다는 뜻입니다 . ‘모든 사람’ 은 원래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에는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로 해석됩니다. 악마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잘 차리고 있으면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지만, 방심하고 있거나 “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유혹에 넘어갑니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처음에는 밀과 가라지가 구분되지 않고, 수확 때가 되어서야 구분된다는 것을, 즉 처음 얼마 동안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구분되지 않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구분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누구든지 지금 가라지 상태로 가는 중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나는 지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라고 큰소리치면 안 됩니다. 그런 자만심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9-30)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40-43) 실제 밭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밀은 밀이고 가라지는 가라지입니다. 밀이 가라지로 바뀌거나 가라지가 밀로 변화되는 일은 없다. 인간 세상에서는 ‘밀’ 이 타락해서 ‘가라지’ 가 되는 일도 많고, ‘가라지’ 가 회개해서 ‘밀’ 로 변화되는 일도 많다. 따라서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라는 말은, 지금은 죄인이라도 회개해서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회개의 기회’ 를 주겠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33,11)” 죄인의 멸망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도 모두 회개해서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죄인에게 회개하라고 주신 시간이, 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타락해서 죄를 짓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의인이라도 끝까지 의인으로 남아 있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평생 의인으로 살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타락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심판을 받게 될 것. “의인이 자기 의로움을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는 그 불의 때문에 죽을 것이다."(에제 33,18) ‘가라지의 비유’ 는, 지금 ‘밀’ 이라면 끝까지 밀로 남아 있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이고, 또 혹시 지금 ‘가라지’ 라면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해서 밀로 변화되라는 가르침입니다. 지금 자신이 밀이라는 자만심에 빠지거나 방심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자신을 가라지라고 생각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 가라지로 보이는 그 사람이 나중에 가라지로서 심판을 받을지, 아니면 회개해서 밀이 될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도 모두 회개해서 구원받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보기에 밀로 보이는 그 사람이 끝까지 밀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타락해서 가라지가 될지는,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 ‘가라지의 비유’ 는 ‘심판의 무서움’ 에 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불구덩이’ 라는 말은, 심판 때의 처벌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강조하는 표현인데, 사실 그다지 실감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라는 말은 누구나 실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후회’ 와 ‘절망’ 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옥의 형벌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후회’ 와 ‘절망’ 이 형벌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이 될 것. “시간이 있었을 때, 그때 회개를 했더라면...”이라는 후회,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에 대한 절망. 지옥은 매 순간마다 후회하고 절망하면서 몸부림치는 끔찍한 곳일 것. 연옥은 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보속을 하는 곳이고, 보속을 마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곳. 그래서 지옥과는 완전히 다른 곳인데, 그렇다고 해도 그 보속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면, 연옥도 역시 대단히 고통스러운 곳일 것. 우리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연옥 영혼들’ 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그 기도는 연옥 영혼들이 하루라도 빨리 보속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기도입니다. 지옥 영혼들은 기도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곳의 영혼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있는 분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곳의 영혼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고, 그 대신에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그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일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격려와 용기가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오늘을 잡아라!'' - 로빈 일리엄스 - |
♡2204회 인생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 완료형입니다.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30일(이사야서 1장~ ) 마하트마 간디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잠에서 깨면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하느님은 옹기장이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다.》 우리는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느님은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신다. 부드럽고 잘 구부러지는 진흙이 좋은 진흙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집만 앞세우는, 딱딱하고 거친 진흙일 때 하느님은 우리를 주무르고 두드려서 좋은 진흙으로 만드신다. 인생의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시련은 성장과 발전의 기회이다. 우리가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는 대상이 우리를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해 줄 도약일 수 있다. 시련은 훈련시키고 우리의 강인함과 활기 생동감을 유지시키며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러니 포기하고 도망갈 이유가 전혀 없다. 징징대거나 불평할 필요도 없다. -믿는 대로 된다,<긍정의 힘>- 인생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 완료형입니다. 하느님은 마치 진흙을 손에 쥐시고 그것이 부드러우면 손쉽게 당신의 뜻대로 좋은 작품을 빚을 수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고집만 앞세우고 자기 중심인 딱딱하고 거친 진흙일 때 물을 섞어 짓밟고 두들기고 주물러서 당신의 구상에 맞는 훌륭한 작품을 빚어 만드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님의 손에 붙잡힌 진흙은 축복받았다는 것. 그것이 부드럽든 딱딱하든 간에 주님의 소유가 되어 당신께서 귀한 작품으로 계속 완성해 가시기에 주님의 사랑과 축복과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예초를 한다고 나갔었는데 사우나가 따로 없다. 잡초들을 바라볼 때 마다 어두움도 이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리도 생명력이 왕성한지요.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납니다. 한바퀴 예초를 쭉 하고 돌아서면 벌써 저쪽 끝에서는 또 다른 잡초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뿌리는 얼마나 튼튼하고 깊이 내려가는지 모릅니다. 방심했다간 농원 전체가 순식간에 잡초로 뒤덮이게 됩니다. 잡초제거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는 정작 원하는 농작물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왕성한 식욕을 지닌 잡초들이 모든 영양분들을 다 흡수하다보니 농작물들은 시들시들, 삐쩍 말라 휘청거리다가 결국엔 죽어버립니다. 좋은 결실을 기대한다면 방법이 따로 없다. 꾸준히, 일상적으로 잡초를 뽑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농작물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농원에서 열심히 일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어령 씨가 쓴 「디지로그」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기러기에게서 배우다’ 라는 소제목이 딸린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겨울날 경쾌한 울음소리와 함께 V자 대형을 갖추고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만날 수 있는데, 그 기러기한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러기는 비행을 할 때 금·은·동의 서열로 날지 않는다. 다른 짐승처럼 보스 하나가 지배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사회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돕는 공생 관계가 이뤄지는 곳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V자 대열로 날아가는 것은 앞에서 나는 새가 날갯짓할 때 뒤에 따라오는 새를 위한 상승기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러기 떼는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71퍼센트를 더 멀리 날 수 있는데, V자 대형으로 날면 길도 잃지 않고 힘도 아낄 수 있어서 기러기들한테는 그야말로 빅토리(Victory) 사인이 아닐 수 없다. 맨 앞에서 날아가는 기러기가 지치면 뒤쪽으로 물러나고 뒤따르던 기러기가 앞장선다.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팀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기러기들은 앞장서려고 싸우는 법도 없고, 꼴찌라고 하여 열등감을 갖는 일도 없다. 힘의 법칙으로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협력과 질서에 의해서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 또 기러기가 병에 걸리거나 다쳐서 대열에서 낙오되면 두 마리의 다른 기러기가 함께 내려가 낙오된 기러기가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함께 머문다. 그런 다음에야 두 마리의 기러기는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기러기들의 대열에 합류하거나 자신들의 대열을 따라잡는다. 또한 기러기들은 서로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서 울음소리를 크게 낸다. 뒤에서 나는 기러기들은 앞서가는 기러기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큰소리를 낸다. 이렇게 서로 돕는 슬기와 그 독특한 비행 기술이 없었더라면 기러기 떼는 매일 수백 킬로미터를 날면서 해마다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비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 우리도 기러기한테서 공생의 모습을 배울 수 있어야겠다. 거저 받았으니 이웃을 위해 기꺼이 거저 내놓을 수 있는 모습 또한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확실히 알고 모두 올바른 길로 인도해 나갈 수 있어야겠다. 매 순간, 특히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의 손길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기도하면서 깊은 기쁨을 회복하면서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는 은총 가득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구름이나 소나기가 없이는 결코 무지개가 서지 않는다.'' - J.H.빈센트 - |
♡2205회 “현재 나는 어떠한 상태인가? 선인인가 악인인가?”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8월 31일(이사야서 14장~ ) 사이러스는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느님의 권세로 다스리는 곳에는 그분의 나라가 임한다.》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경험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다. 루카 10장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루카 10,8-9).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의 경험 세계와 동떨어진 신성한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그와 다르다. 그분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고 말씀하신다. 그 둘을 갈라 놓으려고 하면 알곡(그 나라)이 상할 것이다. 그분은 장차 다가올 시대에 심판이 있을 것을 확신하지만, 현재로서는 하느님이 그분의 권세로 다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일상, 하느님의 신비>- 모든 문학 작품의 예술성이란, 평범한 일상 안에 예술 혼이 녹아 내리면 예술 작품이 되는 것. 우리는 산문체의 무미건조한 범주에 길들여졌다. 교회에서 드리는 전례 행위는 하느님 나라가 표출된 것이고,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이 전례 행위와 성사의 집행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교리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일상의 삶이 이미 하느님의 권세로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임재와 현존을 살 수 있는 바탕이 없다. 하느님의 말씀이 일상의 삶에 충만히 녹아 있어서 생명력을 가지고 내 삶을 통치하고 지배하면 하느님 나라의 권세가 함께하기에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숙성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1971년, 사회심리학자인 필립 짐바르도는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던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실험을 하게 됩니다. 실험은 감옥에 있는 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25명의 중산층 남자 대학생을 뽑았다. 그리고 이들을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로 나누었다. 실험 1일차, 교도관 역할을 맡은 이들은 수감자 역할을 하기로 한 참가자들의 집에 찾아가 실제로 체포하는 과정을 똑같이 진행하였다. 수감자들은 그렇게 대학교 지하실에 미리 준비된 교도소에 끌려갔고 실제 죄수들처럼 알몸 검사, 분말 소독을 행한 뒤 발목엔 쇠사슬을 달았다. 실험 조교들은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에게 그들이 우월해서가 아닌, 단지 우연에 의해 교도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주지시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실제와 비슷한 근무복과 선글라스를 지급하고 임무를 알려주었다.그 임무는 첫째, 교도소 내 질서를 유지할 것, 둘째, 수감자들이 탈옥하지 못하도록 감시할 것, 셋째, 수감자들이 진짜 감옥에 있는 것과 같은 심리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실험이 시작된 첫 날부터 수감자들과 교도관들의 말투나 감정이 변하기 시작한 것. 교도관들은 폭력적으로 변했고 수감자들은 수동적으로 변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자기들의 권위를 위해 17가지의 교도소 규칙을 만들었고 수감자들이 저항하자 소화기를 뿌려 진압했으며 침대를 모두 빼앗았다. 2일차, 3일차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가족면회가 있는 날,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에게 간식을 주면서 가족들에게 실험에 대해 좋은 말만 하도록 요구했다. 수감자들은 적극적인 저항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수감자로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고통을 호소하던 수감자 중 한 명은 분명 자신이 원하면 실험을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나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4일차, 가톨릭 신부와의 면담에서는 2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자신을 이름이 아닌 수감자 번호로 소개했으며 교도소에서 나가기 위해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간청했다. 단 4일 만에, 완전한 수감자의 심리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 5일차에는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에게 교묘한 방법으로 성적학대를 포함한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단 5일 만에 수감자들은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무력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결국, 2주로 예정 되어있던 이 실험은 불과 5일 만에 황급히 마무리 됩니다. 이 실험은 환경과 직책이라는 조건 안에서 평범한 인간도 얼마든지 악에 빠질 수 있으며, 그 악은 너무나도 교묘해 이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한 대표적인 심리학 실험으로 남아있다. 이를 숙고해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 5일 만에,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이토록 사람이 악해지거나 수동적이 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교도관 역할이었다면 어떠한 행동을 했을까? 나 역시 비인간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을까? 자문하게 되는 것.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밀농사를 위해 밭에 좋은 씨만 뿌린 집주인에게 종이 찾아갑니다. 그리고, 좋은 씨앗만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라지가 자라고 있음을 보고합니다. 이에 주인은 가라지를 거두어 내겠다는 종을 만류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워낙 생김새가 비슷해 가라지를 골라내려다 밀까지 함께 뽑을지 모르므로 수확 때까지 그냥 놓아두라는 것. 복음적 해석에 따르면, 이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이고 밭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좋은 씨는 선한 이들이며 가라지들은 악한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 선인과 악인들이 교묘하게 섞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묘함. 이것은 바로 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주요한 특징입니다. 악은 언제나 교묘하게 우리의 마음에 침투해 우리의 행동을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선한 일을 하고자 했는데 갑자기 짜증 섞인 마음이 들고, 기꺼이 남을 위해 봉사했는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 드는 등 악은 보이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잠식하곤 합니다. 나아가 선한 일을 행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악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일도 있다. 그리하여 악의 교묘함에 빠져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되물어야 하겠다. “현재 나는 어떠한 상태인가? 선인인가 악인인가?” 물론 부족한 인간이므로 완전무결하게 선한 사람은 없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는 선과 악 중에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요. 아마 이러한 질문에 아주 당당하게 “나는 선하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대부분이 “아마도 중간쯤이 아닐까요...” 라고 생각하실 듯 합니다. 그러나 현재 선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다행인 것은 복음의 비유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심판을 지금 당장이 아닌 수확 때, 즉 우리의 죽음 이후, 하느님 대전에 서는 날로 미뤄두셨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금 마음을 다 잡아 하느님께로 우리의 마음을 되돌려야 합니다. 교묘한 악의 유혹들에서 벗어나 확고한 신앙으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며 마음의 절대적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의 마음은 밀인지 가라지인지 헤아려 보고 교묘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풍성한 열매로 주님의 품에 안길 것을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아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장 6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흔들리지 말고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지나간 일로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 에드먼드 버크 - |
♡2206회 “너는 이것을 믿느냐?” - ♡ 성경 묵상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 일순위의 삶 실천 매월 신ㆍ구약 완독계획, 24년 9월 1일(이사야서 43장~ ) 에드가 라쉔베르거는 ''미래는 건강의 유지에 있다.'' 《기쁨과 놀라움! 항상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엄청난 재물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이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구상하고 계획대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기쁨이란 기대하지 않았던 일과 함께 불쑥 우리를 찾아온다. 그래서 기쁨과 놀라움은 자매지간이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불쑥 겪는 놀라움 그래서 삶은 활기차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놀라운 일이 닥칠 수 있으니 항상 마음을 열어두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기쁨을 받아들일 때만 삶이 용솟음 칠 것이 아니라, 실망스러운 상황을 겪을 때에도, 창의적으로 반응하라! 만약 예기치 않게 좌절하는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 ‘뭐,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의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만족감을 넘어서는 선물이 바로 기쁨이다. 옛 친구가 몇 년 만에 전화를 걸어 왔을 때, 고민했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을 때,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느끼는 충만감! 그것이 바로 기쁨이다. -안젤름 그륀 신부-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1-22)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는 마르타의 말은,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을 원망하는 말로 보이지만, 뒤의 말과 합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너무 늦게 오셔서 오빠가 죽었습니다.”라고 예수님을 탓하는 말은 아니고,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면서도 “하느님의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는 믿음을 나타낸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죽은 오빠를 살리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 속에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 말에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린다는 뜻도 들어 있다. 어쩌면 마르타는 ‘야이로’ 라는 회당장이 그랬던 것처럼, 죽은 라자로를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고 싶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9,18) 마르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간청하지 못한 것은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기 때문일 것.(요한 11,39)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말인데, ‘지금도’ 라는 말을 한 것은 마르타의 희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르타는 ‘지금이라도’ 오빠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희망한 것.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요한 11,23-24)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은, 뜻으로는 “내가 네 오빠를 지금 다시 살리겠다.”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종말의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만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지금이라도’ 라자로를 살리시기를 희망하면서도 마르타는 왜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을까? 아마도 마르타의 희망은 간절하고 강력한 희망이 아니라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정도의 막연한 희망이었을 것. 그래서 예수님 말씀과 마르타의 말이 조금 어긋나 있다. 그렇지만 마르타를 탓할 수는 없다. 누구든지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5-27) 이 대화는 죽은 라자로를 지금 살릴 것인가? 에 관한 대화가 아닙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신원과 권한에 대한 대화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사람들을 부활시키거나 부활시키지 않을 권한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거나 주지 않을 권한을 가지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간단하게 줄이면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신 분이다.”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요한 5,21)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7-29) 예수님께서 생명의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은,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신 일과 이 말씀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라자로는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일어나서 나왔다. 즉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살리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권한’ 을 행사하시는 때는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인데, 여기서 ‘지금’ 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지금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바로 지금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때도 바로 지금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라는 말씀은, 당신을 믿는 사람을 죽음 속에 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는 마르타의 말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서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말입니다. 마르타의 신앙고백은 베드로 사도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신앙고백과 같다. 표현도 같고, 뜻도 같다. 마르타가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라자로의 일은 잠시 밀려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무덤으로 바로 가셨고, 라자로를 살리셨고,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 주셨다. 마르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막연하게 희망하면서도 감히 청하지는 못했던 은총을 받은 셈인데,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신 분”이라는 믿음이 확실했으니,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리시지 않았더라도, 살리는 일을 마지막 날로 미루셨더라도, 신앙이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늘 깨어 준비하는 마음으로 매 순간 주님이 오시는 날처럼, 가진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기며 기쁘게 나누고 살아가는 축복된 삶이 되시고 저와 가족의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받으시길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명언 💖💖💖 ''행운의 여신은 용기 있는 자를 좋아한다.'' - 버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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