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 저를 사랑하시어 저를 구원하시고 해방시키고자 당신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를 지키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당신의 권능과 은총에 의탁하나이다. 자애로우신 아버지 당신 치유의 손으로 지금 저를 만져 주소서 당신은 제 마음과 몸 영혼과 정신의 쾌유를 원하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당신 아드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운 성혈로 저를 감싸 주소서 제 안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모두 없애 주소서 해롭고 비정상적인 세포는 뿌리채 뽑아내 주시고 건강한 세포가 많아지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불길이 저의 온몸을 관통하여 치유하게 하시고 제 몸의 아픈 부위가 당신이 창조하신 그 기능대로 작동하도록 새롭게 만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고귀한 성령의 힘으로 모든 염증을 없애시고 감염된 부위를 깨끗이 씻어주소서. 저의 의식과 감정 그리고 제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만져주소서 제 존재 전체를 당신의 현존, 사랑, 기쁨, 평화로 가득 채워 주시고 , 삶의 매순간 제가 당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소서 아버지 당신의 성령으로 저를 가득 채우시어 제가 당신의 일을 하게 하소서.그리하여 제 삶이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과 기쁨이 되게 하소서 이 기도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성령: 종말론적 희망의 담보 희망은 성 바오로가 코린토 교우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참조 1코린13,13) 가장 큰 선물들 가운데 최종선물이다 신앙과 사랑과 희망 (참조 1코린13,13)이 세 가지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1코린13,13)일지라도 그 둘과 마찬가지로 희망은 그리스도교 생활 안에서 기본 기능을 다한다. 희망은 공동체의 선을 위하여 특정사람에게만 베풀어지는 한 특수하고 비범한 선물로서의 제한된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각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성령의 선물로 알아들어야함이 분명하다. 특히 현대에 이 선물에 대해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꽤나 적지 아니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력구원 및 자아완성을 위한 무제한적 능력의 환상과 신화 속에서 그리고 잦은 실망과 패배의 체험에서 연유되는 비관주의에 대한 유혹을 겪으며 방황하고 있다 보다 힘겨운 선을 향해 분투 노력하는 영혼의 심리학적 동기를 포함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교 희망은 덕행들의 초자연적 수준위에 근거해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질서 안에서 신도들에게 마련해 주시는 선물로서 은총에서 유래한다 (참조 『신학대전』 Ⅲ,q.7.a.2). 그것은 ‘나그네 인간’(homoviator)의 고유한 덕이다.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과 자기의 영원한 소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직접뵙는 직관에 도달하지 아니한 순례객의 특징적 덕이다 . 어떤 의미에서 희망은 히브리 서간이 이야기하듯이 순례객이 “저 휘장 안에까지 ”(참조 히브6,19) 도달하게 해준다 하지만 종말론적 차원은 이 덕에 본질적이다. 성령강림날에 성령은 사도행전의 보도대로 구원의 언명 안에 내포된 약속을 성취하러 오셨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예수)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2.33) 그런데 이 약속의 실현은 역사전체에 걸쳐 심지어 최근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울려퍼지며 사도들에 의해 설교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소유하는 이들을 위하여 종말의 때는 이미 시작되었고 또 나아가 종말은 그 근본 국면 안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성령강림사건으로부터 모든 인간과 온 인류의 구원을 목표로 하는 하느님의 계획에서 그 의미와 생생한 추동력을 취하는 성령의 현존 , 말하자면 인간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현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희망의 토대는 메시아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지속적인 현존과 섭리이다. 신약성경에서는 희망이 은총의 근원이신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장차의 영광을 우리가 벌써 앞당겨 누리게 해준다. 이런 전망에서 성 바오로는 성령의 선물이 미래 행복으l 담보와 같다고 선언한다 에페소 교우들에게 이같이 써 보냈다: “ 여러분은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에페1,13-14: 참조 4,30:2 코린 1,22) 이 땅 위의 그리스도교 생활 안에서 희망은 하느님의 영광에 충만히 참여하게 되는 과정의 입문과 같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성령은 속량의 효력을 통하여 고통과 죽음과 같은 죄의 온갖 여러 영향력도 극복될때 영원한 생명의 충만을 이루기 위한 보증이 되신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 희망은 담보일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 실재의 선취이기도 하다 . 성령이 그리스도인 안에 불어 넣으시는 희망은 또한 ‘우주적’이라 불릴 수 있을 차원 즉 하늘과 땅 , 경험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망라하는 차원을 지니기도 한다.성 바오로의 진술이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아래 둔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19-23) 인간의 소명과 우주의 운명을 익히 아는 그리스도인은 이 우주적 성장의 의미를 이해하며 또 그 성장의 목표가 온 피조물 안에 반영되어 있는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하기로 불리운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데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이 이미 성령 안에서 이 하느님의 자녀됨의 첫 결실을 누린다는 것을 알며 또한 따라서 확고한 희망을 지니고 시대의 역경 가운데서조차 세계의 밝은 운명을 내다본다. 신앙의 깨달음으로 그리스도인은 로마 서간의 아래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고 또 이구절의 진리를 체험하다시피 한다. 그 대목에서 사도는 우리에게 확실히 이야기한다:“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 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어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6-28) 알다시피 성령이 살아 움직이시고 기도하시며 활동하시는 곳은 영혼의 깊은데에서다. 성령은 우리가 궁극목적인 하느님의 전망 안으로 갈수록 더욱더 충만하게 들어가게 해주시며 , 우리의 온 삶을 구원계획에 부합되게 해 주신다 . 따라서 성령 친히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참조 / 로마8,34:히브7,251요한 2.1)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영적및 종말론적 관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니는 정감과 말씀과 더불어 (참조 로마8,15.26-27:갈라 4,6: 에페 6,18)기도하도록 도우신다. 이리하여 성령은 환상에서 그리고 구원의 잘못된 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신다. 그분은 삶의 진정한 목표를 향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면서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이런 유혹들은 특히 신앙의 전제와 더불어 혹은 적어도 하느님을 찾는 신실한 열망으로 시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교묘하고 교활 할 수밖에 없다 몸 역시 성령의 인간존재에게 주시는 희망의 이 차원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우리는 첨언해야 한다. 성바오로도 우리에게 이같이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로마 8,11:참조 2코린 5,5) |
성령: 종말론적 희망의 담보 희망은 큰 선물들 가운데 최종선물이며 성령의 선물이 분명하다. 신앙과 사랑과 희망이 세 가지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일지라도 그 둘과 마찬가지로 희망은 그리스도교 생활 안에서 기본 기능을 다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이 하느님의 자녀됨의 첫 결실을 누리며 세계의 밝은 운명을 내다본다. 성령이 살아 움직이시고 기도하시며 활동하시는 곳은 영혼의 깊은데에서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현세 삶의 지상여정은 끝을 맞는데 이 종말은 만일 한 인간이 하느님과의 우정 속에서 도달한다면 영원한 축복의 첫 순간과 일치한다 이 최고의 순간에 영혼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데 성령은 의롭게 하는 ‘첫 은총’ 그리고 지상생활 전체에 걸쳐 주어지는 성화 은총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 주어지는 현양은총까지도 조성하고 베푸시는 마지막인 은총 “---얼마나 복 된 영혼인가! 우리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인간은 끝까지 선을 행하는 은총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는 밝은 미래에 대한 뿌리다. 이제 최종 초청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오십시오 주 예수님” 1991.7.3 일반 알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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