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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 293,3: PL 38,1328-1329) |
예언자 이사야서에 의한 독서 | 29,13-24 |
주님의 심판을 예고하다 |
제1독서 |
예언자 이사야서에 의한 독서--주님의 심판을 예고하다 |
13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말로만 나와 가까운 체하고 입술로만 나를 높이는 체하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들이 나를 공경한다 하여도 사람들에게서 배운 관습일 따름이다. 14 그러므로 나는 놀랍고 기이한 일을 이 백성에게 보이고 또 보이리라.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가 말라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가 숨어 버리리라. 15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자기의 흉계를 주께 감쪽같이 숨기려는 자들아!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아보랴!” 중얼거리면서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못하는 짓이 없는 자들아! 16 너희가 어림도 없는 짓을 하는구나. 옹기 흙이 어찌 옹기장이와 같은 대접을 받겠느냐? 작품이 제작자를 두고 “그가 나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옹기 그릇이 옹기장이를 두고 “그의 재주는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17 이제 멀지 않아 레바논은 과수원이 되고 과수원은 수풀이 되고 말리라. 18 그날, 귀머거리는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캄캄하고 막막하던 소경도 눈을 떠 환히 보리라. 19 천대받는 자들은 주님 앞에서 마냥 기쁘기만 하고 빈민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앞에서 흥겨워 하리라. 20 폭군은 없어지고, 빈정대던 자들도 사라지고, 눈에 불을 켜고 나쁜 일을 찾아 다니던 자들도 간데없이 되리라. 21 그들은 입을 놀려 남에게 누명을 씌우고 성문에서 시비를 가리는 재판관을 올가미로 걸어 넘어뜨리고 정직한 사람의 송사를 아무 근거 없이 물리치던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주께서 야곱 가문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움 없이 나서고 얼굴이 창백하게 되는 일도 없으리라. 23 그들 가운데서 나의 손이 이룬 일을 보고 내 이름을 거룩하게 찬양하리라. 야곱의 거룩한 이를 신성하게 기리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리라. 24 마음이 비뚤어진 자들도 슬기를 깨치고 불평하던 자들도 사람 된 도리를 터득하리라.” |
제2독서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요한은 소리였지만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셨습니다. |
요한은 소리였지만 주님은 태초부터 계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요한은 지나가는 소리였지만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셨습니다. 말을 제거한다면 소리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빈 소리에 불과합니다. 말이 없는 소리는 귓전을 울리기는 하지만 마음을 감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전달할 때 그 과정이 어떤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말할 바를 생각할 때 이미 내 마음속에 말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당신에게 전하려고 할 때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당신의 마음속에다 전달할 수단을 찾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이미 있는 말에게 소리를 주어, 그 소리를 통해서 당신에게 그 말을 전달하게 됩니다. 말의 소리는 그 말의 내용을 전달하고 그 일을 마칠 때 사라집니다. 그러나 소리로써 당신에게 전달된 말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은 채 이제 당신의 마음속에도 있게 됩니다. 말이 당신의 마음에 들어갈 때 소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는(말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소리는) 작아져야 한다.” 목소리는 그 말이 들리게 하도록 울립니다. 그리고 자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이것으로 나는 기쁨에 넘친다.”라고 말하는 듯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잉태된 말을 우리 마음에서 흘려 보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지나가고 하느님의 말씀께서 남아 계시다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요한이 베푼 세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요한은 자기 사명을 다하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집행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세례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말해 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과 소리는 구별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한을 보고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소리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소리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며 예언자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말하자, 그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곧 침묵을 깨는 소리였습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말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들 마음에 그분이 들어가실 수 있도록 외치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길을 곧게 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내가 들어가셨으면 하고 바라는 곳으로 들어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길을 곧게 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마땅히 기도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요한이 주는 겸손의 모범을 보십시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때 자기는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오류를 자기를 높이는데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내가 그리스도요.”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백성들은 틀림없이 그 말을 쉽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요한이 말하기도 전에 요한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자기 신분 그대로를 시인하고 자신과 그리스도의 차이점을 밝히면서 자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요한은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았습니다. 자신은 등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 교만의 바람으로 그 등불을 꺼버리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
사은찬미가 |
찬미하나이다 우리 천주여 *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원하신 아버지를 * 온 세상이 삼가 받들어 모시나이다. 모든 천사 하늘들과 그 모든 능한 이들 + 케루빔과 세라핌이 *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어 노래부르오니, 거룩하셔라 거룩하셔라 * 온 누리의 주 천주 거룩도 하시어라. 엄위로운 당신의 영광 * 하늘과 땅에 가득도 하시어라.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 그 보람 뛰어나신 선지자의 대열, 눈부시게 무리진 순교자들이 *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땅에서는 어디서나 거룩한 교회가 * 그 엄위 한량없는 아버지를, 뫼셔야 할 친아드님 당신 외아드님을 * 아울러 위로자 성령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여 * 당신은 아버지의 영원하신 아드님, 인간을 구하시려 몸소 인간이 되시고자 * 동정녀의 품안을 꺼리지 않으셨나이다. 죽음의 가시를 쳐버리시고 * 믿는 이들에게 천국을 열어 주셨나이다. 지금은 천주의 오른편 아버지의 영광 안에 계시어도 * 심판하러 오시리라 우리는 믿나이다. 보배로운 피로써 구속받은 당신 종들 * 우리를 구하시기 비옵나니, 우리도 성인들과 한몫에 끼어 *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 주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 당신의 기업을 강복하소서. 그 백성 당신이 다스리시고 * 영원까지 그들을 이끌어 주소서. 나날이 주님을 기리는 우리 * 세세 대대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비오니 주여 우리를 지키시어 * 이날에 죄 없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당신 자비를 우리에게 내리시어 * 당신께 바란 대로 되게 하소서. 주여 우리 당신께 바랐사오니 * 영원토록 부끄럼이 없으리이다. ¶ 이 부분은 생략할 수도 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천주여, 당신 백성이 지금 주님의 성탄 축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이 구원의 큰 기쁨을 맞이하여,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성대한 축제를 정성되이 지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