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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깁시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Guelferbytanus 3: PLS 2,545-546)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깁시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한 독서 10,19-39
신앙에 항구함과 심판을 기다림
제1독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한 독서-----신앙에 항구함과 심판을 기다림
19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마음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21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사제가 계십니다. 22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서 나쁜 마음씨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겨 깨끗해졌으니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23 또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분은 진실한 분이시니 우리가 고백하는 그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24 서로 격려해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마음을 씁시다. 25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

26 우리가 가르침을 받아서 진리를 깨닫고도 짐짓 죄를 짓는다면 다시는 우리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릴 수 있는 제물이 없고 27 다만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켜 버릴 맹렬한 불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28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 자도 두세 증인만 있으면 용서 없이 사형을 받습니다. 29 그러니 하느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준 계약의 피를 더럽히고 은총의 성령을 모욕한 자가 받을 벌이야 얼마나 더 가혹하겠습니까? 30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하시고 또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고 말씀하신 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1 살아 계신 하느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들어 가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32 여러분은 처음에 빛을 받고 나서 많은 고난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견디어 내던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33 여러분 중에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된 사람들도 있고 그런 형편에 빠진 사람들의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34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동정했고 또 자기 재산을 다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일을 기쁘게 당했습니다. 35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념을 버리지 마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 더 있으면 오실 이가 지체 없이 나타나리라.
38 그러나 나를 믿는 올바른 사람은 믿음으로 살리라.
만일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깁시다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영광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고 인내에 대한 교훈입니다.

성부와 함께 영원하신 독생 성자께서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태어나시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그 사람들의 손에서 죽기까지 하셨다면, 신자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무엇인들 기대할 수 없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여 주신 미래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해주신 것, 지금 우리가 기념하는 그것은 더욱 위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악인들을 위해 죽으셨을 때 그들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주님이 먼저 악인들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다면, 성도들에게 당신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나약함이여! 왜 너는 우리가 언젠가는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 데 망설이는가?

이보다 훨씬 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써 일어났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말씀이 아니시겠습니까?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이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서 육신을 취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을 취하셨기에, 불사불멸이신 분께서 죽으실 수도 있었고 멸하고야 말 것에다 생명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먼저 멸하고야 말 인간의 것을 취하셨으므로 인간이 당신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생명을 얻을 능력이 없고 그분께는 본질상 죽음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와 놀라운 상호 교환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의 죽음을 보고 수치심을 갖기는커녕 거기에 모든 신뢰심을 두고 그 죽음을 크게 자랑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찾으신 죽음을 취하심으로써 우리 스스로 가질 수 없는 그 생명을 당신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지극히 충실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죄 없으신 그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겪으실 만큼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다면, 우리를 의화시키신 그분이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약속하신 분이 진실하다면, 아무 죄 없이 악인들로부터 형벌을 견디어 내신 그분은 우리에게 성인들이 받는 상급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형제들이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용감하게 또 분명히 고백합시다. 망설이는 마음이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수치심을 지니고서가 아니라 자랑스럽게 고백합시다.

이 점을 잘 이해했던 사도 바오로는 이것을 자랑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실상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또는 우리처럼 사람이 되셨을 때 만물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의 위대하고 신적인 많은 업적들을 회상하면서 자랑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것은 이것뿐입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천주여, 비오니,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힘겨워 하는 우리로 하여금, 독생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생기를 얻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