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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스크랩] 왜 하필 갈릴래아입니까?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왜 하필 갈릴래아입니까?> 3월 28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마태 28,8-15) “두려워하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왜 하필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집합시키셨을까요? 이왕이면 유다 본산인 예루살렘 광장 한 가운데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당신을 십자가형에 처한 정치인들, 종교지도자들 앞에 당당히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으면 훨씬 ‘뽀대’나고, 홍보효과도 클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십니다. 갈릴래아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예수님 시대 당시 갈릴래아 지방은 유다 여러 지방 가운데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고, 또한 ‘촌구석’이었습니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지방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그 지방 출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다들 ‘촌놈’ 왔다고 떠들어댔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 가난했기에, 못 배웠기에, 낙후되었기에, 로마 식민 통치 하에서 고통과 압박을 가장 크게 느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장 ‘외진 곳’ 갈릴래아로 먼저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먼저 가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 왕실에, 정치 1번지에, 초고층 호화 아파트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의 슬픔 한 가운데로 부활하십니다. 고통 받는 백성들의 절망 한 가운데로 부활하십니다. 상처 입은 백성들의 탄식과 눈물 한 가운데로 부활하십니다. 바로 우리들의 삶 한 가운데로 부활하십니다. 오늘날 갈릴래아는 어디입니까? 구차스런 우리의 삶 한 가운데입니다. 짜증나는 우리의 일상 한 가운데입니다. 상처투성이인 우리 인간관계 한가운데입니다. 이번 부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삶 한 가운데 부활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 각자 역시 부활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각자는 어떻게 부활할 수 있습니까? 알렐루야만 크게 외치면 부활하는 건가요? 부활계란만 실컷 먹으면 부활이 가능한가요? 이런 말씀 드리는 저도 이번 부활, 계란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혹시 효과가 있을까 해서...^ 결국 부활은 죽어야 가능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존심을 최대한 멀리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게 한번 양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번 크게 물러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마음 먹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출처 : 가톨릭 영성의 향기 cafe
글쓴이 : and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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