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예수님의 모습>
1월 23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마르 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살다보면 참으로 썰렁하고 난감하며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어린 상주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텅 빈 영안실,
하객석의 반에 반도 채워지지 않은 결혼식장,
관중이라곤 손꼽을 정도인 그라운드에서
맥없이 달리고 있는 2부 리그 선수들...
저희도 언젠가 수도원 큰 행사를 끝내고
다들 낭패감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잔치 준비를 잘 했습니다.
이런 저런 볼거리도 준비하고, 잔치 음식도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저희가 잡은 날짜가
다른 단체의 행사날짜와 겹치고 말았습니다.
거의 파리만 날렸습니다.
준비했던 많은 음식물 처리 차
계속 같은 음식 먹느라 한 3일 다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장례식이든 결혼식이든, 축제든 행사든,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좋더군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음식이 동이 나고,
다들 뒷바라지하느라 파김치가 되어도
썰렁한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단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명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너무나 많은 인파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은 기진맥진했습니다.
식사 때조차 놓칠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시장했던 나머지
예수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머물고 계시던 집으로 가셨습니다.
우선 주린 배라도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식사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야했습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고 좋은 일에 몰두 할 때,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베풀 때,
정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먹는 것 그 까짓 것 생략해도 좋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정말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저도 가끔씩 그런 체험을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일 때,
교회와 수도회를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일 때,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일을 할 때는 식사뿐만 아니라
잠까지 포기해가며 일을 할 수가 있더군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환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등
백성들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해나가면서
그들은 정녕 신바람이 났습니다.
밥 같은 것 먹지 않아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봉사자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은 이웃들을 위한 봉사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헌신에,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공존,
공동선이란 큰 가치에 정신없이 빠져 들다보니
식사뿐만 아니라 자신이란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까지 하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 되면 좋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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